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댁이 휠체어를 밀고 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노모의 얼굴이 복사꽃 피어나는 봄날처럼 화사하다. 저 편안하고 예쁜 모습은 아마도 사랑받고 있다는 자부심에 더하여 지극정성으로 지어드리는 조석의 힘이지 싶다.
손아래 올케가 되는 동생댁은 마음이 푼푼하다. 구순이 다되어가는 내 엄마를 모시고 공기 좋은 청정지역 강원도로 거처를 옮겨 온지 벌써 몇 해이던가, 텃밭을 일구며 시모媤母에게 간호사역할이며 친구이고 때로는 엄마처럼 다독여 주는 일인다역의 하루가 고달플 텐데 입가에 늘 미소를 머금고 있다. 사실 서울에서 강원도로 훌쩍 떠나오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엄마는 낙상사고로 고관절이 부러지셨고 수술결과도 그리 좋지만은 않은 터 우리형제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서로 모셔갈 입장도 못되면서 너무 먼 곳으로 떠나보내는 것은 왠지 탐탁지 않아 동생내외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다. 엄마는 아들내외가 당신만을 위하여 생업을 정리하고 강원도로 이주한다는 자체가 감동스러운지 흔쾌히 허락하신 터다.
강원도의 산은 울울창창하다. 산 능선을 타고 흘러가는 구름은 어쩌면 황혼의 쓸쓸한 감성을 더 부추기기도 한다. 늦가을이 급히 지나가고 엄마를 맞은 강원도의 첫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휠체어를 의지하는 엄마는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눈 쌓인 하얀 풍경에 소녀처럼 달뜨신다. 노래도 흥얼거리시고 책도 읽으시면서 그동안 육남매를 키워내느라 지난한 삶이었다면 심지가 다 꺼져가는 지금에야 엄마인생 중 최대여유를 즐기시는 것이다.
엄마를 모시는 동생은 엄마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어릴 적 녹내장을 앓고 시각장애자가 되었다. 머리도 뛰어나게 영민하고 성품도 넉넉한 인성과 지식을 겸비하기까지 많은 아픔을 통과한 세월인즉 엄마의 정성어린 기도의 덕으로 단단한 밑받침이 되었을 것이다. 하여 좋은 배필을 만나 서로존경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좋은 부부의 인연을 맺은 거 같다.
시모媤母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올케는 시집올 때만해도 좀 예뻤다. 잘록한 개미허리에 목소리도 나긋하더니 강산이 서너 번 바뀌고 지천명을 넘기고서는 허리둘레가 두리둥실 하니, 어째 목소리도 컬컬한 듯 펑퍼짐한 몸매는 완전 종갓집 맏며느리다. 허지만 어떠랴 올케와 엄마는 강원도에서 모녀처럼 잘 살고 있으니 각별한 효심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어디에서나 정을 잘 붙이는 올케는 그 동네부녀회에서도 일 잘하는 동생댁으로 통한다. 처음엔 서울서 왔다고 좀 거리를 두는 것 같더니 수더분한 성격에 시어머니까지 잘 모시는걸 보면서 동네 아낙들이 급 친절하게 다가온 것 같다. 여기저기 밭뙈기를 이룬 강원도는 동네가옥家屋도 드문드문 있다, 자녀들 또한 객지로 떠나고 홀로 남은 독거노인이 더러 계신모양이다. 노인들을 찾아뵙고 도울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드리는 올케는 일복을 많이 타고났지만 천성고운 여자다, 시각장애를 가진 남편만 내조하기도 힘들 텐데 늘 여유 있는 행동에 미소까지 잃지 않는 여신이라 해도 과분한 칭찬이 아닐 것이다.
강원도의 봄은 더디 온다. 입춘이 지나고도 한참 지나서야 봄기운이 느껴진다. 싸한 공기가 볼을 스침에도 아랑곳없이 올케는 문을 나선다. 몸을 단단히 감싼 엄마를 휠체어에 앉히고 동네를 휘돌며 산책을 한다. 보행 길에서 휠체어를 조절하는 실력도 유연하지만 두 여자는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항상 신바람난다. 땅에 납작하게 붙은 작은 꽃들에게 눈을 맞추는가 하면 오가는 길손들과도 친절하게 인사를 나눈다. 나는 큰딸이면서도 엄마에게 저토록 다정하게 산책을 하며 이야기 나누어 본적 있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할 정도다. 딸은 출가외인이라더니 괜한 말은 아니지 싶다. 올케는 사실 남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까지 시모媤母를 사랑할 수 있을까. 가끔 코를 맞대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픽 웃음이 나오고 오히려 엄마의 딸이 올케이지 싶다. 엄마는 늦복이 대박 터진 셈이다.
예로부터 남자는 득배得配를 잘해야 집안이 핀다 했다. 이 말이야말로 남자에게 있어 제일 큰 행복은 아내를 잘 만나야한다는 행운을 꼽은 것일 게다. 이런 자명한 사실이 시각장애가 있는 내 동생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복이요, 동생의 두 눈이 되어준 올케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마땅하리라. 사실 올케에게 고맙다는 말을 별로 하지 못했다. 어쩌면 쉽게 입으로만 하는 인사치례 같아서 왠지 예의가 아닌 듯싶어서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말았다. 고생의 문이 훤한데도 자처하고 들어선 올케에게 그 어떤 말이 감사를 대신 할 수 있을까, 생각 할수록 그저 미안하고 쑥스러울 뿐이다.
여름이 오면 이른 봄날 구근으로 심어 놓은 다알리아가 작열하는 태양아래 화려한 색깔로 꽃을 피운다. 엄마밥사발만한 꽃송이를 어루만지며 행복해 하는 엄마와 올케를 바라보노라면 넉넉하면서도 아름다운 저 꽃을 두 여자가 꼭 닮았지 싶다. 평상위에 앉아 별을 세고 달을 보며 밤이슬이 내릴 때가지 고부간에 무슨 얘기가 그리 재밌는지 적막을 깨는 웃음소리는 매번 딸을 저만치서 혼자 놀다오는 친정 길을 만들기 일쑤다.
마당에서부터 온 동네까지 휠체어를 밀고 다니던 그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구순을 넘기신 엄마는 휠체어도 불편해하셨고 급기야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까지 올케가 도맡았다. 노인요양보호사자격증까지 취득하면서 시모媤母를 섬기는 지혜로운 며느리 고마운 며느리였다.
12월 막바지로 치닫던 날 아무래도 병원에 모시고 가야될 것 같다며 엄마를 깨끗이 씻겨 드린 올케는 형제들을 불렀다. 강원도로 가는 길이 새삼 멀게 느껴지더니 엄마는 이미 병원 침대에 누워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는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고 계셨다. 올케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었을까, 며칠 전 자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잘 있으라는 작별을 고하게 하더니 그 전화속목소리가 마지막이 될 줄이야, 어즈버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문득 하늘을 보니 뭉게구름 두둥실 떠간다. 저 구름은 엄마의 하늘 길을 앞서 안내하는 걸까. 휠체어를 밀던 동생댁이 저만치서 흐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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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보낸 수기가 좋은 결실 있기를 기원합니다.
써 놓은 게 마침 있어서 경험삼아 그냥 내 봤어요..ㅎㅎ
고맙습니다, 선생 님(:
좋은 글 소개 해 줘서 잘 읽었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에고, 소문만 내고 떨어지면 이걸 어째~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