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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전야의 풍경
전 영 택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날 오후였다. 몇 날 전에 제대하고 일선에서 돌아온 백인수(대위)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날도 조용히 집에 들어앉아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이 여러 갈래로 뺑뺑 돌기만 하고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인수는 군복 바지를 입은 채 전에 입던 퇴색한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섰다.
“어디로 간담?”
사실 그는 갈 데가 없다. 굴레 벗은 말처럼 걸음걸이조차 허전허전하였다. 군대에서도 군목이던 인수는 다른 군인하고도 가까이 사귀어지지 않았고 성 질이 솔직하기만 하여서 차라리 괴벽하다는 말을 듣는 그는 같은 군목끼리도 별로 좋아 지내는 사람이 없었고 그전에 사귀던 친구도 찾아갈 만한 사람이 없었다. 교회측에도 모두 가식과 위선투성이로 된 그 틈에 섞여 다닐 생각은 도무지 없었다.
일선, 더구나 동부전선에서 지내던 인수는 가끔 서울에 온다든지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뒤에서 상상할 수도 없으리만큼 일선에서는 지독히 고생하는데 후방에서는 너무나 사치하고 호화롭게 지내는 것을 생각하고 인수는 늘 격분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던 터이라 나가 다니기도 싫은 것을 비교적 마음이 통하는 박이란 친구하고 명동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생각이 나서 문안¹ 가는 버스
를 타고 미도파 앞에서 내렸다.
*
우선 미도파의 쇼윈도와 출입문 좌우 쪽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덮였고 잠깐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아도 커다란 전나무 가지에 은방울 금방울 금실 은실로 늘이고 솜으로 흰 눈 모양을 만들어 덮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모두 무척 눈에 거슬렸다. 시계를 보니까 아직 박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멀었기 때문에 종로 쪽으로 가서 몇 친구를 찾았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다 나가고 사무 보는 자리에는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헛걸음을 하고 다시 명동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종로에서 을지로 입구로 명동까지 내려오는 동안에, 사람의 떼가 사태 난 것처럼 많이 밀려다니고 사방에 크리스마스카드 장수가 많은 데 인수는 우선 놀랐다. 그 장수들이 카드 한 장에 오천 환, 칠천 환까지 부르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
A다방에 들어섰더니 담배 연기가 가득 찬 데서 재즈와 음탕한 유행가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어울리지도 않는 크리스마스트리가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 신문 장을 들어서 들여다보다가 커피를 한 잔 청해서 마셨다. 그리고 다시 신문을 읽다가 시계를 본즉 벌써 반시가 지났건만 박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이 사람이 웬 일인가?”
인수는 홱 일어나서 나가려다가 미심쩍어 박× × 이란 사람이 다녀가지나 않았는가 마담에게 물어보았더니 한 시간 전에 어떤 여자 분하고 왔다 나가면서 낯이 서투른 손님이 오거든 좀 늦을지 모르니 기다려달라고 그러더라는 것이다.
“이렇게들 시간을 안 지키는 거야.”
혼자 중얼거리면서 인수는 A다방을 나와버렸다. 명동 거리는 불이 어느새 켜지고 아까보다 사람이 더 많이 수선거리고 다닌다. 모두 무슨 급한 볼일이나 있는 것처럼 바삐 간다. 남자와 여자와 쌍쌍이 가는 패가 상당히 많다. 인수는 어디로 갈지 몰라서 시공관 앞에서 잠깐 망설이고 서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늙은이와 어린애들이 연달아 달려들며 얼어서 빨간 손을 내민다.
주머니에 있는 대로 십 환짜리 백 환짜리를 내주고는 충무로 편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왕이니 미친놈인 척하고 꼴이나 보자.”
인수는 누구를 찾는 듯이 스탠드바를 하나씩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집집이 크리스마스트리와 산타클로스를 해놓고 장식을 굉장히 했다. 벌써 비틀거리는 손님이 귀찮은 듯이 크리스마스트리의 가지를 집어 치우면서 나간다. 뒷골목에 들어가 보니 요릿집에도 크리스마스트리가 굉장하다. 정말 미치광이로 보면 안 되겠다 싶어서 인수는 다시 미도파 쪽으로 나갔다. 오는 길에 몇 사람 아는 친구를 만나서 다방에 가자고 하는 것을 바쁘다고 거절하고 동대문행 전차를 타고 집으로 와버렸다. 집은 텅 비었다. 인수는 외투를 입은 채 빈방에 나가넘어졌다.
“어머님이 애기를 데리고 돈암동으로 가시면서 대위님이 들어오시면 곧 그리로 오시래요.”
옆집에 있는 식모가 일러주는 것이다.
“흥 크리스마스! 실컷 잘들 놀아라.”
교회는 다니며 말며 행세 거리로 신자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성탄에 무슨 정성이 있어서 그러는가, 저이들 놀고 싶어서 그러지!
그리고 또 일선에서 지내던 생각을 하고 전에 일선에 있다가 성탄 때에 왔던 생각을 하고 속이 뒤집힐 듯이 불쾌했다.
*
인수는 대개 일선에서 복무하다가 다른 친구보다 좀 늦게 제대되어 나왔다. 집에는 어머니와 아내와 어린것이 있으나 아내는 해산하러 친정집에 갔기 때문에 아직 보지도 못했었다. 어머니는 돈암동에 사는 딸의 집에 자주 다니다가 이날은 크리스마스라고 오라고 해서 손녀 신애를 데리고 간 것이다.
“내일 저녁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고 너의 누이가 다 오라구 했으니 너두 가자.”
하는 어며니의 말을 지난날 밤에 인수는 돈 잘 벌고 흥청거리고 게다가 좀 주제넘게 보이는 누이나 매부에게 대하여 별로 감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의 말씀을 들은 척 만 척하였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저희가 얼마나 예수를 잘 믿길래 크리스마스라구! 나는 안 간다. 나는 나 혼자 크리스마스 지낸다.”
인수는 차디찬 방바닥에 반듯이 누워서 눈을 감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명동 거리와 종로 거리의 야단스러운 풍경이 눈에 떠올랐다. 미도파의 크리스마스 장식, 시공관 앞에서 달라붙던 거지 아이들의 빨간 손들이 뒤섞여 보이고 일선에서 고생하는 병졸들의 까만 얼굴들이 보인다. 돈암동 누이네 집 옆에 있는 언덕 밑에 있는 방공호에 앉아 있는 영감도 보였다.
“인수야, 인수야.”
그새 인수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밖에서 왠 자동차 소리가 나서 잠이 깨었는데 어느새 어머니가 돌아와서 깨우고 있었다.
“가자, 너의 누이랑 매부가 널 데려오라고 일부러 차를 보냈다.”
“난 싫어요, 어머니나 가세요.”
잠깐 일어났던 인수는 도로 누워버렸다. 밖에서는 뽕뿡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린다.
“얘 어서 가자, 남의 바쁜 차를 세우고 기다리게 하지 말구 어서 가자. 안 가면 너의 누이가 섭섭해하지 않겠니.”
“섭섭하긴 무얼 섭섭해요. 어서 어머니나 도로 가서 잘 잡숫구 오세요.”
아랫목 쪽으로 가서 누워버린 아들을 어머니는 나도 안 가겠다고 하고 차를 보내려고 하다가 다시 마음을 먹고,
“내 면목을 보아서 어서 가자.”
사정사정해서 인수를 끌고 나가서 차를 태웠다.
어머니의 말을 거슬려본 일이 없는 인수라 할 수 없이 끌려나온 것이다. 인수는 마음속으로는 마음대로 하는 것 같으면 이 나라에서 크리스마스를 아주 없애버리고 싶고, 크리스마스란 절기를 저주하고 싶었다. 한편 쪽에는 헐벗고 굶고 떨고 있는 동포 형제가 수두룩한데 저희 혼자만 그 무엇이 그리 좋다고 야단들인고 싶었다.
*
“이거 귀한 손님이 오시는군. 백대위님, 어서 들어오십시오.”
차는 잠깐새 돈암동으로 가서 이층 양옥집 앞에 대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서 인수의 손을 잡는 뚱뚱한 신사는 이 집 주인 윤봉호요, 인수의 매부였다.
“응접실로 들어갑세다. 야, 커피 가져오너라. 그런데, 잠깐만 나 실례합니다, 형님.”
주인은 옷을 입고 기다렸던 모양이다. 자기를 태우고 온 차를 타고 나가버린다.
“누이는 어데 갔소?”
“장 보러 가서 아직 안 왔구나. 너의 매부가 차를 가지고 데리러 가는 모양이로구나. 미도파에서 기다리고 있다니깐.”
“주인도 없는데 무슨 맛에 있겠어요. 어머니 나는 가겠어요.”
“아빠 언제 왔어?”
인수는 잠깐 잡지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으려고 하는데 안에서 놀던 신애가 뛰어나와서 매달린다.
“아빠 이거 보세요. 고모가 사다 주었다우. 이것 좀 보아요, 이쁘지.”
“신애야 가자, 집에 가자. 내가 더 좋은 거 사줄게.”
인수는 자기의 손을 잡아끌며 새 양복을 보아달라고 자랑하는 어린 신애의 손을 붙잡고 가려고 하였다.
“안 갈 테야, 여기 장난감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아. 아빠두 가지 말어, 여기서 밥 먹고 할머니하구 함께 가.”
안에 들어갔다 나온 어머니의 만류에 못 이겨서 인수는 도로 방으로 들어가서 털썩 앉았다. 들여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잡지를 한참 들여다보다 말고 내던지고 팔짱을 찌르고 앉아서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데 밖에서 차 소리가 난다.
“엄마 엄마 왔다.”
아이들이 왁 달려나가서 매달린다.
“이 애들아, 가만들 있거라. 글쎄 남의 나들이옷을 고 녀석의 깍쟁이 새끼가 이렇게 버려주었구나. 좀들 비켜라.”
안에서 나오는 인수의 어머니를 보고 주인마누라는 큰 변이라도 당한 듯이 말을 계속한다.
“글쎄, 어머니, 이걸 좀 보세요. 깍쟁이 새끼가 내 치마를 붙잡더니 이 꼴이 됐다오! 글쎄, 이게 뭐예요 이게, 골탄인지 똥인지……”
온 집 안이 떠들썩하리만큼 떠들어 댄다:
“애게게 그게 무어야, 치마 버렸구나!”
“버리구말구요, 오늘 재수가 사나워서 글쎄 고 녀석 그저 모가질 비틀어주고 싶은 걸 겨우 참구 왔구만.”
어머니의 응원에 뚱뚱보 마누라는 더 기가 나서 악담을 토한다.
“얘 너의 오빠가 와서 기다린다.”
어머니도 겨우 생각이 난 듯이 응접실 문을 열었다.
“참 오빠 오셨다지요…… 하두 분해서…….”
마누라는 겨우 생각이 난 듯이 응접실을 들여다보고 인수를 안으로 들어가기를 권하고 앞에서 들어가버린다. 옷을 갈아입겠다는 속셈이었다.
*
이윽고 밖에서 주인 윤이 들어오고 뒤따라서 어떤 신사 두 사람과 여자 두 사람이 줄레줄레 들어왔다.
인수는 그 기색을 알고 기다리게 해서 실례했다고 하는 매부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안쪽에서 나와서 어서 들어가서 식사하자고 알리는 어머니에게 끌리다시피 하여 안방 대청으로 올라갔다. 마루 한편에는 아이들이 커다란 인형이며 목걸이 따위의 예물과 먹을 것 때문에 정신없이 떠들고 있고, 한편에는 주인마누라가 부족한 것을 나중에 사온 장식을 중학교 일
학년인 딸 혜경과 둘이 같이 크리스마스트리에 걸어놓느라고 골몰하다가 인수를 힐끗 쳐다보고,
“오빠, 어서 들어가 먼저 잡수세요.”
하고는 이번에는 한편 벽에 걸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성화에 은별과 금빛 종이로 장식을 하고 있다.
“어서 들어와 저녁 먹어라.”
어머니의 말이다. 크리스마스 파티란 것은 어찌 된 셈인지 자기는 마치 밥이나 얻어먹으러 온 것 같아서 더구나 불쾌했지만 마침 점심도 안 먹고 속이 출출한 터이라 안방으로 들어가서 어머니와 매부의 동생 되는 학생과 아이들과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상에는 장식 한 통닭이며 커다란 생선이며 꼬불꼬불한 글자로 크리스마스를 표시한 케이크며 각색 한국 떡 이멱 즐비하게 벌여 있고 술까지 놓여서 어머니와 학생이 이것저것 권하건만 국에 밥을 말아서 조금 먹고 인수는 뒷방으로 가서 피곤한 몸을 활신 펴고 누워버렸다.
장식하고 손님 접대하느라고 정신없이 돌아가던 주인마누라(누이동생)는 나중에야 생각이 났던지 안방으로 들어와서 오빠를 찾으면서 식사에 대한 인사를 하고 나중에 댄스 파티에 나오라고 했지만 그것은 인수가 잠깐 잠이 든 뒤였다.
“글쎄 이거 좀 보아요. 아까 당신하구 헤어져서 먼저 올 적에 깍쟁이 새끼한테 붙들려서 새 치마를 다 버렸다오. 고 녀석의 새끼를 모가지를 홀랑 비틀어 죽여버렸으면 속이 시원할 결…….”
“빨면 되지 않소, 집에 가솔린이 잔뜩 있지 않소? 당신이 얼른 한 십 환 던져주었더면 일 없을 결 그랬지. 아무리 거지라구 너무 악담을 할 게 아니야. 내일이 크리스마스가 아니오?”
“여보, 당신은 성자가 되니까 그런 마음씨를 가졌는지 몰라도 나는 성자가 못 돼서 그러우. 그리구 그따위 깍쟁이 줄 돈이 어디 있소, 글쎄.”
주인이 안으로 들어와서 마누라가 치마 버린 하소연을 하다가 핀잔을 맞고 화가 나서 대답하는 악이 뻗치고 울음 섞인 소리다. 그 소리에 옆방에 있던 인수는 잠이 깨어서 귀를 기울였다.
또 그 소리구나,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라난 내 동생이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되었을까 싶어서 슬그머니 일어나서 뒷문으로 해서 밖으로 나갔다. 누이의 말이 하도 귀에 거슬리고 듣기 싫어서 바람도 쏘일 겸 나온 것이었다. 자기는 파트너도 없지만 그런 축에 섞이기가 싫었다.
*
인수는 집 뒤에 있는 언덕 편으로 올라가보았다. 거기에는 한동안 인가가 없고 언덕 한 모퉁이에는 방공호가 뚫려 있었다. 전에 지나다니면서 보던 생각이 났다. 물론 불이 없어 컴컴하다. 인수는 일선에서 호 속에서 지내던 생각이 나서 그 속에 무엇이 있나 혹 어떤 사람이 사는가 보고 싶은 생각에 슬금슬금 들어가보았다.
“거 누구요?”
아차 잘못했다 싶어서 인수는,
“아저씨 계십니까?”
하고 공손히 물었다.
“왜 누굴 찾소?”
“지나가던 사람이 잠깐 몸 좀 녹여 가려고 왔습니다.”
“ 나가던 사람이? 좌우간 들어오시오.”
거적문을 들치고 들어갔더니 늙은이가 조그만 등잔불을 켜놓고 누더기를 쓰고 엎드려서 무얼 홀홀 마시고 있다. 인수는 전부터 한번 방공호에서 사는 것을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을 가졌으나 오늘에야 처음 들어와보게 되었다. 불 땐 온돌방 같지는 못하나마 아늑하고 군바람 하나 없는 것이 춥진 않다.
“전 이 동네 사는 놈인데요, 아저씨를 한번 찾아 뵐려구 하면서두 여태 군대에 나가서 지냈기 때문에…… 아저씨, 추우시진 않습니까?”
“안 추어.”
늙은이는 인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웬 사람이 날더러 아저씨라구 밤중에 찾아와서 고마운 말을 하는가 하는 얼굴이다. 과연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아저씨, 본시 이 동네 사셨습니까?”
“아니 이북에서 왔네!”
“저도 이북에서 왔습니다.”
“그래, 언제 왔나?”
“1·4후퇴 때에 왔어요.”
“그래 나두…….”
늙은이는 먹던 술을 놓고 나서 말을 계속한다.
“마누라하구 아들 따라왔다가 아들은 일선에 나가 죽고 그 뒤에 마누라두 죽구 며느리는 어린것 하나 있는 걸 버리고 잠깐 다녀온다더니 어디로 가구 종내 안 들어오구 저 애놈하구 둘이 산답니다.”
늙은이는 컴컴한 모퉁이에 누워 자는 어린것을 가리킨다.
“저 애가 몇 살이야요?”
“여섯 살입니다.”
“가엾어라, 어린걸.”
인수는 이윽고 자는 아이를 바라다보다가,
“아저씨, 제 부친은 이북에서 못 오셨답니다.”
“그래? 소식을 모르겠지?”
“모르지요.”
“돌아가셨겠지.”
“글쎄요.”
인수는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다. 사실 이북에 남은 아버지 생각이 나서 목이 멘 목소리다.
“아저씨 혼자서 어린결 데리구 어떻게 지내셔요?”
인수는 눈물 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더니 그 옆에 있는 방공호에 사는 할머니가 밥도 조금씩 갖다 주고 요새는 감기로 아파서 밥을 못 먹으니까 이렇게 미음을 쑤어다 주어서 먹노라고 이야기를 한다.
“고맙군요, 그 할머니가·…… 이걸 어린애나 주세요.”
인수는 거기서 하루 저녁 자고 싶은 것을 어머니와 어린것이 기다릴 것이 염려되어서 싸가지고 왔던 떡과 외투까지를 슬쩍 놓고 나왔다.
“여보, 여보, 외투 가져가시오.”
늙은이가 찾는 소리가 들렸으나 인수는 못 들은 척하고 바쁜 걸음으로 누이 집 뒷문으로 살짝 들어왔다.
“뚱땅뚱땅 쿵창쿵창 시르르 시르르…….”
“하하 하하 하하.”
안에서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댄스파티로 한창 돌아가는 모양이다. 재즈 음악 소리와 거기에 맞추어서 발걸음 소리와 또 가끔가끔 흥에 겨운 웃음소리가 문밖에까지 요란스럽게 들려 나온다. 인수는 잠시 무슨 생각에 잠겼다가 슬그머니 아까 자기가 누웠던 안방 뒷문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다 잠이 든 모양이다. 뒷방에는 주인마누라가 사다 놓았던 선물로서 아직 풀어보지 아니한 듯한 포장한 곽이 있다. 그것을 풀어 보니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모자와 붉은 옷이다.
“옳지 됐다.”
인수는 다시 살짝살짝 밖으로 나가서 방공호에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서 데리고 왔다. 자기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붉은 모자를 쓰고 붉은 옷을 입고 데리고 온 어린애를 흰 보자기로 싸가지고 한창 춤추고 돌아가는 대청문을 가만히 들어섰다. 그래도 춤추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는 주의를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잠깐 생각한 인수는 뒷담 벽에 걸린 성화를 칵 잡아당겨서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자기는 한가운데 나섰다. 그제야 여러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이번에 기쁜 크리스마스가 되어서 착한 아이들이 있는 집을 찾아서 선물을 주려고 온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다. 그런데 와보니 너희는 너무나 풍청거리며 잘 논다. 너희 집에는 주님의 성상도 소용이 없다. 그리고 너희 집에는 아이들이 모두 너무나 좋은 선물을 가졌기 때문에 내 선물은 변변치 아니하기 때문에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색다른 선물 하나를 가지고 왔다. 이 선물은 내가 가져왔다기보다도 주님 예수께서 보내신 것이다. 아니 주님이 친히 오신 것이다. 지극히 적은 소자 하나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것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것이요, 지극히 적은 소자 하나를 대접하는 것은 나를 대접한 것이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맨발에 헌옷을 입은 채 어리둥절하는 아이를 내놓고 자기는 뒷걸음질하면서 슬쩍 어두운 데로 사라졌다.
“누구야 뭐야 웬 아이야?”
빈정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수의 목소리를 듣자 보두 박수를 하고 환영하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 불신자로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주인마누라는 자기의 한 일이 있어서 찔리기 때문에 인수의 하는 일을 불쾌하게 여기고 미치광이 짓으로 생각하였다. 주인마누라는 딸 혜경을 시켜서 주님 이 보내셨다는 어린아이에게는 돈 몇 백 원과 떡과 과자를 싸주어서 바삐 돌려보냈다.
*
크리스마스 전날 밤은 고요히 깊어갔다. 손님들도 다 돌아가고 인수와 그 어머니와 딸 신애도 돌아갔다. 모든 식구들은 다 깊이 잠이 들었다. 주인마누라도 고단한 김에 잠이 들어서 코를 골고 있다.
“엄마, 엄마.”
엄마 옆에서 자던 여섯 살 먹은 애경이 벌떡 일어나서 엄마를 흔드는 것이다.
“엄마 엄마, 누가 밖에서 나를 찾아요.”
애경은 엄마를 몹시 흔들면서 야단이다.
“얘 넌 왜 자지 않고 그리냐. 어서 자거라.”
“엄마, 글쎄 누가 밖에서 애경아 애경아 하면서 나를 불러요.”
“얘가 무슨 잠꼬대를 그렇게 하니, 어서 자라는데 그래.”
어머니는 귀찮은 듯이 소리 지르고 돌아누워서 여전히 코를 골고 있다.
어린것은 울면서 야단쳤지마는 깊이 잠든 식구들은 아무도 알은척하지 않았다. 어린것이 혼자 일어나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으나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캄캄하고 찬바람은 무섭게 몰아치고 있다. 할 수 없이 어린것은 문을 닫고 돌아와서 밖으로 귀를 기울이고 앉아서 모깃소리만큼 희미한 소리가 들렸으나 졸음이 엄습하여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온 교회 함께 일어나
다 찬송 부르세
다 찬송 부르세
다 찬송 찬송 부르세
먼동이 훤하게 밝아오면서 새벽 찬송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간악한 세상에도 성자의 강림을 알리는 하늘의 축복을 전하는 거룩한 노랫소리 였다.
한밤에 양을 치는 자
그 양을 지킬 때에
주 뫼신 천사 일어나
큰 영광 비최네
큰 영광 비최네
새벽 찬송 소리는 점점 가까이 와서 윤봉호네 정문 밖에까지 왔다. 노래는 다시 계속되었다.
“새벽 찬송 새벽 찬송 문 열어라 문 열어라.”
봉호와 아내와 혜경과 온 식구들이 혹은 촛불을 켜가지고 혹은 회중전등을 가지고 대문 밖으로 나가서 박수로 성가대를 맞이하였다. 예비하였던 과자 봉지를 내주고 현금을 두둑하게 넣은 헌금 봉투를 대장에게 내어주며 고마운 인사를 하였다.
“성탄에 복 많이 받으십쇼.”
축복하는 인사를 하면서 대원들은 우즐렁우즐렁 물러갔다.
“이 집에서는 따끈한 떡국이나 끓여 낼 줄 알았더니 아주 깍쟁이야.”
이런 소리로 불평을 하고 가는 생각 없는 대원도 있어서 마지막으로 대문을 닫치고 들어가려던 식모는 못마땅한 듯이 대원 편을 바라보면서 들어가려고 하는 차이었다. 찬바람이 불고 눈이 펄펄 내린다. 대문을 잠그고 들어가려고 하던 식모는 무심코 다 한번 좌우쪽 행길을 바라보았다.
“에그머니 , 이게 무어야.”
개도 아니요 사람이 분명하다. 식모는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식모가 기절을 하듯이 야단을 하는 통에 주인은 사랑에서 자던 운전사를 깨워가지고 불을 가지고 나가 보았다.
대문 밖 담 모퉁이에 바짝 달라붙어 있는 것은 대여섯 살쯤 나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얼굴은 눈에 덮여서 고요히 잠든 것이었다. 그 옆에는 초 그루터기가 쓰러져 있다.
얼마 전에 애경을 부르던 그 손님일 것이다.
이날 밤이 깊어서 인수는 자기 집에서 마음에 여러 가지 뉘우치는 바가 많아 눈물의 참회 기도를 드리자 이웃집 닭이 울었다.
-끝-
2016년 6월 1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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