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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영국 탄광노동자들이 그림 그리며 삶의 의미 찾는 이야기
'빌리 엘리어트' 쓴 극작가 리 홀 작품…강신일·박원상·문소리 명배우들 호연
연극 '광부화가들'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예술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거야, 그게 바로 예술이야."
예술이 삶을 변화시킨다는 이런 명제가 너무 진부하게 느껴진다면 연극 '광부화가들'을 한 번 쯤 볼 만하다.
1930년대 영국 동북부의 탄광 지대 애싱턴. 좁고 어두운 갱도에서 평생을 살아온 광부들은 어느 날 노동조합
교육반에 모여 미술 감상 강좌 듣기 시작한다.
초빙된 강사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르네상스 명화를 보여주며 미술의 역사를 설명하려
하지만, 그림의 '의미'를 알고 싶어하는 광부들은 성이 차지 않는다. 강사는 직접 그림을 그려보자고 제안하고,
광부들은 어색해하면서도 점차 그림 작업에 흥미를 느끼고 캔버스에 자신의 삶과 생각들을 표현하기 시작
한다.광부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며 예술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은 '광부화가들'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각본을 쓴 영국의 저명한 극작가 리 홀의 작품이다.
2007년 영국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노동과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 2차대전을 전후로 한 영국 노동계급의
현실과 정치·사회상을 예리하게 포착해 이브닝 스탠더드 어워즈 최고연극상, TMA어워즈 올해의 최고 신작상,
저널 컬처 어워즈 '올해의 공연상' 등을 휩쓸었다.
연극 '광부화가들'
1980년대 영국 탄광촌에서 대파업이 진행되던 때 발레라는 예술을 통해 꿈을 키워가는 한 소년의 여정을
그린 '빌리 엘리어트'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영국 동북부의 탄광이 배경이지만, 시기적으로는 50년가량
앞선다.극한의 노동 환경에 전운까지 드리운 1930년대 말 영국 탄광촌에서 예술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분투하는 광부들과 주변인의 모습이 강신일·박원상·이대연·문소리·정석용·김중기 등 걸출한 배우들의 호연
으로 생생히 되살아났다. 대형 프로젝터로 무대 벽면에 투사된 그림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올리버, 이건 경쟁이 아니에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태도예요."
"끔찍하고 어려워도 그게 예술이에요. 마음속에 끓던 분노는 다 어디 갔냐고요!"
"우리는 우리 인생을 그리는 거야, 우리 인생이 우리의 작품이니까!"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해묵은 주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영국 탄광촌 노동자들이 뿜어내는 이런 생생한
대사들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극 중에서 노동자들의 예술을 통한 자아 발견은 개인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각성으로도 이어진다.
광부화가들이 힘차게 외치는 노래 가사로 극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선택한다. 우리는 예술가다. 세상을 바꾸는 예술, 우리는 노동자다"
고된 삶에 지친 광부들도 마음을 먹고 그 의지를 조직화하면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예술은 노동
하는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고 또 변화된 삶이 다시 예술이 된다는 건데, 과연 이런 '노동과 예술의 선순환'은
무대 위의 이야기이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영국의 탄광 노동자 화가 모임인 '애싱턴 아트 그룹'의 실제 이야기를 극화했기 때문이다.
공연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1월 22일까지.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