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5장은 부활장이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사실은 복음에 관한 말씀이다
(1절 :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성경은 신학적인 지식의 안경을 벗고 접근을 해야 한다.
15장의 분류
1) 1-11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역사적인 사실이다.
언제나 역사가 있고 난 다음에 완성이 되는 과정이 있다.
모든 역사적인 사건은 보이지 않는 완성의 세계의 그림자로 보라.
2) 12-19절 부활이신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성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예표적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목표이면서 그 방법이다.
그 분의 완성은 우리의 완성으로 이어지고 끝이 나야 한다.
3) 20-28절 부활의 차서 곧 차례이다.
4) 29-34절 부활의 산 소망
우리는 부활의 산 소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의 몸에 척추와 같이 중요하다.
5) 35-49절 부활의 형태
6) 50-58절 부활의 결과
사실 고린도전서는 15장이 결론이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이 부활의 교리를 모르고 있다.
고전13장은 '온전한 것'이 오는 '어느 때'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15장은 그 때가 어떻게 오시는가? 그리고 어떻게 완성해 가시는가?
하는 부분을 설명해 주는 부활 복음의 진수이다.
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전한 복음이란 이미 과거의 일이다.
이미 선포된 것이다. 12절 말씀처럼 ‘살아나셨다’ 이미 과거의 일이다.
그러나 ‘알게 하노니’는 현재이다. 하나님의 계시이며 성령의 조명이다.
이미 선포된 복음이 나 자신에게 적용이 되어야 한다.
객관적인 지식이 주관적인 지식으로 바뀐다는 말이다. 이걸 체험적인 신앙이라고 한다.
1절의 구성을 보면 1) 복음을 전했고 2) 그들은 받았다 인정했다. 3) 섰다
받다 - 빌4:9 배우고 받고 듣고 본바
골2:6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살전2:13 말씀을 받음
서다 - 요8:44 진리에 서지 못하고(진리는 반석이신 그리스도)
고후1:24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2절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받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을 얻을 것이란?
현재적이며 피동적이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에 의해서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 복음의 말씀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 하였으면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을 얻는 것은 언제나 현재이다.
헛되이 믿는 것은 외형만 갖추는 것이다. 내용이 없는 신앙을 말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받고 지키고 인내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히3:6 -하나님의 집은 산돌 같이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
14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 구성요소의 참예자이다.
히10:23 -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
3절 먼저 곧 먼저 것들- 역사적인 사건을 말한다.
성경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사건을 말한다.
이 소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아서 이미 고린도교회에 넘겨주었다고 한다.
파라람바노는 ‘받음’ 그리고 ‘파라디도미’는 ‘넘겨줌’이다.
복음의 릴레이다. 이것이 교회의 전승이다.
3-6절은 그 당시 교회의 전승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사건을 뉴스처럼 받아서 그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베드로와 12사도 그 후에 5백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그리고 바울 자신에게도 보인 그 사실을 말한다.
8절 바울은 ‘만삭되지 못하여(민12:12, 욥3:16)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였다’ 진술한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도와 달리 정상적인 과정이 없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반쯤 죽어서 태어난 것과 같음을 말하고 있다.
신앙은 과정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와 같이 갑자기 주신 하나님의 은혜나 부름도 중요하다.
9-10절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그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
아무 과정이 없는 바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 그 자체가 은혜이다.
한 일이라고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핍박한 것 밖에 없는 바울이었다.
사실 은혜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햇빛과 비를 내리는 정도는 일반은혜이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은혜를 말한다.
11절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 같이 믿었느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역사적인 사실을 전하고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무엇이 문제이기에 바울은 복음을 알게 해야 하겠다고 말하는가?
그 복음의 내용은 제대로 전달되었으나 고린도교회는
아직 부활의 비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복음의 내용은 제대로 전달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가 각 개인마다 다르다.
마귀는 전파된 복음의 내용이 부활의 능력으로 나타날까 두려워한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사신 역사적인 사실은
잘 믿지만 자신 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
그래서 2절에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것이다.
진정한 구원의 복음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말이다.
12절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가 아담 안에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 안에 살아계신다.
그리고 그 분은 언제나 부활과 생명이시다(요11:25)
성도의 부활의 실제는 아담 안에서 사망 가운데 죽었던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사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육신의 껍데기가 영화로운 것으로 바뀌는 부활이 있다.
쉽게 설명하면 씨가 먼저 살아나고 완성이 된 후에 형체도 바뀐다는 말이다.
13절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었다
그 분 자신이 바로 부활이요 생명이다. 그 분은 처음부터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분이다.
하나님의 씨를 가지신 분이다. 그 다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형체가 변화되는 부활이 왔다.
14절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였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부활에 대한 믿음이란?
1)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역사적 사실을 믿는 것
2) 부활이며 생명이신 그 분이 내안에 계시는 현재적인 사실을 믿는 것이다.
헛 믿음은 - 그럴 것이라는 개념을 가진 믿음이다.
산 믿음은 - 하나님의 은혜가 적용되는 순간부터 생긴다.
믿음은 선물이며 이 선물은 실제적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인 신뢰의 믿음은 다 가지고 있다.
비행기를 타며, 고층아파트에 사는 것 자체가 이미 믿음으로 산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이래서는 안 된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이다.
전파되는 것이 헛것이면 믿음도 헛것이다.
그러나 전파되는 진리가 산 것이면 믿음도 산 믿음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으로 다시 사신 사건과 지금도 사신 하나님으로
내 안에 계시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바로 산 믿음이다.
그 분은 죽지 않고 존재하시는 분이다(요1:1)
사실 그 분에게는 부활한다는 단어가 필요 없다. 그 분 자체가 바로 부활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 분이 '다시 사셨다. 또는 일어났다' 라고 표현한다.
부활은 정작 아담 안에서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 그 분은 바로 우리의 부활이다(요11:25, 롬8:10)
그러므로 언제나 그 분이 우리 안에서 살아 운동력있게 역사하시도록 해야 한다(히4:12)
15-16절 그리스도를 살리신 목적이 무엇인가?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은 현재형이며 수동이다.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부활과 생명의 주님이시다.
다시 살리시는 주님이시며 영원히 살게 하시는 주님이시다.
그리스도가 부활과 생명이 되시는 바울의 주관적인 체험을 말하고 있다.
17절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부활의 성격에 대한 말씀이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바울은 부활을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산자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롬6:11)
세례를 통해 죄의 몸에서 끝이 난 것을 부활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았으므로 죄와 사망의 법이 없어졌다(롬8:1-2)
그러므로 부활과 죄 사함은 하나이다.
18절 ‘잠자는 자’ 는 육신이 죽은 자이다.
요11:11-13 예수님이 나사로가 잔다고 하시고 깨우러 가자고 하셨다.
삼하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왕상2:10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 다윗성에 장사되니
행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죽음과 잠은 다르다. 죽음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멸망을 말하고,
잠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얻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
계6:11 ‘잠시 동안 쉬되’
계14:11-13 ‘짐승의 표를 받는 자는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그러나 주 안에 죽은 자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육체가 아니라 영적인 상태를 말하고 있다.
시편을 보면 영혼의 안식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온다.
ex) 미이라는 부활사상-다시 살아 날 때까지 쉰다는 의미이다.
20절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는 부활의 시제품이 되었다.
그 다음 거기에 붙은 많은 부활의 사람들이 있다.
21절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과 그리스도 두 사람의 관계
롬5:1-11, 롬6:11을 재조명해 보라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다시 산 세례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우리는 살았다.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죄가 들어왔고 그 죄로 인해 사망이 들어왔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사망의 종이 되고 말았다. 다 죄의 유전을 물려 받았다.
그 결과로 사람의 양심은 선악만 알 뿐 생명나무를 몰랐다.
생명을 먹어 본적이 없다. 그러나 성경을 주신 목적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통해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요5:39)
로마서 6장은 그리스도와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아담 안에 있던 뒤 설거지를 주께서 완전히 끝내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되는 원리를 말씀한다
(롬6:3-11 그리고 12절부터 산 제사를 강조)
21-2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에 대해서
죽고 그로 말미암아 그의 생명으로 다시 사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라는 말이다.
23절 부활의 차서 -첫 열매는 그리스도 그 다음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들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다수들을 말한다. 한 알의 밀이 ‘많은 열매’가 되었다.
요1:14절이 된 사람들이다.
24절 ‘그 후에’ 모세가 성막과 진을 다 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드리듯이 예수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성전(계4장 천상교회의 모습 참조)이 다 완성된 후에 하나님께 바치신다.
계19장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심판
20장은 사단을 무저갱에 가둠 -미혹이 없다
4-6절 천년왕국(그리스도에게 붙은 자들)
7절 천년이 차면 또 미혹
11절 이후에는 흰 보좌 심판이 있다(최후의 심판 )
25절 계20장까지만 그리스도께서 왕노릇하신다
21-22장 새 하늘과 새 땅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26절 심판은
1)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계19:20-21)
2) 마귀(계20:10)
3) 사망과 음부(계20:14)
27-28절 만유 안에서 만유가 되려하신다.
하나님의 존재는 나타나지 않는다(계21:22-23)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그 영광 가운데서 계셨다.
구약에는 천사로도 나타나셨다(모세에게 나타나신 여호와, 나는 00이다)
이 분이 어린아이로 오셨고 속죄와 화목의 제물이 되셨다.
그리고 원 상태로 다시 올라가셨다. 창조는 아버지 하나님이 하시고,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는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엘로힘)은 창1장에서 나오고 계21-22장에서 다시 하나님으로 나온다.
그 안에는 다 여호와 하나님이 일을 다 하신다.
그리고 난 다음 다시 만유로 돌아가신다(28절)
하나님이 아직 만유를 다 회복하지 못하심은 아담이 마귀에게
넘겨준 것을 완전히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눅4:6)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만유 속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만유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만유는 그 분의 입김으로 되었고 보존된다(시33:6)
그런데 문제는 죄를 가진 사람의 심령에는 닿질 못하신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배우고 자연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배워야 한다.
거기서 만유이신 그 분과 교제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이 ‘나는 처음부터 말하여 온 자’라고 말씀하셨다(요1:1 요8:25)
아브라함이 나시기 전부터 있었다. 이 분이 과연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분이 바로 우리 안에 부활과 생명의 왕으로 계신다.
잃어버린 자를 다 찾고 원수 마귀가 그 분의 발등상이 될 때까지 그 분은 불가불 왕으로 계신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를 보면 하나님이 잃어버린 그 무엇을 찾으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창1:1절 만드신 천지, 그리고 2절에는 땅이 나온다. 이 땅이 무엇인가?
파란 하늘과 지구 땅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의
하늘과 땅이 언제나 병존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