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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중백운대 노송
암벽을 오르고 깊고 험한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 구봉을 바라보니, 산의 돌이 모두 기이하게
생겼다. 중봉의 바위굴을 지나 현암(懸庵)의 동남쪽으로 나와서 의상대에 오르니, 여기가 최
고의 정상이요, 그 북쪽은 사자암이다. 골짜기 입구에서 폭포를 지나 층벽을 따라 의상대에
오르기까지의 높이가 9천 장이다. 10월이어서 산은 깊고 골짜기는 음산한데, 아침 비가 지나
간 뒤에 시냇가 돌에 낀 푸른 이끼는 봄철 같고, 단풍잎은 마르지 않았다.(登臨碞壁。循絶壑
石上。望九峯皆山石奇處。從中峯石竇。出懸庵東南。登義相臺。最高爲絶頂。其北獅子庵。
從谷口過瀑布。緣崖上義相臺九千丈。十月山深谷陰。朝雨後溪石綠苔如春。楓葉不枯。)
――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 조선 후기의 문신), 「소요산기(逍遙山記)」에서
▶ 산행일시 : 2017년 3월 1일(수), 흐림, 안개
▶ 산행인원 : 5명(모닥불, 악수, 두루, 대포, 자유)
▶ 산행거리 : 도상 22.3km
▶ 산행시간 : 10시간 19분
▶ 교 통 편 : 전철,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7 : 30 - 전철 1호선 덕정역
07 : 48 - 회암령(檜岩嶺, 투바이고개), 산행시작
08 : 10 - 천보산(天寶山, 423m)
08 : 27 - Y자 해룡산 갈림길
08 : 39 - 도로가 지나는 ╋자 갈림길 안부
09 : 30 - 해룡산(海龍山, 660.7m)
09 : 57 - 오지재
10 : 31 - ┳자 능선, 대진대학교 갈림길
11 : 06 - 장기바위(674m)
11 : 27 - 왕방산(王方山, △736.3m)
12 : 33 ~ 13 : 10 - 국사봉(國師峰, 755m), 점심
13 : 44 - 새목고개(수위봉고개)
14 : 04 - 수위봉(首位峰, 656m)
15 : 35 - 철조망 구간 시작
16 : 30 - 소요산 주릉, 칼바위
16 : 41 - 상백운대(559m)
16 : 52 - 중백운대
17 : 20 - 자재암(自在庵)
18 : 05 - 먹자거리, 산행종료
1. 왕방산 정상에서
2. 소요산 의상대와 나한대(오른쪽)
▶ 천보산(天寶山, 423m), 해룡산(海龍山, 660.7m)
덕정역에서 회암령을 가는 버스(78번, 78-1번)가 있긴 하지만 그 운행간격이 뜸할뿐더러
거기까지 50분 넘게 걸린다. 정류장에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택시 탄다. 회암령 갑시다 하자
택시 기사님은 투바이고개요 하고 되묻는다. 지금도 회암령을 ‘투바이고개’라고 부르는 모양
이다. 투바이고개 남쪽에 있는 어하고개(御下--)를 ‘원바이고개’라고도 하는데 6.25 전쟁
때 미군이 전략상 필요에 의해 표시한 ‘1Y(원와이)가 변한 이름이라고 한다.
이에 비추어 투바이고개도 미군이 전략상 필요에 의해 표시한 ‘2Y(투와이)’가 변한 이름이
아닐까? 한국지명유래집에는 “한국전쟁 이후 군인들이 두 번째로 넓혀 뚫은 길이라 하여 투
바이고개라고도 부르고 있다”고 소개한다. 덕정 너른 벌판을 한참 지나 천보산맥 북쪽 자락
인 산굽이를 돌고 돌아 오르는 회암령이 준령이다.
이른 아침 회암령이 한가하다. 능선마루는 군사도로가 간다. 대기는 제법 쌀쌀하여 완만한
오르막에도 입김이 안개가 되어 눈앞을 가린다. 군데군데 전차 차고를 지난다. 날이 맑다면
천보산맥의 장릉과 덕정 건너 불끈 솟은 불곡산이 그림같이 보이련만 오늘은 답답하리만치
흐릿하다. 그러하니 잰걸음 하다 밧줄 달린 슬랩을 잠깐 오르면 경점인 천보산 정상이다. 조
그만 자연석의 정상 표지석은 예전 그대로다.
마사토 드러난 산길은 걷기 좋은 산책로다. 오른쪽에 해룡산이 준봉으로 다가오고 그리로
가는 갈림길이 여기일까 저기일까 두리번거리다 Y자 갈림길과 이정표를 만난다. 칠봉산을
갔다 오자고 하는 두루 님을 말린다. 해룡산 가는 길은 대로가 났다. MTB 길을 냈다. 한 피
치 길게 내리면 차도가 지나는 안부다. 임도도 해룡산을 안내하지만 우리는 능선 소로를
오른다.
느슨한 377m봉을 대깍 넘자 가파르고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쉬운 산이 있을까? 이때는 훈
훈한 봄날이다. 비지땀 쏟는다. 591m봉에 올라서 마시는 탁주 입산주가 밭은 입에 시원하
다. 이참에 아예 겉옷 벗어 반팔차림 한다. 팔뚝에 느끼는 찬 기운이 상쾌하다. 마치 사우나
에서 열탕에 나와 냉탕에 들어간 것처럼.
해룡산 정상 근처를 두른 철조망이 가까워지고 미리 왼쪽(북쪽) 사면을 크게 도는 등로가 났
다. 골로 갈 듯 뚝 떨어졌다가 다시 오른다. 예전에는 철조망에 바짝 붙어서 갔었다. 북쪽 사
면 등로는 빙판이다. 대단한 험로다. 더듬거리다 빙판 피하느라 생사면을 질러도 가보지만
미끄럽기는 마찬가지다. 해룡산 정상. 군부대 바로 아래 정상 표지석과 안내판이 있다.
“2000년 전 큰 홍수로 인하여 산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해룡산’이라 이름이 명해짐”,
“… 정상에는 ‘어수정’이라는 우물이 있어 이곳을 찾은 왕이 이 우물물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
다. 조선중기의 문인이자 시인, 서예가인 봉래 양사언이 이 산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봉래
양사언(鳳萊 楊士彦, 1517~1584)의 자취를 찾아보았다. 그의 시 「해룡산(海龍山)」이다.
언제나 용이 하늘에 오르려는고 何時龍不天
벌판 한가운데 굽이굽이 누웠네 蜿屈半郊田
한강이 날아오르고 漢水飛灰日
전원이 바다에 잠길 때인가 桑麻出海年
구름은 날아오르라 하고 舊雲徵羽翼
황야는 바람으로 불어오네 荒野老風姻
가물 때 쓰고자 하여 大旱獲佳兩
여기에 묶어 두었네 邦人富牲拴
3. 천보산 정상
4. 앞 너른 공터는 회암사지
5. 천보산맥
6. 해룡산 가는 길
7. 해룡산 정상에서, 자유 님
▶ 왕방산(王方山, △736.3m), 국사봉(國師峰, 755m)
해룡산에서 오지재 가는 길은 외길로 군부대 정문에서 나오는 임도다. 능선 길은 철조망이
막아 다가갈 수조차 없다. 콘크리트 포장한 임도 1.7km를 쭉쭉 내린다. 왕방산 장릉을 잔뜩
높이는 것이다. 오지재 고갯마루는 아담한 공원이다. 왕방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많은 차가
주차하였다. 파고라 벤치에서 잠시 휴식한다. 한방차와 커피 끓여 마신다.
왕방산도 북쪽 임도를 가다가 오를 수 있지만 우리는 주등로인 낙엽송 숲 계단을 오른다. 가
을날에 낙엽송 그 황금 비늘이 우수수 떨어지던 길이다. 가파른 오르막이다. 숨이 가쁘다 못
해 깔딱일 때쯤 능선마루에 이른다. ┳자 갈림길. 오른쪽은 대진대학교로 하산하는 길이다.
바윗길이 나오고 커다란 돌탑 1기가 있다. 오른쪽 노송 아래 암반은 경점인데 오늘은 막막하
다. 그 옆의 데크전망대에 올라도 마찬가지다.
그다지 심한 굴곡이 없는 등로다. 등로 주변의 열주 노송이 볼만하다. 일단의 등산객들(파주
수요산악회라고 한다)을 추월한다. 번번이 고맙게도 먼저 가시라고 양보한다. 오를 수 없는
암릉이 나오고 등로는 오른쪽 사면을 돌아간다. 장기바이일 것. 자유 님과 함께 슬랩 기어올
라 들른다. 노송 그늘 아래 널찍한 암반에 신선들이 장기(또는 바둑)를 두었음직하다.
헬기장 지나 억새풀숲 헤치면 왕방산 정상이다. 정상 표지석 둘러싼 파주 수요산악회의 왁자
한 모습이 보기에 좋다. 정상 표지석 옆에 있는 삼각점은 판독불가. 이 근처의 산들은 봉래
양사언의 나와바리였다. 그의 시 「왕방산(王方山)」이다.
맑은 샘 기이한 돌 가경이 아니랴만 靈泉異石非佳境
숲은 깊을 대로 깊어 낮에도 어두워라 蘿薜叢林晝亦迷
온갖 열매들 먹거리 넉넉하고 橡栗秖饒供草食
비, 안개 자욱하여 신선 세계로세 霾雲常起老虹霓
멧짐승들 총총히 뛰어 놀고 杉雞竹兔尋常見
낡은 절엔 스님이 두어 명 廢寺殘僧一二棲
책에나 나오는 이름 알려주는 이 없더니 圖籍愛名存告朔
쑥대 풀 우거진 곳에도 난초 있음을 알았네 始知蘭蕙間蒿萊
국사봉을 향한다. 왕방산 서릉을 내린다. 오르막길보다 더 어렵고 힘든 건 내리막길이다. 낙
엽 속에 흙먼지 속에 빙판이 숨어있어서다. 왕방산이 뿌리 드러나게 내린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깊이울저수지 2.7km다. 깊이울은 오리고기로 명자가 붙었다. 멀리서는 왕방산 바
로 곁이 국사봉으로 보였는데 착시였다. 멀다. 준봉 3좌를 넘어야 한다.
612m봉 넘어 국사봉 남릉을 오른다. 가파른 바윗길이다. 자유 님이 배고파 허기져서 물이라
도 먹고 가겠다고 뒤로 처진다. 자유 님에게 이런 때가 다 있다니. 그저 숨 할딱이며 기어오
른다. 국사봉 정상 바로 아래 헬기장이 변했다. 근접할 수 없도록 철조망을 엄중히 둘렀다.
국사봉 오를 때 그 튼튼하던 길이 갑자기 멘붕상태에 빠졌다.
인적 쫓아 철조망 왼쪽으로 돌다가 골짜기 넘기가 어려워 희미한 남서릉을 잡는다. 조그만
공터가 나오고 너나없이 털썩 주저앉고 만다. 점심밥 먹는다. 도시락만으로는 부족하다. 대
포 님이 라면 5개를 끓인다. 전례 없이 먹기에 바빠 퍽 조용한 점심시간이다. 식후 자유 님이
이번에는 배가 불러서 못가겠다고 한다.
박성태 님 「신 산경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한에 국사봉이 77개나 된다. 한자로는 구구
각색이다. 國師峰, 國史峰, 國事峰, 國士峰, 國祀峰, 國思峰, 國賜峰, 國寺峰, 國司峰 …. 이중
國師峰이 48개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다른 것들은 모두 한자의 오기가 아닌가 한다. 다만,
청계산의 국사봉(國思峰)만은 조견(趙狷)의 진정성을 믿어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8. 수위봉
9. 왕방산 가는 길
10. 국사봉
11. 멀리 오른쪽이 해룡산
12. 왕방산 정상에서, 두루 님과 모닥불 님
13. 왕방산 북쪽
14. 해룡산
15. 국사봉
▶ 수위봉(首位峰, 656m), 소요산(逍遙山, 상백운대 559m)
국사봉 남서릉을 내린다. 모처럼 오지를 간다. 간벌한 나뭇가지와 잡목 헤친다. 어쨌든 임도
로 내려 임도 따라 새목고개로 갈 요량이다. 혹 블라인드 코너일 암릉이 나올까 보아 살금살
금 살펴 내린다. 능선 마루금 절개지는 절벽일 것이라 미리 사면을 치고 내린다. 그랬다.
우리 내린 길이 유일하다. 임도는 MTB 길이기도 하다. 쉼터에는 자전거 거치대를 만들어 놓
았다.
새목고개 고갯마루 양쪽은 높다란 바위 절벽이다. 수위봉 가는 길은 고갯마루 오른쪽 가장자
리 억새 숲에 있다. 억새 숲 헤치고 잣나무 숲 통나무계단을 오른다. 잘 난 길이다. 쭉 뻗어
오른 길이다. 수위봉 정상에는 벤치가 놓여 있다. 정상의 흉물스런 철 구조물이 대체 무엇일
까? 철조망 안팎으로 둘러보았다. 광고탑(?)이다. 녹슨 백판인 채다.
수위봉. 이름의 유래가 어떠한지, 한자로는 어떻게 쓰는지 알 수가 없어 동두천시 공원관리
팀에게 전화 걸어 물었다. 요즈음 공무원들은 참 친절하다. 즉답하기 어려우면 알아보고 회
신해달라고 부탁했더니 2시간 후에 전화가 왔다. 이름의 유래는 『동두천시 30년사』를 포
함하여 여러 문헌을 찾았으나 알 도리가 없고, 한자는 ‘首位峰’이라고 한다.
수위봉 내리는 길도 오래도록 빙판이라 험하다. 하도 자주 넘어져 엉덩이가 내 엉덩이가 아
닐 지경이다. 길게 내린 안부는 임도와 만난다. 이제부터 걷기 좋은 길이다. 하늘 가린 숲속
한갓진 명상의 길이다. 숱한 봉봉 오르내리락은 파적하기 알맞다. 가까이서 포사격 훈련하는
소리가 섬뜩하다. 오늘이 3.1절인데 쉬지 않고 훈련인가 한 의문은 곧 풀렸다. 미군이다.
△414.5m봉 내리고 밧줄 달린 슬랩을 두 차례 오른다. 바윗길 오른쪽은 소총사격장 접근을
막는(Keep away) 철조망이 0.9km 이어진다. 비로소 소요산 의상대와 나한대가 눈에 잡히
지만 올망졸망한 봉우리에 가린다. 시원스런 전망처는 내내 없다. 473.3m봉에서 오래 휴식
한다. 배낭 털어 먹고 마신다. 밧줄 잡고 잠깐 내렸다가 두 피치 길게 오르면 소요산 주릉 칼
바위일 터이다.
16시 30분 칼바위. 어둑하다. 진눈깨비가 흩날린다. 아무래도 공주봉을 오르기는 무리다. 오
른쪽 상백운대, 중백운대, 하백운대로 돌아 하산하기로 한다. 줄달음한다. 까마득하게 깊은
절벽 위에 굳건히 버티고 있는 중백운대 노송은 올 때마다 명품이다. 하백운대에서 남쪽으로
방향 튼다. 전망바위에 들러 골 건너편 의상대, 나한대, 공주봉 그 실루엣을 본다.
자재암에 이르도록 길고 긴 데크계단 길을 내린다. 몇 번이나 쉬었다 내린다. 예전에는 밧줄
잡고 내린 슬랩이었다. 차라리 그때가 나았다. 무릎이 시큰하여 자재암이다. 우선 원효정(元
曉井) 한 바가지 약수로 목을 축인다. 원효정이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 1168~1241, 고려
시대 문신, 문인)가 읊은 그대로다.
산 따라 위험한 다리 건너 循山渡危橋
발을 포개며 좁은 길 걷네 疊足行線路
백 길이나 높은 산마루에 上有百仞巓
원효가 일찍이 절을 지었네 曉聖曾結宇
신령한 자취는 사라지고 靈蹤渺何處
초상만이 흰 비단 폭에 남았구나 遺影留鵝素
차 끓이던 샘에 찬물이 고여 茶泉貯寒玉
마셔보니 젖같이 맛있네 酌飮味如乳
이곳에 예전에 물이 없었기에 此地舊無水
중들이 머물러 살 수 없었는데 釋子難棲住
원효가 와서 거처하매 曉公一來寄
단물이 돌구멍에서 솟았네 甘液湧碞竇
겨울 끝자락 황혼의 자재암이 한층 고적하다. 독성암을 뒤로 하고 조용히 빠져나간다. 해탈
문 종 한번 흔들고 백팔계단을 내린다. 이어 속리교 건너고 일주문을 나서니 속세다. 비 뿌리
기 시작한다.
16. 소요산 나한대와 의상대
17. 소요산 가는 길의 마지막 안부
18. 소요산 칼바위를 향하여
19. 소요산 의상대
20. 소요산 칼바위
21. 소요산 의상대와 나한대
22. 소요산 의상대와 나한대
23. 맨 오른쪽이 공주봉
24. 소요산 나한대
25. 옥류폭포
26. 독성암(獨聖庵)
27. 원효굴 앞 암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