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눈으로 유령을 볼 수 있다?
뇌 아닌 눈 망막세포에서 유령 이미지 해독
카메라는 사람의 눈을 본따 만들어 졌다. 수정체 역할을 하는 렌즈를 통해 빛이 들어오면 망막의 역할을 하는 센서에서 이를 픽셀화해 이미지를 재생해낸다.
그러나 이는 정상적인 물체에 한해서다. 유령 이미지(ghost image)의 경우 그것이 불가능하다.
영상 분야에서 유령 이미지는 ‘형체는 보이지만, 어느 것도 온전한 것이 없는 트릿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특수한 이미지’를 말한다.
카메라로 이런 이미지를 찍기 위해서는 극도로 예민한 렌즈, 센서 등을 장착해야 한다. 그동안 스코틀랜드 헤리어트 와트 대학의 물리학자 다니엘 파치오(Daniele Faccio) 교수 연구팀은 이 유령 이미지를 촬영하기 위한 카메라를 개발해왔다.

사람의 눈 망막세포에서 종잡을 수 없이 변화하고 있는 유령 이미지 패턴을 모두 식별해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눈 시각세포, 유령 이미지 명확히 식별”
연구팀은 지난 2015년 32×32 격자에서 광자의 위치를 초당 200억 프레임에 해당하는 속도로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를 개발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사람의 시력과 관련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18일 ‘라이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파치오 교수 연구팀은 출판전 논문·자료 저장소(preprint server)인 ‘아카이브(arXiv, arxiv.org)’에 등록한 논문을 통해 “사람이 유령 이미지를 볼 수 있는 놀라운(spooky)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카이브’에 게재된 논문 제목은 ‘Ghost imaging with the human eye’이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특수 카메라만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이 유령 이미지를 뇌 신경으로 식별할 수는 없지만, 눈으로는 가능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사람의 눈은 종잡을 수 없이 변화하고 있는 트릿한 이미지의 미세한 패턴을 모두 식별해낼 수 있다. 또한 그 이미지 정보들을 모아 보관하고 다시 재생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컴퓨터를 통해 유령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미지를 분해한 후 그 세부적인 패턴을 또 다른 패턴 위에 겹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눈으로 식별이 힘든 유령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사람의 눈으로 그 영상을 식별할 수 있는지, 식별이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 그 잔상이 지속적으로 남아 있는지 관찰했다. 연구팀은 첨단 장비를 도입해 20 ms(millisecond, ms는 1000분의 1초) 단위로 시각적인 활동을 순간 측정할 수 있었다.
연구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파치오 교수는 “뇌의 신경세포가 이 유령 이미지를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사람의 눈 시각세포는 유령 이미지의 모든 패턴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수집된 시각정보를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보관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뇌의 지각능력 유령 이미지 인지하지 못해”
과학자들은 그동안 정교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라이다(lidar) 장치를 사용해왔다.
라이다는 먼저 대상 물체에 레이저 펄스를 발사한다. 그후 물체에서 반사되어 돌아오는 빛을 측정해 물체까지의 거리 등을 분석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이미지를 정밀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파치오 교수는 여기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했다. 대상 물체에서 수학적인 데이터를 추출해 보다 더 모호하고, 움직임이 종잡을 수 없으며, 명암과 형태가 수시로 변화하는 유령과 같은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혀를 내밀고 있는 아인슈타인 사진에 아다마르 패턴(Hadamard patterns)이라 불리는 격자무늬 패턴, 숫자, 글자 등을 결합해 유령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LED 프로젝터를 통해 이 이미지를 스크린에 비추었다.
이후 연구팀은 유령 이미지를 빨리 투사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변화를 주면서 사람들이 이런 이미지들을 식별할 수 있는지 관찰했다.
화면 주사율(refresh rate)이란 것이 있다. 화면이 깜박이는 정도를 말한다. 주사율이 높을수록 색상이 선명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재현할 수 있다.
연구팀은 처음 이 화면 주사율을 1초 이상 설정하고 눈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러자 눈에서는 흑백 격자무늬(black-and-white checkerboards)만 기억하고, 아인슈타인의 혀를 내민 이미지나 숫자 등은 식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화면 주사율을 높여 영상을 빨리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눈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멍청한 얼굴은 물론 숫자와 글자 등을 명확히 식별하기 시작했다.
파치오 교수는 “사람들의 눈에서 흑백 격자무늬가 사라지고 아인슈타인의 얼굴과 함께 다양한 숫자와 글자들의 잔상이 회색 톤(greyscale)으로 선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는 이미지 움직임에 따라 이를 식별하는 방식이 다름을 말해주고 있다.
파치오 교수는 “사람의 눈은 매우 빠른 움직임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빨리 변화하는 이미지라도 20ms(ms는 1000분의 1초) 동안 그 잔상을 기억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파치오 교수는 “그러나 이 잔상은 느리게 사라진다”고 말했다. 만일 또 다른 이미지가 순간적으로 겹쳐서 나타나면 먼저 나타난 잔상 위에 새로운 이미지를 겹쳐 놓으며, 다양한 패턴의 이미지를 축적한다는 설명이다.
파치오 교수는 “사람의 눈의 능력은 매우 놀라웠다. 빨리 움직이고 있는 복잡한 구조의 유령 이미지를 대부분 식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뇌의 지각 능력이 부족해 이런 이미지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해당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은 현재 상호심사 저널(peer-reviewed journal)을 통해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파치오 교수는 이 과정이 끝나면 인간이 유령 이미지를 어떻게 볼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연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