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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켈트 신화(Celtic Myths)
켈트의 영웅시대
1) 쿠훌린과 붉은 지팡이 기사단
쿠훌린은 빛의 신 루의 아들로 얼스터는 물론 전 아일랜드를 떨쳐 울린 영웅이었다. 이 시기의 아일랜드는 다섯 개의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던 시기였다. 쿠훌린은 그 중 얼스터 지방의 영웅이었는데 ‘붉은 지팡이 기사단’의 대장으로 이들을 이끌고 코노트의 여왕 메이브에 대항해 나라를 지킨다.
쿠훌린의 탄생
쿠훌린의 어릴 때 이름은 ‘세탄타’였는데 그는 두 번 태어나게 된다. 얼스터의 왕 코널이 여동생 데히테라 공주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을 때, 새떼를 쫓다가 요정의 언덕이라는 곳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게 된다. 친절한 부부는 왕과 일행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는데 그날 밤 헛간에서 주인여자가 아이를 낳게 된다. 다음날 왕과 일행들이 일어나 보니 집은 사라지고 없었으며, 간난아기와 두 마리의 망아지만이 남아있었다. 데히테라 공주는 이 아기를 궁전으로 데리고 와서 정성스럽게 키우지만 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만다. 슬픔에 빠진 데히테라 공주는 비탄에 잠겨 지내다가 우연히 잠자리가 빠진 포도주를 마시게 되고 꿈속에서 빛의 신 루의 아이를 가졌다는 신탁을 받는다. 그리고 데히테라 공주는 사내아이를 낳아 루의 계시에 따라 이름을 ‘세탄타’라고 했다.
대장장이 컬린의 사냥개
새탄타는 어린 아이였지만 매우 힘이 세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세탄타에게는 한 가지 흠이 있었는데 그가 진정으로 분노하게 되면 그의 아름다운 외모가 매우 무서운 괴물과 같은 형상으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100명의 아이들과 모여 놀다가 아이들이 그에게 100개의 은공을 던지자 분노하여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었는데 아이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 모습만으로도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이때가 세탄타의 나이 다섯 살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코널 왕이 대장장이 컬린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으로 가는 길에 세탄타를 보았다. 코널 왕은 세탄타에게 함께 컬린의 집으로 가자고 했는데, 세탄타는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놀기로 약속을 했으니 놀이가 끝나는 대로 곧 코널 왕의 뒤를 따라 가겠다고 한다. 코널 왕은 세탄타에게 놀이가 끝나면 오라는 말을 남기고 컬린의 집으로 향한다.
대장장이 컬린에게는 사나운 사냥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어찌나 사나운지 주인인 컬린만을 알아보았으며 세 명의 전사가 목줄을 잡아야 가까스로 묶어 놓을 수 있었다. 잔치가 시작되자 컬린은 코널 왕에게 더 이상 일행이 있는지 물었다. 코널 왕은 무심코 더 이상 일행이 없다고 말했고 컬린은 사냥개를 풀어 밤의 경비를 시켰다. 그렇게 연회가 무르익어갈 무렵 어디 선가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널 왕은 그제서야 세탄타가 오기로 했음을 떠올리고 컬린과 함께 서둘러 저택을 나왔다. 그러나 코널 왕의 예상과는 달리 세탄타는 다친 곳이 하나 없이 멀쩡했지만 그의 발밑에는 컬린의 사냥개가 축 늘어져 죽어있었다. 세탄타는 개를 잃고 슬퍼하는 컬린에게 말했다.
“이 개의 새끼가 있다면 내가 어미보다도 훌륭하고 충실한 개로 만들어 드리지요. 그리고 그들이 다 자랄 때까지 내가 당신의 사냥개를 대신해 당신의 땅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세탄타는 ‘쿠훌린(컬린의 사냥개)’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전사 쿠훌린
쿠훌린은 ‘에마’라는 여인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쿠훌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마의 아버지는 쿠훌린이 여전사 스카하다의 훈련을 통과한다면 자신의 딸과 결혼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쿠훌린은 질풍과 얼음을 헤치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건너 스카하다가 산다는 대지에 도착했다. 쿠훌린은 불행의 평야라고 불리는 늪을 건너야 했는데 이곳은 도저히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곳이었다. 그때 녹색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바퀴를 하나 내어주며 ‘이것을 굴려서 난 길을 따라가라.’ 고 했다. 쿠훌린은 그의 말에 따라 바퀴를 늪 위로 굴렸는데 바퀴에서 불이 나와 늪지를 구워 마른 땅이 되게 했다. 쿠훌린은 그 길을 밟고 건넜는데 그때 바퀴를 건네준 사람이 바로 그의 아버지인 빛의 신 ‘루’였다.
쿠훌린은 스카하다의 성 앞에 있는 도약의 다리를 네 번이나 시도해서 건너게 되었고 스카하다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여기서 어린 시절의 친구인 ‘퍼디아’를 만나 함께 스카하다의 제자가 되었다. 쿠훌린은 스카하다로 부터 전사로서의 모든 무예와 세상을 다스리는 법, 사제들처럼 지팡이로 글을 쓰고 마법문자를 사용하는 법도 배웠다. 스카하다는 이 뛰어난 제자를 너무도 사랑하여 쿠훌린이 졸업을 할 때가 되자 그에게 마법의 창 ‘게이볼그’를 넘겨주고 그 사용법을 가르쳤는데 오직 그만이 게이볼그의 사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스카하다의 훈련을 무사히 마친 쿠훌린은 에마와 결혼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쿠훌린이 ‘브리크루’라는 전사의 집에 초대를 받았을 때였다. 한 거인이 나타나 전사들의 담력을 시험하려 했다. 거인은 커다란 도끼를 던지더니 말했다.
“누구던지 진정한 영웅이라면 이 도끼로 내 목을 쳐보아라. 난 결코 누워서 움직이지 않겠다. 그리고 그 역시 나에게 그 목을 치게 해주어야 한다.”
쿠훌린만이 그 제안에 응했고 단 한 번에 거인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러자 거인은 놀랍게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목을 다시 붙이고는 쿠훌린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했다. 쿠훌린은 이 요구에 당당히 응했고, 거인은 세 번이나 도끼를 내려치며 위협을 가했지만 쿠훌린은 전혀 움츠려 들지 않았다. 거인은 도끼를 거두고 크게 웃더니 쿠훌린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일어서라. 넌 이 아일랜드에서 가장 훌륭한 전사이다.”
쿨리의 소 사냥.
코노트의 여왕 메이브는 쿨리의 갈색 황소를 매우 탐냈다. 메이브 여왕은 이 소를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메이브는 라인스터의 전사들을 물론 얼스터의 반역자들 까지 한편으로 삼아 얼스터로 쳐들어온다. 그러나 얼스터에는 이상한 병이 돌아 얼스터 사람들은 메이브 여왕의 군대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쿠훌린은 자신의 붉은 지팡이 기사단을 이끌고 메이브 여왕의 군대에 저항했다. 쿠훌린은 뛰어난 용맹과 전술로 메이브 여왕의 군대를 괴롭힌다. 한 손으로 떡갈나무를 둥글게 휘어 놓은 뒤 이처럼 할 수 없는 자는 더 이상 진군하지 말라고 했지만 메이브 여왕은 이를 무시한다.
쿠훌린은 다시 네 가닥으로 갈라진 나무를 잘라 적병의 머리 네 개를 꽂아 강물에 떠내려 보냈는데, 이 나무들을 한 손으로 던질 수 없는 자는 더 이상 진군하지 말라고 경고를 함께 적혀 있었다. 메이브 여왕의 군대가 이 나무를 강에서 건져내려고 했지만 열 네 대의 마차가 겨우 하나의 나무만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메이브 여왕은 이 경고도 역시 무시하고 얼스터를 침공했다. 쿠훌린은 돌을 던져 매일 마다 100명의 전사들을 죽였다. 메이브 여왕은 쿠훌린을 회유하기 위해 자신의 딸과 결혼을 시켜줄테니 자신의 편에 서라고 했지만 쿠훌린에게는 이런 회유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다시 100명씩 전사들이 죽어나가게 되자 메이브 여왕은 쿠훌린에게 전사답게 일대 일 결투를 벌이라고 하며, 하루에 한 명씩 전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쿠훌린을 쓰러뜨리지 못하고 애꿎은 전사들만 죽어나갔다.
쿠훌린의 용맹한 모습을 보고 그에게 반한 전쟁의 여신 ‘모리건’이 그를 돕겠다고 했지만 쿠훌린은 이를 거절한다. 쿠훌린이 자신의 구애를 거절하자 화가 난 모리건은 세 번이나 그를 괴롭히지만 결국 그에게 도움을 받고 보이지 않게 그를 돕게 된다. 쿠훌린의 용맹함에 화가 난 메이브 여왕은 쿠훌린의 절친한 친구이자 함께 스카하다의 교육을 받은 퍼디아를 꾀어내어 쿠훌린과 결투를 벌이게 한다. 쿠훌린과 퍼디아는 자신들의 비극적인 운명에 슬퍼하지만 둘은 운명에 따라 결투를 벌인다. 4일간의 처절한 전투 끝에 퍼디아는 쿠훌린이 던진 ‘게이볼그’에 맞아 숨을 거두고 쿠훌린은 친구의 시체를 끌어안고 슬픔에 잠긴다. 이때 얼스터의 전사들은 병에서 털고 일어나 메이브 여왕의 군대를 물리친다.
2) 핀 마쿨과 피아나 기사단
핀 마쿨과 그의 아들 오신, 그리고 피아나 기사단이 활동한 시대로 쿠훌린이 활약한 시대에서 대략 300년 후라고 여겨진다. 이 시기는 코맥 마크아트라는 왕이 아일랜드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핀 마쿨은 피아나 기사단의 대장이었다.
핀의 탄생과 지혜의 연어
핀은 신들의 왕 누아자의 손녀인 마나와 피아나 기사 컴헤일의 아들이었다. 핀이 태어나기 이전에 컴헤일은 전사하고 마나는 핀을 숲속의 두 노파에게 맡긴다. 핀은 사냥과 수영을 잘하고 매우 아름다웠다.소년이 된 핀은 드루이드 피네가스의 제자 되었다. 피가네스는 ‘지혜의 열매’와 ‘지혜의 연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중 하나라도 먹으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핀은 피네가스를 위해 이 연어를 요리하다가 그만 엄지손가락에 화상을 입게 되었다. 놀란 핀은 황급히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었는데 이로 인해 핀은 뛰어난 지혜를 얻게 되었다.
핀과 피아나 기사단.
핀은 피네가스의 곁을 떠나 피아나 기사단에 들어간다. 피아나 기사가 된 핀은 타라에 나타난 요괴가 나타나자 요괴의 퇴치를 명령 받는다. 핀이 요괴를 퇴치하러 나서자 아버지의 하인이 핀에게 마법의 창을 넘겨주었는데, 이 창을 이마에 대면 그 어떤 유혹도 이겨내고 온몸에 힘이 넘치는 마법이 깃들어 있었다. 핀이 요괴가 사는 곳에 이르자 어디선가 이상한 하프소리가 들려왔다. 핀은 마법의 창을 이마에 대고 요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요괴는 핀이 자신의 마력을 이겨내자 황급히 도망을 치려 했지만 핀은 요괴의 퇴로를 막아 요괴의 목을 잘랐다. 이 공적으로 인해 핀은 피아나 기사단의 대장이 되었다.
핀은 사냥을 다녀오다가 사슴으로 변한 여인을 만나게 되어 그녀와의 사이에서 오신이라는 아들을 얻게 되었는데 오신도 핀의 뒤를 이어 피아나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다. 오신은 매우 뛰어난 음유 시인이었는데 그는 아버지인 핀과 피아나 기사단의 전설을 기록으로 남겼다고 전해진다. 핀이 살고 있던 시대는 인간과 신과 요정이 함께 살고 있던 시대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동료들을 찾던 핀은 부하들과 함께 요정왕의 나라에 도착하게 된다. 요정왕 '아바타'는 다른 요정 나라와의 전투를 앞두고 뛰어난 전사들을 찾고 있었다. 핀은 요정왕의 부탁으로 그를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오신과 요정의 나라.
어느날 오신은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요정의 나라(젊은 신들의 대지)’의 공주였다. 오신은 공주와 함께 영원한 젊음이 있는 요정의 나라로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오신은 고향 땅과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와 동료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요정의 나라에서 3년이 지난 어느 날 오신은 요정나라의 공주에게 아버지와 고향이 너무 보고싶다고 털어놓았다. 공주는 그렇다면 한번만 고향에 다녀오라며 한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절대로 말에서 내리셔서는 안돼요. 항상 말 위에서 말에 탄 채로 있어야 하며, 두 다리가 대지에 닿아서는 안 된답니다.”
오신은 공주의 주의사항을 마음에 새기며 설레이는 귀향길을 서둘렀다. 고향에 돌아온 오신은 크게 놀랐다. 이미 아버지인 핀도 자신의 동료들도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었으며, 궁전도 나라도 이제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주변의 경관도 너무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가 요정에 나라에 있는 사이 세상은 너무도 많이 변해있었다. 오신이 요정나라에서 보낸 3년 동안 이미 현실세계에서는 수 백년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상심한 오신이 허탈한 심정으로 옛 고향을 돌아보고 있는데 농부 몇 사람이 힘들게 바위를 옮기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오신은 그들을 도우려 말 위에서 그 돌을 들어 옮기려다가 말의 등자에서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만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순간 오신은 수 백살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고, 말도 요정의 나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오신은 자신의 이야기를 성 패트릭(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전설적인 수도사)에게 전해 주었고 그가 오신의 기록을 대신 남겼다고 전해진다.
켈트 신들의 황혼
투아하 데 다난, 신족은 밀레 족과의 전투에 패하게 되어 에린에서의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신들은 에린에서 쫓겨나 저 멀리 남쪽 바다건너 저승의 세계 가까운 곳에(혹은 저승에) 신들의 낙원을 건설한다. 이곳은 ‘티르 나 노이(Tir-nan-og, 항상 젊은 신들의 나라)’라 불렸다. 이곳은 이름처럼 항상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늙거나 병들어 죽지 않았다. 이곳에는 보석이 열리는 나무와 꽃과 꿀이 넘치고 향기와 아름다움이 가득한 나라라고 한다. 신들은 이곳에서 요정들과 함께 살았는데 종종 따분해지면 인간세상에 나와 여행을 하기도 했다. 종종 영웅들이 이곳으로 초대를 받기도 했는데, 쿠훌린의 전설이나 핀과 오신이 이야기등에서 주로 등장한다.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 황홀하고 아름다우 세계에 취해 종종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잊곤 했는데 이곳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아주 다른 것이어서 인간세계로 되돌아오면 수 백년의 시간이 흐르곤 했다.
시적 상상력이 뛰어난 켈트 민족은 일찍부터 풍부한 신화와 전설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부분들은 중세의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전설이나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아일랜드와 웨일스의 민화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가지고 켈트신화 일부의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되는 신화를 복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늘날 켈트신화를 연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자료는 중세 아일랜드의 수도원에서 작성된 사본에 기록되어 있는 서사시 전설과 『마비노기온』으로 통칭되는 웨일스 전설집으로, 아일랜드 서사시 전설은 크게 4부문(① 신화의 시대, ② 얼스터(Ulster)의 시대, ③ 페니언(Fenian)의 시대, ④ 역사의 시대로 나누어집니다.
정착하는 과정에서 부족들 사이의 전투와 ‘투아하 데 다난 족(신족, 神族)’에 의해 에린이 평화를 되찾는 시기의 이야기로, 켈트신화의 신화적 요소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화의 시대를 구성하는 이야기 속에서 활약하는 ‘여신 다누의 일족(一族)’이라고 불리는 신족(神族)은 분명히 켈트신화의 신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세계의 북쪽 끝에 있는 섬들로부터 검은 구름을 타고 와서 마그 툴레드의 땅을 무대로 한두 번의 싸움에서 선주민족(先住民族)인 필보르그족과 포몰레족을 무찌르고 아일랜드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현재의 아일랜드인의 조상인 ‘미르의 자식들’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지하에 있는 요정(妖精)의 나라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마그 툴레드의 싸움에 관한 이야기 속에 주권과 전투의 기능을 주관하는 신족과 풍요의 기능을 주관하는 신족과의 사이에, 원고(原古)시대의 전투를 주제로 한 인도-유럽 신화의 구조가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은 뒤메질의 연구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이 싸움에서 다누 신족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5명의 신들은, J.카이사르가 『갈리아 전기(戰記)』에서 켈트족이 가장 숭배하는 신으로 들고 있는 메르쿠리우스, 아폴론, 마르스, 유피테르, 미네르바로 『마비노기온』의 ‘돈의 자식들’이라고 불리는 영웅들과 기능적으로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켈트족의 공통적인 신들로서 여러 이름으로 숭배되었던 대여신(大女神) 외에, 모든 기술에 통달한 만능의 주권신(主權神) 루그, 도루이드의 수호자였던 마술사적 주권신 다그다, 싸움의 신 오그마(오그미오스)와 또 의료(醫療)의 신, 대장간의 신 등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밖에 루그 신의 환생(還生)인 용사 쿠후라인을 주인공으로 한 울스터권에 속하는 전설에도 몇 가지 중요한 신화가 영웅전설로 변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얼스터의 시대
‘울르 인과 코너리아 인의 시대’ 라고도 불리며, ‘얼스터의 저주’로 알려져 있는데 코나흐타, 라인스터, 먼스터 간의 전투를 그리고 있으며, 위대한 전사 쿠 훌린(Chulainn)과 그를 따르는 붉은 지팡이 기사단, 쿨리의 소 사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화의 시대적 배경은 신들의 시대에서 영웅의 시대로 전환되는 시기입니다.
피니안의 시대
‘오시안의 시대’ 라고도 불리며, 라인스터 지방의 피아나 기사단의 수장인 핀 마쿨과 그의 아들 오신의 활약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제임스 맥퍼슨(1736∼1796)에 의해 《오시안의 전설》이 발굴되며 전 유럽에 켈트인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을 끌게 했습니다. 신화의 시대적 배경은 기독교적 요소들이 서서히 등장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왕들의 시대’ 라고도 불리며, 약 1000년 경에 위대한 왕인 브라이언 보르의 등장과 클론타프에서 더블린의 데인 족을 무찌른 이야기와 이후 왕들의 이야기입니다. 신화의 시대적 배경은 신화의 시대에서 거의 독립된 시기로, 기독교적 시대입니다.
임볼크
본래는 “우유 속”이라는 뜻의 임볼크는 양과 암소의 수유기(授乳期)를 나타내는 시간이었다. 양은 새끼를 배기 전에는 젖을 낼 수 없는데, 바로 이때가 양이 새끼를 배는 시기였다. 우유는 부족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양식이었으므로, 이 시기는 매우 즐겁고도 중요한 때였다. 양이 젖을 낸다는 것은 기나 긴 겨울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곧 녹색 벌판이 다시 찾아오리라는 것을 뜻했다.
임볼크 제의(祭儀)에서는 우유나 크림을 땅에 붓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것은 인간과 짐승을 길러 준 대지에 감사를 표하고, 대지에 풍요와 자비가 되돌아오기를 비는, 즉 봄이 오기를 비는 의식이었다.
임볼크는 브리드(Brid), 혹은 브리지트(Brigit)라고도 알려진 브리이드(Brighid) 여신을 위한 축제였다. 브리이드는 다아다(Dagda)의 딸이었고, 봄을 상징하는 여신이었다. 임볼크는 그녀가 태양의 씨앗을 배고 배가 부른 시기라고 믿어졌다. 브리이드가 새로운 생명을 낳을 시기가 가까워져 옴에 따라, 대지 속의 씨앗도 싹을 틀 준비를 하고, 세계는 새로운 생명의 약속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시기, 그래서 임볼크는 깨어남의 시간이자 약속의 시간이며, 희망의 시간이었다.
켈트족의 축제 벨타네(혹은 벨테인)
4월 30일경 행해진 벨타네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였고, 세계의 재생과 되찾은 풍요를 축하하는 의식이었다. 벨타네는 알반 에일레르와 임볼릭에 이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봄의 축제였고, 또한 켈트족의 축제 중 두 번째로 중요한 축제였다. 벨타네는 사빈과 짝을 이루어 1년을 겨울과 여름으로 2등분했다.
고대 켈트 사회에서 벨타네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사빈의 반대”라는 뜻의, 케트사빈(Cetsamhain)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지역에 따라 구분하자면, 아일랜드에서는 벨타네(Beltaine 또는 Beltane)라 불린 반면 스코틀랜드에서는 베일툰(Bealtunn)이라고 했으며, 웨일즈와 만 섬(the Isle of Man)에서는 쉔 도 보울딘(Shenn do Boaldyn)이라 불렸다. 후에 이 축제는 색슨 족에게 계승되어 왈푸르기스나흐트(Walpurgisnacht)라고 불리워졌는데, 이것은 “왈푸르가(Walpurga)의 날”이라는 뜻이었다. 왈푸르가는 색슨 족이 섬기던 5월의 여신이었다. 아일랜드에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브리이드 여신이 성 브리지트로 변신했듯이, 이 여신도 후에 성 왈푸르가가 되었다.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 벨타네는 메이 이브(May Eve)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벨타네”라는 이름은 본래 “빛나는 불(bright fire)” 혹은 “활활 타오르는 불(brilliant fire)”을 의미했다. 이 불은 드루이드의 장(長)이 켈트 족 이전의 민족이 믿었던 신을 위해 피웠던 모닥불을 뜻했다. 그 신은 벨(Bel), 벨리(Beli), 발라르(Balar), 발로르(Balor), 벨레누스(Belenus) 등등의 이름으로 불렸는데, 게일 족 신화의 세르눈노스(Cernunnos)와 동일한 신이라는 설도 있지만 더욱 유력한 것은 아일랜드 신화에서 빛의 신 루(Lugh)의 할아버지이자 천적으로 등장하는 바로 그 “흉안의 발로르(Balor the Evil Eye)”라는 설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패배한 수메르 족의 신이 승리한 아카드 족의 신화에서 안타고니스트로 등장했듯이, 피정복자의 신이었던 발로르는 정복자 켈트 족의 신 루에 의해 처단되는 악신(惡神)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전승에 따르면, 벨타네는 “뿔이 난 남신(the Horned One)”이 죽어 여신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살아난 남신은 여신의 배우자가 되어 그녀를 임신시키고, 다음 해의 벨타네에 다시 여신의 몸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다른 전승은 벨타네가 포로로 잡혀 있던 여름의 신이 풀려나는 날이라고 한다.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젊은 여신인 여름이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그녀의 아버지인 대지의 거인으로부터 달아나는 날이라는 말도 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켈트 어로 ‘후아헤(Huathe)’라 불리는 산사나무(hawthorn)는 아버지인 거인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이 나무가 메이폴(Maypole) 축제 때 쓰인다.
벨타네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즐거운 축제였다. 벨타네 아침 이슬로 목욕을 하면, 그 해 내내 점점 더 아름다워진다는 믿음도 있었다. 벨타네 이브, 즉 벨타네 저녁에 켈트인들은 거대한 모닥불을 두 개 피웠다. 그 불을 피우는 데에는 여름의 영광을 찬미하는 아홉 가지 성스러운 나무가 쓰였다.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면, 그들은 그 두 불길 사이로 가축떼를 몰고 지나갔다. 이것은 다음 해동안 가축들이 건강하게 보호받기를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또한 두 모닥불에는 생명과 풍요가 대지로 돌아오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었다. 시골에서는 흥겨운 파티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메이폴 주위를 돌며 춤추거나 불길을 뛰어넘고, 꽃을 따는 등의 행사가 있었다. 그 중 많은 것들은 메이폴 축제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또한 이 날 밤에는 젊은 연인들이 함께 숲으로 가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오는 풍습이 있었다.
생명이 소생하고 대지와 그녀의 모든 아이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는 벨타네는 고대 켈트인들에게 무척 관능적인 시간으로 생각되었다. 이 날은 부족 전체가 여름의 선명한 빛깔과 숨막히는 향기를 즐기는 날이었고, 길고 지루한 겨울이 끝난 환희에 자신을 내맡기는 날이었다. 전통적으로 이 날은 약혼과 결혼의 날이기도 했다.
이 날 사람들은 산사나무 가지를 꺾어 문앞을 장식했다. 화이트손(Whitethorn)이라고도 불리는 산사나무는 희망과 기쁨, 그리고 보호를 상징하는 나무였다. 산사나무 가지를 꺾거나 집으로 가져오는 것은 무척 엄한 금기(禁忌)였지만, 벨타네 날만은 예외였다.
또 벨타네 모닥불 위를 뛰어넘는 풍습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젊은 사람들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되고, 여행자들은 안전하게 여행을 마치게 되며, 임산부(姙産婦)들은 순산하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아일랜드 신화에 따르면, 투아하 데 다나안(Tuatha De Danann)과 밀레시안 족(the Milesians)이 아일랜드에 온 날도 벨타네 즈음이었다고 한다.
주 : 벨타네 이브(벨타네 전날 저녁이라는 뜻)과 벨타네 저녁이라는 말이 같은 뜻으로 쓰였는데, 이것은 사실 오늘날의 시간 계산으로는 벨타네 전날 저녁이라는 뜻이다. 오늘날과는 달리, 고대 켈트인들은 해가 지는 것을 한 날이 지나간 것으로 파악했다. 즉, 하루는 해가 저무는 저녁에 끝나고, 해진 뒤의 밤부터는 다음 날이었던 것이다.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것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의 시간 계산으로는 '벨타네 전날 저녁', 즉 '벨타네 이브'가 되는 시간이 이들의 관점에서는 '벨타네 저녁'이 된다.
켈트족의 축제 - 루나사
루나사는 세 가지 가을 축제 중 가장 먼저 시작되는 축제였다. 이 날은 수확의 계절을 알리는 날이었으며, 여름이 쇠하고 겨울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루나사는 라마스(Lammas)라고도 불렸는데, 이것은 “빵의 축제(the Feast of Bread)”를 뜻하는 색슨 어의 라-마스(Hlaf-mass)에서 온 말이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루나사의 축제와 의식은 풍작을 기원하고 수확의 때가 온 것을 축하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특히 풍작을 기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는데, 그 해 가을 얼마나 거둬들이는지에 따라 부족의 사활(死活)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빌베리(bilberries)를 따 모음으로써 루나사 의식이 성공한 것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빌베리가 많다면, 의식은 성공한 것이고 그 해 가을에는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루나사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일랜드의 루(Lugh) 신을 찬양하는 축제였다. 일다나흐(Idanach), 즉 “모든 일에 능한 신(the God of All Skills)”이라고도 불리는 루는 “밝게 빛나는 자(Bright or Shining One)”라고 알려져 있다. 태양의 신인 그는 농업의 풍요를 관장하는 신이기도 했다. 브리튼과 웨일즈에서 루는 “류(Lleu)”라고 불렸는데, 별과 재생(再生)의 여신인 아리안로드(Arianrhod)의 아들이었다. 보통 이 날에는 루를 찬양하기 위한 운동 경기들이 벌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희생제(犧牲祭)를 행하기도 했다. 이것은 루를 기념하기 위한 의식이기도 했지만, 어떤 곳에서는 나무를 심을 땅을 마련하다 죽은 루의 양어머니 탈티우(Tailtiu)를 위한 의식으로서 행해졌다. 많은 종류의 곡식과 약초, 열매 등이 이 시기에 수확되어 건조되었다.
켈트신화 - 반족, 파르홀론족
최초의 시대인 신화시대는 보통 파르홀론 족으로부터 시작되며 네메드 족(Nemedian), 피르 볼그 족(Fir Bholg), 투아하 데 다난(Tuatha De Danann), 그리고 밀레시안 족(Milesian)이 차례로 아일랜드에 와 전투를 벌이고 그 땅의 지배자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간혹 파르홀론 족 이전에 케시르(Cesair)가 이끄는 여인족이 아일랜드에 상륙한 사건을 신화 시대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다지 널리 받아들여지는 학설은 아니다. 케시르의 이야기는 아일랜드나 켈트의 신화라가보다는 기독교적 전설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케시르가 노아의 손녀(혹은 조카)라고 설정되어 있으며, 스토리 자체가 성서의 홍수 이야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케시르의 전설을 무시한다면, 아일랜드의 신화는 세라(Sera)의 아들 파르홀론(Partholon)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르홀론은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 전, 아내인 달니(Dealgnaid)와 아들 루리(Rury), 동생 스타른(Starn),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전사들과 백성들을 이끌고 서쪽의 “죽은 자의 땅(The Land of the Dead)”으로부터 왔다고 전해진다.
일설에 의하면 그 시대 에린에는 사악한 포보르(Fomhor) 족이 살고 있어서, 파르홀론은 이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포보르 족이 바다를 건너 침략해 왔으며 파르홀론은 이들을 몰아냈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파르홀론은 에린에 정착한 이후 알바(Alba, 스코틀랜드)를 정복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다가 그곳에서 전사했으며, 포보르 족이 침략한 것은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어쨌든 파르홀론 족은 포보르 족과 싸웠으며, 이하 평원의 전투(Cath Maige Utha)에서 그들을 격퇴하여 바다 너머 만 섬(the Isle of Man)으로 내쫓았다.
파르홀론 족의 나라는 네 평야와 일곱 호수를 포함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처음으로 집을 짓기 시작했고, 맥주를 발명해 냈으며, 법(法)을 만들었고, 에린 사람들에게 가축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들은 또한 뛰어난 장인들로, 아름다운 금세공품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들이 정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에린에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파르홀론 족은 곧 전멸했다.
오직 스타른의 아들 투안Tuan만이 살아남았는데, 그는 그 이후 사슴, 연어, 독수리 등으로 모습을 바꾸어 가며 수천 년을 더 살아 여러 종족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다.
1) 침략의 서는 아일랜드를 정복한 여섯 민족의 첫 번째가 케시르가 이끄는 반 족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케시르의 이야기는 19세기 말부터 켈트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편찬되기 시작한 서구의 서적에는 누락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있더라도 간략한 소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국내에 출판된 다케루베 노부아키의 켈트·북구의 신화에서 가장 상세한 버전을 찾을 수 있었다.
침략의 서에 따르면, 성서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가 일어나기 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아일랜드로 와 정착했다. 이들은 노아의 아들 비흐의 딸 케시르가 이끄는 무리로, 홍수의 재앙을 예지하고 바다로 도망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신상(神像)을 바다에 띄우고 그 인도에 따라 배를 저어 갔다. 출발한 배는 세 척이었지만, 7년 3개월 동안의 항해 도중 두 척의 배가 좌초되었으며, 나머지 한 척에서도 대부분의 승무원이 죽었다. 마침내 그 배가 서쪽 끝의 섬 에린에 도착했을 때, 살아남은 것은 50명의 여성과 세 명의 전사 뿐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이 여성이었기에 그들은 반(Van, 또는 Ban) 족, 즉 여인족이라고 불렸다.
당시 에린에는 동물도 식물도 없었고, 참된 신앙도 없었다. 케시르와 그녀가 이끄는 자들은 에린을 그들의 고향으로 삼고 이곳에 복음을 전파하고자 했다. 그들은 서쪽 끝인 이 섬이라면 대재앙을 피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40일 후 일어난 홍수는 에린마저도 삼키고 말았다. 살아남은 것은 핀탄 막 보흐라Fintan mac Bochra라는 남자 한 명 뿐이었는데, 그는 파도 속에서 잠자며 수백 년동안 바다를 떠다녔다. 그는 투안처럼 여러 가지 동물로 태어나 여러 종족의 흥망성쇠를 본 끝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에린의 역사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2) 이것은 흥미로운 부분인데, 왜냐하면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일랜드의 서쪽은 바다뿐이며 이민족이 건너 올 대륙은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략의 서에서는 파르홀론이 시실리 사람이며 그리스에서부터 아일랜드로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3) 침략의 서는 포보르 족이 홍수로 케시르의 일족이 멸망한 이후 아일랜드에 살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후에 네메드 족과 투아하 데 다나안의 시대에도 등장한다. 한때 그들은 네메드 족과 다나안 족을 지배하기도 했지만, 다나안 족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래로 모습을 감춘다.
이처럼 포보르 족은 신화 시대에 꾸준히 등장하는 악역이고, 또 가장 비중 있는 종족이기도 하지만, 침략의 서는 아일랜드를 지배한 여섯 종족에 이들을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포보르 족이 '인간'이이 아닌 괴물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 하다. 이 책은 포보르 족이 추한 외모를 가진 반인반수(伴人半獸)이며, 팔과 다리와 눈은 하나씩 뿐이고, 칼날 같은 이는 세 겹으로 나 있다고 기록한다. 실제로 포보르라는 이름은 "바다 거인"을 뜻한다. 이들은 토리 섬Tory Island에 살았고 그 성질은 잔인하고 포악했다.
그러나 책의 후반부로 가면 이러한 성격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고, 포보르 족은 인간과 다름없는 외모와 사회 구조를 가진 종족처럼 묘사된다. 포보르의 군주 발로르Balor는 왼쪽 눈이 흉안(The Evil Eye)으로 항상 은제(銀製) 안대로 가리고 있었지만 오른쪽 눈은 정상이었으므로 가리지 않았다는 설정으로 보아, 분명히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빛의 신 루Lugh의 어머니가 되는 발로르의 딸 에네Ethne(에흐네, 또는 에흘린Ethlinn)은 아름다웠으며, 에리우Eriu(또는 에리Eri)의 연인으로 브레스Breas의 아버지가 되는 엘라한Elathan(또는 엘라하Elatha) 역시 아름다운 청년으로 묘사되는 등, 인간과 다름없을뿐더러 오히려 여느 인간보다 더 아름다운 포보르 족도 다수 등장한다.
포보르라는 종족을 역사적으로 규명하려는 노력도 있어 왔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다. 현재까지 확실히 알려진 것은 이들이 실제로 아일랜드에 정착했던 적은 없으며(항상 에린은 그들에게 식민지였다), 절대로 켈트 족은 아니라는 것 뿐이다.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해적이라는 설도 있지만, 증거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단지 신화의 한 구성 요소일 뿐이며 여타 신화의 괴물들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의 어두운 면을 상징한다는 의견도 있다.
4) 침략의 서는 파르홀론 족이 멸망한 이유를 신(기독교의 신)의 분노에서 찾는다. 이 책에 의하면 파르홀론은 부모를 살해했으며, 간음을 범했고, 그의 죄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 전체의 파멸을 초래했다.
켈트신화 - 네베드족
파르홀론 족이 멸망한 후, 스타른의 아들인 아노몬의 아들 네메드가 에린으로 왔다. 그는 960명의 사람들을 32척의 배에 나누어 태우고 왔으나, 1년 6개월의 항해 끝에 살아남은 자는 오직 아홉 명, 남자 넷과 여자 넷과 네메드 자신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는 빠르게 늘어났고, 곧 네메드 족은 8천에 이르는 숫자가 되었다. 그들은 열 두 평야와 네 호수에 이르는 영토를 확보하고 최초로 요새(라흐, raith)를 세웠다.
그러나 파르홀론 족이 그랬듯, 네베드 족 역시 포보르 족과 싸워야 할 운명이었다. 네베드는 네 번의 전투에서 자신의 일족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 후 전염병으로 인해 네베드 족의 수는 크게 줄었다. 2천 명조차 채 살아남지 못한 네베드 족은 포보르 족을 이길 수 없었고,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포보르 족은 네베드 족을 가혹하게 통치했으며 무거운 세금으로 그들을 괴롭혔다. 결국 붉은 옆구리의 페르우스Fearghus(오늘날에는 퍼거스Fergus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를 필두로 한 세 명의 족장이 네베드 족을 지휘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토리 섬에 있는 포보르 족의 요새를 공격하여 포보르 족의 왕 코난Conann을 죽였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의 왕 모르크Morc가 반격하여 그들 중 대부분을 죽였고, 간신히 살아 남은 30명의 생존자들은 절망한 채 에린에서 도망쳤다.
혹자는 그들이 영원히 에린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혹자는 후에 그들의 수가 8천으로 늘어났으나, 전염병에 의해 전멸했다고도 한다. 또 혹자는 그들이 후에 피르 볼Fir Bolg(혹은 피르 볼그), 혹은 투아하 데 다난이라는 이름으로 에린으로 돌아왔다고도 한다.
1) 라흐(raith)라는 말은 본래 전투와 방어에 알맞도록 지어진 왕의 거처, 즉 요새와 왕궁의 절충형 건축물을 뜻한다. 침략의 서에 따르면 네베드는 두 요새를 건축했는데, 그들은 각각 라흐 힘비흐(Raith Chimbaith)와 라흐 힌디흐(Raith Chindeich)라고 불렸다. 특히 위 니알린(Ui Niallain)이라는 곳에 세워진 라흐 힌디흐는 단 하루만에 세워졌는데, 마탄 뮌레마르(Matan Munremar)의 네 아들인 복, 로복, 뤼네, 그리고 로탄이 그 위업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들의 힘을 두려워한 네베드는 다음 날이 밝기 전 이들을 죽였다.
다카루베 노부아키는 켈트/북구의 신들 [판타지라이브러리] 에서 이들 네 형제가 포보르 족이었으며, 이들을 살해한 것이 네베드 족과 포보르 족의 불화를 초래했다고 적고 있다.
켈트신화 - 피르볼그족
《에린 침략의 서》에 따르면, 피르 볼 족에는 다섯 명의 족장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각각 간(Gann), 게난(Genann), 루드리(Rudraige), 셍간(Sengann), 그리고 슬랑가(Slanga)였으며, 델라(Dela)의 다섯 아들이었다. 그들의 아내의 이르은 각각 아누스트(Anust), 리베르(Liber), 크누하(Cnucha), 푸아트(Fuat), 그리고 에타르(Etar)였다.
푸아트는 마음이 비뚤어지지 않은 슬랑가의 아내였고, 에타르는 용맹한 간의 아내였으며, 아누스트는 창을 잘 다루는 셍간의 아내였고, 크누하는 순수한 게난의 아내였다. 리베르는 붉은 머리 루드리의 아내였는데, 그는 책략의 달인이었으며, 그의 일족은 마음이 넓고 친절했다.
- 《에린 침략의 서》 중 -
피르 볼은 세 부족으로 나뉘었다. 슬랑가의 일족, 간과 셍간의 일족, 게난과 루드리의 일족이 각각 이들이다. 슬랑가의 일족은 갈리인(Gailioin)이라 불리게 되었고, 간과 셍간은 자신의 일족을 피르 볼이라 이름지었으며, 피르 돔난(Fir Domnann)은 게난과 루드리를 따르는 자들이었다. 이들 모두를 총칭하여 피르 볼이라 하였다. 널리 알려졌듯이 피르 볼은 그들이 가져온 가죽 가방에서 유래한 이름이며, 갈리인은 그들의 투창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러나 피르 돔난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확실치 않다. “돔난”은 “다누(Danu)” 여신의 이름과 같은 어원을 가졌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확증된 바는 없다. 이들은 아일랜드를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델라의 다섯 아들들은 각 지역의 왕이 되었다.
로흐(Loch)의 아들 델라의 아들인 슬랑가의 일족이 그 중 하나로, 그들은 인베르 슬리네(Inber Slaine)에 배를 대었다. 그들의 수는 모두 천 명이었고, 그들의 영지는 인베르 콜파로(Inber Colptha)부터 코마르 트린우즈케(Comar TrinUisce)에 이르렀다. 또 다른 한 부족은 인베르 두블리시에 내린 간과 셍간의 일족이었는데, 그들의 수는 모두 2천이었다. 간은 코마르 트린우즈케로부터 벨라흐 콘리스(Belach Conglais)에 이르는 지역을, 셍간은 벨라흐 콘리스에서부터 륌네흐(Luimneach)에 이르는 지역을 다스렸는데, 이는 무무(Mumu, 오늘날의 문스터, Munster)의 5분의 2 이상이었다. 나머지 한 부족은 게난과 루드리의 일족으로, 그들은 인베르 돔난(Inber Domnann)에 닻을 내렸고, 그리하여 피르 돔난이라 불리게 되었다. 게난은 후에 메이브(Medb)와 알릴(Ailell)이 다스리게 되는 바로 그 땅의 왕이 되었고, 루드리는 후에 코노후르(Conchobor)의 지배를 받을 땅을 차지하였다. 이들 부족의 숫자는 모두 2천이었다. 이들이 바로 피르 볼, 피르 돔난, 그리고 갈리인 족이다.
- 《에린 침략의 서》 중 -
이들은 37년 동안 아일랜드를 다스렸다.
피르 볼의 독특한 점은, 이들 다섯 왕을 통합하여 다스리는 상왕(上王; 영어로는 High King이라고 번역됨), 즉 아르드-리(Ard Righ)라는 제도가 있었다는 점이다. 《에린 침략의 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피르 볼 이전에는 “아일랜드의 왕”이라 불릴 자가 없었다. 그러나 피르 볼의 시대에는 아홉 명의 아르드-리가 아일랜드를 거쳐 갔다.
슬랑가는 한 해를 다스리고 죽었다. 그 다음 왕이 된 루드리는 두 해를 다스리고 브루 브라트루아드(Brug Bratruad)에서 죽었다. 겐과 게난이 함께 왕위에 올라 그 뒤를 이었고, 그들의 통치는 네 해 동안 계속되었다. 둘은 프레민드(Fremaind)에서 병에 걸려 죽었다. 뒤를 이은 셍간은 다섯 해를 다스리고 게난의 아들 린딜Rindail의 손에 죽었다. 린딜은 여섯 해를 다스리고, 에바 코프레에서 셍간의 아들 포이니드(Fodbgenid)에게 살해당했다. 포이니드는 네 해를 다스리고, 모이 뮈르헤네(Mag Muirthemne)에서 린딜의 아들 요후(Eochu)의 손에 죽었다. 에르크(Erc)의 아들 요후는 열 해를 다스렸다. 그의 치세하에 아일랜드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내리는 물이라곤 이슬밖에 없었으나, 흉작이 든 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또한 모든 그릇됨이 아일랜드로부터 추방되었으니, 그는 아일랜드에 처음으로 죄를 벌하는 정의의 법을 행하였던 것이다. 에르크의 아들 요후는 네메드(Nemed)의 세 아들들의 손에 죽었다. 아일랜드의 왕들 중 자신의 땅에서 치명상을 입은 자는 그가 최초였다.
- 《에린 침략의 서》에서 -
피르 볼이 아일랜드에 발디딘 지 30여 년 만에, 투아하 데 다난(Tuatha De Danann)이 왔다. 이들은 모이 투라(Mag Tuired)에서 길고 긴 전투를 벌였다. 마침내 전세는 피르 볼에게 불리해졌고, 그들은 북쪽으로 패주했다. 투아하 데 다난은 그들을 뒤쫓으며 학살했다. 요힐의 해안에서 십만 명의 피르 볼이 죽었다. 요히 왕이 네메드의 세 아들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도 바로 그곳이었다. 그러나 투아하 데 다난의 피해 역시 적지 않았다. 그들의 왕 누아다는 한쪽 팔을 잃었다.
피르 볼은 거의 전멸당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몇 안 되는 자들은 투아하 데 다난을 피해 아일랜드를 떠나, 아라(Ara), 일레(Ile), 라흐라(Rachra), 그리고 다른 섬들로 도망쳤다. 그들 중 일부는 후에 또 한 번의 모이 투라 전투에서 포보르(Fomor)를 돕기도 하였다.
네베드와 포보르의 전쟁 이후, 에린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승자인 포보르가 계속 에린을 다스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대부분의 전승은 정 반대의 근거를 제시한다. 뒤이은 포보르의 치세를 전하고 있는 전승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그 뒤에 에린에 도착한 피르 볼 족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 땅을 점령한다. 이러한 증거들로 보아, 피르 볼이 도착할 당시 에린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있거나, 적어도 극소수의 사람들만 살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네베드 족의 저항이 너무 거세었던 나머지, 포보르 족은 승리했지만 더 이상 에린의 지배를 지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실제로 포보르의 두 왕 중 한 명은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혹은 포보르 족의 약탈적인 성격으로 미루어볼 때, 그들의 지배 대상은 땅이 아닌 사람이었으며, 따라서 지배하고 약탈할 피지배 종족이 없는 에린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으므로 그들 역시 떠나 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추측도 증거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