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끼통 시절
임재문
교도관으로 정년퇴임한지 어느덧 20여년이 되어가니 세월이 쏜살 같이 빨리 흘러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도소 이야기 하면 그래도 칠통 육조지 삼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 하면 그 시절이 다시 그립기 때문이다. 육조지는 “순사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교도관은 세어 조지고, 판사는 미루어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마누라는 팔아 조진다.”는 재미난 이야기다. 칠통은 식구통 밥통 물통 뺑끼통 환기통 패통 꼴통이고 교도소에서 처세는 삼체인데, 몰라도 아는체 없어도 있는체 못난게 잘난체 하는 것이라고 하니 아마도 그 삼체는 일반 사회에서도 풍자되고 있는 말이 아닌가 한다.
칠통은 밥 받아먹는 식구통 대소변 보는 뼁끼통 교도관 부르는 패통 공기 들어오는 환기통 물 받아 두는 물통 교도관들이 감시하느라 들여다 보는 시찰통 심술궂고 사고뭉치 죄수들을 일컫는 꼴통이다.
지금은 화장실이 다 수세식으로 개조 되어 있지만, 내가 근무하던 현저동 101번지 서대문형무소라 불리웠던 서울구치소 시절만 해도 뺑끼통이 있었다. 뺑끼통은 화장실의 교도소 은어인데 페인트의 일본식 발음이 뺑끼라는데서 나온 말이다. 왜냐 하면 페인트를 담는 드럼통을 두 개로 잘라서 만든 변기이기 때문이다.
수용자들이 뺑끼통에 배설을 하고 구내 청소부가 수거해서 버려야 하는 아주 열악한 화장실이 뺑끼통 화장실이다. 지금은 모두 다 사라지고 흘러간 옛노래가 되었다. 수세식 화장실로 개조가 되고 서대문형무소라 불리웠던 서울구치소도
1987년 11월 15일 의왕시 포일동 신설 구치소로 옮겨갔는데, 또 다시 이전을 해야 한다고 하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현저동 101번지 서대문형무소라 불리웠던 서울구치소에서 근무할 때만 해도 제5공화국 시절이었고, 미문화원 농성사건 건국대 시위사건등 시국사범들이 수용되어 반정부 구호제창을 하고 소란행위가 비일비재 해서 그것을 제지하는 교도관과 소란행위를 하는 수용자들 때문에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수용자들 그리고 교도소에서는 정숙을 유지해야 한다는 교도소 규율 때문에 그들을 제지 해야 하는 교도관과 때로는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런데 소란행위를 하고 그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뺑끼통 배설물 투척으로 온 몸에 배설물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참으로 세 번씩이나 오물세례를 받은 나는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퇴근해서는 그냥 소주를 두어병 마시고, 그 스트레스를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퇴근도 할 수 없어서 펜티도 갈아 입을 수 없었던 그 시절! 꿈에 똥벼락을 맞으면 대박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꿈이 아닌 현실로 그렇게 되어서인지 아직까지 대박을 터트리지 못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민주화 시절이 되었으니 다 흘러간 그 옛날이 되고 말았다. 참으로 어려웠던 뺑끼통 그 시절이 지금도 그리워지는 것은 보릿고개가 있던 어릴적 고향 생각처럼 추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다시 그리운 뺑끼동 그 시절이여! 2023년 한국수필 3월호
필자 약력
2007년 강릉교도소 복지지원과장 정년퇴임
1986년 봄 한국수필 추천완료로 문단 등단.
한국수필작가회 회장 역임,
수필집 1993년 "담너머 부는 바람"
2000년 "사형수의 발을 씻기며"
2020년 “꼭 ! 봐요 !”
2021년 한국수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