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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5주일설교 고린도후서11:16-33(내가 자랑하는 것은)
본문: 고린도후서11:16-33
제목: 내가 자랑하는 것은
오늘은 고린도후서 11:16-33의 말씀을 가지고
“내가 자랑하는 것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내가 자랑하는 것은”
몇 살 적인지 기억이 정확히 나지는 않지만
나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을 만나고 오셨습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자식을 자랑하였는데
그것을 들으시고는
어머니도 자식 자랑을 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자식이 일곱이나 되지만 자신은
자식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하시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자식으로서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식 자랑하는 많은 부모들을 봅니다.
손자 손녀들 자랑하는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봅니다.
그들의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생각 몇은
“그것이 자랑거리인가?”라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이지 정말 그런가?”라는 생각입니다.
대게 자랑하는 것을 보면 침소봉대합니다.
한 가지 잘 한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잘한 것처럼 말합니다.
조금 잘난 것을 가지고 세상 최고 잘난 줄 압니다.
그래서 그들의 자랑을 듣다 보면
천재 아닌 자녀가 없고
최고로 뛰어난 손자가 아닌 자가 없어 보입니다.
물론 내 자식, 내 손자가 하는 일이니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습니까?
자랑스러운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을 내세워
뭔가 나를 높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을 내세워 뭔가 나를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게 자랑하는 마음 이해를 하려고 들면
물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제 친구들은 상당수가 자녀를 시집 장가를 보내고
그래서 손자 손녀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손자 손녀들의 모습과 재롱을 자랑합니다.
자랑을 하면 벌금을 내기로 해서
덕분에 자랑했다고 벌금을 내라고 해서
잘 얻어먹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나도 자랑하고
한턱내고 싶은 때도 있기도 합니다.
사람이 자랑하고 싶은 것은 근본 욕망인가 봅니다.
요즘은 카톡도 있고 페이스 북등
많은 자랑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랑을 하고 그것에 좋다고 해주면 좋아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무슨 자랑을 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자랑하십니까?
1.자랑하겠다는 바울
이이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는 뜻입니다.
곧 어떤 적을 이용하여 다른 적을
제어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세상은 누군가 자랑을 하면
그보다 더 큰 자랑을 하면 그 자랑했던 사람은
부끄러워 더 이상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랑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문제가 생기고 교회가 혼란해 지고
잘못되어 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탄의 일꾼처럼 광명의 천사로
보여 진 자들의 자랑으로 인하여
고린도 교인들은 어리석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된 예수를 따르지 않고 잘못된 예수를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따르지 않고 사탄의 영을
예수의 복음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복음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자랑은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길을 추구하게 합니다.
자랑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길을 추구하게 합니다.
거짓 사도들의 자랑은 고린도 교인들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자랑을 잘해야 합니다.
자랑은 따라서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자랑을 할 때 부러운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부러운 마음이 생기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진다고 합니다.
그를 따라가고 싶기에 그것은
그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하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
그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자랑하는 사람을 따라서 자랑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자신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자신도 좀 어리석어 지겠다고 합니다.
자신이 어리석어 지는 것을 좀 용납해 달라고 합니다.
어째서 그렇게 지혜로운 바울이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자신이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지만
좀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자랑하겠으니 자랑하도록 해 달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하더라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은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하는 말이
주님의 지시에 따라 하는 말은 아니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나도 어리석음에 빠져서
자기 자랑거리를 자랑하듯이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신을 가지고 자랑하니
자기도 좀 육신을 가지고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속된 것을 가지고 자랑하니
나도 속된 것을 가지고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실상 스스로 지혜롭다고 말하는
고린도 교인들은 어리석은 사람들
곧 거짓 사도와 일꾼들을 잘도 참고 참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무엇을 행해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따라서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어리석음을 고발합니다.
거짓 사도들은 그들의 자랑을 통해서
고린도 교인들을 종으로 만들었어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더 나가 자신들을 잡아먹어도 전혀 거부하지 않고
날 잡아 잡수시요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더 나가 고린도 교인들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도
전혀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가 그들의 뺨을 치며 모욕을 하여도
그냥 대 주고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고
나는 그 길을 잘못되었으니 가지 않겠다고 반항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참아주기만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처럼은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들처럼 종으로 만들고, 잡아먹고, 소중한 것을 빼앗고,
모욕하여 뺨을 치지는 않겠다고 합니다.
자신은 부끄럽게도 너무 약해서
그런 짓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이 했던 자랑을
똑같이 해보겠다고 합니다.
자랑해서 내가 어리석어 진다고 해도
나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바울 자신도 자랑한다고 하는 것일까요?
2.바울은 자랑!
그렇다면 바울이 자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이 먼저 히브리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합니다.
더 나가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히브리 사람, 이스라엘 사람,
아브라함의 자손은 같은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일컬어 애굽 사람들을 히브리 사람
곧 홍해를 건너온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스라엘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이나 하나님의 말씀의 정통성은
히브리 사람이고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더 나가 자신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합니다.
미친 사람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자신도
그리스도 일꾼이라고 합니다.
거짓 사도들이 그렇게 말했던 듯합니다.
자신은 히브리 사람이고, 이스라엘 사람이고,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그리스도의 일꾼이니
자신들이 하는 말이 거짓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자신들이 전하는 말씀이 옳다고 말하는
정당성이라고 한다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자신은 그 부분에서는 그 어느 누구 못지않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 사이에 자신의 신앙의 정당성을
말할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몇 대째 신앙생활 했다.
유아 세례를 받았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측이다! 라고 자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소망교회 다닌다.
새문안교회 다닌다.
온누리 교회 다닌다고 자랑합니다.
그 말은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신앙이 좋고
정당성이 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부분에서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3대째 신앙 생활했고,
장자교단이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교회를 다니고 ,
또한 목사로 거의 30년을 지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슨 자랑이 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자랑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엇을 말할 수 있습니까?
검사면 법을 잘 지킵니까?
판사면 정의롭습니까?
검사나 판사를 몇 년 했는가가
법과 정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몇 대째 신앙생활 했고,
모태 신앙이고, 어디 소속이고 어느 교회 다닌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신앙을 보장해 줍니까?
그 사람의 신앙이 바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종종 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들이 신앙이 좋은 줄 압니다.
큰 교회 소속이고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니
자신들이 신앙은 올바르고 개척교회나
농촌교회 성도들은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신앙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큰 교회 장로였고,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헌신적이었고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절대로 겉으로 보여 지는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의 신앙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그런 것을 자랑하며 자신의 전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화가 나서 그런 것을 자랑하려면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미친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겪었던 일들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가 자랑하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자랑이라고 하면 영광스러운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하는 자랑은
전혀 영광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요?
그가 말하는 진정한 자랑은 무엇이었습니까?
3.진정한 자랑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영광스런 부분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일꾼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인정을 받았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어떤 자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실 목사가 되면 누리는 것이 많습니다.
사례비를 줍니다.
교인들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해줍니다.
교인들이 맛있는 것 좋은 것을 줍니다.
설교에 은혜 받았다고 칭송을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어떤 위대한 사도보다
자신이 못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사실 바울이 얼마나 놀라운 사역이 있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곳에 교회를 세웠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습니까?
그래서 어떤 이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다 주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수고한 것을 자랑합니다.
그 누구보다 그 위대하다는 그 어떤 사도보다
자신은 수고를 더하였다고 자랑합니다.
수고했을 뿐 아니라 복음을 위해
감옥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한번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더 많이 했다고 합니다.
바울이 보낸 편지 중에 옥중서신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매를 맞아서
여러 번 죽을 뻔 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무슨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그렇게 매를 맞았습니다.
특별히 유대 사람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았습니다.
일반적으로 40대의 매를 맞으면 죽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비를 베푼다고 거의 죽기 전까지 때리는 경우를 사십에서 하나를 감해서 매를 맞는다고 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한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섯 번이나 그랬다고 말합니다.
매만 맞은 것이 아니라 채찍으로도 맞았습니다.
채찍은 아마도 군병들에게 맞았을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돌로도 맞았다고 합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었듯이
바울도 그렇게 돌 맞은 적이 한번 있었다고 합니다.
거의 죽었다가 은혜로 깨어 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배를 타고 가다가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다고 합니다.
선교 여행하는 동안 강물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들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의 위험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얼마나 수고했겠으며,
고역에 시달렸으며 잠을 못자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그런 육체적으로 고통을 겪었을 뿐 아니라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자신의 마음을 눌렀다고 합니다.
내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들
곧 세상적으로 영광스러운 것들이 아니라
약점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구체적인 일을 말합니다.
자신이 다메섹에 갔다가
아레다 왕의 고관이 자신을 잡으려고 해서
성도들의 도움으로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그 얼마나 무서운 상황입니까?
그 성벽으로 광주리를 내려서 그것을 타고 갈 때
들키는 날이면 꼼짝없이 잡히거나
떨어져 죽을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무슨 자랑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그것이 자랑입니까?
그의 자랑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자신이 한 수고와 고역과 당한 위험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참 이상한 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이야기 할 때
무엇을 영광이라고 합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광이 무엇입니까?
하늘 보좌에 올라가시는 것입니까?
그것을 영광이라고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고 침 뱉음을 당하고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요한복음17:1에 십자가를 앞에 두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는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
자신이 영화롭게 되는 것이고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알고 계셨고
그래서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다고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셨을 뿐 아니라
그렇게 십자가로 가셨고
그 길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세상에서 심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바울도 그런 예수님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자랑한 것이 있다면
예수님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화롭게 하셨듯이
자신도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곧 하나님께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그 자랑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슨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그 자랑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살리고 있습니까?
그 자랑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그 자랑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습니까?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자랑이라고 하는 것은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드러나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자랑하여 내가 드러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예수님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드러나는 자랑을 하는 자가 아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애쓴 것이 무엇입니까?
하지만 그런 것이 많을 지라도
바울처럼 어리석게 자랑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울은 어리석은 세상 자랑으로
다른 이들을 잘못 인도하는 자들 때문에
자랑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묵묵히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세상 자랑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더 어리석게 만들지 맙시다.
다른 사람의 어리석은 자랑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위한 수고를, 고통을 자랑합시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묵묵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