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立冬)이 지나면 서서히 겨울 준비를 해야 하므로 마음이 바빠지는 시기이다.
그런데 아직도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햇살이 따뜻하다.
그러다 가을비가 두어번 내리고 길위에 떨어진 나뭇잎이 수북해지면 어디선가 겨울바람이
싸아~~ 하고 불어 오면서 두툼한 옷을 찾게 되고 어! 춥다. 하는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온다.
11월이니 가을도 아니요 겨울도 아니요, 애매하면서
슬슬 코감기도 들고 가끔 콧물도 흘러 내린다.
지난 3년동안 줄창 쓰고 다니던
마스크가 이때는 고맙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사람들 왁자지껄 떠들고 웃음소리 가득한
음식점에 한 자리 차지하면 그것
또한 새롭고 따뜻한 저녁 한 때를
훈훈하게 지낼 수 있다.
우리 동네 선술집 비슷한 곳엘 가면 넓적한 무쇠판에 뚜껑 씌워
돼지고기 삼겹살 굽고
두툼한 김치 한 포기 썩썩 잘라서 같이 익혀 먹을 수 있다.
의자는 받침 뚜껑을 열고 거기에 옷과 가방을 넣는다.
기름이 튀지 않게 앞치마도 걸친다. 고기가 다 익으면 무쇠판에 씌웠던 가림판을 내려 놓는다. 다 익은 고기와 김치 옆에 두부도 넣고 소금, 마늘, 고추가루 양념에 고기를 찍어서 파절이와 함께 상추와 깻잎으로 쌈을 싸고 지평막걸리 한 병 시켜서 먹으면 깊은 가을 저녁, 그 알싸한
맛이 끝내 준다.
고기를 다 먹으면 칼국수 전골이요, 아니면 고기 추가요!
외친다. 종업원들이 아주 열심히 집중하여 시중을 들어 준다..
열심히 주문을 잘 챙겨야 저녁 매상에 빈틈이 생기지 않는다.
칼국수 전골이 끝나면 깍두기 볶음밥 또 추가한다.
들기름내가 고소한 볶음밥까지 다 코스를 마치기 전에 옆 테이블에선
갑자기 모두 밖으로 나간다.
시원한 바깥 바람을 쐬면서 구름과자 한대씩 피워 날리면 그 구름과자 맛이 혀끝에 남아 기분이
하늘을 날 듯하겠지..
그리곤 또 다시 자리로 돌아와 소주에 고기에 마지막 코스를 즐기며 호탕한 웃음을 웃어 제낀다.
도시인들이 낮에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아주 건강한 방법이다.
어느 테이블엔 명품으로 싸악 차린 중국의 젊은 아가씨 둘이서 맛있게
고기와 김치를 먹는다.
저 쪽 테이블에는 두 개의 테이블을 한데 모아 한 여덟명쯤 되어 보이는 그룹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 모임에서도 예의를 지키느라
끝 쪽에 앉은 젊은이는 한참 웃다가도 술을 마실 때면 고개를
외로 돌려 한 손으로 가리면서
술잔을 비운다.
상하 예의를 깎듯이 지켜야 하는
자리인가 보다.
지난 번에 왔을 땐 우리 뒷자리
등을 대고 앉은 쪽에 티비 탈렌트가 있다고 딸아이가 반기길레 말을 걸어 젊은 탈렌트
이름도 확인하고 함께 셀피도
찍었었는데.
막걸리 두어 양푼에 취기가 올라
집으로 걸어 오는 골목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는지 일부러 갈지(之)자로 걸어
보니 제법 술꾼 기분이 든다.
나이드신 아버지나 늙어버린 남편이 이럴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한 번 생각해 보고 내 나이 점점 가득해 지니 늦은 가을 막걸리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 보는 맛도
괜찮다. 내 머리 속이야 취기가
돌아 어찔해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양쪽에 딸들을 거느리고 늙은 엄마가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다.
약간 알딸딸할 정도로만 마신거이니..
멀리 느껴지는 골목길을 걸어 드디어 집에 도착. 정신없이
아침까지 내달아 잤으니 어제일도
말끔히 잊혀졌다.
다시 새날이 밝아 겨울로 한 걸음씩 다가간다.
계절 따라 인생도 겨울을 향해
달리고 있다.
세월이 가는 것이 희망이 아니라
두려워지는 시간들이다.
겨울이라 화분을 거실에 들여 놓으니 초록이 가득해서 보기 좋다. 겨울 김치도 버무려 통에 가득 담아 놓고 겨울 맞이를 하니
든든하다.
인생의 겨울에 느끼는 감회가
다름을 느끼니 삐걱거리는 낡은
몸둥이가 버거워 진다.
하나씩 고쳐가면서 잘 마무리를 하고 추운 삼동(三冬)에 무탈하기를 기원하며 조신하게
지내야겠다.
첫댓글 딸들이 효녀네요...
재민씨.. 손주까지도 아들이니 남들이 부러워 하는데 요새는 딸을 고명처럼 생각하니 세상도 바뀌었죠.
가끔 내가 생각해요.
젊은 시절 아이들을 낳아 기르길 잘 했다고..
박점붘 후배님은 좋으시겠습니다.
따님들어 보호해 주셔서 행복 하시겠습니다.
,부럽습니다.
그렇군요. 송선배님이나 재민후배 모두 그 당시나 지금이나 모두 든든하죠.
부모님께 등 떠밀려 가는 삶도 좋아요. 베리굿이죠. 요새는 핵개인의 시대라고 하니
시대의 대세에 발맞추어 가는 삶이군요.
저는 혼자사는것이
너무좋은데 점분님의 따님들을 보니 또한 좋아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