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난 수학교실. 넌?”“난 영어야.”서울 공항중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과목별 교실로 이동하고 있다. 3년 뒤면 모든 중·고교에서 이 런 대화를 듣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지연이가 향한 곳은 2층 '홈 베이스(Home Base)'. 사물함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지연이는 사물함에서 교과서를 꺼내고는, 수업시간 2분 전까지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지연이는 "아무래도 선생님이 계신 교실보다는 홈 베이스가 얘기하기 좋다"고 말했다.
수업은 종이 치자마자 곧바로 시작됐다. 교과 교실제인 이 학교의 선생님들은 이미 빔 프로젝터로 수업내용과 관련된 영상자료를 띄워놓은 채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4교시 수학 시간이 끝난 후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지연이는, 친구들과 복도를 걸어다니며 얘기를 나눴다. 지연이는 "우리 반 교실이 따로 있는 게 아니어서 점심시간마다 이렇게 헤맨다"며 "그래도 선생님들이 이것저것 준비를 많이 해놓고 우리를 기다리시니 정말 좋다"고 말했다.
5교시 도덕 시간에 지연이는 원탁의자에 앉아 '사물함 CCTV 설치 문제'로 토론을 벌였고, 6교시 물상 시간엔 선생님이 준비해 놓은 실험도구로 '끓는 점' 실험을 했다.
수업을 다 마치고 다시 담임선생님 교실로 갔다. 종례가 끝난 오후 3시30분, 지연이는 "옷 갈아입고 수학 학원에 가야 한다"며 집으로 향했다.
2007년부터 이동수업을 실시 중인 서울시 목동 한가람고등학교에 들어서면 교실마다 제각각인 책상배치와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수학교실에는 교실 전면과 뒷면에 대형 칠판이 설치돼 학생 여러 명이 동시에 나와 문제풀이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사회교실에는 분임토의를 위해 6명이 같이 앉는 대형 책상이 있고 영어교실에선 빔 프로젝터를 활용해 수업을 진행한다. 교무실을 없애고 교사들은 담당 교과교실에 상주하면서 연구와 수업을 한다. 이옥식 한가람고 교장은 "학교 교육이 공급자(교사) 위주에서 수요자(학생) 중심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항중 2년 나주영양은 "선생님이 미리 준비를 하셔서 꽉 짜여진 공부를 할 수 있다"며 "교실을 돌아다녀 불편하긴 해도 공부는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했고, 같은 학년 백신영양은 "실습실이 같이 있는 과학이나 가정수업은 확실히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 모든 중·고교생은 지연양처럼 대학식 이동수업을 받게 된다. 지금은 공항중·한가람고 정도밖에 없지만 올해 서울 동원중·한강중·언북중 등이 이동수업을 도입하고, 3년 뒤에는 전국 모든 중·고교로 확대되는 것이다.
〈본지 1월 22일자 A1면 참조〉 중·고교생도 대학생처럼 수강신청을 하고 교사를 선택하는 시대를 앞두고, 그 현장을 미리 가보았다.
●어떤 변화 일어날까
대학식 이동 수업이 중·고교에서 실시될 경우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첫째, 무(無)학년제 수업이 본격 시행된다. 학생이 자기 학습 수준에 따라 수업을 듣게 되므로 1학년 수학, 2학년 수학 개념도 사라진다. 1학년이 3학년과 같이 수학 수업을 들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둘째, 100분 수업(2시간 연속 수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학생들 이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가람고는 국·영·수나 스포츠댄스 같은 대부분 과목이 100분 수업이 기본이다. 대학에서 2시간 강의가 일반화된 것과 비슷하다.
셋째, 수업방식 변화다. 교사가 교실에 상주하며 수업을 진행하므로 다양한 수업자재를 교실 안에 준비해 놓고 수업에 활용하게 된다.
넷째, 자연스럽게 교사 평가가 이루어진다.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할 때 교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어 과목을 두 교사가 개설할 경우 학생들은 잘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몰리기 마련이다. 정부는 이 제도를 내년부터 도입되는 '교원평가제'와 연계해 실시할 예정이다.
반면 이미 이동수업을 실시 중인 선진국과 똑같은 폐해가 나타날 수도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학생 생활관리다. 소극적인 학생, '왕따' 학생들은 학교 차원의 생활관리가 더 어려워지고, 매 시간 바뀌는 수업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전문 교사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