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이 난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난다. 초저녁 일찍 잠이 들어 12시쯤 일어나면 다시 잠이 들어 거의 이 시간에 일어나는 편이다.
창문으로 새벽의 푸른빛이 들어온다. 어렴풋이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방안에서 나는,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내가 먹고사는 모든 것들을 점검한다.
어제 소진한 광고비, 사이트, 검색엔진, 댓글, 새로운 글과 사진, 동영상....... 그리고 생각 또, 생각, 상상 또, 상상.
십분정도 걸리는 일들이다. 그리고, 오늘 하루 일정을 생각한다.
오늘은, 아버지의 일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고 간 그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아버지 교통사고 관련 서류들을 꼼꼼히 살피면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초동 수사부터 문제가 많았다.
대퇴골이 부러질 정도의 중상이었는데, 그리고 가해 차량에 부서진 아버지의 사발이가 십여 미터 충격으로 굴러갔는데, 피해 차량은 피해 무, 피해자 경상 그리고 그날 가해 차량에게 스티커 한장이 발부되었다.
이후, 교통사고 조사계에서 가해자에게 벌금이 발부된 그날, 피해자 아버지의 진술서를 받았는데, 그것은 조사계 경찰이 손수 작성한 것이었고, 게다가 아버지의 서명이 없는 상태였다.
여러 가지 의혹을 가지고 조사 경찰에게 항의를 했더니, 이미 사건은 종결이 났다고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사망진단서의 사망원인 [가] [나] [다] 에서 [다] 항에 분명 대퇴골 골절로 인한 의학적 직접 원인이 명시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경찰에게 항의를 하면서도, 내 마음은 침울했다.
그날, 사고 나던 날, 아버지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딸 들이야 서울에 있다손 치더라도, 둘째 아들도 중국에 있다고 하더라도, 따지기 좋아하고 똑똑한 맏아들이 지척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경찰의 변명에 나는 큰소리 조차 칠 수 없었다.
아버지를 보내기 전, 생전에 겨우 호흡조차 하기 힘들어 괴로워하시는 아버지를 침대 곁에서 뵙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그 괴로운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미운 감정이 전부 사라졌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지막 가는 길에 겨우 찾아와 준, 큰 아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아버지와 나는, 이제 진정 헤어진 것일까?
이승에서라도 다시 만나 부자의 정을 회복할 수가 있을까?
죽음이 아버지와 나를 갈라놓고, 나는 겨우 아버지가 남기고 간, 그 서류들을 붙들고 이 새벽에 앉아있다.
이제, 아버지에게 겨우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아버지의 교통사고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자책감이 앞선다.
/////////////
얼마가 지나고, 경찰들과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검찰 수사관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검사가 바뀌고, 일 년이 지나서야 아버지의 사망이 교통 사고 때문이라고 결정이 났다.
어느 날, 가해자의 전화가 왔다.
공무원이었다. 강릉 교도소 교도관인 그는, 합의가 다급한 모양이었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공무원 신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그의 말에, 나는 그가 요구하는 합의를 선뜻 해주었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사망 직전 잠시 아버지와 눈을 마주친 것이 전부였다.
아버지가 가시고 병원 복도에서 밖을 보고 있는 내 등 뒤에 어머니가 가만히 다가와 내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