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los Gardel - Cuesta Abajo
(카를로스 가르델 - 쿠에스타 아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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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QFcpuYi8L4
타고난 미성과 수려한 외모가 성공의 발판이 되긴 했지만 자신의 노래와 작곡 기법을 향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수였던 그는 1935년 갑작스러운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백 곡의 주옥같은 명곡들을 남겼다. ‘Por una Cabeza(간발의 차이로)’, ‘El Dia que Me Quieras(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되는 날)’, ‘Mi Buenos Aires Querido(내 사랑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Volver(돌아가네)’, ‘Adios Muchachos(안녕 소년들이여)’ 등은 지금도 많은 탱고 뮤지션들이 녹음하고 있다.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영화배우로서도 많은 활약을 했던 그는 성공의 정점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지금도 무덤에는 날마다 새 꽃다발이 놓일 정도
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탱고의 첫 번째 거장으로 기억되고 있는 카를로스 가르델의 음악은 탱고의 전성기를 이끌어 내었다고 할 수 있다. 정통 아르헨티나 탱고의 고유한 분위기를 확립했던 그의 활약은 항구의 빈민층을 위한 음악이었던 탱고를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대중적인 음악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한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탱고는 춤곡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면서 발전해 나갔고, 프란시스코 카나로(Francisco Canaro), 후안 다리엔소(Juan d'Arienzo), 엑토르 바렐라(Héctor Varela), 아니발 트로일로(Anibal Troilo), 플로린도 사소네(Florindo Sassone) 등 탱고 밴드의 리더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뛰어난
인물들이 탱고의 황금기를 엮어 갔다. 한편 노래로 표현하는 탱고 음악 탕고 칸시온은 뛰어난 가수들을 배출하며 지금도 탱고의 가장 사랑 받는 일부분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특히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 여성 가수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카를로스 가르델이 세상을 떠나던 해 태어나 탱고 가수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던 수산나 리날디(Susana Rinaldi)는 2000년대에 들어서서도 노익장을 과시한 바 있고, 그 다음 세대의 대표주자로 아드리아나 바렐라(Adriana Varela), 리디아 보르다(Lidia Borda) 등이 최고의 탱고 보컬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Carlos Gardel - Mi Buenos Aires Querido
(카를로스 가르델 - 친애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My dear Buenos Aires, when will I see you again?" This clip is from the film "Sus ojos se cerraron y el mundo sigue andando", a fictionalized account of the life of tango legend Carlos Gardel.
("사랑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이 동영상은 탱고의 전설 카를로스 가르델의 삶을 가상화한 영화 "Sus ojos se cerarony el mundo sigue andando" (그녀의 눈은 감고 세상은 계속된다)에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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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9WP04q3tu0
탱고의 새로운 시대를 연 피아졸라
탱고의 시작을 정확한 연도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19세기 말경으로 본다면 이제 그 역사도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그 세월 속에서 카를로스 가르델을 비롯한 많은 거장들이 아르헨티나 탱고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군사정권이 들어서 탱고 뮤지션들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암흑기를 겪기도 했다. 항구의 빈민가에서 시작된 탱고가 세월의 격동 속에서 상류층과 지식층으로 퍼져 나가며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를 매료시켰고, 지금은 장르의 벽을 뛰어 넘어 클래식과 재즈에서도 의미 있는 소재로 사용되며 사랑받고 있다. 그 세월의 중심에 탱고 역사의 가장 많은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가 자리한다.
뛰어난 반도네온 연주자이자 혁신적인 작곡가였던 피아졸라는 탱고를 더 이상 춤을 위한 음악이 아닌 감상을 위한 음악으로 바꾸어 놓았다. 클래식과 재즈, 그리고 전위적인 요소들까지 도입해 탱고의 역사를 바꾼 일대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탱고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장본인이자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1921년생인 피아졸라는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의 뒷골목에서 거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처음 반도네온을 잡은 것은 여덟 살 때였다. 피아졸라가 태어나기 전날 만삭의 어머니를 이끌고 탱고 공연을 보러 갈 정도로 열렬한 탱고 팬이었던 아버지가 준 생일 선물이었다. 훗날 아들이
최고의 반도네온 연주자가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소망은 이루어졌고, 피아졸라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Adios Noniño(안녕 노니뇨)’라는 명곡을 헌정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라디오 연주회에서 반도네온을 연주했던 피아졸라는 카를로스 가르델의 마지막 영화에 출연하면서 탱고의 황제와 특별한 인연을 맺기도 하며 탱고라는 이름의 운명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거장 아니발 트로일로의 밴드에서 반도네온 솔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하며 클래식 작곡 공부를 하던 그는 한 작곡 경연 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파리 음악원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이곳에서 피아졸라는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해 준 나디아 블랑제
(Nadia Boulanger)를 만나게 된다. 뛰어난 지휘자이자 음악교사였던 나디아 블랑제는 피아졸라의 재능과 개성을 탱고로 향하게 했다. 1955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고 작곡과 연주에 매진하게 되는데, 전통적인 탱고에 클래식과 재즈의 기법을 도입한 그의 음악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음악을 ‘누에보 탕고(Nuevo Tango)’, 즉 ‘새로운 탱고’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탱고 리듬을 사용하지 않는 그의 음악은 춤추기에 적합한 음악이 아니
었다. 때문에 당시의 순수한 탱고 애호가들에게 심한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아르헨티나 탱고 음악계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며 젊은 세대의 환호를 받았다. 이후 ‘Libertango(리베르탕고)’, ‘Oblivion(망각)’, ‘Vuelvo al Sur(남쪽으로 돌아와요)’, ‘Milonga del Angel(천사의 밀롱가)’, ‘Buenos Aires Hora Cero(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Michelangelo(미켈란젤로)’, ‘Las 4 Estaciones Porteñas(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등 숱한 명곡들로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청중들을 매료시키다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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