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3616]圃隱先生 日照縣(일조현)·登全州望景臺(등전주망경대)書法
<낙관글>
右錄鄭夢周詩二首高麗名士益客居海曲也 省工之武帥書之
(우록 정몽주 시 이수 고려 명사 익객 거해곡야 생공지 무수 서지)
오른쪽은 정몽주 시 두 수를 적다. 고려의 명사로 유익한 손님이다.
해곡에서 머물며 품을 덜었다. (이에) 무수가 그것을 적다.
작가 무수(武帥)
약력 · 산동성 청년서예가협회
홍보출판위원회 위원
· 일조시 서예가협회 회원
· 일조시 청년서예가협회 주석단 위원
명제: 日照縣(일조현)·登全州望景臺(등전주망경대)
일조현· 전주 망경대에 올라
-鄭夢周(정몽주)
海上孤城草樹荒(해상고성초수황)
바닷가 외로운 성 초목은 황량한데
最先迎日上扶桑(최선영일상부상)
부상에서 돋는 해를 맨 먼저 맞이하네.
扶桑(부상): 해가 뜨는 동쪽 바다 속에 있다고 하는 상상의 나무.
또는 그 나무가 있다는 곳.
我來東望仍搔首(아래동망잉소수)
내가 동녘 바라보며 여전히 시름하였지.
仍(잉): 여전히. 搔首(소수): 머리를 긁다.
생각하며 망설이다. 여기서는 시름하다로 풀이함.
波浪遙應接故鄕(파랑요응접고향)
저 파도 멀리 응당 고향 땅에 닿았으리.
遙(요): 멀다.
<日照縣(일조현)>
百尺樓高石徑橫(백척누고석경횡)
백 척 누각은 높고 돌길은 가로 놓였는데
秋光一望不勝情(추광일망불승정)
가을 경치 바라보니 정을 이기지 못하네.
靑山隱約扶餘國(청산은약부여국)
청산 (아랜) 부여국이 희미하게 (보이고)
隱約(은약): 어렴풋하다. 희미하다
黃葉紛紜百濟城(황엽분운백제성)
누런 잎은 백제성에 어지럽게 날리네.
紛紜(분은): 어지럽다.
九月西風寒客袂(구월서풍한객몌)
구월 가을바람은 길손의 옷소매에 차갑고
袂(몌): 옷소매.
百年俠骨誤書生(백년협골오서생)
오랜 세월 기개는 서생을 헷갈리게 하네.
俠骨(협골): 남자다운 씩씩한 기골.
여기서는 '기개'로 풀이함.
天涯日沒浮雲合(천애일몰부운합)
하늘가에 해지고 뜬구름 모여드니
回首依依望玉京(회수의의망옥경)
머리 돌려 개경을 바라보며 그리워하네.
依依(의의): 안타까이 그리워하는 모양.
玉京(옥경): 여기서는 개경을 가리킴
<登全州望景臺(등전주망경대)>
<작가 소개>
고려말의 학자, 충신. 초명 夢蘭, 夢龍(몽란, 몽룡). 자 達可(달가). 호 圃隱(포은).
시호 文忠(문충). 본관 迎日(영일). 父 瓘(관).
경북 永川郡 愚巷里(영천군 우항리)에서 태어나
공민왕 9년(1360) 三角山(삼각산) 절간에서 글을 읽다가
과거 乙科(을과) 三場(삼장)에 연달아 장원급제,
藝文館檢閱(예문관 검열)을 거쳐 동왕 13년(1364) 兵馬使 李成桂(병마사 이성계)의
從事官(종사관)으로 女眞族(여진족)을 和州(화주)에서 격퇴했다.
典農寺丞(전농시승), 禮曹正郞(예조정랑), 司成(사성)을 거쳐
동왕 21년(1372) 서장관으로 명 나라에 다녀와
우왕 1년(1375) 右司議大夫(우사의대부)를 거쳐 大司成(대사성)으로서
北元(북원)을 섬기지 말 것을 주장하다가 권신 李仁任(이인임)에 의해
彦陽(언양)으로 귀양 갔으며, 사신으로 일본에 가서 海寇(해구)를 금지할 것을
교섭하였다. 동왕 6년(1380) 이성계를 따라 雲峯(운봉)에서 해구를 친 공으로
密直提學(밀직제학)이 되고, 4년 뒤 政堂文學(정당문학)으로 명 나라에 가서
국교를 두텁게 하고 돌아왔으며, 동왕 16년(1386)에 또 명에 가
세공을 면제할 것을 청하고 돌아와 永原君(영원군)에 피봉되고
三司左使(삼사좌사)를 거쳐 창왕 1년(1389) 大提學(대제학)이 되었다.
이성계와 같이 공양왕을 세우고 門下贊成(문하찬성) 등 여러 벼슬을 받고
益陽郡忠義伯(익양군충의백)에 피봉, 佐命功臣(좌명공신)이 되었으며,
공양왕 4년(1392) 大明律(대명률)을 새로 撰定(찬정)해 바쳤다.
당시 이성계의 위력이 날로 커져 趙浚(조준), 鄭道傳(정도전) 등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므로 우선 조준을 제거하려 하는 동시에
고려조를 끝까지 받들고자 했으나, 李芳遠(이방원, 후의 태종)의 문객
趙英珪(조영규) 등에게 善竹橋(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
성미가 호방하고도 매서웠고 충효로 일관했으며 성리학에 매우 밝아
東方理學祖宗(동방이학 조종)으로 추앙받았고 오부학당,
향교를 설치하여 유학을 진흥시켰으며, 詩文(시문)도 호방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불교와 도교를 배척하여 ‘朱子家禮(주자가례)’에 따라 家廟(가묘)를 세우게 하는 등
주자학의 실천에 힘썼으며, 문집에 ‘圃隱集(포은집)’이 있고
시조 丹心歌(단심가)는 유명하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한시작가작품사전)
[출처] 日照縣·登全州望景臺|작성자 farh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