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張太師公 城谷齋舍)는
안동 장씨(安東 張氏)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제단을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1806년(순조 6)에 세워진 건물이다.
성곡재사 영휘루(永輝樓)
930년 고려 태조 왕건(王建,877~943)과 후백제의 견훤(甄萱,867~936)이
고창(현 안동)에서 전투를 벌이자 장정필은 김선평, 권행과 함께 고려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936년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고, 세 사람은 공신으로 태사의 벼슬을 하사 받았다.
왼쪽으로 돌아
이 후 왕건은 고창(현 안동)이 동쪽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안동(安東)이라는 새 이름을 내렸다.
성곡재사(城谷齋舍)는 1806년 건립되어 1853년에 중건하였고,
1966년에 누문인 영휘루(永輝樓)를 건축하였으며, 경내에는
영휘루(永輝樓),추원재(追遠齋),서재(西齋),동재(東齋),관리사가 있다.
영휘루 측면
성곡재사 입구
성곡재사(城谷齋舍)
성곡재사 내부
성곡재사 마루
안에서 보는 영휘루
추원재(追遠齋)
추원재 마루
동재
서재
연못과 5층석탑
연못
안동장씨 시조 장정필 단소 가는길
단소 입구
안동장씨 시조 딘소
장정필의 묘는 그 위치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는데,
1842년(현종 8) 재사 인근의 무덤들을 조사한 끝에 장정(張貞)
이라는 두 글자가 쓰인 지석 조각을 찾아 그 위치를 알게 되었다.
안동장씨는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우리나라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태사 장정필(張貞弼)로 초명은 장길(張吉)이다.
자(字)는 영보(寧父), 호(號)는 포음(圃蔭)이고, 시호(諡號)는 충헌(忠獻)이다.
비조는 통일신라 시기에 해상왕(海上王)이라는 별칭을 사용하고
해상권을 장악한 장보고(張保皐) 장군이며 장정필은 장보고의 현손이다.
안동장씨의 인구는 84,000여 명이며, 인동장씨와 혼동하기 쉽다.
제단 앞 석비(신.구)
고려 삼한벽상 삼중대광 아부공신 장정필 제단
(高麗 三韓壁上 三重大匡 亞父功臣 張貞弼 祭壇)
제단앞 석물(좌)
제단 앞 석물(우)
성곡재사 입구의 지석 출토지
왼쪽 : 고려 태사 포음 장선생 심지비(高麗 太師 圃蔭 張先生 尋誌碑)
오른쪽 위 : 지석 출토지(誌石 出土址), 아래 : 성곡재사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