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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쓴 편지<3> 가물치
농촌에서 어린 시적을 보낸 이들은 징그러운 물고기 가물치를 잘 아실 겁니다.
징그럽지만 이로운 물고기 가물치. 산모에게조차 제대로 먹을 것을 챙겨주지 못하던 시절, 가물치는 보약(補藥)이었습니다.
가물치는 아무 때나 잡을 수 있는 물고기가 아닙니다. 봄철에 수초를 다듬어 만든 산란장에 알을 낳고 부화될 때까지 지킵니다. 이때 산란장 안으로 들어오는 어떤 것도 용서 없이 공격하는 습성을 이용해 잡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이 때 잡아둔 가물치를 머리 부분만 잘라 북어처럼 말려두었다가 동네에 산모가 생기면 이를 전해주는 것이 큰 부조였습니다.
말린 가물치 대가리에 물을 넉넉히 잡고 오래 끓이면 뽀얀 국물이 우러나옵니다. 여기에 참기름 조금 넣어 산모에게 마시게 하면 젖이 넉넉해진다고 합니다.
영양학적으로 접근하면 ‘뽀얀 국물’은 특정 어종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뼈가 억센 물고기 모두에게 얻을 수 있는 일반적인 산물이라고 합니다. 가물치만 산모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가물치는 독특한 외모만큼 특별한 물고기입니다. 우리나라 남서부 지방은 평야가 넓게 발달하고, 강의 흐름이 완만해서 소규모 저수지나 늪지대가 많습니다. 동북부는 반대로 산이 많아 계류적 특징을 보이는 담수생태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가물치는 우리나라 생태계에선 보기 드문 대형 육식어종입니다. 영어이름인 Snakehead는 가물치의 외모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뱀을 연상케 하는 차갑고 날카로운 외모는 외계인을 다룬 에어리언 시리즈에 등장해도 손색이 없고, 보기만 해도 주눅이 들 정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담수 생태계는 인공호수가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양호 충주호 대청호 운암호 안동호 합천호 등이 그렇습니다. 게다가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등에는 수중보(洑)나 하구언이 물 흐름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런 이유로 하천생태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곳은 운암호 하류의 섬진강밖에 없습니다. 가물치는 서해와 남해로 흐르는 하천 주변 저수지, 연못, 농수로, 늪지대에 퍼져 살고 있습니다.
가물치는 중국 동부의 양자강, 그리고 흑룡강 수계에도 살고 있습니다. 배스나 블루길처럼 미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논란의 대상이 되는 어종이 있는가 하면 가물치는 반대로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살고 있는 어종입니다.
2004년 미국에서는 동아시아 지역에만 살고 있는 Snakehead fish가 워싱턴DC 주변 포토멕강에 나타났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 허용범 기자(현 국회도서관장)는 어릴 때부터 고향 안동에서 낚시를 취미로 즐겨온 탓에 미국 신문의 낚시관련 기사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2004년 7월31일자 주말판은 중국과 한국에만 사는 Snakehead fish가 포토멕 강에서 자주 낚이고 있으며, 이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포식성이 있어 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고 있는 것은 물론 낚시를 즐기는 이들도 매우 염려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물고기는 인근 크로톤 연못에서 2002년에 처음 발견됐으며 차츰 서식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 신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또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 시 인근의 호수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지금껏 알려진 것보다 훨씬 넓게 서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라서 야후를 통해 좀 더 검색해보았더니 Snakehead fish는 미국 여러 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메릴랜드 주의 경우 절대로 살려주지 말고 자르거나 피를 뽑아(cutting/bleeding) 죽인 뒤 그 사실을 DNRFS(Department of Natural Resources Fisheries Service)에 신고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DNRFS에서 이런 주문을 낼 정도라면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DNRFS는 단순히 낚시 라이선스 제도만 운영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 주의 자연 환경 전체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자연환경 보전을 위한 수단으로서 낚시나 사냥의 라이선스 제도를 운영하는 곳입니다.
보통 5년마다 세밀한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규칙을 수립해나가기 때문에 좀 더 자료가 있을 것 같아서 뒤져 보았더니 2002년 메릴랜드 주의 조사에서는 Snakehead fish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 물고기가 발견되고 심각성이 지적된 것이 그리 오랜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가물치아목 가물치과에는 모두 2종의 물고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신문의 사진 속에 있는 가물치는 그 외모가 우리나라 가물치와는 어딘가 좀 달라보였습니다. 일부 보도에 northen snakehead fish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 서식하는 가물치종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물치는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일본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어종입니다. 일본에는 ‘가므루치’라는 물고기가 살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16년과 1923~1924년 무렵에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에서 가물치를 가져가 이식했습니다.
가므루치는 현재 혼슈, 규슈, 시코쿠 등의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고, 최근에는 홋카이도에서도 모습을 드러내 일본 어류학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에서 가물치는 강한 생존능력과 육식성 때문에 고유한 담수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 일본 학자들은 일본의 고유종이 상당수 서식하는 일본 최대의 담수호인 비와호에 가물치가 유입된 것을 매우 우려 하고 있습니다.
가므루치의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지 일본 학자들은 이를 장기간에 걸쳐 조사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그들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 뿐 아니라 많은 생물자원을 정밀조사하고, 일본에 없는 많은 동식물 자원을 가져간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물치는 우리나라에서 유용한 어자원입니다. 재래시장에 나가보면 가물치가 얼마나 많이 팔리는 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폭군(暴君)’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신문들은 Snakehead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유입 경로가 열대어마니아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관상용으로 들여왔다가 자연계로 유입됐다는 것이지요.
다 큰 가물치는 도저히 관상용으로 봐주기 어려운 외모를 자랑(?)하지만 새끼 가물치는 어떤 관상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몸에 꽃무늬가 있다고 해서 옛날엔 문어(紋魚)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물고기의 담(膽 쓸개)은 다 쓴 맛이 강한데 가물치만은 그렇지 않다며 예(禮)가 있는 물고기라고 쓴 이도 있습니다.
가물치는 물 속에 용존산소가 극히 적은 곳에서 견디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가물치의 아가미 속에는 상세기관이라는 호흡 보조기관이 있습니다. 공기호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물 밖에서 몇 시간 정도는 충분히 견딥니다. 미국의 가물치가 우리나라 것인지 아닌지는 좀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가물치 말고도 우리나라의 물고기가 미국으로 건너간 예는 더 있습니다.
바로 망둥이입니다. 우리나라 연안에만 사는 망둥이가 십 수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갑자기’ 나타나 미국 어류학자들을 당혹케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건너갔는지 경로도 밝혀졌습니다.
망둥이는 요금도 내지 않고 무역선을 탔습니다. 무역선을 탔다곤 하지만 수출품은 아닙니다. 대형 화물선들은 빈 배로 운항하거나 화물을 조금만 실었을 때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빈 공간에 물을 채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짐이 많을 때는 물론 이 물을 다시 뽑아내지요. 한국에서 물을 채울 때 빨려 들어갔다가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물을 뽑을 때 점잖게 출현한 것이지요.
호주의 진주담치가 배 밑바닥에 붙어서 우리나라로 건너와 홍합의 서식지를 강력하게 위협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고유의 홍합은 서식지를 호주에서 건너온 진주담치에게 거의 다 빼앗긴 상태입니다. 식당에서 먹는 홍합의 껍질 표면이 왠지 매끈하게 느껴진 적은 없으신지요. 우리나라 홍합은 표면이 울퉁불퉁해서 해초 등이 잘 붙어살고 대부분 거북손, 보말 등이 붙어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가물치는 한때 광어(넙치) 회를 대신해 팔리기도 했습니다. 겉모습이야 물론 완전히 다르고 각각 민물과 바다에 사는 놈이지만 회를 떠 놓고 보면 전문가도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합니다.
그걸 악용한 일부 업자들이 횟집에 가물치를 공급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의 일입니다. 양식비용 면에서 보면 이제는 가물치 양식에 훵씬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광어로 속여 파는 일이 사라졌습니다.
가물치의 몸에는 악구충(顎口蟲)이라는 기생충이 있어 회로 먹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장창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