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5년 11월 1일
이 날은 가톨릭의 대축일 중 하나인 만성절이었다.
독실한 가톨릭 국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는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모여 미사에 참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멋진 날씨였다. 태양은 광휘를 가득 발산했고 하늘은 평화롭고 고요했다. 수많은 주민이 살고 있는 융성하고 풍요한 도시를 극한의 공포와 폐허로 뒤바꾸어 놓을 사건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 《세계의 역사 5편 :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 Houghton Mifflin, 1914, p.618
그러나 이 평화도 잠시...
1755년 11월 1일 오전 9시 30분경
리스본 근처 북대서양 해역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8.5~9.0으로 추정되는 대지진이 리스본을 비롯한 포르투갈 전역을 강타했다.
리스본의 거의 모든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 위해 사용했던 촛대는 리스본을 뒤엎는 화마로 돌변했다.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에 모여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대로 건물에 깔리고 불에 타서 몰살당했다.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지진에 이어 바로 들이닥친 쓰나미에 휩쓸려 나갔다.
정확한 사망자 수도 제대로 집계할 수 없을 정도의 대재앙이었다.
리스본에서만 약 3만~4만명이 사망하고, 다른 지역의 피해까지 합치면 약 10만명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오늘날 리스본에는 1755년 이전의 건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남아있다 하더라도 사진처럼 폐허에 가까운 유적만이 있을뿐이다.
다행히 당시 포르투갈에는 명재상 세바스티앙 주제 디 카르발류 이 멜루 (폼발 후작) 가 있었다.
폼발 후작은 사실상 왕에게 전권을 위임받아 리스본 재건 계획에 착수했다.
폐허가 된 구시가지를 완전히 쓸어버리고 백지상태에서 도시를 다시 짓기 시작했으며
덕분에 오늘날 리스본은 다른 유럽의 역사적 도시들과는 다르게 반듯한 격자형을 이룬다.
지진 이후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은 '가이올라'라고 불리는, 내진 설계가 적용된 건축공법을 적용하여 건설하여야만 했다.
또한 폼발 후작은 전국의 모든 교구에 지진의 피해에 대한 상세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는 세계 최초로 지진에 대한 객관적 설문조사를 실시한 사례였다.
이를 통해 지진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지진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리스본 대지진으로 인해 '지진학'이라는 학문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스본 대지진은 당대 유럽인들에게 단순한 자연재해 그 이상의 영향을 미쳤다.
유럽에서 가장 독실한 가톨릭 신앙의 도시였던 리스본에
그것도 가톨릭 축일에 들이닥친 대재앙으로 인해, 미사를 드리기 위해 모여 있던 수많은 신자들이 몰살당했다.
리스본에서 가장 피해가 적었던 지역은 다름 아닌 사창가였다.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에서 당시 유럽인들은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하더라도 자신을 믿는 신자들에게 재앙을 내려주는 신이라면, 우리가 더 이상 신을 믿을 이유가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리스본 대지진은 유럽인들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크게 뒤흔들었다.
계몽주의는 큰 힘을 얻었고, 유럽은 급속도로 세속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5세기 로마의 몰락 이래로 서구 문명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참사다."
- 토머스 D. 켄드릭 (역사학자)
첫댓글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사람들한테 딱히 관심있는것 같지는 않음
222...솔직히저도종교가잇지만신은사람에게관심이없는것같다는생각이많이드네요.....
ㅋㅋㅋ 올레웹툰에 악마도 의무교육받습니다에 딱 지니님께서 말씀하신거랑 같은 대사가 있던데 그거 생각나네요ㅋㅋㅋ
헐 진짜 생지옥이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