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滸誌),
혼돈의 시대를 이끌다
1권 일탈하는 군상 (41)
제 8장 야승과 산도둑과
"사람 죽는다아!“
주인은 황망히 등불을 들고 신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뒤를 산채의 졸개들이 '우' 하고 따라 들어갔다.
등불 아래 비친 광경은 실로 뜻밖이었다.
몸집이 큰 중이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벌거숭이로 대왕을 침상에 끌어 놓고 깔고 앉아 주먹비를 퍼붓는 중이었다.
졸개 중에도 좀 윗자리인 성 싶은 도둑 하나가 소리쳤다.
"모두 덤벼들어 대왕을 구하라!“
그러자 졸개들이 일제히 창칼을 꼬나들고 방 안으로 몰려들었다.
그걸 본 노지심(魯智深)이 대왕을 버려두고 침상 곁에 기대 놓았던 선장(禪杖)을 집어 들었다.
벌거숭이 노지심(魯智深)이 선장을 휘두르며 다가가자 졸개들은 그 흉맹한 기세에 질려 버렸다.
저마다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되돌아서서 달아나기에 바빴다.
그제야 일이 돌아가는 속내를 알게 된 주인 늙은이만이 괴로운 한숨을 내뿜으며 멀거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노지심(魯智深)이 잠시 졸개들에게 눈을 팔고 있는 틈을 타 대왕은 방문으로 기어 나왔다.
그리고 한달음에 마당가로 달려가 말 등에 올라앉았다.
급한 김에 버들가지를 꺾어 말을 후려쳤으나, 이게 또 무슨 일인가.
말이 몸만 뒤틀 뿐 내닫지를 않았다.
"어이쿠, 이제는 이놈의 말까지 말썽이구나!"
대왕이 그렇게 탄식하다 다시 살펴보니 말고삐가 그대로 매어져 있었다.
원체 다급한 바람에 말고삐 푸는 것조차 잊은 것이었다.
대왕은 얼른 말에서 뛰어내려 고삐를 푼 뒤 뛰어올라 달아나다가 문득 집주인 늙은이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을러댔다.
"이 못된 늙은 것아, 네놈은 우리가 겁나지 않는단 말이지? 어디 두고 보자.“
그리고는 연신 말에게 버드나무 가지를 휘둘러 산채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스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이제 이 늙은이의 집안은 결딴 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겁에 질린 주인이 노지심(魯智深)을 잡고 원망스레 말했다.
노지심(魯智深)은 태연히 대꾸했다.
"너무 괴이쩍게 생각하지 마십쇼. 우선 옷이나 걸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 옷을 걸치고 나왔다.
주인이 다시 그런 노지심을 잡고 원망을 거듭했다.
"제가 원래 바란 것은 스님께서 인연으로 설법하여 그자가 마음을 돌려먹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주먹으로 그자를 때려눕힐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이제 그자가 산채로 돌아가 이 일을 알리면 산도둑들이 무리를 지어 쳐내려올 것입니다.
우리 집안을 모조리 죽이려 들 것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어르신께서는 너무 겁내지 말고 제 말을 들으십시오. 저는 딴 사람이 아니고 연안부의 노충 경략 상공 밑에서 제할로 있던 노달(魯達)입니다.
어쩌다 사람을 죽인 까닭에 지금 이렇게 중노릇을 하고 있지요.
그러나 산채에 있다는 그 엉터리 대왕 두 놈은 말할 것도 없고 일이천 군마가 온다 해도 조금도 겁날 게 없습니다.
만약 제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머슴들을 시켜 이 선장(禪杖)을 한번 들어 보라고 하십시오."
노지심(魯智深)이 그 말과 함께 들고 있던 선장을 내주었다.
머슴들이 그걸 받아 움직이려 해 보았지만, 들고 서 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노지심(魯智深)이 다시 그 선장을 받아 한 손으로 잡고 휘둘러 보았다.
선장(禪杖)은 마치 가벼운 지푸라기처럼 노지심의 손안에서 놀았다.
그걸 본 주인 늙은이가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지 원망 대신 간곡히 매달렸다.
"스님, 부디 달아나지 마시고 저희 집안을 살려 주십시오!“
"무슨 말씀이오? 나는 죽으면 죽었지 달아나지는 않소."
노지심(魯智深)이 불끈해 대꾸하자 주인이 얼른 말을 바꾸었다.
"그럼 술을 드릴 테니 마시며 기다리십시오. 다만 너무 취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걱정 마시오. 나는 한 푼어치 술을 마시면 한 푼어치 힘이 더 나고, 열 푼어치 술을 마시면 열 푼어치 힘이 더 나는 사람이오!"
"알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면 술과 고기를 장만하겠습니다. 그때 드시도록 하십시오.“
주인은 노지심(魯智深)을 그렇게 달래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그 무렵 도화산의 큰 두령은 마을로 장가들러 간 둘째 두령의 뒷소식이 궁금했다.
막 졸개를 불러 산 아래로 보내 보려는데 둘째 두령을 따라 내려갔던 졸개 대여섯이 멍들고 터진 몰골로 쫓겨 들어오며 소리쳐 댔다.
"아이고, 아이고......."
"무슨 일이냐? 어쩌다 이 꼴이 되었느냐?“
놀란 큰 두령이 그들에게 물었다.
졸개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둘째 두령이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어서 자세히 말하라."
큰 두령이 그렇게 묻고 있는데 다시 다른 졸개가 달려와 알렸다.
"둘째 두령께서 돌아오십니다."
큰 두령이 보니 둘째 두령이 산채로 들어오는데 꼴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에 썼던 붉은 두건은 부서지고 몸에 걸쳤던 녹색 비단옷도 갈가리 찢어진 데다 얼굴은 붉고 푸른 물감을 뒤집어 쓴 것 같았다.
그런 둘째 두령이 말에서 떨어질 듯 내려 엉금엉금 기어 들어오면서 죽는 소리를 냈다.
"어이쿠, 형님, 이놈을 좀 살려 주시우.......“
"어찌 된 일이냐?"
큰 두령이 그렇게 묻자 둘째 두령이 끙끙 앓으며 경위를 털어놓았다.
"아우가 마을로 내려가니 그 엉큼한 영감쟁이가 수를 써 놓았더군요. 딸년은 어디다 감추고 웬 깍짓동 같은 중놈을 신방의 침상에 데려다 놓은 것입니다.
아우는 그것도 모르고 그 방에 들어가 더듬다가 그놈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져 넙치가 되도록 얻어맞았습니다.
꼼짝없이 맞아 죽는가 싶었는데 마침 데려간 아이들이 몰려와 구해 주는 바람에 겨우 그놈의 손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놈이 선장(禪杖)을 잡으려고 놓아두는 틈에 달아나 겨우 한목숨을 건진 겁니다. 형님, 분합니다. 이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알았다. 너는 잠시 방에 들어가 쉬어라. 내 너를 위해 산을 내려가 그 중놈의 민대가리를 부수어 놓겠다."
큰 두령이 그렇게 둘째를 달래 놓고 졸개들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내 말을 끌어오너라. 너희들도 모두 싸우러 내려갈 채비를 하고!"
졸개들은 큰 두령이 시키는 대로 했다.
모든 채비가 갖춰지자 큰 두령은 창을 잡고 말에 오르고 졸개들은 있는 대로 모두 그 뒤를 따라 뛰며 함성도 드높게 마을로 쳐 내려갔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수호지 - 이문열 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