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회사가 문을 닫아 식구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얼마 안되는 퇴직금으로 식당이나
프랜차이즈를 많이 시작하는데 경쟁이 심하다보니 1~2년 안에 문을 닫기 일쑤다.
비싸게 사들였던 기자재를 헐값에 팔아넘기면 전에는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가져가려는 사람이 없어 폐업을 정리하는 사업도 손을 들었다고 한다.
최근 1인가구 비율이 30%를 훌쩍 넘어서면서 소비패턴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수박이나 과일도 조각으로 판매하고 파나 무도 낱개나 조각으로 판다고 한다.
또 술값도 비싸다고 하면서잔술이 등장했단다. 기사에 의하면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인근의 노포집에서
소주나 막걸리 한잔을 천원에 판매하면서 안주는 공짜로 주니 노년층뿐만 아니라 젊은사람도 발길이 잦아든다고 한다.
우리가 어릴때는 동네 앞 치도가에는 주막이 있었는데 길가는 사람이나 땀흘려 일하는 농민들한테
소주와 막걸리를 잔술로 팔았다. 안주야 따로 없고 장독간에서 꺼낸 고추가루가 벌건 배추 김치나 짭짤한 총각김치가 고작이었다.
소주는 공장에서 두루미(한말짜리)로 들여오면 큰 독에다 따라 붓고 거기에 물을 한두 바가지 퍼 부어 량을 늘린 다음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을 한줌 뿌렸다. 막거리도 도가에서 배달오면 마찬가지로 물을 더 붓고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었다.
그렇게 해도 누구 하나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장사는 다 그렇게 하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마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때까지도 동네마다 대폿집이 있었다. 직장에서 퇴근할 때쯤 친구들과 어울려 대폿집에 들어가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면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폿집 현관문 앞에는 검은 천에, 소주,정종, 막걸리, 안주 일체 등의 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국민생활수준이 나아지면서 대폿집도
사라지고 한때는 포장마차가 길가를 점령하면서 닭발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나도 한때 불종거리 닭밤골목에서 친구와 둘이서 소주 잔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배 탈때는 일본 요코하마 야마시타공원앞 포차에서
정종 이찌 꼬뿌를 마시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