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이명으로 한동안 고생했다. 이명을 의식하지 않으려 잠자리에서 클래식음악을 틀어놓곤 했는데, 문득 베토벤 생각이 났다. 20대 중반부터 극심한 이명에 시달리고 난청이 심해지다 결국 청력을 모두 잃게 됐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1802년 31살의 베토벤은 청력 문제로 빈 교외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했다. 하지만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동생들에게 유서 같은 편지를 썼다(보내지는 않았다). “내가 죽으면 바로 슈미트 박사에게 내 병을 진단받고, 내가 죽은 뒤 적어도 세상이 나와 화해할 수 있도록 이 편지를 그의 진단서에 덧붙이거라.”
25년 뒤 1827년 3월26일 베토벤이 사망하고 서랍에서 편지가 발견돼 그의 뜻대로 부검이 이뤄졌다. 청력 상실 원인은 찾을 수 없었지만, 간이 보통의 절반 크기였고 가죽처럼 질기고 작은 혹들로 뒤덮여 있었다. 간경화로 인한 사망 같았다. 말년에 자주 과음했다고도 하니. 그럼에도 그가 앓던 청각 상실과 복통, 관절염 등은 성병인 매독과 치료제로 쓴 수은 때문이고, 말년에는 진통제인 아편에 의존했을 거라는 가설이 널리 퍼졌다.
1994년 11월 소더비 경매 목록에 베토벤의 머리카락이 올라, 베토벤 마니아 두 사람이 이를 낙찰받았다. 베토벤이 죽자 친구 요한 후멜이 애제자 페르디난트 힐러를 데리고 방문했는데, 이때 힐러가 스승의 묵인 아래 베토벤 머리카락 한 타래를 잘라 대를 이어 보관하다 소실됐던 게 경매에 나왔다. 화학자들이 낙찰받은 머리카락 일부를 분석한 결과, 아편 성분(모르핀)은 물론 수은도 검출되지 않았다. 대신 납이 수십배 농도로 검출됐다. 성병이 아니라 납중독?
지난주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서 디엔에이(DNA)를 추출해 게놈(유전체) 절반이 약간 넘는 16억 염기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이 실렸다. 그 결과 베토벤 사인은 애초 부검 때처럼 간 질환일 가능성이 크단다. 간 질환 위험 요인인 PAPLA3와 HFE 유전자 변이형이 확인됐고 B형 간염 바이러스 게놈도 검출됐다.
아쉽게도 청력 상실과 관련된 실마리를 찾지는 못했다. 좀 민망한 사실도 드러났다. 16세기 조상(아르트 판 베토벤)을 공유하는 베토벤 가계 사람 5명의 Y염색체와 베토벤의 Y염색체가 서로 달랐다. 위로는 이 조상의 아내에서 베토벤의 엄마까지 사이에 누군가가 외도를 했다는 얘기다.
분석에 사용한 머리카락 시료는 8가지다. 힐러처럼 베토벤 사후 가져간 게 5점, 생전에 잘라간 게 3점이다. 5점은 독일계 남성 동일인, 즉 베토벤의 머리카락이었고, 나머지는 다른 남성, 여성, 분석 불가로 판명됐다. 놀랍게도 베토벤의 매독 누명을 벗겨준 힐러의 머리카락은 여성의 것이었다! 힐러의 머리카락을 주제로 광범위하게 취재하고 2000년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출간한 미국의 논픽션 작가 러셀 마틴에게는 얼마나 허탈한 소식이었을까.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20230329 한겨레신문
첫댓글 베토벤을 몇 달 안아주고 싶은 시절이 있었어요. 장 크리스토프를
볼 때 ㅡ 헤드 폰으로 그의 음악을
들을때 그 가 준 많은 감정 형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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