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 공무원인 양훙은 생애 최고의 여행을 하면서도 진저리를 쳤다. 철도부 소속 식음료 제공 책임자인 양은 베이징~라사 노선 개통 기차에 탄 승객 약 800명을 잘 먹여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직원들이 생수와 음료수 100상자, 쌀 500㎏, 밀빵(특히 공기가 희박해 밥을 짓지 못하는 마지막 몇 끼 식사용이다) 3000개를 기차에 실었다. 이제 기차는 세계에서 고도가 높은 철도역 탕굴라에 가까워졌다. 양은 고도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파 난초와 카네이션으로 치장된 식당차 탁자 위에 머리를 기댔다. 직원 한 명은 그날 아침 승객들에게 도시락 500개를 나르고 나자 발에 감각이 없어졌다며 불평했다.
요리사 7명 전원이 구토증에 시달렸다. 얼굴색이 약간 푸르딩딩해진 장웨이화(26)는 주방 벽에 설치된 단자의 튜브를 통해 코로 산소를 들이마시면서 셀러리를 썰었다. 주방은 호박과 당근, 티베트산 들소 고기가 뒤섞여 있는 자루들로 가득했다. 양은 “고통스럽지만 계속 갈 수밖에 없다”고 투덜댔다. 갑자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그러자 그도 생기를 되찾았다. “이제 라사에 거의 다 왔어!”라고 전화기에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42억 달러를 들여 중국과 티베트를 연결시킨 ‘하늘 길’ 칭짱(靑藏) 철도는 정치적인 두통도 일으켰다. 1950년 중국 공산당의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 진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오쩌둥은 세계의 지붕인 이곳까지 철도를 놓고 싶어 했다(마오는 기차를 좋아해 미모의 여승무원들이 봉사하는 특별 객차에서 간이 정치국 회의를 자주 주재했다). 그러나 히말라야 지역은 저항의식이 높은 곳이다. 티베트인들은 1959년 미 CIA가 부추긴 봉기를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그로써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해 지금도 돌아오지 못한다. 근래 들어 발언의 수위가 낮아졌지만 과거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철도가 조국의 “문화 대학살”을 가속화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라사까지의 철도 연결은 약 5년 전에야 공사가 시작됐다. 중국 과학자들이 칭하이(靑海)~티베트 고원의 영구 동토 540㎞을 가로지르는 철도 건설 방법을 개발한 직후다. 그때쯤 ‘자유 티베트를 위한 학생들’ 같은 해외 단체의 운동가들이 철도 건설 반대 운동을 조직했다. 환경 훼손, 한족의 티베트 경제 지배, 티베트 소수민족의 문화 동화를 가속화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내가 라사행 기차를 타고 떠나기 하루 전 당국은 베이징 역에서 외국인 시위자 3명을 억류했다.
베이징~라사선 개통 기차의 보안 검색은 매우 까다로웠다. 4000㎞의 철도 여행은 7월 1일 오후 늦게야 시작됐다. 객차가 랩톱·카메라·휴대전화·비디오 편집장비를 끌고 타는 관광객, 정부 관리, 기자들의 임시 숙소로 변한 데다 어느 철도여행에나 골칫거리인 물자 운송 문제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일반적인 철도여행이 아니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칭하이성의 척박한 거얼무(格彌木)와 티베트의 라사를 연결하는 새 철로의 개통 테이프를 끊으면서 현대 공학의 “기적”이라고 치하했다.
기차가 베이징에서 출발하자 중국인 승객들의 얼굴에는 긍지와 애국심이 역력했다. 한 중국인 승객은 TV 카메라의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흥분해 말했다. “외국인들이 우리가 결코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일을 중국이 이뤄내 너무 자랑스럽다.” 그는 1등실 침대차(일인당 요금 약 15만1000원이며 침대 4칸, 평면 TV를 이용한다)에서 편안히 여행했다.
중국 외교부가 초청한 외국 기자 약 40명은 딱딱한 침대가 설치된 2등실 두 량에 탔다(일인당 약 9만8000원, 3층 침대와 무료 실내화가 지급된다). 기자들로서는 기사 송고용 전원을 계속 공급받는 일이 최대 문제였다. 베이징에서 두 시간쯤 벗어나자 모든 전기 소켓에 수많은 전자 기기가 꽂혔다. 기자들은 세면대 곁의 바닥에 주저앉아 랩톱 컴퓨터를 면도기용 소켓에 꽂았다. 거의 모든 시설과 마찬가지로 화장실(객차마다 두 개)도 일반 중국 기차에 설치된 것보다는 더 현대적이었다. 그런데도 외국인 기자들은 변기에 쪼그려 앉아야 했고, 기차가 흔들리고 비틀거리는 바람에 몹시 힘들어 했다. (몇몇 기자는 다른 객차에 제대로 앉아 볼일을 볼 만한 변기가 설치된 넓은 장애인용 화장실을 발견하고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고 자기들만 이용했다.)
그러나 약 500명에 이르는 관광객은 기삿거리를 원하는 기자들에게는 더없이 손쉬운 공략 대상이었다. 어둠 속에서 기차가 서쪽으로 달리는 동안 나는 딱딱한 좌석이 설치된 3등실을 돌아봤다. 그곳의 승객들은 48시간 동안 등받이 높은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다(일인당 약 4만8000원, 여행 막바지가 되자 몇 명은 바닥에서 선잠을 잤다). 몇몇 승객은 집으로 돌아가는 티베트 대학생들이었다.
그중에 베이징의 소수민족대학에 다니는 바이마 구주(27)도 있었다. “베이징에서 라사를 잇는 기차가 생기면 고향에서의 일자리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기 때문에 좀 걱정이 된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티베트는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너무 오래 닫혀 있었다. 생활 수준을 높이려면 많은 발전이 필요하다.” 그는 중국인 관광객과 이주 노동자들이 티베트에 유입되면 “전통 문화에 치명타가 되지만 발전하려면 그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다음날 나는 좀 더 안락한 식당차로 갔다. 그곳에서 미국 메릴랜드주 게이더즈버그에 사는 중국 태생 생물의학자 존 류를 만났다. 류(나와 같은 집안이 아니다)는 베이징의 친척집에 가 있는 동안 1등실 기차표를 어렵사리 구했다며 “기회가 좋아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호텔은 예약도 못했다. 잘못하면 기차역에서 자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만난 티베트 대학생의 견해를 그대로 반복했다. “티베트를 1000년 전의 상태로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당신네 기자들은 중국인들이 티베트 경제를 지배하게 됐다고 쓰겠지만 사실 베이징만 해도 힘든 일의 대부분은 쓰촨이나 다른 지방에서 온 이주 근로자들이 한다. 따라서 그들은 티베트뿐 아니라 베이징에서도 주민들의 삶을 바꿔 놓는다.”
기차 승객 중에는 늘 괴짜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기차의 괴짜는 아이버 워버튼이었다. 30년 동안 철도 관련 사업을 해 온 영국인 ‘기차광’이다. 그는 베이징~라사 철도 여행을 “경이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 이번 여행은 즐거움만이 아니라 사업이기도 했다. 워버튼과 외국인 동료 2명은 레일 파트너스에서 일한다.
그들은 베이징 올림픽에 맞춰 2008년 초에 초호화판 탕굴라 특급열차 서비스를 개시할 생각이다. 전용 화장실, 전망창, 미니 바, 위성 TV,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독일제 미니 주방 등을 갖춘 5일간의 베이징~라사 철도여행 서비스다(지상 관광을 포함해 하루 약 98만원). 워버튼은 “티베트까지 철도가 개통되면서 고급 여행 상품에 관심이 커졌다…. 물론 비행기로도 갈 수 있지만 비행기를 타면 티베트가 세계에서 과연 어떤 곳인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며 “하지만 기차를 타면 차창 밖으로 끊임없이 드라마가 펼쳐진다”고 말했다.
워버튼은 우리 기차가 통과하는 모든 역을 적은 손때 묻은 목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각 역의 이름 옆에 도착시간을 적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기차가 역에 멈출 때마다 예정보다 점점 더 일찍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칭하이성 거얼무역(바로 얼마 전 새로 개통된 철로 구간의 시발점)에는 예정보다 거의 한 시간 일찍(월요일 오전 5시30분쯤) 도착했다. 중국 철도 관리들이 정시 운행에만 만족하지 않고 오로지 절대로 연착하지 않겠다는 일념에서 운행시간을 앞당기려고 애쓴 결과가 분명했다.
사흘째가 되자 기자들의 모습은 초췌해져 갔다. 거얼무역에서 철도 관리들은 객실에 산소를 틀었다. 뇌와 폐에 생기는 치명적인 부종(浮腫)을 일으킬지도 모를 고산병 증상을 최소화하려는 첨단 노력의 일환이었다(나는 고산병에 대비해 디아목스를 복용했기 때문에 미미한 두통만 겪었다). 희박한 공기 때문에 다른 문제도 생겼다. 감자튀김 봉지가 터지고, 만년필의 잉크가 새고, 몇몇 랩톱 컴퓨터와 i팟이 작동되지 않았다. 내가 탄 객차에 의료진이 부산을 떨며 몇 차례 다녀갔다. 고산증을 호소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게우고 나면 나아질걸”이라고 의료진 한 명이 동료에게 중얼거렸다. 한번은 정비사가 플런저(피스톤 달린 압착기)를 들고 황급히 지나갔다(이런 일은 기차에선 좋은 조짐이 아니다).
탕굴라의 약 5100m 고도에 가까워지자 여기저기에 얼굴이 푸르게 변하는 승객이 많아졌다. 관리들은 긴급 ‘안전 회의’를 소집했다. 그때가 사실 우리 여행에서 여러모로 중대한 시점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기차를 떠나지 말도록 결정했다. 건강상의 이유 때문이었다.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기차가 지나갈 때 10여 명의 공안원이 늘어 서서 경례를 했다.
그러나 기차 애호가인 워버튼의 말은 옳았다. 차창(자외선 차단 코팅이 돼 있다)을 미끄러져 지나가는 풍광은 정말 잊기 힘들다. 쿤룬(崑崙) 산맥의 백설 덮인 봉우리들이 황량한 고비 사막 위로 불쑥 솟아났다.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 영양 떼와 야생 나귀들이 기차를 피해 우르르 도망치거나 신기한 듯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토실토실한 금빛 마멋들이 땅굴에서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차내 방송에서는 마멋이 선(腺)페스트균을 옮긴다고 설명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약 50m 거리마다 중국의 무장 공안원이 선로 곁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때로는 기차를 향해 경례를 하고 때로는 기차를 등지고 못 본 체 서 있었다. 늘 꼿꼿한 차례 자세였다. 라사에 다가갈수록 공안원의 정복은 더 단정해졌다. 헬멧과 방탄조끼까지 갖춘 모습이었다. 인적 없는 고원지대 한가운데서 우리 기차를 향해 경례를 하는 고독한 공안원의 모습이 연속 나타나는 광경은 정말 초현실적이었다.(“철로를 지키는 겁니다”고 한 외교부 관리가 설명했다. 도대체 어떤 위협에서 철로를 지키는 걸까? “그건 나도 몰라요.”) 또 우리는 짙은 녹색 군용차 수백 대를 지나쳤다. 티베트에 중국 인민해방군이 많이 주둔하며 그들이 중국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광경이었다.
우리는 라사의 리우역에 예정보다 몇 분 일찍 도착했다. 꼬박 이틀 동안 기차라는 격리된 공간에 앉아 차창을 보며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들소들과 선페스트를 옮기는 마멋, 그리고 경례를 붙이는 공안원들의 모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터라 목적지에 도착하자 혼란스러운 현실 세계에 갑자기 들어선 느낌이었다. 젊은 티베트 여성 환영단이 전통적인 흰 스카프 하다를 우리 목에 걸쳐주려고 허둥지둥 뛰어다녔다. 기자들은 한시라도 빨리 호텔로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기차 안에서는 휴대전화 신호와 GPRS(범용 전파 서비스)를 이용한 인터넷 접속이 일시적으로만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떠나는 승객들, 수하물, 흰색 스카프, 기념 촬영으로 승강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우리 기자 몇몇은 현지 관리가 마련해 준 차량을 타고 그곳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그러나 30초 정도 질주했을 때 차문이 잠긴 경찰 차량 한 대가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는 칭하이~티베트 철도의 ‘하면 된다’는 정신을 발휘해 그 경찰차를 손으로 밀어내기로 했다. “너무 힘쓰지 마세요. 숨이 찰 겁니다. 여기선 위험한 일입니다”고 한 관리가 말했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게다가 범죄행위죠.” 그래도 우리는 약 길이 9m인 무거운 SUV를 들어올려 우리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한쪽으로 치웠다.
이전에 라사를 방문했을 때와 달리 거리에는 힘센 SUV, 번쩍이는 새 호텔, 노래방이 훨씬 많이 보였다. 과거 달라이 라마의 주거지였던 전설적인 포탈라궁에서 멀지 않은 곳의 성스러운 산 꼭대기에 설치된 송신탑은 이제 붉은 네온사인으로 뒤덮였다. 우리는 안락한 3성 호텔에 도착했다. 로비는 거대한 금괴처럼 생긴 번쩍이는 수정으로 장식됐다.
자정이 지난 직후 나를 포함해 동료 여럿이 호텔방에서 전화를 받았다. 부드러운 목소리의 여성이 중국어로 말했다. “마사지 하실래요?” (중국 서부 지역에서 흔한 일로 대부분 매춘 행위와 다름없다.) 세계의 지붕을 달리는 새 철도는 좋든 나쁘든 라사를 여느 중국 도시와 더욱 닮아가도록 할 듯하다.
너무 잘 만들어서 고산증에 걸린다는 열차...그냥 일반 열차라면 올라가면서 적응될텐데, 적응 할 틈도 없게 산소를 뿜어대니 고산 적응이 안된 고산증에 걸린다고 합니다. 고산증이 염려 되는 사람은 불편하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버스를 타는 것이 제일 좋겠고...아님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들어가서 며칠 동안 적응기를 거치는 것 뿐...열차나 비행기로 가면 보통 50% 정도가 고산 증세를 느낀답니다...
제가 지난달에 라싸 갔다온 경험을 말씀 드리자면 현지적응이 중요하며. 고산병은 건강한사람,체질과 무관하게 다가 오며 주 특징이 어지럼증, 두통, 메스꺼움이 함께동반되는 병으로 본인도 다소 어려움을 겪었으나 현지에서 판매하는 홍경천이나 고원정 알약복용이 요구되며, 심할시에는 인근보건소가서 주사를 맞아야 회복됩니다 그리고 물을 많이 마시고, 과일등 당류섭취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이상 참고하세요
첫댓글 언제쯤 타볼수있을까나...???!!!!ㅠㅠㅠㅠㅠ
내년 여름 호화호특형님(=딸)네 갔다와서 타보도록 함이 어떨지.......
좋죠.....!!!! 나도 가도 되남유~~~!!!????^^*
꼭 타보고 싶습니다..
중여동에서 팀 만듭시다.
그럽시다. 언제 한 번 같이 갑시다..몸이 쪼매 나아지니 너무 아쉽네요...기왕이면 방학 때 맞추어서...
너무 잘 만들어서 고산증에 걸린다는 열차...그냥 일반 열차라면 올라가면서 적응될텐데, 적응 할 틈도 없게 산소를 뿜어대니 고산 적응이 안된 고산증에 걸린다고 합니다. 고산증이 염려 되는 사람은 불편하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버스를 타는 것이 제일 좋겠고...아님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들어가서 며칠 동안 적응기를 거치는 것 뿐...열차나 비행기로 가면 보통 50% 정도가 고산 증세를 느낀답니다...
제가 지난달에 라싸 갔다온 경험을 말씀 드리자면 현지적응이 중요하며. 고산병은 건강한사람,체질과 무관하게 다가 오며 주 특징이 어지럼증, 두통, 메스꺼움이 함께동반되는 병으로 본인도 다소 어려움을 겪었으나 현지에서 판매하는 홍경천이나 고원정 알약복용이 요구되며, 심할시에는 인근보건소가서 주사를 맞아야 회복됩니다 그리고 물을 많이 마시고, 과일등 당류섭취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이상 참고하세요
뉴스보니까 이거타고 가다가 고산병으로 운명을 달리한사람이 많다고 하더라구요.,타기전에 건강검진을 한번 받아보는게 좋을꺼 같아요^^
건강 검진도 아무 소용 없답니다. 그저 적응이 잘 되는 사람, 안 되는 사람의 구분이 있을 뿐...재즈님 정보가 참 좋은 정보입니다.
이상하리만큼 난 티벳 라싸가 땡기지는 않더군요..근데...이 기차는 함 타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