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 나의 모습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알지 못하지만, 독자들은 이미 아는 것. 문학 비평에서는 이를 '극적 아이러니'라고 칭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때, 독자인 우리는 그가 앞으로 어떤 상황에 처할지 안다.
그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행위로 인해 베드로가 얼마나 후회하고 슬퍼할지를 알기에, 더욱 진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동시에 그의 무지함과 무력함, 예수님의 인내하심과 사랑을 더욱 확실히 보게 된다.
만약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나의 이야기로 쓰인다면, 이야기밖에서 보는 우리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분이 행하시는 이적을 보았건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그분을 부인하지는 않는가?
또 여종이 곁에 있는 자들에게 베드로도 예수와 한패라고 말하자 그것마저 부인한 베드로처럼, 누군가의 앞에서 내가 예수님께 속한 사람임을 부인한 적은 없는가?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많다.
만약 이야기의 바깥에서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후일 얼마나 안타깝고 후회가 될지를 생각해 보자.
무엇보다 나약하고 비겁한 우리를 한결같은 눈길로 지켜보시며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을 바
라보자.-그리스도인을 위한 통독 주석 시리즈 마가복음/최원준/홍성사
생명의 삶 2월 17일 규티
🍓실패를 씻어 내는 참회의 눈물 [마가복음 14:66~72]🍓
🌳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위기 상황에서 믿음의 허와 실이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예수님과의 친분 관계를 계속 추궁하자 그는 ‘부인, 저주, 맹세’의 단계를 거치며 예수님과의 단절을 시도합니다(68~71절). 제자도의 첫 번째 원칙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8:34).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면 위기 순간에 주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주님, 베드로와 같이 언제든 저도 주님을 부인할 수 있는 연약한 자임을 인정합니다. 믿음으로 살지 못했던 실패와 좌절의 자리를 기억하며 하루하루 더욱 주님의 은혜와 긍휼에 기대게 하소서. 영적 교만을 버리고 마음 다해 주님을 알아 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 적용 질문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나는 주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