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대한민국 박사모 -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 박사모 예술단 ♬ 스크랩 ‘건전가요 부르기’의 선구자 전석환
슈퍼탱크 추천 3 조회 191 14.04.29 18:0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60-'70년대 노래의 전령사 전석환님의 영향으로  
중,고딩 시절 귀에 익숙했던 노래들 

정든 그노래, 석별의정, 그리운고향, 버들피리 등 많죠

 아름다운 노래 정든 그 노래가 우리 마을에 메아리쳐 오면….'
60∼70년대 라디오 전파의 잡음 속에 들려오던 
그리운 노래들 중 하나인 '정든 그 노래'다. 
이 노래들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60년대 말, 
달달 꿰고 다니던 '국민교육헌장'만큼이나 
아직도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전석환
'싱어롱 Y'를 통해 '건전가요 부르기'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던 
그에 의해 전국적으로 번졌던 다함께 노래부르기 운동. 
특히 스포츠머리에 기타 하나 달랑 메고 노래를 지도하던 
그의 캐릭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능란한 화술과 시원시원한 리더십으로 공개방송 
'다함께 노래하자' '노래의 메아리' '삼천만의 합창' 
'백만인의 노래'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 
직장과 학교를 찾아다니며 노래를 전파했다.

그는 70년 9월, 한 인터뷰에서, 
"그동안 2500회의 노래 부르기 지도를 했으며 
한 해 동안 만나는 사람이 무려 16만명, 
그리고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는 3000여곡 정도 된다."고 
했으니 그의 왕성한 활동과 함께 전국적으로 벌어진 
'다함께 노래 부르기' 열풍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유행가 일부를 '소리의 공해'라 치부하기도 했고 
때문에 건전가요 보급은 일종의 국가적 시책이기도 했다. 
"하루 여덟 시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나머지 시간을 모두 노래와 함께 살았다."고 
당시를 회고하는 전석환씨는 1934년 황해도의 섬, 
용매도에서 태어났다. 

음악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인천고 2학년 시절인 54년, 
인천 창영교회 성가대를 지도하며 성가대원들로 중창단
(멜로디 김익진, 베이스 오재섭, 테너 고일록)을 결성해 활동하면서부터. 
이어 57년 HLKX(인천기독교방송국)에 특별출연하면서 
찬송가를 기타반주에 맞춰 부르는 파격적인 시도를 한다. 
이 행동은 당시 경건하게만 여겨지던 교회음악에 대한 정서로 인해 
찬반논쟁까지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파장을 몰고 왔다.

파격적인 시도만큼이나 음악을 바라보는 눈도 깨어 있던 그는 
연세대 종교음악과에 입학한 후인 58년 조선호텔 '미군장교클럽'에서 
전자 오르간을 연주하며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이때의 레퍼토리들이 그가 후에 전개하는 
노래 부르기 운동의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캠프송' '포크송'의 못자리, '싱어롱 Y'
60년대 초, 전석환씨는 학교 선배이기도 한 당시 
YMCA 청년부 김창열 간사와 함께 
'싱어롱 Y'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당시는 4·19와 5·16으로 이어지는 매우 혼란했던 시기로 
연일 데모와 함께 휴강이 잦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대부분 
갈 곳이 없어 음악감상실 등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둘은 의기투합해 '돌체' '르네상스' '뉴월드' 등 
음악감상실을 돌며 '싱어롱 Y'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싱어롱 미치(밀러)'라는 프로그램 명에서 힌트를 얻은 
이 이름의 Y는 'Young'과 'Youth' 그리고 'YMCA' 등의 
의미를 함께 포괄한 단어입니다."

이런 행사를 통해 그동안 부르기 쉽지 않았던 외국곡이나 민요 등을  
발굴, 채보해 보급했는데 대표적인 곡들이 '작별(Auld Lang Syne)' 
석별의 정(Little Bitty Tear Letmedown)' 
'사모하는 마음(I Do Adore Her)' '그리운 고향(Sloop John B)', 
그리고 전래민요인 '군밤타령'이나 '밥타령' '꼬불꼬불' 같은 노래들이다.

현재 악보집을 살펴보면 전석환씨가 채보, 
개사한 대부분의 노래들은 특정 가수 표기가 없다. 
주로 합창을 통해 불려져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역시 많은 가수들과 함께 활동을 전개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남성4중창단 쟈니브라더스. 

당시 예그린합창단 출신들로 구성된 이 남성4중창단의 첫 멤버는 
김산현(김준), 양영일, 장호성, 진성만. 이 중 장호성씨가 
멤버에서 빠지자 전석환씨가 긴급 합세해 
62년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에서 개최된 MBC 주최 
'5·16혁명 1주년 기념 중창 콩쿠르'에 출전, 대상을 수상한다. 
'쟈니'는 전석환의 미8군 무대에서의 애칭, 'John+ny'에서 딴 이름.

 “이 무대에서 내가 직접 통기타를 치며 함께 하모니를 맞춘 노래가 
'냉면'과 '맹꽁이와 삽살개' 그리고 '쟈니를 환영하라
(When Johnny Marching Home)'였는데 이 노래들 역시 그 무렵 
내가 악보를 만들어 보급하던 노래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때까지 소규모의 '싱어롱 Y'를 통해서만 불려지던 노래가 대형무대에서, 
그것도 통기타 반주만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선보인 최초의 장면일 것입니다."

 이렇게 선보인 통기타 음악은 계속해서 하이테너 박상규(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멜로디 남승우(경희대 경영학과), 베이스 김경수(고려대 사학과)로 구성된 
'코코넛 트리오', 그리고 이화여대생들로 구성된 '사인트리오(리더 이인순)' 등 
대학생 보컬팀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YMCA가 본격적으로 
'싱어롱 Y'라는 프로그램을 정기행사로 끌어들이면서 통기타 붐은 
젊은이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전석환의 싱어롱 Y'는 이렇듯 우리나라에서의 캠프송, 
레크리에이션송 문화로 깊이 자리 잡으며 
포크송, 즉 통기타 노래 붐으로 점차 확산되어 갔다. 
정든 그 노래  - 전석환 작사/작곡 (합창)


석별의 정 (A little bitty tear) 
전석환 작사/노래, 외국곡 


그리운 고향(Sloop John B)-전석환 작사(외국곡)
무궁화 중창단 & 넷소리  노래


버들피리 (전석환 사/곡, 별넷/노래) 







 

출처; cafe.daum.net/JCguitar/...   만수6동성당 ..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