追憶(추억)에서 30/박재삼
국민학교를 나온 형이
화월(花月) 여관 심부름꾼으로 있을 때
그 층층계 밑에
옹송그리고 얼마를 떨고 있으면
손님들이 먹다가 남은 음식을 싸서
나를 향해 남몰래 던져 주었다
집에 가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누이동생이
부황(浮黃)에 떠서 그래도 웃으면서
반가이 맞이했다
나는 맛있는 것을
많이 많이 먹었다며
뻔한 거짓말을 꾸미고
문득 뒷간에라도 가는 척
뜰에 나서면
바다 위에는 달이 떴는데
내 눈물과 함께
안개가 어려 있었다
===[박재삼詩 100選, 박재삼문학관운영위원회]===
배가 고팠습니다.
나는 소년가장이었습니다.
점심시간 운동장으로 가서 두리번거리면서
냉수로 배를 채웠습니다.
겨울엔 물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꽁꽁 언 수도꼭지를 바라보며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짭짤했습니다.
나는 왜 이런 집에 태어나 고생하며 학교에 다녀야 하나?
세상이 미웠습니다.
많이, 아주 많이....
담임선생님이 공납금 미납자 이름을 부르며 종례 끝나면 남으라는
그 말이 부끄러웠고 창피했습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할 따름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따지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아시냐고?"
"얼마나 창피한 줄 아시냐고?"
하루 종일 목적지도 없이 걷곤 했었습니다.
부끄럼과 창피함이 내 몸에서 증발할 때까지.
훗날 나는 생명력 강한 잡초처럼 성장하게 한
어린 시절의 삶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눈물은 생명 다하는 날까지 마르지 않고
우리 몸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름에 얼음을 먹으며
겨울에 딸기며 포도를 먹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요.
배 고파서 힘들어하는 세상 보다
배 불러서 힘들어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안개 낀 날보다
비 오는 날보다
눈 오는 날보다
밝은 태양이 뜨는 날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어려움, 그리움, 불편함, 괴로움, 외로움, 억울함, 쓸쓸함............
다 지나가는 구름이요 바람 같은 것이라는 것을.
박재삼 시인님이나 권정생 작가님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따라 커피가 몹시 쓰군요.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