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조선 국적)는 北에 투자… 아들(한국 국적)은 인천에 투자
'한국인'으로 전환 "조선국적 유지하고서는 일본서 경제활동 어렵다" 매년 수천명씩 바꿔
그래도 핵심세력은… "北에 간 형제 살아있는 한 조총련에 그냥 남으련다"
김정일, 올해 조직재건 지시
조총련계의 조직 기반 와해는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주요 활동가 가족들의 '한국 국적행'은 물론, 한국에 투자하는 조총련계 기업가도 나타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조총련이 조직 재건에 나서고는 있으나, 조직 위축은 오히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남편은 조선籍, 부인은 한국籍
한국 모 전자 대기업의 일본법인에서 일하는 일본 태생 C모(여·27)씨. 그는 이달 초 결혼했다. 남편은 조총련계 조선대학 출신으로 현재 조총련계 활동을 하고 있다. C씨는 한국 국적이고, 남편은 조선적(籍)이다. 조선적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후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강제병합 시대 국적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다. 일본 내 외국인등록 서류에는 '무국적(조선적)'으로 분류된다. 대부분이 조총련계 활동가나 그 가족들이다.
결혼식 주례는 조총련계 관련단체의 기관장이 맡았다. 주례는 주례사를 하면서 C씨를 '동무'라고 불렀다. 하객은 조총련계가 80% 이상, 나머지가 민단계였다. 민단계 손님이 있었던 것은 C씨의 외할머니가 민단 활동을 오래 했기 때문이었다. 신혼여행은 북한과 수교 상태에 있는 유럽의 한 나라로 갔다. 하와이로 가려다 남편이 비자를 받기 어려워 포기했다.
C씨의 아버지도 조총련계 활동을 오래 했다. 지금도 관여하고 있다. 현재 C씨 가족은 아버지만 조선적이고 어머니와 딸 넷은 모두 한국 국적이다. 딸들은 모두 2001년에 일제히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아버지는 "나는 그냥 남으련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C씨의 손위 언니 두 명도 조총련계 집안과 결혼했다. 형부 두 사람 모두 조선적이고 조총련계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C씨 가족의 경우처럼 조총련계 가족들 중에는 국적이 얽히고설킨 경우가 부지기수다. 거의 예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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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종 부의장 집안도 마찬가지다. 양 부의장만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고 가족들은 한국 국적으로 바꿨다. 양 부의장의 아들로 사업체를 이어받아 하고 있는 양모씨도 이미 2005년 한국 국적으로 바꿨다. 조선적을 유지하고서는 은행 대출 등 일본 내 경제활동에 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연세대에 진학하는 손녀도 물론 한국 국적이다.
현재 양 부의장의 손녀가 한국 대학에 진학한다는 소문은 조총련계 교포들 사이에 은밀하게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다. 조총련계 핵심이 가족을 한국 대학에 보낼 수 있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시대 추세를 감안할 때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이 대세다.
조총련계 교포들을 상대로 비공식 입학설명회를 열어 양 부의장 손녀 등의 연세대 입학을 주선한 문흥렬 연세대 홍보대사(HB cor 회장)는 "통일의 시기가 30년 후가 될지, 50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길게 봐서 젊은 학생들을 데려다 교육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면서 "연세대가 총 100명이 될 때까지 받아들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3만~4만명. 1990년대 말만 해도 10만명을 웃돌았으나 매년 줄어들어 지금은 3만~4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이 2002년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한 다음 해인 2003년 1만895명을 피크로, 지금도 매년 3000명 안팎의 조총련계 사람들이 한국 국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조총련계 사업가 5억달러 투자
조총련 활동을 해온 사람들의 인식 전환은 경제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27일 일본 교와(共和)관광은 인천경제자유구역 내에 5억달러를 들여 카지노를 갖춘 포세이돈 리조트호텔을 건립하기로 하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교와관광은 일본 파친코업계에서 5위권에 해당하는 레저 전문회사로, 2007년 매출액이 460억엔이었다.
이 회사의 주인은 이원문(李源文·76) 회장이다. 일본에서는 성을 '이(李)'가 아니라 '에모토(江本)'로 쓴다. 그는 조총련계 활동을 오래 했으며, 북한에도 합영(合營)사업으로 상당한 투자를 한 사람이다. 지금도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 회장은 그러나 둘째아들의 국적을 한국으로 바꿔 한국에 상주시키며 이번 사업을 진행해왔고, 토지매매계약식에 직접 참석했다.
조총련계 기업가들은 그동안 북한에 각종 지원금을 보내거나 합영사업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해왔다. 이번 5억달러 투자는 조총련계 기업가가 한국에 실질적 투자를 한 것으로는 최대 규모다. 한국 정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중·소 규모 투자를 모색하는 조총련계 교포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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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일본 도쿄의 조선대학에서 열린 축제에서 조총련계 학생들이 고기를 구워먹고 있다. 회원들의 한국 국적 취득이 점점 늘어나면서 조총련은 퇴락의 길을 걷고 있다./마이니치 신문 제공
◆"김정일 위원장, '올해 조직을 재건하라'"
조총련은 도쿄에 중앙본부를 두고 있고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에 본부를 별도로 설치하고 있다. 그 밑 주요 도시에 지부, 그 밑에 분회도 있다. 현재 이 조직의 형태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규모는 크게 줄었다. 중앙본부의 직원은 한창때 200명에 이르렀다. 지금은 60~70명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난과 함께 조직인력의 급속한 유출 때문이다. 도도부현별 본부와 지부는 상근직원이 없는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일본 공안당국 분석에 따르면, 조총련 세력은 한창때에 비해 5분의 1 선으로 줄었다. 1955년 43만여명에서 1997년 19만9000여명으로 줄었고, 2009년 현재 9만여명 선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 3만~4만명보다 조총련 세력이 더 많은 것은 조총련이 주관하는 각종 친목행사에 참석하는 사람 및 가족들까지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총련 조직 자체가 없어질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것이 한국과 일본 공안당국의 분석이다. 오히려 소수화되면서 뭉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작년 10월 16일 도쿄의 일본교육회관에서는 조총련이 주관한 '해외동포 통일대회'라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는 허종만 책임부의장을 비롯한 조총련 핵심인사들이 모두 참석했으며, 일본 이외 지역의 대표 50여명도 참석했다. 조총련계 활동가 등 모두 1000명이 참석했다. 조총련측 한 관계자는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올해 조직을 재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조선학교도 대규모의 통폐합 논의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