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국호의 변천
신라가 1세 박혁거세(朴赫居世, 재위 BCE 57~AD 4) 때 ‘서라벌徐羅伐, 진한辰韓, 사로斯盧, 시림始林’ 등 여러 국호를 쓰다가 4세 탈해왕脫解王(57~80) 때 계림鷄林으로 바꾸었습니다. 15세 기림왕(基臨王, 298~310) 때(307년) 국호를 신라로 사용하는데, 실제 신라로 쓰기 시작한 것은 22세 지증왕(智證王, 500~514) 때입니다. 그런데 이미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신라라는 나라 이름이 나옵니다.
신라의 원 뜻은 ‘덕업일신德業一新 망라사방網羅四方’입니다. ‘덕업이 새로운 나라, 밝은 햇살의 광명이 온 천하를 덮으소서’ 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신라와 가야의 김씨 시조
신라의 김씨 시조 김알지가, 탈해왕을 ‘하늘에서 나에게 보낸 아들이다’ 해서 길렀는데, 신라 30대 문무왕(文武王: ?~681) 비문에도, 우리 조상 할아버지는 ‘투후제천지윤秺侯祭天之胤’이다'라고 하여 문무왕이 직접 ‘우리 조상은 북방 유목민 흉노의 왕손’이라고 밝힌 겁니다.
가락국駕洛國 왕의 역사를 보면 허 왕후許王后가 시집을 와서 자기 남편에게 시집오게 된 실제 이야기를 합니다.
『삼국유사』를 보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사실은 천상의 상제님에게 명을 받았어요. 저 동방에 있는 가락국 시조를 하늘에서 내가 내려보냈으니까 네 딸을 그쪽으로 보내서 왕비가 되게 하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출생비밀
신라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북부여 시조 해모수의 5대손 파소의 아들입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가 부여 황실의 딸이라는 <태백일사(太白逸史)> 제6편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의 기록은 ‘신라가 부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주는 획기적인 내용입니다. 그런데 종래에서는 사대주의 사관의 왜곡, 날조에 의해 중국 진나라 사람들이 한반도로 들어와 신라를 세운 것으로 잘못 인식돼 왔습니다.
<삼국유사> 감통感通)편에는 “선도산仙桃山 신모神母는 본래 중국 황실帝室(한漢나라 8세 소제昭帝나 9세 선제宣帝의 딸이었는데 이름은 사소娑蘇였다”라고 하였고 또 사소가 처음 중국에서 진한에 와서 박혁거세를 낳았다고 기록하여 파소와 박혁거세의 혈통을 중국 한족 혈통으로 왜곡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국 역사서에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신라 박혁거세의 어머니는 파소婆蘇입니다. 파소는 5세 고두막한高豆莫汗의 딸로서 진한辰韓 나을촌那乙村으로 가서 박혁거세를 낳았습니다.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記) 제47세 고열가(古列加)조의 기록을 보면 “ 단군 고열가古列加 임금이 아사달에 살게되자 오히려 백성들은 그를 추앙하였다. 혹 말하기를 박(朴)씨와 백(白)씨가 모두 그의 후손이며 혁거세(赫居世) 역시 단군의 후손이라 한다.(檀君旣徒居阿斯達而 國人猶推尊之 諸侯亦無敢逼者 或曰 朴氏白氏 皆其後裔 而赫居世亦出於檀君之後云)”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제6편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의 기록을 보면
(斯盧始王仙桃山聖母之子也 昔有夫餘帝室之女婆蘇 不夫而孕 爲人所疑 自嫩水逃至東沃沮 又泛舟而南下抵辰韓奈乙村 時有蘇伐都利者 聞之 往收養於家而 及十三岐祥然夙成 有聖德 於是 辰韓六部共尊爲居世干 立都徐羅伐 稱國辰韓亦曰斯盧)
“사로(斯盧)의 처음 임금은 선도산 성모의 아들이다. 옛날 부여 제실(帝室)의 딸 파소(婆蘇)가 있었는데 남편 없이 아들을 배어 사람들의 의심을 받게 되자 눈수(嫩水)로부터 도망쳐 동옥저에서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나을촌(奈乙村)에 이르렀다. 이 때에 소벌도리라는 자가 그 소식을 듣고 가서 집에 데려다 거두어 길렀다.
나이 13세가 되자 뛰어나게 영리하고 숙성한데다가 성덕이 있었다. 이렇게 되어 진한 6부의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여 거세간(居世干)이 되니, 도읍을 서라벌에 세우고 나라이름을 진한(辰韓)이라 하고 또한 사로(斯盧)라고도 하였다.”
신라 왕가 박·석·김의 시조
신라 왕가의 전체 역사를 보면, 박혁거세朴赫居世 시조로부터 열 분, 석탈해昔脫解를 중심으로 해서 여덟 분, 그 다음에 김씨 왕조 서른여덟 분이 나옵니다. 992년, 8년 부족한 천 년의 장구한 신라 왕조의 역사에서, 박·석·김 세 성씨를 높이는 것을,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 전통문화인 삼신문화를 의방依倣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가야와 형제가 되는 신라의 김씨 왕족의 역사에서 어떻게 당나라와 친해져서 형제국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는가? 그게 진정한 통일이냐? 이것은 우리가 역사를 배우면서 누구나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서는 떳떳하지 못한 자책감을 느끼는데 북방 유목문화의 근본정신을, 당시 선비족인 중국 당나라 왕조의 혈통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정한 역사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고 봅니다.
이 유목문화는 지구촌의 동서남북의 문화를 소통하는 진정한 개척자로서, 문화 소통자로서 역할을 했습니다. 유목민은 야만인이 아닙니다. 말 타고 가축을 몰고 이동한다고 해서 문화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유목문화의 꽃은 무엇인가?
유목문화를 한평생 연구하신 서울대 김호동 교수가 유목문화를 종합 정리한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라는 책을 냈습니다. 지구촌의 유목 강국들은 공통적으로 3수 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립니다. 몽골도, 흉노도 그렇고, 선비도 그렇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3수의 정신에 따른 좌현왕左賢王·우현왕右賢王이 있고, 그 밑에 군 조직에 우방과 좌방이 있고 24장의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방 유목문화는 그 유물을 보면 신라, 가야 유물과 상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편두偏頭를 하고, 기마상을 보면 동복銅鍑을 말 등에 싣거나, 엉덩이 위에다 지고 다닙니다. 동복도 제대로 잘 생긴 걸 보면 삼신의 3수 문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에 황금 금관이 한 열 개 나왔다고 하는데, 그중에 여덟 개가 바로 신라에서 나왔습니다. 여러 무덤에서 나온 신라의 금관은 인류의 원형문화, 우주 역사의 원형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이 유목문화는 어디서 나갔는가?
흉노 즉 훈족이 됐든, 선비족이 됐든 우리하고 조상이 같습니다. 지금 터키도 그 조상은 투르크, 돌궐족입니다. 돌궐족 후손들이 내려가서 오스만제국을 열고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칭기즈칸이 러시아, 인도까지 이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면 몽골이나 선비, 돌궐, 흉노 이들은 어디서 나갔는가?
이 기록을 가지고 있는 책이 고려 말 공민왕 때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지금의 국무총리)을 지낸 행촌杏村 이암李嵒(1297~1364) 선생의 『단군세기(檀君世紀)』 밖에 없습니다.
3세 가륵嘉勒 단군이 열양列陽 욕살褥薩인 색정索靖이 잘못한 게 있다고 감숙성으로 귀양을 보냈습니다. 나중에 사면을 해서 흉노 시조, 왕으로 임명합니다. 4세 오사구烏斯丘 단군 때는 그 동생을 몽골의 초대 왕으로 임명했습니다.
3세 단군 때는 강거康居가 반란을 일으키자 가륵嘉勒 단군께서 지백특支伯特을 평정했는데, 강거는 돌궐의 시조입니다. 이런 역사가 『단군세기』에 나오고 있습니다.
대세를 보면 이 동서 유목문화의 큰 세력권은 바로 환국·배달·고조선(단군조선)을 계승한 동방 우주광명 문화, 삼신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심장부인 단군조에서 행한 삼신문화를 ‘삼한관경三韓管境’이라 하는데, 삼한으로 나라를 나누어서 국가 영역을 다스린 것입니다. 이 유목문화를 보면, 좌현왕·우현왕 제도 같은 삼한관경 문화를 거반 다 가지고 있습니다. 출처: 환단고기
첫댓글 역사공부 잘 하고 갑니다.
네,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