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영천의 시골에서 늙은 호박을 얻어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에도
겉이 여물고 단단하여 상하지 않고 잘 보관되었습니다.
오래 보관할 수 없어
늙은 호박죽을 끊이기 위해 손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집에 있는 감자칼로 호박 껍질을 벗겨 보았으나
커다란 호박 껍질을 다 벗길려면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 다이소에 들러
집에 있는 것과는 다른 모양의 좁고 긴 감자칼을 구매하였습니다.
다이소에는
생활 용품 가운데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가장 저렴한 것은 천원이요,
가장 비싼 것은 오천원이었습니다.
서민들의 생활 용품 천국인 다이소는
할인코너 처럼 언제나 사람들로 넘쳤습니다.
다이소의 저렴한 아이디어는
성공신화의 걸작이 되었습니다.
새로 구입한 감자칼은
늙은 호박의 골진 부분의 껍질을 쉽게 벗길 수 있었습니다.
새로 구입한 감자칼 덕분에
채 5분도 안되어 커다란 늙은 호박 껍질을 다 벗겼습니다.
껍질 벗겨진 늙은 호박을 보며
호박전과 호박죽의 감칠 맛이 감돌았습니다.
호박을 잘라 씨와 속을 파내고
적당하게 잘랐습니다.
커다란 호박 하나 일 뿐인데
찜통에 가득 넘쳤습니다.
그래서 반을 나누어 호박전을 붙여먹기 위해
얇게 채를 썰었습니다.
이윽고 저녁이 되어
호박전을 붙이고 호박죽을 끊여 먹었습니다.
호.박.전.....
어린 시절 간식으로 자주 먹었던 어머니의 호박전 그대로의 맛이 느껴졌습니다.
어머니의 호박전과 호박죽은
친환경 자연의 밥상, 그 자체였습니다.
고향의 향수가 묻어나는 호박전과 호박죽은
지붕 위의 호박을 사진 찍는 목가적 출사의 서정을 낳았습니다.
언젠가 가을이 무르익을 때.....
다산의 시골집을 찾아 다니며 지붕 위의 호박을 사진 찍고
추수감사절 영상으로 올렸습니다.
늙은 호박은 목가적인 향수를 느끼게 하는
서정어린 마음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옛날이 되었지만
우리 박 집사님과 가창의 유명한 호박전을 수 년 동안 자주 먹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우리 박 집사님은 보이지 않아도 보는 듯하고
멀리 있어도 항상 곁에 있는 듯한 삶의 감동을 고향의 정서로 느끼게 하는 사역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잠시 삶의 무게로 떠나 있지만
항상 보기를 원하고 기도에 살아 있어 로마 교인들을 만나기 원하는
바울의 그리운 성도 사랑으로 가득하기만 합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늙은 호박죽을 고향의 맛으로 좋아해서
우리 박 집사님과 함께 앞산의 마이하우스 호박죽을 자주 먹었습니다.
죽집 전문집도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하지 못하였는데
마이하우스의 호박죽은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느끼게 하였습니다.
문득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는
김연대 시인의 "호박꽃"이 생각납니다.
호박꽃
마당가에 심은 호박넝쿨이
하루 한 두 뼘씩 새순을 뻗어
어머니의 허한 하루를 내일로 끌고 간다
때로 기운이 조금 나시면
어머니는 마당으로 내려와
한 대야 물을 호박뿌리에다 갖다 붓고는
세상을 한 바퀴 돌고 온 만큼이나
숨이 차시다
그래도 친구 만나고 오는 얼굴이시다
모두가 배고프던 시절에도
호박헛꽃만은 당신만의 것
결실 없는 꽃이라고
당신 혼자만 잡수시던 꽃
그 꽃이 가슴에 지고 가슴에 져서
일흔 여덟 어머니 가슴이 저리 허한가
호박헛꽃 꺾어 밥 위에 찌던
그 젊은 여름날의 꿈이
아직도 어머니 가슴에는 남아 있는건가
기진한 어머니의 허한 하루를
호박순이 저 혼자 내일로 끌고 간다.
언젠가 우리 박 집사님과 함께
시인을 찾아서 길안 대곡리의 오지를 찾았습니다.
길안 대곡리는 안동과 청송의 경계지점으로
임하땜 끝자락에 위치한 오지 중의 오지 마을입니다.
지금도 김연대 시인을 만났던 감격이
아주 생생하기만 합니다.
김연대 시인은 고향을 떠나 세 번의 가출 후 사무기기를 판매하는 사업가로 성공하고
50대의 늦깍이로 등단하여 "꿈의 가출', "꿈의 해후", "꿈의 회향" 등 시집을 출간하였습니다.
시인을 찾았을 때는 60대 후반으로 거동이 불편하였으나
온화하고 다정한 시인의 풍채가 신선처럼 느껴졌습니다.
낮에는 텃밭을 일구고 .....
밤 늦은 시간까지 글을 쓰며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집 안은 구석구석 글향으로 가득한 시인의 정서로 넘쳤고....
집 밖은 폐교 위에 기와집을 지어 운동장이었던 넓은 텃밭을 가꾸었습니다.
텃밭에는
온갖 종류의 자연산 약초와 식물로 가득하였습니다.
김연대 시인과의 만남은
오랫동안 한적한 시골에서 텃밭 일구며 복음의 글을 쓰는 목가적 이상을 갖게 하였습니다.
아직도 살아 계신지 알 수 없으나
시간을 내어 다시 찾고 싶은 감동을 남겼습니다.
청둥호박이라는 늙은 호박 하나로
옛 고을 향토적 서정과 오랜 사역의 기둥인 우리 박 집사님과 김연대 시인을 그리운 정으로 떠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