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5장은 관계성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대해 대답해야 할 그 첫째는 내가 하나님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여기서 예배, 기도, 교제가 성립되고
그로부터 의와 거룩과 영광을 얻고 빛과 생명과 사랑을 공급 받아 하나님의 자녀다워집니다.
요13장은 선택과 영접입니다. 요13장에서 예수님이 발을 씻어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나(출3:5) 여호수아에게(수5:15)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 신을 벗어라 하심은 그 거룩함으로 영접하신다는 의밉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를 받아 주시듯 주님이 발을 씻어 주시는 건 그 분 안으로의 영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고 난 다음 요14장은 육적수준에서 영적수준으로
끌어올려주시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14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알지 못하면 난감합니다.
그리고 요15장에서는 영적수준으로 끌어올려 진 상태에서 아버지와 주님, 그리고
우리가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농부와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 바로 신비한 자연의 주고받음의 매커니즘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13장에서는 발 씻음. 14장에서는 처소(거처)에 관한 말씀입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그 처소(거처)까지 우리를 끌어올려주십니다. 끝까지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 처소에 들어갔는데 요15장은 그 처소 안에서 계속 공급을 받아서 자라갑니다.
그것이 바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농부인 아버지가 계십니다.
요13장, 14장, 15장의 전개되는 과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관점을 가지면 누구든지
이 비밀을 볼 수 있습니다. 요13장이 보이고, 14장이 보이고, 15장이 보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대로 내게 적용하려고 기도하면 서서히 내 것이 되어 갑니다.
성경은 객관적인 지식이지만 진리의 성령은 우리의 주관적체험이 되게 하십니다.
포도나무의 뿌리로부터 진액이 올라옵니다. 인간의 육신에는 음식이 살과 피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해
놓으시고, 그 원리와 방법을 요13장, 14장, 15장에서 확실하게 설명하십니다.
요13장에서 17장은 예수님의 다락방 강화인데 주님의 고별설교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말씀하신 마5, 6, 7장을 이 고별설교를 통해서 이루십니다.
진리의 성령에 의해서만 산상보훈이 실상화 되어 이루어집니다. 진리의 성령이
임하시지 않는 사람에겐 8복이 이루어져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며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 곧 율법이 이루어져 행하고 가르치는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14, 15, 16, 17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5-7장과 요14-16장은 수레의
양 바퀴와 같은데 이 부분만 해석이 되어 자신에게 적용이 되면 성경이 다 풀리게 됩니다.
나무는 뿌리가 근본입니다. 예수님도 육신으로는 다윗의 뿌리로부터 나셨습니다.
그리고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습니다. 사실 농부가 가지보다 뿌리를 잘 관리합니다.
나무가 시들시들하면 이파리에 물이나 비료를 퍼붓지 않고 뿌리를 잘 관리합니다.
가지는 그냥 손질하는 것뿐입니다. 뿌리에 밑거름을 많이 줘야 농사가 잘 됩니다.
그런 것처럼 바로 농부이신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원천에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요셉을 보고 원천의 복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하늘의 원천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땅의 복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야베스 같은 사람에게는 복의 복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도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창1:27-28)이
나오는데 가지가 나무 안에 거하고 나무가 가지 안에 있으면 이 복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면 손가락이 손 안에, 손은 손가락 안에 라고 말하면 손가락이 손 안에
있다는 말은 이해가 가는데 손이 왜 손가락 안에 있다고 할까요? 그건 겉으로
모양만 봐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가 되는 원리입니다.
손가락은 분명히 손에 붙어있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손 안에 있는 진액이
손가락 안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손이 손가락 안에 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 뿌리의 진액이 나무를 통해 가지에 공급됩니다. 그러므로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진액에 의한 열매이기에 분명히 내 것은 아니지만 내게 맺히는 열매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열리는 열매입니다. 나는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
다만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기만 하는데 실제 진액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에게 전달이 되어 열매가 열립니다.
그래서 반드시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진액은 나무에서 뿌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뿌리에서 가지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 안에’ 라고 하신 주의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계명을 마음으로 지키므로 주의 나타나심을 체험합니다.
다시 설명합니다. 모든 나무는 뿌리로부터 진액이 올라와 가지로 갑니다.
그리고 충만해지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반드시 먹고 남아야 열매를 맺습니다.
나무는 땅으로부터 수분과 영양을 빨아들여 먹고 살기에 충분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실비실한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겁니다.
모든 나무는 반드시 충만해져야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뿌리로부터 나온 진액은 가지나 나무로부터 뿌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열매를 맺어서 다른 사람에게 혜택이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충만한 결과가 서로 사랑이 됩니다. 그래서 나무는 자기를 위해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을 사랑하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뿌리로부터 공급을 받아서 내가 충만해지는 이 원리를 먼저 터득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데서 부터 시작하지 않고,
너희는 내 사랑 안에 거하라고 먼저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해야 할
중요한 점은 사랑하려고 덤비지 말고, 주님의 사랑에 거하는 원리를 터득하는 겁니다.
요한복음이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원리가 요한복음 안에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말하라고
하니까 나는 말하고 있는 중입니다.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는 자기 배만 부릅니다.
자기 배만 부르고 잎사귀는 무성한데 열매가 없습니다. 이건 의인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우리 자신의 속이 깨끗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피도 혈관 속에 콜레스테롤이 없으면 깨끗하다고 합니다.
콜레스테롤이 있으면 피가 깨끗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혈압이 높아지고
몸 안에 산소와 영양이 시원하게 돌지 않기 때문에 피로회복이 늦습니다.
그렇듯이 우리에게도 자아나 욕심의 콜레스테롤이 붙어 있으면 수업료가 많이 듭니다.
자아와 욕심 때문에 주님께 믿음으로 붙어있지만 주님으로부터 공급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지혜도 없고 총명도 없어 흐릿하게 되어 말씀을 들어도 늘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은 상태가 됩니다. 이는 마음에 불순한 콜레스테롤이 너무 많이 끼어서 그렇습니다.
마음의 살이 너무 쪘다는 말입니다. 마음에 이물질이 많이 끼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15:5)고 말씀하십니다.
한 마디로 주님과 연결이 되지 않으면 헛방이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