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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토) 이 겨울철 기왕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춥다는 철원의 추위를 만끽하기 위해 새벽길을 나서다.
당초 고양들메길의 수호천사, 해모수, 조선팔도님, 그리고 훈장, 이렇게 네 명이 가기로 했으나 해모수님과 수호천사님은 각자의 사정이 생겨 빠지고 뜻하지 않게 팔도님과 단 둘이 짝꿍 되다.ㅎㅎ
새벽 5시에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하고 6시 47분 덕양구청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니 조선팔도님 이렇게 눈에 쌍 라이트 켜고 미리 나와 기다리신다.^^
잠시 후 의정부 터미널 가는 3700번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 의정부로 향하는 중. 현재 시간 오전 7시 18분
오전 8시 5분 의정부 터미널에 도착. 철원 와수리행 버스가 8시 20분에 있는 줄 알았더니 8시 35분으로 변경되었더라는. 그래서 기다리기 보다는 철원 동송행 버스를 타고 운천에 가서 와수리행 먼저 오는 차로 갈아 탈 생각으로 8시 10분 버스에 오름.
1시간 15분 걸려 9시 25분 포천의 운천 터미널 도착. 와수리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런 젠장, 결국은 의정부에서 8시 35분 출발한 버스를 타게 되어 시간 절약 계획은 무산됨.^^
오전 10시 15분 철원군 지경리에 내리다. 의정부 출발한 지 2시간 경과. 이 곳 편의점에서 간단한 필요 물품을 사고는 8시 20분부터 오늘의 걷기 시작. 그런데 눈이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로는 오늘 오후 늦게 부터 내린다 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날씨는 생각보다 포근하다. 사실 철원의 매서운 겨울추위를 기대하고 왔는데.
멸북통일이라는 구호가 적힌 전시에 도로를 차단, 적의 진행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구조물이 전방지역임을 실감케 한다.
겨울나무, 꽃피는 봄날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마치 깊은 겨울잠에 빠진 듯한 자그마한 전방 마을의 겨울 풍경에 마음이 포근해진다.
작은 저수지도 꽁꽁 얼어붙고. 철원의 겨울은 10월말에서부터 시작 이듬해 4월초까지이니 대략 5, 6개월. 그야말로 겨울공화국이 따로 없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쌓여 산길엔 눈이 제법 두툼하다. 그 위에 다시 눈이 내리고.
마을을 지나는 길에 온통 눈. 본격적으로 눈이 내린다.
눈을 피하기 위해 씌운 경운기 위의 비닐.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만난 풍경
다시 큰 길로 나와 걷는데 차가 다니는 이 길에도 제법 눈이 쌓여간다. 도로변에 있는 가게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전통 한과마을인 연동마을. 이 곳을 지날 때 마다 참 정겨운 느낌.
마을을 지켜주는 장승. 그런데 대장군 모습이나 여장군 모습이나 비슷한 듯. 여장군은 좀 예쁘게 만들잖고.ㅎㅎ
청양 초등학교. 방학을 해서 텅 빈 모습. 여기를 지나며 나도 저런 시골학교에서 선생님 하고 있음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잠시.
한탄강의 상류인 남대천은 군데군데 얼어붙고 철새들만이 한가하게 노닐고 적막에 빠져 있다. 쓸쓸한 겨울강의 모습에 내 마음이 휑해진다.
11시 25분, 걷기 시작한 지 1시간 경과. 남대천 강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막걸리 한 잔.
다시 걷기를 시작, 오늘의 주된 걷기 코스인 임도로 접어드는 청양리 마을 입구에 도착. 지금 시간 12시, 점심은 임도 정상에서 먹기로 한다.
이 추운 겨울에 춥지도 않은지 귀여운 강아지가 눈밭에 앉아 있다. 하기사 예전엔 다 저리 길렀었지. 그래도 내 마음은 안쓰럽다.
청양리 이 곳은 사격장 마을. 군 시절 이 곳에서 종종 사격도 했는데 이젠 옛날 이야기.
눈 내리는 모습을 보며 젖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 우리처럼 지난 추억을 반추하는 건 아닌지.
눈발이 점점 거세지며 새로 내린 눈이 도로에 제법 쌓인다.
길은 미끄럽지만 평지라 아직까진 아이젠 없이 걷는 중
12시 36분 드디어 임도 입구에 도착, 이 곳부터 정상까지는 오르막길로 약 3, 40분 소요. 아이젠 없이 가볼까 했지만 몇 발자욱 못가서 결국 아이젠 착용
오르막 임도에서 팔도님. 오늘 이 코스에 걷고 있는 자는 분명 우리 두 사람 뿐. 눈 내리는 가운데 호젓함과 적막감을 동시에 누리는 중.
내린 눈 위론 도처에 동물들의 발자욱 어지럽다. 멧돼지 가족이 지나간 것도 같고 아님 고라니일까?
정상을 향해 올라가며 우리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본다. 오르는 중엔 무척이나 힘들어도 위에서 쳐다 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우리네 인생도 거리를 두고 보면 그런 거 아닌가?
이 곳에도 도로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다.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리고 길 위엔 사람들 발자욱은 없이 먹이를 찾아 나선 동물들 발자욱만이 가득하다.
눈이 깊어지니 점점 걷기가 힘들어진다. 눈길에서 걷기는 미끄럼 땜에 다리에 힘이 가서 평소보다 두 배 이상 힘든 듯.
오후 1시 11분 드디어 임도 정상 도착. 임도 입구에서 35분 소요.
이 곳에서 눈을 피해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하다. 다행히 날씨가 그리 춥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아 버너 없이도 식사 가능. 오늘 서로 짝꿍이 된 우리 두 사람은 점심식사 하며 평소 못했던 얘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서로를 알기에 참 좋은 시간 아니었나 싶다.
한 30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1시 40분 정도부터 본격적인 임도걷기를 다시 시작했는데 눈이 와도 너무 많이 온다. 게다가 이 곳은 눈이 한번 오면 녹질 않는 탓에 발목까지 차는 눈으로 걷기가 참 많이 힘들다. 여기서 임도 끝나는 곳까지 14km를 걸어야 내리막길인데.
사람의 발자욱은 찾아볼 수 없이 온통 동물들 발자욱. 눈발은 점점 걷세지고 걷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풍경. 참 아름답다.
시간은 벌써 오후 3시, 점심식사 후 약 1시간 30분 경과. 가야할 길은 아직도 먼데 쌓인 눈으로 걷기는 느리고 점점 힘들어진다. 이러다 힘이 빠져 하산 전 해가 지면 큰 일. 그래서 이쯤에서 용단을 내린다. 아쉽지만 안전을 위해 끝까지 가는 걸 포기하고 중도 하산하기로. 보통의 경우에 모르는 산길은 계곡으로 내려가는 것이 원칙이나 오늘같이 눈이 많이 내릴 땐 계곡은 미끄러워 위험하니 능선을 따라 가기로 한다. 그 것도 스패치까지 착용하고 동물들의 발자욱을 따라.
제대로 잘 내려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서도 바라본 풍경은 그야말로 雪國이 따로 없다. 이 와중에도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한 일본작가 야스나리가 쓴 소설 雪國이 잠시 생각나더라는.ㅎㅎ
중간중간 우리가 내려가는 길이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임도로 가기 위해 걸었던 큰 길을 다시 만났다. 그런데 어데서 나타났는지 큰 개가 우리를 보고 마구 짖더라는. 잠시 후 저 뒷편에 불을 피우던 아저씨가 우리 앞으로 와 어데서 왔냐냐 물어 고양시에서 왔다니 깜짝 놀래며 고맙게도 잠시 집에 들어와 커피 한 잔 하며 몸좀 녹이고 가라고 그러신다.
산속 오막살이 같은 그 집에 들어가기 전 팔도님
나와 동갑인 아줌마 그러니 아저씨는 아마도 50 후반이나 60 초반 아닐까 싶은데 자식들은 의정부에 살고 두 내외가 이 곳에서 단 둘이 살고 계시다고. 생계는 어떻게 하냐니 메주를 담가 파는데 6, 7년된 오랜 된장맛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 이 곳까지 찾아와 사간다고.
따듯한 커피와 귤까지 내주시는 두 분과 장작불이 타는 벽난로가에서 이런 저런 정담을 나누다 보니 몸과 마음이 훈훈해진다. 눈오는 날의 호사가 아닐 수 없다.^^
오두막집에서 잠시 쉬고는 다시 걷기 시작. 눈이 많이 쌓여 아까 걸어오던 그 길 같지 않더라는.
나뭇가지에도 눈이 쌓여 마치 영화 속 한 장면같은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
시골집 담장과 개나리 나무 가지에 내려 앉은 눈이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 솜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눈이 쌓인 오래된 돌 담장집은 마치 연하장 그림같고
오늘의 철원 걷기 계획 중 하나가 와수리 장터에 있는 평남면옥의 꿩냉면을 먹는 것. 청아리 마을을 나와 와수리 가는 큰 길로 나오니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논과 밭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눈이 수북하여 온통 눈세상. 버스나 다니려나 하며 와수리까지 걸어가려 하는데 다행히 눈밭을 헤치고 버스가 와서 올라 탄다. 이 때 시간 오후 5시.
10여분 걸려 5시 10분 와수리 도착. 철원 와수리는 전형적인 전방 小시가지인데 면소재지인 이 곳은 술집, 다방, 음식점, 숙박업소 등 군인과 면회객을 위한 시설로 가득해 그야말로 휘황찬란. 그래서 예전부터 이 곳을 전방의 '와수베가스' 라고 부른다.
와수리 시장내 있는 평남면옥. 철원은 한국전쟁 전엔 북한지역이었고 전쟁 후 남한지역이 된 곳. 내가 군생활 시절 입맛이 없는 여름엔 종종 이 곳에 와서 냉면을 먹곤 했는데 그 당시엔 철원이 고향인 이 집 시어머니가 주인장, 지금은 며느리가 대를 잇고 있다. 개운하고 깔끔한 육수맛의 꿩냉면과 이북식 아바이 순대로 유명한 집. 서울서도 찾는 이가 적지 않다.
6시 의정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시간이 그리 넉넉치 않다. 조선팔도님과 나는 꿩냉면에 아바이 순대를 시켜 오늘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소주 각 1병.ㅎㅎ
당초 한파 속에 추위로 유명한 철원에서 '以寒治寒' 맹추위를 즐기고자 했으나 기대했던 추위는 그에 못미쳤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풍성한 눈을 대신 선물로 받아 온종일 雪國에서 눈밭걷기와 더불어 하루를 만끽했다.
많은 눈이 내리는 가운데 아무도 없는 길을 단 두사람이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무사히 마무리 하자니 오늘 하루가 마치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아마도 술 기운 탓일까?
암튼 오늘 무리하지 않고 임도 중간에서 하산을 한 건 잘 한 거 같다. 그래도 오늘 걸은 길이 족히 20km 되는 거리.
눈이 많이 내려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 혹은 길이 많이 밀리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평소와 같이 원활한 소통으로 저녁 9시쯤 집에 도착하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담그니 그제사 긴장이 풀리고 몸이 녹아 기분 좋을 정도의 노곤함이 밀려온다.
온종일 눈이 내리는 가운데 걷기와 함께 철원에서 보낸 하루가 마치 꿈인양 아득하다.
첫댓글
고..어제 서울에도 눈이 에법 내려..밤 중 귀가길 택시도 없고 고생들 했다는데..
산행 제대로 하셨군요.
덕분인가봐요



고양들메팀에도 수호천사가 있넹.
조선팔도님과 눈
송년회 때 보니 피부가 장난 아니게 좋아졌던데..산행으로 흘린
나두 주말에 저리 따라갈 수 있음 을매나 좋을까
근데 한 1년 산을 안 올라선지..요즘은 쫌만 걸어도 다리에 힘이 빠지는 걸 느껴..아랫동네서 워밍업 몇번 해야 민폐 안 끼칠 거 같다는..
헤
산행약속한 적이 없는뎅
했다는
그야말로 눈 세상에서 하루를
긴 날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violet님과 함께 산행한 지가 정말 오래되었네요. 산행이나 걷기도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한번 느슨해지면 점점 하기 싫어지지요. 그리고 이제는 험한 산 보다는 적당한 기복이 있는 야산 정도 걷는 게 좋고요. 새해엔 조금씩 걷기를 늘려서 건강 다지시길 빕니다. 도가니가 성해야 잘 놀 수 있으니께. 그리고 수호천사님 고양시 수호천사님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쭈욱
훑어보니..감성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글과 사진이 많습니당

..


아셨죠

..
호젓한 산행은 참 많은걸 주네요
혹여 눈이 넘 많이옴..산행조심 하셔요
겨울이 길어도 사실 1년에 눈산행은 한, 두 번이 고작이지요. 모처럼 나선 철원에서 풍성한 눈과 함께 호젓함과 적막감 만끽하고 따듯한 벽난로에 커피까지 대접받아 정말 훈훈한 하루 되었답니다.
을지로 평래옥이랑 와수리 평남면옥이랑 랭면이 오데가 더 맛있습네까? 아무래도 평래옥이갔지요? ㅎㅎ
No
전 단연코 평남면옥의 꿩냉면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평래옥은 서울사람 입맛에 맞춰 소육수와 꿩육수를 반반 섞지만 이 집 꿩냉면의 육수는 정말 개운하고 깔끔한 맛이 
.
저 전방의 광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비슷한 동네에서 낳고 자라서요..
어디가서 이런 전방과 시골의 문화가 혼합된 정취를 느낄 수 있겠어요.
아마도 통일이 되면 이런 모습도 변하 겠지요.
저는 이런 소도시가 주는 풍경에 오만가지 추억어린 감상을 하게 된답니다.
참 귀경 자알 했습니다.
하마님 그러시군요. 전방 소도시의 모습, 크게는 30년 전과 별로 다르진 않지만 그 곳에도 롯데리아나 파리 바겟같은 곳이 들어와 있더라구요. 예전 모습이 더 정감 있었는데 말이지요. 저도 군시절이 생각나 종종 철원을 찾게 되는군요. 그 때는 제대하면 쳐다보지도 않을 거 같더니만.^^
엄동설한에
대단하십니다...
그것이
겨울 산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에
이냉치냉.
냉면까지
드시고 오셨으니...
저도
몇일 전,
아내와
아이젠 차고
구곡폭포 지나
문배마을에 가서
산채 비빔밥을
먹고 왔는데...
추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많이
다녀봐도
강원도 만큼
좋은 곳은 없지요.
간만에
낯익은 거리가
정겹게 느껴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구곡폭포와 문배마을 가는 길도 이 겨울철 참 좋은 코스이지요. 그 것도 아내분과 함께 가셨으니 얼마나 좋으셨을까요
추울 수록 겨울산행의 묘미도 배가하니 두 분의 마음은 추위에 아랑곳 없이 훈훈해지셨을 듯.
훈장님! 마치 함께 하는 산행마냥 상세한 가이드 여정으로 좋은 구경 했습니다
블루버드님 지난 시절 추억을 벗
아 함박눈과 함께 철원에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답니다. 노부부가 끓여주시는 따듯한 커피 한 잔에 추위가 사르르 녹고 마음은 따듯해졌고요.
한국의 아름다운 정경과 시골 인심을 그대로 보여주셨고 내려와서 냉면에 소주한잔... 정말 구경 너무 잘했습니다. 담에 한국 가면 꼭 훈장님 등반에 한번 참여하고 싶습니다. 꼭 그리 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