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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따라 물따라 천리길
주왕산 가는 길목에서 ‘ 한국 정신문화의 首都 ’를 그냥 지나칠 수 있느냐 고 소매를 끌어당기는 곳이 있다. 안동시가 내 갈 길을 막아 선다. 하회마을, 도산서원, 이육사문학관, 봉정사 등 수많은 문화유적을 품고 있는 선비의 고을, 안동시는 스스로 ‘한국 정신문화의수도’라고 자랑한다.
먼저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하회마을로 직행한다.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우리나라 대표적인 同姓마을이다. 하회장터에서 마을근처까지 유료 전용버스가 운행하고, 해설사 한 사람씩 따라붙어 마을을 돌며 해설 해준다. 외국인 관광객도 여러 사람 눈에 띤다. 하회마을에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다녀가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세계에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뜨거운 정오의 햇살을 그대로 받으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나온다. 잘 보존된 기와집, 초가집에서 옛 집성촌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수백 년 묵은 노송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그 위로 솟은 기암절벽의 부용대가 절경을 이룬다. 높은 곳에 올라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河回마을의 유래가 된 주변의 전경을 사진에 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다. 햇볕도 뜨겁거니와 다음 일정도 생각해서이다.
안동호 상류 쪽으로 꼬불꼬불 깊숙이 들어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서 한 무더기 기와집을 발견한다. 유명한 도산서원이다. 정면으로 안동호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멋과 서정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이곳이 해동주자라 일컬어지는 한국 최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퇴계가 작고한 후 제자들과 유림에서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도산서원을 건립했다. 1575년 선조대왕으로부터 한석봉 친필 편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고 전한다.
도산서원 앞마당에서 바라보이는 강 건너편 정면에 조그만 동산처럼 쌓아놓은 단이 있다. 퇴계선생의 학덕을 흠모하던 정조 대왕이 어명으로 특별과거인 ‘도산별과’를 보인 시사단(試士壇)이라고 한다.
벤치에 앉아 안동호를 바라보며 땀을 식히고 상류 쪽으로 10여분 달리면 이육사문학관이 길가에 세워져있다. 주인공의 호는 육사(陸史), 본명은 원록(源祿)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저항시인이며 독립 운동가이다. 주변에는 이육사의 생가, 묘소, 작품을 낳은 청포도샘, 칼선대, 동구나무터, 붉은바위 등이 산재해 있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먼저 2층 영상 실로 안내된다. 영상물과 전시된 자료를 보면서 그동안 피상적,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이육사에 대하여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운다.
다시 안동시내로 들어오니 해가 서산에 걸쳐있다. 月映橋에서 데이트하는 청춘 남녀, 호수에 드리운 그들의 그림자가 아름답다. 월영교위에 보름달 두둥실 뜬 모습을 보지 못하고 청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청송에서 이름난 달기약수터로 달려간다. 약수터에서 저녁식사를 하도록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약수터는 음식점과 민박집으로 꽉 차있다. 음식점 메뉴는 대부분 ‘약수에 삶은 닭’이다. 달기약수 백숙, 기대보다 특별한 것 같지는 않다.
식후에 청송읍 외곽 덕천동에 위치한 송소고택 단지를 찾아간다. 숙소를 그곳에 예약했기 때문이다. 송소고택은 청송심씨의 고택이다. 조선시대 전형적인 부잣집 형태로 지은 7개동 99칸에 이르는 옛 기와집이다. 예약한 숙소는 송소고택의 바로 옆에 위치한 창실고택이다. 모두 옛날 만석군 청송심씨 일가의 고택들이다. 하룻밤을 지내면서 옛날 부자들의 주거생활을 체험해보려는 뜻이다. 고택의 안주인은 옛 부잣집의 맏며느리처럼 후덕하다. 객(客)이 불편 없도록 이것저것 세심하게 보살펴준다. 화장실이 현대식으로 개조는 되었지만, 침실과 약간 떨어져 있다는 것이 익숙지 못한 나에게는 좀 불편했다.
이른 아침 사랑채 미닫이 창문을 열어 보니 시골마을에 안개가 자욱이 가라앉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청송의 대표적인 명승지 주왕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계곡에 들어서니 거대한 암벽이 하늘을 가리고 列兵하듯 첩첩이 늘어서 있다. 주왕산은 해발 720m의 산으로 숱한 전설과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당나라 周王이 이곳에 숨어살았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계곡을 따라 산에 오르는 길은 등산길 이라기보다는 평탄한 산책길이다.
적어도 내가 올라가본 제3폭포까지는 그렇다. 짙어가는 녹음은 등산길을 지붕처럼 덮어 햇볕을 가려준다. 억겁을 쉬지 않고 흐르는 계곡물의 힘으로 바위 바닥을 후벼내 폭포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소(沼)를 만들기도 한다.
등산객은 제일폭포, 제2폭포, 제3폭포 등의 안내판을 지나면서 사진도 찍고 즐겁게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간간히 뿌리던 가랑비가 제3폭포에 이르렀을 때는 제법 빗방울이 굵어진다.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이 무리일 듯싶어 하산하기로 결정한다.
영덕으로 빠져 나가 울진을 거쳐 해지기 전 덕구온천에 도착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 이다. 청송 떠날 때 내리기 시작한 비가 영덕을 지나 울진에 들어설 때까지 세차게 내린다. 심한 가뭄으로 안동호 상류가 바닥을 들어난 것을 보면서 비가 많이 내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도 잠시뿐, 모처럼 여행 중에 웬 비야 ! 전망 좋은 해변에 차 세우고 사진도 찍고 놀다 가야 하는데...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을 바라보는 농촌사람들을 생각하며 다시 본심으로 돌아간다.
죽변포구에 도착하니 비가 그치고 석양 햇살이 쨍하게 비친다. 덕구온천 콘도에 여장을 풀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이른 새벽에 온천 뒤쪽 응봉산에 오른다. 해발999m로 비교적 높은 산이다. 특별한 것은 세계의 유명한 다리의 모형을 제작해서 등산길 계곡 곳곳에 설치해 놓은 것이다. 세계의 유명한 다리 20여개를 하루아침에 건너보았으니 의미 있는 등산이었다. 응봉산 중턱에 천연 온천수가 용출하는 덕구온천 원 탕이 있다. 그 온천수는 계곡을 따라 설치된 이중 보온 관로를 통해 덕구온천으로 들어온다. 덕구온천은 천연용출 온천수를 크게 자랑한다.
온천수로 여독을 풀고 강릉쪽으로 이동한다. 정동진 모래시계 앞에서 사진한장 찍고 2박3일의 여정을 모두 마친다.
나이 들어서 여행 하려면, 국내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이리저리 쏴 다니지 말고 맘에 드는 한 곳에 며칠씩 머물러야 한다고 한다. 천천히 주변 둘러보면서, 생각할 여유를 갖는 것이 유익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목표 잃은 사람처럼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얻은 것이 무얼까 생각해 보니 가 보지 못한 곳 점 하나씩 찍고 온 것뿐이다. 김 창 진 |
첫댓글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조선팔도를 휘젓고 다니시는 덕에 저같은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함께 유람을 하니 이 또한 고마울 수가...
아주 좋은곳 다녀오셨습니다.다음에 이같이 멋진곳 갈때 좀 동행합시다.
저의 고향 정동진에 갔다오셨네요 여행이란 떠난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은것이지요
잘구경하였습니다 예전에 다 다녀온 곳인데 다시한번 가보고 싶네요
멋집니다 . 훌적 떠날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저것 재다가 보니 세월만 갑니다.
상당히 오래전 몇번 가본기억이 있습니다. 다시한번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