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코믹스의 매력적인 캐릭터 헐크를, 차이니스 타이베이 출신의 이안 감독이 영화화했을 때 많은 미국인들이 가졌던 배신감은, 그들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영웅의 귀환이 아니라 정체성의 혼돈에 시달리는 헐크를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이안 감독의 헐크에게서는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거대한 힘을 갖게 괴물 헐크의 고뇌가 있었지만, 초월적 영웅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제작을 외부에 맡긴 전편과는 달리, 마블코믹스에서 직접 제작한 [인크레더블 헐크]의 감독도 역시 미국인은 아니다. 총알같은 속도감이 지배하는 영화 [트랜스 포터 익스트림](2002년)을 만들었으며 [인크레더블 헐크]로 할리우드에 안착하려는 루이 레테리에 감독 역시, 프랑스에서 태어나 뉴욕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한 프랑스인이다. 그는 이안 감독의 [헐크]와는 다른 시각으로 미국인들의 추억을 끄집어내려고 한다. 물론 그 방법은 정통적인 것이다.
루이 레테리에의 헐크는 마블 코믹스의 원작 캐릭터에 비교적 충실하다. 브루스 배너 박사(에드워드 노튼 분)는 실험 도중 감마선에 노출된 이후 분노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거대한 녹색 괴물 헐크로 변신한다.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브루스 배너 박사가 헐크로 변신하는 모습은, 영화 시작 1시간 이후에 처음 나온다. 그는 치료제를 찾아내서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하려고 하지만 헐크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한 정부에서는 군대를 보내 헐크를 생포해서 그의 특출한 능력을 비밀병기로 이용하려고 한다. [인크레디블 헐크] 역시 헐크를 생포하려는 정부 군대와 그 손길을 피해 달아나는 헐크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후반부에는 헐크에 필적하는 또 다른 녹색 괴물 헐크가 등장한다.
헐크를 추격하는 정부 군대의 책임자 썬더볼트 장군(윌리엄 허트 분)는 베티 로스의 아버지이다. 베티는, 자신의 실패를 덮고 영웅심에 사로잡혀 무리하게 헐크를 생포하려는 아버지에게 강렬하게 반발한다. 썬더볼트 장군은 충성스러운 부하 에밀 브론스키(팀 로스 분)에게 특수 주사를 놓아 괴물로 변신시킨다.브론스키는 헐크의 엄청난 힘의 비밀을 찾아내려다가 스스로 힘의 파괴력에 도취된다. 그는 자신이 더 강한 헐크가 되어 헐크를 파괴하려는 욕망세 사로잡힌다. [인크레더블 헐크]의 후반부는 선한 괴물 헐크와 악한 괴물 어보미네이션으로 변신한 브론스키와의 대결이다. 즉 헐크 대 또 다른 헐크의 파워 대결이 후반부의 대미를 장식한다. 블록버스터로서는 최상의 전력을 펼쳐보이는 셈이다.
브루스 배너 역의 에드워드 노튼은 이미 이중적 자아를 경험한 수많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에드워드 노튼이라는 이름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영화는 수도원 살인사건 재판 이야기를 다룬 [프라이멀 피어]였다. 에드워드 노튼은 변호사 역의 리차드 기어에 맞서서 이중적 자아로 교묘하게 그를 함정에 빠트리는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다. [파이트 클럽]이나 [일루셔니스트]에서도 그는 이중적 모습으로 정체성의 혼돈을 빚어내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인크레더블 헐크]에서의 변신이 뜻밖의 선택은 아니다. 지적이고 섬세하며 부드러우면서도 연약한 이미지의 브루스 배너 박사가, 스스로 분노를 참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거대한 녹색 괴물 헐크로 변신한다. 에드워드 노튼은 관객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할 정도로 섬약한 이미지를 보여주다가 헐크로 변신하면서, 변신이 주는 충격을 극대화한다. 더구나 그는 [인크레더블 헐크]의 각본 작업에 직접 참여해서 그 자신의 이미지를 최대한 헐크 역의 브루스 배너 박사에 삼투시켰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헐크 역의 에드워드 노튼 뿐만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리브 타일러나, 헐크를 추격하는 장군 역의 윌리엄 하트, 그리고 헐크에 맞서 사악한 영웅으로 변신하는 어보미네이션 역의 팀 로스에 이르기까지 주요 스팅이 의외의 인물로 채워져 있다. 지금까지 보여준 이미지를 뛰어 넘는 주요 캐스팅 배역의 변신은 그만큼 성공적이다. 특히 팀 로스는 강한 힘에 대한 욕망과 영웅심에 사로잡혀 거대한 괴물로 변신하는 에밀 브론스키 역을 뛰어나게 표현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헐크가 돋보일 수 있게 하는 환경을 제공한다.
[인크레더블 헐크]의 테마는 변신이다. 평범한 과학자 브루스 배너 박사가 과학실험 도중 실수로 강력한 파워를 얻게 되지만, 그의 변신은 그가 욕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해독제를 찾아 평범한 일상으로 원상복귀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부 군대와 그 하수인인 에밀 브론스키는 더 강력한 힘을 원한다. 욕망의 결과는 파멸이다. 권선징악적인 대중적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힘의 거대한 양대축을 형성해서 전개되는 [인크레더블 헐크]의 내러티브는 지극히 상업적이다. 하지만 감독을 맡은 루이 레테리에는 정교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은 계산된 연출은 관객의 감정선을 조절하며 영화 시작 1시간 뒤에 비로소 헐크가 등장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게 한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변신하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것이다. 그것이 매력적인 이유는 현재의 나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나의 한계를 벗어나 도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러나 원작자 스탠 리는 그것은 위험한 것이며 결코 현실은 좋아지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헐크의 테마는 매우 교훈적이며 대중적이다.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헐크라는 괴물이 주는 비주얼한 측면을 극대화한다. 괴물과 인간의 사랑은 [킹콩] 같은 작품에도 등장했지만, 헐크가 베니 로스를 안고 동굴 속에서 밤을 보내는 장면은 최대한 로맨틱하게 그려져 있다. 이안 감독이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정체성의 혼돈은 [인크레더블 헐크]에서는 최소화되어 나타난다. 또 다른 괴물 헐크가 도시를 파괴하자 오히려 브루스 배너 박사는 자신을 다시 헐크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헐크는,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싶다는, 변신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 욕망은 위험한 것이며 변신은 지금보다 우월한 행복이 아니라 더 끔찍한 파멸을 불러 일으킨다고 경고한다. 이런 대주제를 바닥에 깔고 있지만, 외형적인 내러티브 전개 속에는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 가족간의 갈등, 괴물과 맞서 싸우려는 영웅심 등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 욕망의 모습들이 전개된다. 브루스 배너 박사가 정부 군대의 추격을 피해 달아날 수 있게 도와주는 베티 로스(리브 타일러 분)는 도망 도중 브루스 배너와 섹스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격렬한 애무로 브루스의 심장 박동수가 증가하면서 흥분하게 되자 헐크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브루스는 섹스를 포기한다. 변신의 가능성은 가장 본능적인 인간의 욕구마저 충족시킬 수 없게 만든다.
[인크레더블 헐크]의 화룡점정은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다. 그는 무기제조업자 스타크로 등장해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 맨]의 주인공 스타크 역으로 [인트레더블 헐크]에 등장함으로써 올해 마블 코믹스에서 제작한 두 편의 블록버스터는 서로 허구적 구조끼리 연결되면서 미묘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허구적 진실이 결합해서 현실적 허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