예수님은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의 말씀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요14:13절은 참 기도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이 됩니다. 다시 돌아가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요14:13) ‘내 이름으로 기도한다’를
영어로 한번 보십시다. 내 이름으로 인가? 'in my name' 인가? 내 이름 안에서입니다.
이제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께서는 태초 안에 계시던 호 로고스임을 염두에 둬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이름 안에서'의 기도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이름 안에서'...
이렇게 할 수 있으면 그 기도는 백발백중입니다. 내가 어둠에 있을 때 무엇을
구하여야 하는가? 바로 빛을 구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주는 나의 빛입니다 해야죠.
빛이신 그분이 그 분의 이름 안에 있는 빛을 구하는데 우리에게 빛을 주시지 않겠는가?
만일 주님의 의와 진리 안에 거할 수만 있다면 '주여 당신은 나의 빛입니다' 외쳐보세요.
힘이 없을 때 뭘 구하겠는가? 힘이지요. 내 영혼의 배가 고플 때 무얼 구하겠는가?
생명의 양식입니다. 내 영혼이 갈증 날 때 무얼 구하겠는가? 생수입니다.
'주님 당신은 나의 힘이요 나의 생명의 양식이며 생수입니다' 이렇게 호소해야죠.
내 이름 안에서 기도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되십니까?
여러 가지의 목록을 늘어놓고 마지막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기도하는 법을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이름과
전혀 상관이 없는 기도를 하고 있는지... 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방인들의 기도입니다.
요한복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이름을 수도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내게 인도자가 없을 때는 ‘주여 내게 목자가 되어주옵소서’ 주님이 나의 목자가
안 되어 주신다면 주님이 아닙니다. 결코 진리를 알고 그 안에서 주의 이름을 간절히
호소하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이름 안에서 우리 기도를 들으십니다.
요한복음 안에서만도 주님의 이름이 매우 많습니다. 다른 성경에 있는 걸 다 모으면
주님의 이름이 엄청납니다. 인간의 필요가 복잡다단한 것처럼 주님의 이름 또한 많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이름 안에 있는 목록을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님이 주십니다. 이건 주님의 약속이십니다. 우리 뜻이 아닙니다.
기도의 원리를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저는 평생 50,000번 기도 응답을
받았다는 죠지 뮬러 보다도 훨씬 더 응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응답받는 비결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다윗입니다.
성령 안에서 진리를 통해 주님과 한 떡, 한 몸, 한 영이 되면 영광 나라에 계신
임금인 주님이 내게 임마누엘하시고, 임마누엘 하신 주님이 영광의 보좌에 계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가진 기도의 개념은 하나님을 이용해서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을
얻으면 그걸 기도응답이라고 합니다. 옛 신앙의 습성이 그대로 붙어있는 걸 봅니다.
요한복음을 왜 강해를 하고 싶은가? 바로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속성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분이란 말입니다.
그 이름 안에 있는 성분은 그 이름 안에서 그를 사랑하고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그 이름 안에 있는 것은 다 주십니다. 이건 주님의 약속이십니다.
따라서 기도에 대해서 제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간혹 성경강해를 시작하며 기도할 때에 주님의 성분에 대해서 나열해 봅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주시는데 뭘 더 구하겠습니까?
그 엄청난 이름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목록을 다 우리의 것으로 주시고
그 안에 있는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신다고 했는데 더 이상 뭘 원하겠는가?
찬송가에도 “복과 영생 예수니 더 원할 것 없도다”하고 부르지 않는가요?
우리 주님의 약속을 따라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세상의 것도 맡기십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확실한 나의 청지기다. 내 마음에 들도록 너는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시고 맡기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제발 지금부터 기도할 때에 그의 이름 안에
있는 목록을 한번 찬찬히 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롬10:13)
예를 들면 우리가 답답할 때에 왜 답답한지 그 원인을 알고
그 답답함 때문에 기도해 보세요. ‘아, 내가 답답하구나. 원인분석을 해보니
돈이 없기 때문에 답답하구나’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양식이 없어 배고픔이
아니지 않는가요? 물이 없어서 갈함도 아니지 않는가요?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영혼의 배가 고프고 갈함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래서 마땅히 구할 걸 구해야지요.
제가 오래 전 칼럼에 ‘껄떡거릴 걸 껄떡거려야지’하고 제목을 붙이려다가
좀 부드럽게 양보를 해서 “부러워할 걸 부러워해야지”하고 이렇게 약하게 썼습니다.
정말 껄떡거릴 걸 껄떡거려야지, 부러워할 걸 부러워해야지, 그렇지 않습니까?
주의 이름 안에 있는 그 영광과 풍성함과 우리를 살리심과 견고케 하심과 우리를
광채가 나게 하심과 충만하게 하시는 등의 복이 엄청나게 많은데 왜 우리가 엉뚱한
것을 구할까요? 그런데 언제 누가 그분을 제대로 구해보기나 할까요?
요14:13절 말씀 다시 읽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의 종들인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를 잘 가르치고 옷을 잘 입히고 갖가지로 잘해 주려는
것은 자식이 부모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제일 무서운 욕이
뭐냐 하면 저 후레자식 이라는 말입니다. 부모가 있으면 저렇게 내버려두겠느냐는 거죠.
부모가 저렇게 방치하겠느냐는 겁니다. 부모는 자기 영광을 위하여 자식들을 치장시키고,
가르치고 교훈시키는데, 부모가 있으면 저렇게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것은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그 이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우리를
치장하시겠다는 주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다워지는 일을 위해 기도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