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동명성왕의 장자 비류가
도읍으로 하려다 실패 따르던 신하들은
동생 온조왕에게 합류해,,
옛이름 미추홀, 제물포,
1883.1.1 인천항 개항
월미도 전경 사진
지금은 육지와 연결
인천항 내항과 월미도
하와이로 이민가는 사람들
자유공원 홍예문 인천에서 유일
일인들이 차지한 거리
서양식 건물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작약도에 고아원이 있었다고??
인천 공설 운동장
국가적인 행사때마다 인천 시내 모든
중고생들이 여기모여,,,,,,,,
일년에 한번은 체육대회도 열려,,,,,
참 넓었었는데,,,,,지금은 멋진 구장으로 변모
내동 교회
답동 성당
전도관
높은 곳에 있어서 어디서나 보였다
동인천역전 넓직하네,,,,70년대인듯
간석 오거리 신도시는 전부 이밖으로,,,,,
지금은 없어진 송도 유원지
소래 협궤열차
여기가 진짜 제물포
인천 상륙작전
폭격으로 파괴된 인천시내
문학산
눈만 뜨면 눈앞에 보이던 배꼽산
이 산을 보고 자랐다
배고파 칡뿌리 캐러 가기도하고
저산 넘어 시집간 옆집 친구 누나네 놀러가서
무릇 곤거 맛있게 먹고 온 기억,
산 위가 넓직 했는데 돌무더기가 무덤모양으로
된 위에 올라가 쾅쾅 뛰면 쿵쿵 소리가 났다
그래서 배꼽산이라 불렀나보다
중학교 때는 전교생이 식목일에 나무 심으러 가고
깡통과 나무찍개를 가지고가서 송충이도 잡았다
지금은 어디서도 전경을 보기 어려워,,,,
인천 성냥공장
성냥공장에서 일감을 가져다가
마당에 널어놓은 성냥갑 성냥개비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성냥갑은 종이처럼얇은 나무편에 종이를 붙여서 만들었다
주안 염전
주안역 바로 옆이 염전이었다
여름엔 친구들과 염전 저수지로 수영하러 갔다
난 수영도 못해 구경만 하는데,,,,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우리보다 나이 든 사람이 부르던 노래소리가 생각난다,
개건너가는 다리
없어진지 오래,,,,,주거지로 변했을 터,,,,
인천 소년 형무소
나 다니던 국민학교 가까이에 있었다
죄수들이 와서 학교변소 똥푸는 일을 했다
똥통을 두사람이 메고 나르는 데,,,
서로 마음이 안맞아서 투덜대고 싸우는데
욕하면 간수에게 혼나니까 ,이사람이,,,
형무소가서 연극 구경도 했다
(아마 교화 활동으로 그런 행사도 ,,,,)
인천앞 무인도 작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