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각 대학의 대입 수시전형 합격자 발표가 끝난다. 다음 주 후반부터는 정시전형 입학원서 접수가 시작된다. 팔자에 없는 '수험생 부모' 노릇을 2년째 하는 바람에 입시 전쟁의 실상을 들여다보게 됐다. 한마디로 무척 놀랐다.
필자의 생업인 스포츠 기사보다, 40년 취미인 바둑보다 더 '재미있는' 세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대학별 전형의 차이는 고사하고 백분율·표준점수 같은 용어조차 이해할 수 없는 세대로서 지금의 입시는 요지경 그 자체였다.
지난달 수능 시험 뒤 벌어진 일만 해도 그렇다. 메가스터디, 진학사 같은 사설기관들은 수능이 끝나자마자 과목별 '예상 컷(Cut)'을 만든다. 수험생들이 그 코너로 들어가 자기 성적을 기입하면 그 통계로 몇점이 1등급이고 2등급인지가 나온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공식 발표는 추인(追認)에 불과하며 그 예상 컷이라는 것의 적중률이 거의 100%에 가깝다. 최소 5만~6만명, 많으면 10만명 이상이 자발적으로 자기 성적을 낱낱이 공개하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엔 숨 가쁘게 대학별 합격 가능성 예측이 시작된다. 수험생들이 자기가 희망하는 대학에 모의(模擬)지원을 하는 것이다. 몇 차례 이 과정을 반복하면 자료가 축적되고 합격·불합격 여부를 어느 정도 점칠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데 최소 4만~5만원을 내야 한다. 사설 교육기관들에게 매년 연말은 산타 할아버지가 돈 보따리를 던져주는 호시절이다. 이렇게 땅 짚고 헤엄치는 회사들의 주가(株價)가 낮을 리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마저 부러워하는 한국의 교육열이 여기서 멈출 리가 없다. 작년엔 몰랐던 한 입시 사이트를 우연히 발견하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이 사이트에선 언어·수학·외국어·탐구영역 4과목을 합친 자기 표준점수로 자기가 전국에서 몇 등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처럼 점수 산출방식이 다른 대학에서 자기가 몇점을 받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공식 교육기관에선 나올 것 같지 않은 변환표니 뭐니 하는 자료들이 이곳에선 넘쳐난다. 그러곤 서울대, 연세·고려대, 서강·성균관·한양대, 의예과, 치의예과, 약학과, 한의예과, 경찰대, 교육대로 나누어진 토론방이 있다.
여기 매일 수천 명이 우글거리며 서로의 점수를 공개하면서 합격 가능성을 점친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게 정체불명의 자칭 '도사(道士)'들이다. 그들은 수험생의 고백을 상담하며 "위험!" "안정" 같은 판정을 내려준다.
더 재미있는 건 자기 점수를 부풀려 상대의 응시 의욕을 사전 봉쇄하려는 수험생들이다. "나 ○점이고, 내 친구는 ○점인데 그 대학 그 과에 가려고 한다"는 식이다. 어찌 보면 주식 시장 같기도 하고, 노름판, 섯다판 같기도 하다.
너무나 교육적이지 않게, 마치 게임하듯 컴퓨터 앞에서 '입시'라는 걸 치른 아이들에게 대학이 왜 상아탑(象牙塔)인지, 교육은 왜 백년대계(百年大計)인지, 교육부는 또 뭐 하는 곳인지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실력 평가, 수학 능력 검증과 같은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정보 싸움, 눈치 싸움으로 변한 한국의 입시제도가 북한의 연평도 포격만큼이나 우리의 앞날에 위해하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학부모로서 다시 그 사이트들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