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일 2025-02-26 08:59:19 수정일 2025-02-26 08:59:19 발행일 2025-03-02 제 3431호 22면
‘가위바위보’를 처음 한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요? 일단 우리나라는 아닙니다. 가위바위보의 원조는 중국입니다. 중국의 도교 사상에서 비롯되어 장사하는 상인들 사이에서 숫자놀이 게임인 ‘수권’으로 발전, 그것이 나가사키 무역항을 통해서 일본으로 수입됐다고 합니다. ‘잔켄폰’이라는 이름으로 사무라이부터 노동자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 때 들어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가위! 바위! 보!”
여러분은 주로 어떨 때 가위바위보를 하십니까? 짜장면 먹을까, 짬뽕 먹을까? 순서를 정하거나 편을 나눌 때? 승부가 지지부진하거나 팽팽할 때? 이기면 기분이 참 좋지요. 졌다고 해도 못 견디게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설령 졌다고 해서 크게 화를 내거나 고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몇 년 전, 모 광역시 관광과 직원들과 도시 관광 유치에 관한 아이디어로 가위바위보 대회를 하자고 했더니 팀장이란 분이 대뜸 “그거 유치한 거잖아요”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일어나 사무실을 나온 기억이 아직도 지워지질 않습니다.
가위바위보란 게임이 유치하다면 승패에 대한 과정이나 이기는 방법에 쉽게 통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이기는, 부동의 승자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니 어렵습니다.
가위바위보는 게임 방법이나 규칙이 간단합니다. (게임 방법이 다 동일하지만, 운영 방식이 조금씩 다른 나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기고 싶다고 이기고, 지고 싶다고 질 수 없습니다. 예측하기 어려운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운에만 의존할 수도 없습니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지만, 그 뒤에 숨겨진 깊은 전략과 고도의 심리전이 뒷받침돼야 하는 흥미진진한 게임입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서양에서는 주로 ‘동전 던지기’를 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가위바위보로 합니다. 앞이냐 뒤냐, 그 단면만으로 결정하는 동전은 ‘독백’이며 결정 자체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요.
하지만 상대의 표정을 살피며 손과 만났을 때 의미가 생기는 가위바위보는 ‘관계’이며 ‘대화’입니다. 요즘처럼 대립의 세상이라면 가위바위보 한 판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구식 게임인 이항 대립의 동전 던지기만 하고 있는가? 앞면 아니면 뒷면. 오로지 흑백 논리로만 치닫고 있는 게 아닌가. ‘도 아니면 모’ 식의 중간 결과 없이 성공 아니면 실패, 전부 아니면 전무의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위바위보는 강한 것보다 약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줍니다. 주먹이 아니면 보자기의 뻔한 싸움에는 양자택일의 대립밖에는 생기지 않습니다. 서로의 힘자랑만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가위바위보의 가장 큰 매력은 삼자 견제의 철학이 있다는 겁니다.
가위는 바위에게 지고 바위는 보자기에 지고 보자기는 다시 가위에게 지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게임입니다. 아무리 부드러운 ‘보자기’가 단단한 ‘바위’를 이기는 가위바위보의 ‘덕’(德)이 있다지만, 이 두 개만으로는 가위바위보를 할 수 없습니다. 바위와 보 사이에 절대 승자를 없게 만드는 반쯤 열리고 반쯤 닫혀 있는 ‘가위’가 있습니다. 가위바위보는 세 개로 하는 겁니다.
서로의 주장이 팽팽해서 결론 내기가 어렵다면 차라리 가위바위보 한 판 합시다.
글 _ 장용 스테파노(방송인·한국가위바위보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