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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현재-비전이 숨쉬는 '용인의 심장'...대변신이 시작됐다
설 명절에 즈음하여, 용인소식 취재팀은 용인중앙시장(용인시 처인구 김장량동)을 찾았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늘 북적거리던 시장통이 살짝 조용해진 듯 하여 오히려 낯설었다.
시장은 명절 특수에 대응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순대와 만두, 명절에 쓸 떡 냄새가 시장기를 느끼게 하는 건 여전했다.
전국 최고로 꼽히는 이 '명물장터'는 용인의 오래된 자부심이다.
고려 김량이 포착한 최고의 상권...용인의 중심이 되다
김량상인 백년불망
용인중앙시장은 상설점포가 540여 개이며 그곳에서 활동하는 상인은 2천100명에 이른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성남 모란시장과 함께 전국에서 손꼽히는 전통시장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졌던 명소다.
지금도 용인특례시의 110만 시민이 저마다 틈을 내어 방문하고 수시로 장을 보는 최대의 '도시 장터'이다.
이곳 상인들은 저마다, 용인 시민 상당수가 기억하는 '지역 저명인사'다.
터줏대감이라 할 만한 상인들의 얼굴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용인중앙시장에서 장사하면서 망해 나가는 상인은 없었죠.'
50년째 정육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이순환 상인회 회장)이 귀뜀해 주는 말이다.
이곳 상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스스로 상품의 특화와 브랜드 관리를 위해 평생 열정을 바쳐온 분들이다.
이러니 '김량상인 백년불망'이라는 말이 나온다.
서울 면적에 버금간다는 용인에서 하나 있는 전통시장이라지만 막상 시장 속으로 걸어 들어와 보면 생각이 달라지기 십상이다.
우선 규모가 엄청나다.
골목골목 구석구석 점포들이도열해 있기도 하고 숨어있기도 하다.
중앙시장 쇼핑 미로 탐구
용인중앙시장을 ,용인초등학교 건너편 금학천변에 조성된 '문화의 거리'에서 들어가는 쪽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제1공영주차장에서 건너와 , 천변 쪽의 5번 게이트로 들어가면 전설의 순대골목이 나온다.
아곳에는 용인이 자랑하는 백암순대 명소를 비롯해, 60년 이상 전통이 서려있는 맛집들이 줄지어 기다린다.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운 까닭은, 가게마다 놓여진 큼직한 솥에서 솟아오르는 순댓국 육수 냄새가 코끝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족발은 때깔이 좋아 눈으로 보기만 해도 식욕을 부른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에 못 이긴 척 들어가 취재팀의 눈에 뛰는 것은 SINCE 1986이라 적힌 팻말이었다.
뽀얀 국물에 미처 다 숨겨지지 않은 순대와 내장은 시장의 인심을 보여주는 대목일까.
마법의 군침게이트
순댓국은 가게마다 특별한 재료를 써서 우려낸다는데, 그 사골국물 맛이 그야말로 엽기적이다.
순대-족발 가게 20여 곳은 거의 쉴 틈 없이 북적거린다.
하루 200여 명의 손님이 찾는다고 어느 만석 가게의 주인이 귀뜀해준다.
'시장'이라는 낱말은 들었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게 있다면 '길거리 음식' 아닐까.
이곳에선 발이 닿는 곳곳마다 눈길을 끄는 요깃시거리가 한 가득이다.
이 4번 게이트로 들어갔다면 또한 중앙시장 명물인 떡-만두-전 골목이 군침을 돋게 할 것이다.
손님들이 한참 줄을 서야 하는 유명한 호떡집도 보인다.
유명인사들이 단골로 찾는 점포로 소문이 나있다.
그들도 이 점포들을 그냥 지나치기가 수비지 않았으리라.
서서 호호 불어가며 먹는 호떡 맛은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경력 30년 오똑 정안아 만든 '작품'이라면, 그 맛은 상상만 해도 이미 맛있을 수밖에 없다.
갓 튀겨 매대에 나와 있는 꽈베기도 사람 잡는 데에 선수다.
이 때문에 4,5번은 '비법의 군침게이트'라는 변명을 얻었다.
곳곳에 있는 떡집에는형형색색의 떡들이 칸칸이 정렬돼 있다.
길게 뽑아져 나온 가래떡 모양도 곱다.
열심히 전을 부치는 상인들, 명절이라 이 풍경이 더 정겹다.
3번 게이트엔 만물상 잡화골목
3번 게이트를 택했다면, 청한 종합쇼핑센터와 요인농협이 보일 때쯤 해서 왼쪽으로 틀면 이곳을 만믈상으로 불리게 한
잡화골목이 알록달록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름이 잡화이지, 하나로 뭉뚱거릴 수 없는 다양한 제품들이 도열했다.
구두, 가방, 모자는 물론이고패소와 과일도 있다.
각지에서 온 수산물, 곡물, 축산물들도 즐비하다.
이 세 개의 게이트를 중심으로 용인중앙시장은 그야말로 곳곳에 틈틈이 기이할 만큼 뺴곡하게 많은 점포를 거느리고 있는
거대한 모체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시장 한바퀴가 이렇게 알찰 수 있나, 싶은 이곳.
이게 바로 '못말리는 용중씨(용인중앙시장의 애칭)'의 힘이다.
전통시장 무료배송 담당하는 배송센터
천변의 금학교 술막다리 위의 무대광장(별빛마당 야시장 개장 무대가 열리는 곳) 쪽으로 들어오는
6번 게이트 중앙로에는 별당마켓이 기다리고 있다.
용인중앙시장은 시장상인회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이다.
현재 408명으로 구성된 상인회원들은 매년 개설되는 상인대학에서 맞춤형 교육울 받는다.
또 주차장, 아케이드, 도로, 조형물, 점포 이미지 개선 등을 통해 시설을 현대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온 아이디어들 중 의 하나가 '전통시장 무료배송'이다.
중앙시장은 2024년 4우러부터 무료배송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참신한 서비스는 고객들의 환영을 받았다.
등록점포에서 물건을 구입한 시민들은, 시장 배송센터(제2공영주차장 1층 사무실)에서 접수카드를 작성하면 된다.
이에 더해 용인와이페이나 문화온누리상품구너 가맹점에서는 현금이나 신용카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단으로
상품구매가 가능한 점도 잊지 말기를.
시장을 거닐다 보니, 상점 곳곳에 '청년상인'이란 간판이 보인다.
가업을 승계한 청년도 있고, 창업을 시작한 청년도 있으리라.
저마다 야심찬 시장 구성원이 되어 유서깊은 이 시장을 점점 더 젊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중앙시장은 신-구 세대의 조화가 돋보이는 곳임에 틀림없다.
고려시대 김량이 개설한 시장
1346년(고려 충목왕 2년) 김량이 극락에 태어나기를 바라며 쓴 묵서가 충남 청양 장곡사의 불상(금상약사여래좌상)의
배 속에서 발견됐다.
이런 유물을 불복장 발원문이라 일컫는다.
흰색 모시천에 먹글씨로 쓰여 있는 이 글은 장곡사 불상의 조성시기를 확정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그의 죽음에, 간절한 부활의 희구를 글로 써서 발원한 일은, 그의 생애가 그토록 기릴만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용인장은 고려시대 김량이라는 이사 외지에서 들어와 장터를 열었다고 전해 온다.
그 김량이 발원문에 적힌 사람인지는알 수 없다.
이름 하나만으로 연결라기엔 역사적 단서가 희박하기까지 하다.
시장 상인의 이름이 시장 명칭이 된 까닭
시장 상인의 이름이 어떻게, 그 시장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을까.
김량장의 김량에 대해 남아있는 사실은 거의 전무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물산과 상품의 거래가 희귀했던 시절,
한 사람의 주도적인 역할로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점을, 김량장'이란 이름이 이미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용인장은 아예 '김량장'으로 불렀으며, 조선 영조시대의 읍지 기록에도 등장한다.
상인의 이름이 곧 시장의 명칭이 되었다는 건, 당시 그의 유명세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 저렴하고 건강한 유통으로 춥고 배고픈 많은 이를 살리겠다는 김량의 꿈은 지금까지도 살아있지
않던가.
저 기록들을 감안하여 시장의 역사를 추정해보면 700년 정도의 전통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용인에 거래공간을 기획한, 자유시장의 비조?
김량장은, 시장을 세운 이의 이름이 뚜렷이 남아있는 독특한 전통시장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량장이란 명칭은 김량이 단순히 시장 상인이 아니었다는 의미가 담겨있을 가능성이 높다.
초기장터는 전국에 흩어져 있었고, 장사꾼들이 각지의 '정기 개설'(예를 들면 5일장) 장터들을 찾아가 물건을 파는 방식으로
형성됐다.
김량은 용인에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모두 선호하는 거래공간을 만들어 만족도 높은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장을 창출한 것이다.
김량은 상인과 소비자가 물건을 매매하는 조건을 합리적으로 정하여 신뢰를 주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몰아 오는
시장 흥행의 뛰어난 솜씨로 유명해졌을 것이다.
상업의 경험과 지식이 제대로 축적되지 않았던 왕국(고려)에서 새로운 유형의 민간주도 장터를 열었던 김량은,
근대적 자유시장의 형식을 실험한 비조로 비정할 만하다.
용인초등학교 첫 졸업생들 장터에 모여 외친 만세운동의 폭풍
독립운동의 요람이 된 , 김장량
한편 김장량이 '김량이 개설한 장터'가 아니라,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금령역에서비롯된 명칭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고려사절요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장하는 '금령역'은 경기좌도에 위치한 군사적 요지였고 물류의 중심지다.
조선후기 들어서 금령역이 김량역으로 갑자기 바뀌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인 10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금령역 일대의 마을이 김량장리로 공식 명명되었다.
그런데 왜 조산 후기에 갑자기 '금령'과 '김량'이 비슷한 발음 때문 마치 착오를 일으킨 듯 갑작스럽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찾기는 어렵다.
이에 대한 합리적인 추론은 고려시대 때분터 금령역과 함께 김장량이 함께 존재했을 가능성이다.
금령은 이 지역의 산악 명칭이기에 역사 명칭을 붙여졌을 것이다.
일제는 고을사람들에게 더 친근한 '김량'으로 개칭한 것이 아닐까.
일제 강점기에도 김장량은 상설장과 5일장이 열리는 핵심상권이었고 이지역의 이름은 '김량장리'였다.
1937년 동아일보 시가에는 김량장의 '우시장' 관련 보도가 등장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 김량장은 구한말 의병의 근거지였다.
1907년과 1908년 이곳 의병들이 친일파 일진회 회원을 처단하고 헌병분전소를 습격해 항일운동의 불을 지폈다.
1919년 3월 24일엔 김량장공립보통학교 졸업생들이 김량장 장터로 몰려와 만세를 외쳤다.
경기 일대의 만세 운동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김량장공립보통학교는 지금의 용인초등학교(1915년 선립)다.
첫 졸업생을 배출했던 1919년에 학생들은 졸업식 대신 만세운동을 위해 뛰쳐나갔다.
김량장은 이렇게 뜨거웠던 역사의 현장이다.
술막다리 금학교의 비밀
김량장동 일대의 용인중앙시장과 5일장은, 상업에 대한 선구적인 안목을 지녔던 '김량의 꿈'이 오랜 세월에 걸쳐
피워오른 장터라 할 수 있다.
용인중앙시장 북편에는 금학천이 흐르고 있다.
이 개천은 빨래터이기도 하고 유명한 천렵지이기도 했다.
이 오래된 개천 위에는 금학교가 놓여 있는데, 이 다리의 원래 이름은 술막다리였다.
다리를 건너 술막으로 진입하는 길이 있었다는 얘기다.
술막은 주점이 늘어선 마을이다.
용인은 조선시대 영남대로의핵심 길목이었다.
지방에서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거나 시험을 치르고 돌아가는 선비들, 혹은 이 거점을 통해 이동하는
관료들은 '용인의 '술막'에서 회포를 풀고 숙박을 했다.
나그네들이 잠깐 머무르기 알맞은 곳이었던 용인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쉬어가도록 하는 주막거리가 생겨나 있었다는 얘기다.
술막다리는 그 통행의 자취라고 할 수 있다.
김량장 또한, 유동인구가 많은 용인을 주목하고 그 길목을 잡아, 전략적으로 개설했다고 볼 수 있다.
시장을 열어 마케팅으로 사람을 부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여 드는 곳을 살펴 시장을 열었다는 증거를 저 술막다리가 말해 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 김량장은 광주, 수원, 이천, 안성으로 이어지는 교차로 역할을 했다.
금학교는 지금도 용인중앙시장 옆길을 따라 흐르는 슴학천을 내려다보며 여기에 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수백 년의 비밀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관청에서 사들인 씰, 용인의 핵심 거래처는 김량장
1770년(영조 46년)에나온 '동국문헌비고'의 시적고에는 '용인 읍내2, 김량5, 도촌1'이라는 내용이 보인다.
시적이란, 민간의 쌀을 사들이는 일을 가리킨다.
용인의 경우에는 읍내에서 2를 사들였고 김량에서 5를 사들였고 도촌에서 1을 사들였다.
조선시대 용인지역 관청 미곡 거래에서 김량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량장은 상설시장이지만, 닷새마다 하루씩 시장의 규모가 호가장되는 정기 개설 시장이기도 하다.
현재도 매달 0과 5로 끝나는 날에는 어김없이 5일장 김량장이 열린다.
이 정기적인 시장 개설 방식이 김량장의 원형이었을 것이다.
5일장 김량장에서, 상설장 중앙시장으로
5일장의 붐에 힘입어, 상설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시장이 정체성과 명성을 일구어 나가게 된다.
김량장이 상설장으로 굳어진 것은 1960년대였다.
1980년대 후반 이 일대에 청한상가(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서면서,시장 상권이 확 넓어졌다.
이 전통시장은 현재, 용인중앙시장=상설장', '김량장=5일장'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불리고 있다.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와본 사람은 없다.'
매달 여섯차례 장이 열리는 5일장날에는 1만명 시상이 북적거리고 평일에도 6천 명 이상의 손님들이 찾는
용인중앙시장-김량장 상인들이 밝히는 유명한 경험칙이다.
김량장의 저력 보여주는 별빛마당 애시장 30만 인파
재작년 첫 행사(2023년 9월 1일~3일)로 진행된 '용인중앙시장 별빛 마당 야시장'(중앙시장 상인회 주관, 용인시 후원)은
사흘동안 8만 명이 다녀가 요즘 조기 드문 '인산인해 시장터'를 이뤘다.
유서깊은 김량장의 이벤트역량과 면목을 보여준 '대박'이었다.
이후 행사엔 인파가급속히 늘어, 3차 때(2024년 6월28일~30일)는 15만 명을 넘겼고, 4차 때(2024년 10월 11일~13일)는
30만명이 넘는 '기적의 흥행'을 보여주었다.
'별빛마당 30만 명 인파'는 2024년 용인 시민이 뽑은 '올해의 뉴스'에 오르기도 했다.
전통시장이 노장년층에는 익숙하지만 젊은 세대와는 호흡을 맞출 기회가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 역발상을 발휘하여, 청년층 타켓을 위한 음식과 상품, 이벤트를 '김량의 혁신'처럼 과감히 적용했다.
청년들을 매료시킨 야시장 '별당'의 상설화
야시장이란 이미지가 자아내는 낭만적인 포인트를 살려내면서 바비큐, 떡볶기, 전 음식들을 내놓았고,
약과, 수제맥주도 곁들였다.
노래와 댄스, 버스킹 등 공연이 있었고, 전통주 시음,떡메 치기, 스템프 투어, 경품추첨 행사가 벌어졌다.
노천에 빼곡히 놓인 간이식탁에는 시민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에서 온 방문객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대부분 청년들이었다.
연일 몰려드는 야간 인파에 가장 놀란 건 중앙시장 상인들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인파가 시장을 한꺼번에 찾은 건, 오래만에 본다.
이런 일이 가능하네요'라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이런 상황에 힘입어 야시장은 또하나의 '젊ㅇ누 투랜두 감령장'이 되어 해마다 열리는 정기적 행사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별당(별빛마당) 축제'로 불리는 이 행사만으로도 용인중앙시장은 국내전통시장의 성공모델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매주 금토일 주말에는 '별당마켓'이라는 미니 야시장도 열린다.
별빛마당의 '샘플'을 준상설화람으로써 그매력을 각인시키려는 전략일 것이다.
중앙시장이 스마트 변신 시동 걸었다.
용인중앙시장은 2022년 12월 국토교통부의 '재역특화 및 스마트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된 바 있다.
2026년까지 중앙시장 일대 (20만467m2)에 '도시재생 산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시장의 과학적 경영을 위해 2024년 7월 '시장 유동인구 분석시스템'을 가동했다.
'스마트 시장'으로 거듭나는 첫 걸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장 1번게이트를 비롯해 교차로 9곳에 유동인구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분석용 첨단센서는 시민들에게 인터넷 5G 공공와이파이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2025년 1월 용인시는 ㄴ중앙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초-중-고 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체험 프로그램을 4차례 열었다.
'시장에서 디지털을 체험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 행사는 중앙동 스마트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이었다.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스마트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기획되었다.
김량장 디지털 홍보관 '스페이스 137'의 탄생
용인중앙시장 슨마트 도시재생의 핵심 거점으로 '김량장 스마트워크 플랫폼'이 건립ㄱ도니다.
이곳 1층에는 김량장 디지털홍보관 '스페이스 137'이 세워진다.
숫자 137은 용인시장의 주소인 '김량장동 137번지'에서 따왔다.
스마트워크 플랫폼은 용인중앙시장을 우주나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시킨다는 꿈을 담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교육, 인공지능, 메타버스와 같은 첨단기술을 이곳에서 체험할 수 있으며 관내 대학과 협업해 인재양성과
창업프로그램도 운영될 계획이다.
깊은 전통을 지닌 용인의 한 브랜드이기도 한 '용인중앙시장'을 스마트화하는 일은 이 도시가 가다듬고 있는
미래 전략에서 중요한 포석이 될 사업이다.
용인의 과거-현재-미래가 담긴 복합시공간, 중앙시장
용인중앙시장을 둘러보는 일은 용인의 역사와 현재와 비전까지를 느끼게 하는 '시간의 순례 코스'이기도 했다.
중앙시장 순대와 호떡 맛도 청년들의 지혜와 활약으로 글로벌해질까.
설 즈음이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청년들이 지나간다.
'김량의 꿈'이 지금 다시 진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용인소식 커버스토리 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