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돌연 ‘그가 온전히 나에게 의지했을 시간’이라는 말이 떠올라 한동안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자신의 사회사업과 지난 5년을 부끄럽지 않아 하는 만큼, 그것과 똑같이 하은 군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요? 자신 없습니다. 그의 눈빛과 소리, 냄새와 분위기, 표정과 느낌, 기억과 경험을 생각합니다. 내가 그것을 아주 조금 더 알게 해 주었던 우리가 함께한 시간 속에, 공유하고 경험하여 머리와 가슴에 남은 기억 가운데,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 지난 5년을 돌아봅니다. 새해가 되어 하은 군을 만나면 안아 주겠습니다. 하은 군도 나를 꼭 안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말해 주겠습니다. 고마웠다고, 응원한다고, 선영 씨 말처럼 ‘지켜보겠다’고.‘ 「하은, 가족 23-17, 하은 군도 나를 꼭(2023. 12. 30., 정진호 기록)」 발췌
전임자의 말 따라 하은 군의 지난 5년을 돌아본다.
알아야 할 것, 지키고 익혀야 할 게 많다.
세심하고 꼼꼼히 기록해 놓은 것들 모두 읽고 익히려니 막막하다가도
그래도 이렇게 읽고 익힐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에, 배우고 다짐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다시 한번 전임자의 기록에 수고와 감사를 느낀다.
수많은 기록 중 눈에 띄고 가슴에 남는 문장들이 있다.
전임자의 생각이 깊이 담겨 나에게도 닿은 말이다.
“성이 하, 이름이 은이에요. 온유할 은 자를 씁니다.” (…) 하은이가 가족의 빈자리를 느끼고 더 그리워하고 찾도록 돕길 바랍니다. 그래야 잘 돕는 겁니다. 「하은, 일상 18-1, 온유할 은, 하은(2018. 11. 15., 정진호 기록)」 발췌
“선생님, 은이 부모님한테 부탁하세요. 그럼 되겠네요. 부모님께 부탁하면 은이 일이니까 분명히 들어주실 거고, 부모님 몫이 생기는 거니까 더 좋은 일이고요.” 「하은, 재활 19-7, 무통장입금이 사라졌다(2019. 7. 15., 정진호 기록)」 발췌
힘을 주어 미세하게 바들거리는 은이 손과 노란 손가락 끝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도구를 찾고 사용하도록 권할 것이다. 기록을 남기고 정리하며 고민할 것이다. 곁에서 은이를 거들고 돕는 사회사업가로서 깊이 궁리하고 찾는 것이 그 귀한 의지에 대응하는 것이 아닐까, 보답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은, 재활 20-1, 다시 도구를 찾자(2020. 1. 22., 정진호 기록)」 발췌
‘어떤 소식이든 부모님에게’, 하은 군 가족 관계 지원에서 원칙으로 삼는 생각이다. 중요한 약속과 결심에는 좋은 상황, 좋은 일에 더해 그렇지 않은 상황과 일도 더불어 언급한다. 「하은, 가족 23-9, 어떤 소식이든 부모님에게(2023. 3. 22., 정진호 기록)」 발췌
운동재활 수업이 있어 하은 군 하교를 도우러 학교에 들렀다. 이제 막 출발하려는데 담임 선생님이 불현듯 묻는다. 대비하지 못한 질문이지만 어렵지 않다. 대답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으니까. 어떤 상황인지만 묻고 확인한다. 「하은, 학교(나래중학교) 23-3, 고등학교 진학은 어떻게 할까요?(2023. 6. 7., 정진호 기록)」 발췌
어렴풋이 학교는 이렇게 도와야지, 가족은 이렇게, 학생이라면, 학부모라면. 생각하던 것들이 있었다.
어렴풋해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직접 표현하고 설명해야 하는 것들이 되었다.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하은 군은 이런 삶을 살았구나’, ‘전임자는 이런 생각으로 도왔구나’ 생각하며
여러 번 드는 생각과 말을 정리하고 되뇐다.
2024년이 되고 벌써 하루가 지났다.
오며 가며 하은 군에게 전담 직원이 바뀜을 안내하긴 했지만,
막상 바뀌고 나니 자주 드나들던 하은 군의 집도 이제는 낯설게 보인다.
하은 군도 언젠가는 나를 꼭. 나도 하은 군을 진심으로 안아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런 날을 맞기를 고대하며 하은 군이 사는 304호 문을 두드린다.
2024년 1월 2일 화요일, 박효진
‘나도 꼭 하은 군을’ 박효진 선생님의 진심에 감동. ‘무통장입금이 사라졌다.’, ‘통장이 사라졌다’라는 일지를 쓰고 폐기한 적이 있어요. 괜히 반갑네요. ‘성의정심’ 저도 일지에 썼답니다. 많이 배웠다고. 서무결
①‘새해가 되어 하은 군을 만나면 안아 주겠습니다. 하은 군도 나를 꼭 안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말해 주겠습니다. 고마웠다고, 응원한다고, 선영 씨 말처럼 ‘지켜보겠다’고.’(정진호) ‘하은 군도 언젠가는 나를 꼭. 나도 하은 군을 진심으로 안아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런 날을 맞기를 고대하며 하은 군이 사는 304호 문을 두드린다.’(박효진) 그래요. 다 그런 거죠. 고맙습니다. ②‘전임자의 말’로 지난 글이 읽혔군요. 덕분에 지난 시간 나를 채웠던, 나를 키웠던 생각과 말과 행위를 돌아봅니다. 입주자를 돕는 사회사업 실재에서 혹은 직장 생활의 실재에서 선생님과 나 사이 수많은 이견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로서 선생님을 존경할 수 있는 건 마음 깊이 세운 선생님의 뜻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글로, 말로, 행동으로 빛이 그 뜻을 비출 때 나는 결국 이 일과 선생님의 일을 좋아하게 되어요.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③3.당사자는 사회사업가의 진심을 알아차린다. As a matter of fact, “One cannot not communicate. Activity or inactivity, words or silence all have message value.” Unavoidably, our genuine experience shows through. Clients can hear what social workers truly think, challenging social workers to operate out of a respectful and affirming frame of reference. 「복지영어=사회사업 영문선」 발췌. ‘frame of reference’는 ‘(이해 판단 언행 따위의)준거, 관점’을 말하는데, 사회사업가에게는 ‘성의정심’과 생태 관점‘이라고 합니다. 변통하더라도 중심에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요. 『복지요결』의 ’근본과 변통‘을 찾아보세요. 정진호
전임자의 기록을 읽으며 문장과 뜻을 품으니 감사합니다. 월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