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피랑 골목 길의 끝에 만난 통제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전에 왔을 때는 세병관만이 온전한 건물이었으며 주변으로는 복원공사를 한다고 복잡하였데 지금은 완전하게 복원하여 놓았다.
서피랑 공원에서 바라볼 때 한옥마을처럼 보였던 것이 다 통제영에 속한 건물이었다.
통제영 정문의 역활을 하는 루각에는 일본을 살펴 본다는 뜻의 망일루란 편액이 붙어 있다.
삼도수군을 총괄하는 지금의 해군참모총장이 근무하는 곳이 삼도수군통제영이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 선조가 삼도수군통제사란 직책을 만들어 전라좌수사인 이순신 장군으로 하여금 겸임하게 함으로써 비롯하였다.
한산도에 있다가 전란에 휩쓸려 이곳저곳을 떠돌다 1603년 제6대통제사 이경준이 현재의 자리로 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통영이란 이름도 예서 나왔으니 통영에서 이곳이 갖는 상징성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고려와 조선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바로 왜구요
후에는 일본이었다.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적들을 막아야 하는 수군의 역할에서 일본을 감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
망일루
드나드는 수군의 결심을 다짐하게 하기에는 이 이름 보다 더 할 게 없다.
망일루를 지나면 나타나는 문이 지과문이다.
창으로 대변하는 병장기를 멈추게 하는, 즉 전쟁을 끝내겠다는 의지를 나아가서
전쟁을 억제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평화의 문
.
3문의 솟을대문이니 당연히 동입서출이 적용된다.
사당의 삼문이 아니니 가운데는 임금만이 드나들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세병관이 객사로 중앙의 관리가 묵는 시설이며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예를 갖추는 공간이기에
이러한 삼문을 갖추었을 것 같다.
국보 305호 세병관
규모가 갖는 위엄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우수영이 있는 여수의 진남관과 함께 규모의 미학을 보이는 건물이다.
일제시대 통제영의 부속건물은 훼철되고 세병관만 남아
역사를 말하고 있던 건물이다.
일본도 차마 없애지 못할 위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세병 두보의 시 한 구절인 은하수를 끌어 피뭇은 병장기를 씻는다는 뜻의 만하세병에서 따왔다.
전쟁의 그침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뜻으로 군사령관이 머무는 곳의 미름으로 맞춤하다.
통제영의 객사로 중앙에 높은 단이 있어 임금을 대신하게 했고
정면 9칸 측면 5칸의구량의 단층 팔작집으로 여수 진남관과 경회루와 더불어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이다.
꾸밈이 없어 오히려 규모가 주는 위압감이 돋보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마루에 올라 다리쉼을 했는지 마루가 번들번들하다.
목조건물의 수명은 사람이 드나들 때 더욱 오래 간다고 하는 말을 실감한다.
마루 위에서 쉬는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평화로움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선들 부는 바람에 때이른 여름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가 씻긴다.
한 때는 세상을 호령했을 통제사들의 송덕비가 통제영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께져나간 비편에 묻어나는 무상함도
다 우리의 미래.
오늘의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