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전에 제가 자주 사용했던 예화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여자가 너무 더워서 이런 저런 행동을 했다고 해 봅시다. 손으로 부채질도 하고, 이마엔 송글송글 땀도 맺혔습니다. 그런데 추위를 많이 타는 또 다른 여자가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덥고 싶어서' 그 행동을 따라합니다. 부채질도 해보고 이마에 물도 뿌려 봅니다. 결과는? 더 추워지겠죠.
가끔은 성경을 읽으면서 바리새인들은 왜 저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 그러한 모습이 내 안에도 있지 않나 생각도 해 보고 말입니다.
마음의 변화가 겉으로 드러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 과정 또한 매우 더디게 진행됩니다. 게다가 타인의 마음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란, 정말 도박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지요. 결국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기다리는 것 보다는 교회로 끌고 가서 등록을 시키는 편이 더 쉽고 마음이 편하니까 그쪽을 택하는 것 아닐까요?
내 마음의 변화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함께 한다면 훨씬 속도가 빨라지고 쉬워지긴 해도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서서히 진행됩니다. 또한 (겉으로 보여지기 위한 말씀묵상과 기도가 아닌) 마음을 열고 내 마음에 심기 위한 말씀 묵상과 기도가 요구됩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을 성령님께서 주관하십니다.
마음이 변하는 것의 열쇠는 성령님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고후 3:18).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런데 변하고 싶다고 마음먹고, 묵상과 기도를 하는 등 우리가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경계가 불분명한 이 "아름다운 협력"이 신앙생활의 비밀이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자유의지가 매우 중요한 이유입니다.
예전에 저 역시 지금 제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글을 읽으면서 도대체 내면의 변화는 어떻게 추구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가 신앙의 성장 과정 중에 어디에 있던지 놀라운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빌 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온전히 이룬 자들’이란 3장의 전체 문맥을 따라 살펴볼 때, 마음의 동기가 순수하고 주께서 그분의 뜻을 보여주시면 그렇게 하겠다는 결단이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즉,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렇게 나의 동기가 순수하다면 내가 지금 잘못 가고 있더라도 또는 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하더라도 우리 각자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알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기 때문에 과거 내면의 변화를 도대체 어떻게 추구하는 것인지 몰라서 애태우던 저 자신에게 지금의 제가 조언할 수만 있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 자신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계속적으로 묵상하고 의지해라. 하나님께서 너를 얼마나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지, 그것을 알고 그 안에서 안식해라. 그러면 내면의 변화와 신앙의 성장은 결과적으로 따라 올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를 사랑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이제는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