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읽어본 책중에서 우리가 전에 읽어보았거나 알았던 이야기를 옮겨서
아래와 같이 소개 하오니 좀 내용이 길더래도 시간을 두고 편안하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 합니다.
7가지 독(毒) 이야기
오랜 옛날부터 독(毒)은 음모의 도구로, 치료제로, 그리고 자살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오늘날에도
독(毒)의 위협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 도사리고 있다.
지나치면 치명적이지만 조금만 쓰면 약이 되는것은 ?
바로 독(毒)이다. 독(毒)은 꼭 독극물에만 있는 건 아니며 일상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다. 비타민 A를 과다
섭취하면 간에 독(毒)이 되고, 비타민 D를 과다 섭취하면 신장에 독(毒)이 된다. 심지어 물도 많이 마시면
혈중 나트륨 수치가 낮아져 뇌와 심장, 근육 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독성을 가진 생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독(毒)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 해양생물은 1200종으로
그중 어류가 700종이다. 독사 400종, 진드기 60종, 전갈 75종, 거미 200종, 그리고 1000여 종의 식물이
750가지 독(毒)을 품고 있으며, 일부 조류의 깃털에도 독(毒)이 묻어 있다.
이처럼 주위에 독(毒)이 널려 있는데도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우리 몸이 스스로를 보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방수 기능과 치밀한 조직을 가지고 있는 피부가 1차로 독(毒)을 방어한다.
또한 감각기관이 유해물질을 경고한다. 감각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보완책으로 구토가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간이 독(毒)을 분해하여 노폐물로 배출한다. 그러나 독성이 신체의 방어 기능을 넘어설
만큼 강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독(毒)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약이 되기도 한다. 16세기 내과의사이자 연금술사였던 스위스의
파라켈수스는 이렇게 말했다.
" 모든 물질은 독(毒)이다. 독(毒)이 아닌 물질은 없다. 적정량을 사용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독(毒)이 되기도
하고 약(藥이 되기도 한다." 비소만 보더라도 독의 양면성을 볼 수 있다. 비소는 인체 세포에서 단백질과
결합해 분자를 파괴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궤양 및 매독 치료제로 널리 사용됐고,
지금도 급성 백혈병 치료를 위한 화학요법제로 사용되고 있다.
1st STORY / 나폴레옹은 독살되었다 ?
나폴레옹의 죽음은 아직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를 정도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후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된 나폴레옹은 1821년 5월5일 사망했다.이튿날 아침 부검을 실시하자
궤양으로 인한 위 천공이 있었고, 궤양은 암 때문에 생긴것으로 추정 되었다. 과연 나폴레옹은 암 때문에
죽었을까 ?
수많은 사람들이 나폴레옹은 자연사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독물 학자는 나폴레옹의 모발
표본을 검사한 결과 비소 잔존물을 확인 했다며 영국과 프랑스의 왕당파에 의해 독살당했다고 주장했다.
나폴레옹의 벽지에 함유된 비소 성분에 중독되었다고 주장하는 면역학자도 있다.
나폴레옹이 말년을 보낸 세인트헬레나 섬은 습기가 많아 나폴레옹이 머문 롱우드 하우스의 벽지에
곰팡이가 슬어 비소가 공기 중에 방출 되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암살이나 비소 중독이 아니라 의료 과실에 의한 죽음이라는 설도 제기되었다. 나폴레옹을 담당한
의사들이 장(腸)의 내용물을 배설시킬 목적으로 하제(下劑)를 다량 투여했고 사망 전날에는 염화 제1 수은을
투여했는데, 이와 같은 약물의 과다 사용으로 전해질의 균형이 깨져 결국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고 일부
병리학자는 주장한다.
한편 치정에 얽힌 독살설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나폴레옹이 자기 부인과 불륜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한 백작이 포도주에 독을 타서 먹였다는 것이다. 1821년작성된 부검 보고서와 사료를 검토한 프랑스
파리 소재 조르주 퐁피두 병원의 법의병리학자 폴 포르느는 나폴레옹이 암에 걸린 상태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암 때문에 죽지는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찬가지로 모발 분석에서 비소가 검출
되기는 했지만 비소 때문에 죽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진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가설에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독이다.
2nd STORY / 죽도록 먹고 싶은 별미
별미중 별미라는 복어 요리(위)때문에 자칫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 복어의 간, 난소, 생식선,
내장, 또는 껍질을 먹으면 신경 세포로 가는 나트륨 이온의 흐름을 방해하고 신경을 마비 시키는 강력한 신경독인 테트로도톡신을 섭취
하게 된다. 복어독에 대한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일부는 복어가 먹는 먹이때문에 독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연체동물이나 조개에
비브리오균이라는 독성 박테리아가 있는데 복어가 이런 먹이를 섭취해 독이 쌓인다는 것이다. 반면 복어의 껍질 밑에 있는 독 분비선에서
독이 나온다는 주장도 있다. 복어독은 청산가리의 1000배에 달하는 맹독이며, 내열성이 있어 조리를 해도 독성을 없앨 수 없다.
무색(無色), 무미(無味), 무취(無臭)에 해독제도 없다. 따라서 이 위험천만한 물고기를 조리 하려면 조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은 자유다.
3rd STORY / 보톡스와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는 40년 전을 떠울리면 지금도 눈앞이 캄캄하다. 8세때 첫 연주회를 열고, 16세에 카네기홀에서 뉴욕 필하모니와
협연한 플라이셔는 여느 때처럼 연주를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른손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자꾸만 오그라들었다. 정형외과,
손 전문외과, 신경과를 다니며 온갖 검사를 했지만 병명을 알 수 없었고 주사, X선, 약물 치료, 침, 방향요법 등 온갖 치료를 다 받았지만
소용 없었다. 피아니스트 경력은 절단이 났고 결혼생활마저 파탄에 이르자 자살까지 생각했다.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병명이 밝혀졌다. " 국소성 이긴장증" 이었다. 이 병에 걸리면 뇌 기능에 이상이 생겨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위축된다.
그러던중 보툴리누스 독소를 이용한 치료법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플라이셔는 기꺼이 임상치료에 자원했다.
보툴리누스는 500g만 있어도 전 세계 인류를 몰살 시킬 수 있다는 맹독성 물질이다.. 이 독소는 근육에 수축을 지시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방해한다. 그런데 이것을 극도로 희석한 형태인 보톡스라는 약물은 주름살을 펴주는 것은 물론이고 편두통 완화,
사시(斜視) 치료, 다발성경화증 등 다양한 증상에 효과적이고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보툴리누스 독소로 완치는 불가능하고 증세를 완화시켜주는 정도지만 플라이셔는 그나마도 기적이라 생각하고 6개월에 한번씩 주사를
맞는다. 플라이셔는 다시 순회공연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양손으로 연주한 음반을 발표했다.
4th STORY / 집단학살 수용소의 독가스
1941년 9월3일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소련군 포로 600명과 병든 수용자 250명은 나치 보안대에 끌려 나와 방에 갇혔다. 문은
잠기고 살충제로 사용되는 시안화수소 결정체인 치클론B 가스가 환기구를 통해 쏟아졌다.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20분 만에 몰살당했다.
나치는 총알이나 배기가스보다 확실한 독살 무기를 손에 쥔것이다. 치클론B가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나치는 비르케나우에 대형
가스실과 소각장을 네 군데 만들었다. 이후 치클론B는 아돌프 희틀러의 유대인 몰살 계획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었다.
레지스탕스 요원으로 활동하다 게슈타포에 체포된 포후벡은 89세가 된 지금도 당시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 타르이실과 가스실을
봤습니다. 시체 태우는 냄새가 진동하고 굴뚝에선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죠. 가스실로 가는 트럭에선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비명을 질렀습니다. 시체는 밖으로 끌어내 구덩이에 던져 넣은 후 불살랐죠." 학살의 절정기에는 하루에 8000여 명이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학살 되었다. 1944년 11월까지 어린이를 포함해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포후벡은 이렇게
말한다. " 비르케나우에서 살아 남았으니 천국은 보장된 셈이죠. 이미 지옥을 경험했으니까요. "
5th STORY / 독살과 음모가 판치는 도시
르네쌍스 시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는 정적이나 경쟁자를 제거할때 독을 사용했다. 칼이나 총보다 뒤처리가 훨씬 깔끔했기
때문이다. 반역을 막는다는 명복으로 구성된 베네치아의 특별재판소인 " 10인 위원회 "는 기금까지 조성하여 독살을 자행했다. 위원회는
다른 도시 출신의 암살자에게 독살을 청부한 다음 일이 성사되면 중계인과 비밀계좌를 이용해 보수를 지불했다. 위원회의 기록을
살펴보면 , 터키인과 싸울때 흑사병 환자의 림프샘에서 병균을 채취해 사용하자는 주장이 있엇지만 후방에 주둔한 베네치아의 군대도
감염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계획이 철회됐다고 한다.
한편 독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운 사람도 있었다. 15세기 말 로마 교황이었던 알렉산드로 6세와 그의 가문인 이탈리아 보르자 가(家)는
돈 많은 사람들을 주교나 추기경으로 임명한 뒤 재산을 불리도록 해준 다음 만찬에 초대했다. 초대된 손님들이 마신 와인에는 비소가
들어 있었다. 독배를 마신 부자들이 죽으면 그들의 재산은 교회법에 따라 교황에게 귀속 되었다. 오죽하면 항간에 이런 말이 떠돌았을까 ?
" 오늘 밤 보르자 가(家) 사람들과 식사할 거요 " 라고 말하는 사람은 있지만 " 간밤에 보르자 가(家) 사람들과 식사했다" 말하는 사람은 없다."
독살 음모는 현대 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유시첸코는 후보 시절 정적에 의해 다이옥신에 중독돼 얼굴이
변형되었고, 미 중앙 정보국(CIA)에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제거하기 위해 독살을 계획 했다가 의회의 조사대상이 된 적도 있다.
지금도 누군가 독살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발각 되느냐, 아니면 영원희 비밀로 묻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6th STORY / 독침과 독화살
독을 이용한 전쟁무기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도 등장한다. 그리스 영웅인 헤라클레스는 히드라를 죽이고 히드라의 독액에 화살을
담가서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었다. " 독성을 뜻하는 toxic은 그리스어의 독화살 (toxikon)에서 유래한 말이다.
AD 199년 로마군이 하트라(현재의 이라크에 위치)를 공격했을때 하트라 주민들은 담 너머로 맹독을 지닌 전갈이 가득 든 점토 항아리를
던져 대응했다. 그 보다 400년전 한니발도 이와 비슷한 전술을 고안했다. 한니발의 수군은 적군 함대의 갑판을 향해 독사사 가득 든
항아리를 발사했다. 역사에 남을 독무기는 또 있다. 프렌치-인디언 전쟁 중 영국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천연두균에 오염된 담요를
보냈고, 베트남 전쟁때 베트콩은 함정 바닥에 물소 배설물을 바른 날카로운 죽창을 꽂았다. 죽창에 찔리면 물소 배설물에 들어 있는
파상풍균이 상처를 썩게 만든다. 최근에는 2001년 미국에서 탄저균 우편물로 5명이 사망했고, 1995년 일본에서 옴진리교 신자들이
도꾜 지하철에 신경가스 사린을 뿌려 12명이 사망했다.
세상에서 가장 독한 건 인간의 마음일까. 절망하긴 이르다. 신화 속 이야기긴 하지만 독무기를 스스로 포기한 역사도 있다.
헤라클레스 에게 독화살을 물려받은 필록테테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수많은 적군을 죽였지만 독화살의 해악에 질려 다음 세대에게는
물려 주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는 희망의 표시로 치료의 신(神)인 아폴로에게 독화살을 바쳤다.
7th STORY / 식사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
누군가 음식에 극소량의 비소를 슬쩍 넣는다면 산해진미도 죽음의 만찬이 된다. 그래서 옛날부터 왕들은 시식을 담당하는 시종을 두고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뒤에야 음식을 먹었다. 로마의 네로 황제는 노예들에게 버섯을 시식하게 해 독 버섯을 가려냈고 중세의
통치자들은 수정 술잔으로 독이 있는지 확인 했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궁전에서는 무장 호위병이 음식을 식탁까지 호송했다.
인도 타르 사막에 있는 만다와 성 성주(城主)의 시식 시종으로 일한 프라사드는 이렇게 회상한다. 조리사는 주방에 들어 가기 전 목욕을
하고 다른 옷으로 갈아 입어야 했다. 그리고 호위병들이 터번까지 샅샅이 뒤지며 몸 수색을 하고 난 뒤에야 비로서 조리를 시작 할 수
있었다. 조리가 끝나면 요리를 먼저 개에게 먹인후 시식 시종과 호위병이 차례로 시식했다. 시식이 끝난 음식은 무장 호위를 받으며
식탁으로 운반된다. 이렇게 하고도 왕은 곧바로 음식을 먹지 않았다. 충성스러운 장군 몇 명이 한 번 더 시식을 하고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왕은 손님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 그것도 성주와 손님이 음식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말이다.
지금은 호텔로 사용되는 만다와 성에서 이제 이런 절차는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최근 인도 부총리가 점심 식사를 하러 이곳에 들렸을때
시식자가 먼저 음식을 맛보았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다.
요즘엔 시식 시종을 보기 드물다. 영국 버킹엄 궁전은 따로 시식 절차를 두지 않는다고 공표했다. 대신 조리사를 뽑을 때 신원 조회를
철저히 한다. 한편 태국에서는 흰쥐들이 시식 시종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참고 : 내셔널 지오그래픽
감사 합니다.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