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풍습-고려장이야기
낭독-이의선
고려장(高麗葬)은 늙은 부모를 산속의 구덩이에 버려두었다가 죽은 뒤에 장례를 지냈다는 풍습으로
오늘날에도 늙고 쇠약한 부모를 낯선 곳에 유기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고려장이란 명칭 외에
고려총(高麗塚), 고려산(高麗山), 고려곡(高麗谷), 고려분(高麗墳)이라고도 한다.
『옛날 고려시대 울릉도에 효성이 지극한 아들과 나이 일흔이 되는 어머니가 있었다. 아들은 나이가 일흔이 넘으면
고려장을 하는 나라의 법을 따라야 했으나, 살아 있는 어머니를 묻을 수가 없어 망설였다.
결국 아들은 산속 높은 곳에 넓고 평평한 반석이 있어 이곳에 어머니를 고려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괴로워할까 봐 걱정이 되어 말도 못하고, 아들은 어머니에게 죄스러워 말도 못하고
서로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처럼 괴로웠다.
길이 매우 멀어서 몇 번씩 쉬면서 가는데, 어머니는 먼 길을 업고 오느라고 힘들 아들 생각을 하니
혹시 아들이 길을 잃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쉴 때마다 나뭇가지를 꺾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어머니는 슬펐지만, 아들의 섭섭해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어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아들은 어머니가 아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말을 하자,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려고 하자 아들은 거짓말로 집에 가서 저녁밥을 가져온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혹시 내려가는 길을 모르면 나뭇가지 꺾인 것을 보고 따라가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아들의 가슴은
더욱 찢어지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가 살림 걱정이며 길을 잃을까 걱정하여
나뭇가지를 꺾어 두었더라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자 아내는 어머니를 다시 모셔오자고 하였다.
고려장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셔 온 일이 나라 전체에 알려지면서 아들은 임금 앞에 불려 가게 되었다.
아들의 전후 사정 이야기를 들은 임금도 아들의 효성과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감동하여 어명을 내려
고려장을 없애게 되었다.』(<울릉군지>)
『옛날 어느 곳에 할머니와 아들 부부, 손자가 살았다. 아들 부부는 할아버지가 죽은 뒤로
사사건건 할머니를 학대하였다.
“밥은 왜 이리 많이 먹느냐, 일은 안 하느냐, 언제 죽느냐”
등등 잔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뿐인 손자가 할머니한테 가는 것도 막았다. 한 번은 손자가 할머니한테
점심상을 차려 드렸다고 얼마나 때렸는지, 그 후로는 손자도 할머니한테 가지 않았다.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이제 그만 죽어지면 오죽이나 좋을까?”
했지만 질긴 것이 목숨이라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그런데 가난이 죄라고, 당시에는 사람이 병이 들거나 늙으면 산 채로 땅에 묻어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할머니가 예순 살이 되던 어느 날 밤, 아들 부부는 할머니를 내다 버리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손자가 들었다.
다음 날, 아들 부부가 할머니를 지고 갈 지게를 손보는데 손자가,
“아버지 어머니, 무얼 하십니까? 이제 곧 아버지 어머니도 늙은 테니, 아버지부터 그 지게에 누우십시오.
제가 먼저 아버지 어머니를 져다 버리고, 할머니도 내다 버리지요.” 하였다. 아들 부부는
“아뿔사!”
하고, 탄식을 하였다. 그러고는 반성의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를 잘 모셨다고 한다.
그로부터 많고 많은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할머니도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더는 어쩔 수 없게 된 아들은 지게 위에 할머니와, 할머니가 당분간 먹을 음식을 지고 깊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가시덤불과 나무가 무성한 숲을 헤치고 들어갔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할머니 손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 손에서 왜 이렇게 피가 납니까?”
하고 아들이 묻자 어머니는,
“네가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릴까 봐 나뭇가지와 가시덤불을 꺾어 놨다. 그러니 내 걱정은 말고 그 길을 따라
조심해서 돌아가거라.”하고 말했다
. 아들은 엉엉 울면서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 그 얘기를 했다. 그러자 부인도 함께 울면서 할머니를 학대했던
옛날 일을 후회했다고 한다.』(<제주도민담>)
『삼국 전쟁으로 어수선한 고구려 말 영양왕 시절, 부모가 늙어서 쇠약해지면 산에 토굴을 파서 죽기 전에
생매장을 하고 돌아가신 후 매장하는 일시적인 순장 풍속이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늙어 병든 아버지가 있어
산에 굴을 파고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에 올라가 할아버지를 토굴속에 넣어두고 지게도 버린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집으로 내려오는 광경을 손자가 보게 되었다.
손자는 자기를 귀여워 해주시던 할아버지를 못 잊어 산에 올라가 할아버지를 다시 지게에 지고
집으로 모셔 오려고 하였으나 힘이 약하여 빈 지게만 지고 내려왔다. 이를 보고 있던 아버지가 깜짝 놀라면서,
“이놈아! 그 지게는 버리고 오는 법인데 왜 다시 갖고 왔느냐 당장 산에 버리고 오너라.”
하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지게를 왜 버립니까. 이 지게를 잘 두었다가 제가 쓸 데가 있을 거예요.”
하고 대답을 하였다.
“이놈아! 그 지게가 아니더라도 다른 지게가 얼마든지 있을 터이니 어서 버리고 오려무나.”
라고 아버지가 말하자 아들이,
“아니에요. 이 다음에 아버지가 늙으시면 제가 이 지게로 지고 갈래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뜻밖의 대답에 가슴이 섬짓하여,
“아차, 다음이 바로 내 차례구나.”
하고 탄식을 하였다. 아무리 부모를 똑바로 섬기지 못한 어리석은 불효자라도 나이 어린 아들의 말을 듣고 나서
가슴이 철렁하지 않을 수 없어 다시 산으로 올라가 아버지를 모시고 내려와 극진히 공경을 하였다.
이러한 실정이 나라에 알려지자 임금께서는 그동안 있었던 순장 풍속을 없애도록 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오늘날 핵가족 제도로 늙은 부모를 버리거나, 멀리 떨어져 살며 부모를 보살피지 않는 자식들을 생각할 때
옛날 부모를 고려장 지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젊은이들은 다시 한 번 각성하여야 할 것이다.
- (파주문화원 홈 인용) -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려장의 이야기 언제나
많이 들어 보았지요
늙은 부모를 지개에
지고 산에 가서 버리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도 많이 있지요
고려장에 대한 효도 이야기 감동깊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