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선영 씨가 전화를 건다.
지난 3일간의 여행 중에도 몇 차례 전화가 왔었다.
어디에 있는지, 언제 돌아오는 것인지를 궁금해했다.
오늘도 선영 씨는 비슷한 질문을 한다.
“언제 와요?”
“점심 먹고 가려고요.”
“오늘 뭐해요?”
“오늘은 선영 씨 집에서 같이 감사 인사 의논하고 여행 계획도 세워볼까요?”
“예.”
선영 씨는 하루의 계획을 분명하게 세우고 실천한다.
다음엔 무엇을 할지 미리미리 생각하고 준비한다.
덕분에 선영 씨와 의논을 시작하는 일이 편하다.
집에 도착하니 세 자매가 모여 있었다.
지순 씨가 거실에 책상을 펴주었다.
따로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지순 씨와 주현 씨도 자리에 앉는다.
마침 이번 주 여행 계획을 세워야 해서 함께 의논하자고 부탁했다.
원래는 계곡에 놀러 가기로 했었다.
선영 씨가 계곡 가서 물장난칠 생각에 잔뜩 신이 났었다.
“수경 선생님이 선영 씨 빠뜨릴 거라는데요?”
이 말의 여운이 오랫동안 남았다.
주현 씨와 선영 씨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물에 빠뜨릴 거라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수경 쌤 빠뜨려야겠다.”
“수경 쌤이 널 빠뜨릴 것 같은데.”
물놀이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비가 많이 와서 계곡에 가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선영 씨는 아쉬워하면서도 곧바로 다른 목적지를 이야기했다.
“대구 가요.”
“대구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순 씨가 핸드폰 화면을 켠다.
지순 씨가 대구 여행하며 기억에 남는 장소를 이야기해주었다.
대구 김광석 거리.
지난번에 찻집 별들의 고향에서 김광석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주현 씨가 춤을 추고 선영 씨가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지순 씨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 노래에 집중했다.
그러더니 유튜브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틀고 고요히 감상했다.
“지순 씨, 지순 씨가 예전에 대구 여행해본 적 있으시니깐 선영 씨에게 가 볼 만한 곳 추천해주세요.”
지순 씨의 관심은 김광석 거리에 머문다.
이곳에 또다시 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김광석 거리에 가면 음악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근처에 있는 맛집도 알려주었다.
선영 씨와는 ‘대구 가 볼 만한 곳’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다.
선영 씨가 검색어를 입력할 수 있게 도왔다.
영상에서는 총 여덟 가지의 대구 명소를 보여주었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여긴 뭐에요?”하며 묻는다.
차근차근 설명하니 선영 씨가 다 좋다고 한다.
우선 종이에 목록을 적어놓고 이 중에 한두 가지를 골라 보기로 했다.
주현 씨는 놀이동산을 찾아보다가 어느새 동물원으로 마음이 정해졌다.
‘대구 동물’ ‘대구 동물원’ ‘대구 동물 카페’ 등을 열심히 검색했다.
동물이 나온 사진을 보며 활짝 웃었다.
동물원은 선영 씨도 가고 싶어 하던 곳이라 대구 네이처파크에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선영 씨는 가서 무엇을 먹을지 궁리했다.
세 자매의 취향이 확실하다.
음악, 동물, 그리고 음식.
내가 떠난 후에 김수경 선생님과 의논을 지속해서 돈가스집에 가기로 했다고 한다.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니 여행 일정 정하는 게 오히려 순조로웠던 것 같다.
대구까지 가는 길은 김수경 선생님과 세 자매가 함께 의논해서 정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고, 오전 10시 30분 차편을 예매했다고 한다.
지순 씨는 곧장 사장님께 연락드려 하루 휴가를 낼 수 있겠냐고 여쭤보았다 했다.
선영 씨와는 따로 감사 인사 의논도 했다.
먼저 어떻게 우리의 감사를 표현하면 좋을지 물었다.
선영 씨가 조금 생각하더니 말했다.
“편지.”
“편지 좋네요. 편지랑 같이 조그만 선물도 같이 드리면 어때요?”
“괜찮아요.”
이어서 어떤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은지 물었다.
“선영 씨, 우리가 구직하는 데 도움 주신 분들이 많잖아요. 어떤 분들에게 감사 인사 전하고 싶으세요?”
“신장로님.”
“역시 선영 씨한테는 신 장로님이 최고죠. 다른 분은요?”
“아빠.”
선영 씨 아버지는 구직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시진 않았다.
그런데도 선영 씨는 아버지께 꼭 감사를 전하려 했다.
선영 씨 마음에는 항상 아버지가 맴돌고 있는 것 같다.
구직의 시작도 구직의 끝도 아버지라니.
아버지를 생각하는 선영 씨 마음은 어떤 것일까.
어쩌면 선영 씨는 아버지야말로 구직에 가장 큰 힘이었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아버지에게 신발 하나 선물하고 싶어 험난한 구직을 시작했으니깐,
지루하고 괴로울지 모를 시간을 그 이유 하나로 버텨왔을 테니깐.
“또 다른 분은요?”
“수경쌤.”
“우리 그러면 수경 선생님한테는 비밀로 하고 몰래 편지 써서 전달하면 어때요?”
선영 씨가 헤벌쭉 웃으며 그러자고 한다.
물론 비밀은 지켜지지 못했다.
김수경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선생님한테도 편지 써도 돼요?”하고 물었다 한다.
하여간, 선영 씨는 비밀이 없는 사람이다.
선영 씨가 말하진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감사한 분들도 이야기했다.
구직 다니며 우리를 친절히 맞아준 가게 목록을 읽었다.
힐링헤어톡 원장님, 영양사 선생님, 아날 카페, 시크 헤어, 미자 카페, 희 헤어, 까꼬뽀꼬, 여우야여우야, 홍콩다방, 몬나니네 사장님들께 감사를 전하면 좋겠다고 했다.
선영 씨가 모두 괜찮다고 했다.
지우는 강자경 아주머니와 좀 더 구체적으로 감사를 의논했다고 한다.
일지를 읽으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감사했는지 복기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강자경 아주머니가 이웃에 대한 감사를 상기할 수 있었을테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일에 마음을 더 쏟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저 명단만 읊을 게 아니라 구체적 이야기로서 감사를 정리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내일 선영 씨가 자주 들르는 문구점에서 편지지를 구매하고, 카페에서 같이 편지 쓰기로 했다.
선영 씨는 가장 중요한 걸 놓쳤다는 듯 묻는다.
“내일 뭐 먹어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피자.”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밥은 먹고 하자는 말인 것 같다.
피자 먹을 생각에 벌써 군침이 돈다.
2022년 8월 1일 월요일, 전채훈
첫댓글 감사 인사 드릴 분들이 많네요. 구직에 도움을 준 둘레분들 뿐만 아니라 친절히 맞아준 매장 사장님들께도 다시 방문해서 인사 드린다니 고맙습니다. 더운 여름날 구직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풀 수 있게 여행 제안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영 씨가 내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편지 받을 사람 생각하며 편지지와 봉투를 고르고, 한 자 한 자 빈칸을 채우겠죠. 온전히 선영 씨의 느낌과 감성이 담긴 편지라 감동했습니다. 저녁 나눔때 직접 손으로 적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죠. 이력서를 또 다른 의미의 편지라고 했던 신은혜 선생님의 말이 기억납니다. 내일 대구 여행 잘 다녀오세요~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오길 바랍니다. ^^
대구 여행이 이렇게 시작되었군요. 갑작스런 여행지 변경에도 여행지를 차는 모습이 또래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순 씨의 취향과 선곡에 놀랐습니다.
감사 인사 드릴 곳이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밥과 김치만 먹다 피자라니. 간만의 만찬입니다. 군침이 돌만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