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눈을 의심했다. 메뉴 중 백반 가격이 6000~2만원.
수상한 가격표에 주인 지은화씨를 쳐다보니 한마디 한다. "6000원, 만원, 2만원 중 하나 허소."
1만원짜리를 시켰다. 복엇국과 미역·군소·게장·시금치·호박전·굴 등 10여 반찬이 나온다.
'이 정도면 무난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무렵, 다시 상 한 가득 반찬을 내온다.
이번엔 두릅·수육·굴·꼬막·갈치조림·콩나물 등이다. 다 합쳐 20가지가 넘는 반찬이 차려진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가장 손이 많이 간 반찬은 삶은 군소.
이곳 사람들은 '굴멩이'라고 부르는데 바다에 사는 민달팽이로 보면 된단다.
썰어놓은 모양이 표고버섯을 닮았으나 맛은 딴판이다. 입에 무는 순간 쫄깃하면서도 짭조름하다.
지씨가 말했다. "바다에서 미역·다시마 같은 해초만 먹고 사는 '놈'으로 잘 구하기 어렵다"고.
만만찮은 가격표가 줬던 좋지 않은 인상을 푸짐한 반찬으로 싹 해소하는 이곳은 실비식당(061-554-7775·청산면
도청리 943-23). 어느새 입소문이 퍼져 예약 없인 먹기 어렵다.
실비식당이 청산도 백반의 진수를 보여준다면 부두식당(061-552-8547·도청리 930-16)은 회로 승부한다.
제주에서 건너온 해녀 오정열씨가 직접 잡은 홍삼과 전복회를 썰어 내놓는다. 전복회의 핵심은 내장.
푸르스름하고도 기괴한 그 모습에 잠깐 망설이니 오씨가 "그거 안 묵을라믄 뭐하러 묵는데"라고 퉁을 놓는다.
그래서 한입. 씁쓰름하면서도 바다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다시 또 한입. 은근히 중독된다.
전복으로 유명한 청산도인 만큼 전복이 싸다. 자연산 1㎏(10~12미)에 6만5000원 내외.
부두식당 인근으로 나란히 늘어선 다른 식당에서도 비슷한 가격에 전복회를 먹을 수 있다.
사실, 청산도의 별미는 따로 있다. 먼저, 반농반어촌의 특색을 잘 살린 '탕'. 매운탕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쌀가루와 해산물을 섞어 만든 음식으로 쌀죽을 졸인 것처럼 생겼다.
들어가는 해산물은 배말이나 고둥, 군수. 쌀의 진득함과 해산물 특유의 향이 입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청산도 주민 조유덕씨는 "제사 때 맨 앞에 꼭 세 종류 이상 내놓는 것이 바로 탕"이라 했다.
둘째로 '너푸 국'. 너푸는 톳과 비슷하게 생겼으되 보다 펑퍼짐하다.
불그스름한 해초로, 주로 된장국을 끓여 먹는다. 미역처럼 매끈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특징.
조씨는 "여기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고도 다음날 멀쩡한 건 바로 이 너푸 국 때문"이라 했다.
마지막으로 삼치회. 삼치를 회로 먹는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는데, 일본 사람들한테 인기란다.
'치' 자 붙은 생선치고 성질 급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처럼, 삼치 역시 잡자마자 몇 번 퍼덕이다 제풀에 죽어
버린다. 처음 맛보면 좀 느끼하지만, 기름진 살이 부드러워 자꾸 젓가락이 간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청산에서 세 별미는 찾기 어렵다.
너푸 국이나 탕은 간혹 식당에서 반찬으로 내놓을 때가 있으니, 식당에 미리 전화를 걸어 있는지 확인하는 게 방법.
삼치회는 제철인 가을까지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