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5:8]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예수께서 이미.... 이르시기를 .- 본절은 7절의 상황에 대한 마가의 보충 설명이다. 즉 귀신이 예수 앞에 절망적 부르짖음으로 간청하는 이유가 예수께서 이미 귀신을 향해 그 사람으로부터 나오라고 하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6절과 7절 사이에 귀신과 예수의 만남에 대한 상황 묘사가 생략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이미....이르시기를"은 미완료 시제를 이루고 있어 예수께서 이미 계속해서 말씀해 오셨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예수의 명령은 즉각적으로 시행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같은 지연은 그 귀신의 항거라고 볼 수도 있으나 오히려 "당신의 때"를 정확히 맞추어 행하시고자 하는 예수의 주권적인 섭리로 인한 지연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더러운 귀신아.....나오라. - 예수께서 귀신 축출 선언은 곧 인간 해방 선언이다. 사실 귀신은 지금껏 그가 차지하고 있던 그 인간의 인간됨을 파괴하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께서 귀신을 향해 그 사람으로부터 떠나 나오라 명령하신 것은 그 사람의 본래적 품성과 인격으로의 회복을 원하시는 당신의 지극한 사랑과,
그 모든 회복을 홀로 주관. 명령하시는 당신의 절대적인 권위를 함께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실로 예수의 주권이 인정되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는 그 현장에는 항상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창조되었으나 사단의 권세로 그 형상을 손상입은 영혼들의 건강하고도 완전한 회복이 뒤따르게 된다.
[막 5: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네 이름이 무엇이냐. - 이 말은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에게 묻는 질문이다. 이러한 귀신과의 대화는 고대 귀신 축출 이야기에서 많이 나타나는 형식이다. 그리고 고대 전쟁사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적운의 장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준비 요건 중에 하나로 간주되었다. 본절도 귀신의 정체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귀신의 본성을 보여 주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을 파괴하고 있는 주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 귀신은 예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특히 그는 앞에서는 "나"라는 단수 인칭을 사용한 데 비해 뒤에서는 "우리"라는 복수 인칭으로 말하여 어법이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차이는 귀신 중 우두머리가 대표로 예수와 대화했디 때문에 생겨났을 뿐이다. 귀신의 이름은 "군대"이다. "군대"라는 말은 헬라어로 "레기온"인데, 이것은 로마 군대의 군사 용어로서 6,000명으로 구성된 1개 군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군사 용어로서 "레기온"이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를 "귀신의 수가 많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람에게 들어간 귀신의 수효가 많이 있는 집단적 의미로서 표현하기 위해 "레기온"이라는 집단적 의미의 군대 용어를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그 광인에게 침입한 귀신의 세력이 얼마나 강력하고 파괴적이었을까 하는 사실을 족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혹자는 이 귀신을 죽은 뒤에 안식을 얻지 못하는 원한을 갖고 있는 영들의 집합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한 배경 설명으로 귀신이 무덤 사이에서 살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집단적인 의미의 군대 용어를 사용한 점으로 보아 로마와 투쟁하며 저항하다 죽어간 희생자들의 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은 일면의 타당성을 갖고 있지만 설득력이 희박하다.
왜냐하면 뒤에 나오는 사건들은 결국 귀신들을 몰사시키는 것인데 그렇다면 로마에 저항했던 사람들에 대한 저주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귀신은 매우 많은 숫자를 가진 집단으로서 하나의 집합된 힘을 발휘하고 있던 존재들임이 분명하다. 이처럼 실로 사단은 한 사람의 건강한 영혼을 지배하기 위하여 수많은 자신의 부하 귀신들을 동원하는 집념과 무자비함이 있다
[막 5:10]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 여기서 귀신이 예수께서 다시 간청을 하고 있다. 마가는 "간절히"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간청하는 귀신의 자세가 7절의 모습과는 다름을 보여 준다. 즉 귀신의 자세는 그 기세가 모두 꺾인 모습이다. 귀신의 요구는 자신을 이 지방으로부터 추방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이 제안은 7절의 반항, 즉 간섭하지 말라는 식과는 전혀 다르게 이 지방에만은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으로부터는 나오겠다는 말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예수에게 항복하는 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지방"이 과연 어디냐는 점이다. 이는 분명 거라사라는 특정한 장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한편 마태복음에서는 여기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런제 누가복음에서는 귀신이 "무저갱"으로 보내지 말라고 간청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 지방"에 무물기를 원한다는 뜻이기 보다 "다른 지방" 곧 자신들이 최후 심판 전에 감금당하는 무저갱에로 쫓겨나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실로 귀신은 최후의 순간이 이르기 전까지 계속하여 활동할 장소를 필요로 하고 있다.
[막 5: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마침....돼지의 큰 떼가.- 이 절은 삽화적이다. 즉 배경 그림같이 묘사되고 있다. 예수가 내리신 호수 가까이에 산이 있고 무덤도 있으며 많은 돼지를 방목시키는 비탈진 넓은 곳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이방인 지역이기 때문에 돼지를 많이 길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취급하여 먹지도 않고 가까이 하지도 않았으므로좨지는 기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돼지의 주인은 이방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 주인이 로마인들을 위해 돼지를 사육하는 불경스런 유대인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막 5:12]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11절에서 돼지떼에 대한 풍경 묘사를 한 이유가 밝혀진다. 귀신은 이 지방을 떠나지 말게 해달라는 간청과 함께 사람으로부터 나오겠다는 생각을 밝힌다. 그러나 자신들은 돼지 무리에게로 옮겨 갈 것을 예수에게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수동적인 의미에서 허락을 간청하고 있은 것이다. 그래서 "보내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돼지에게 들어가고 안 들어감도 예수께 그 권한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실로 귀신들은 무엇이든지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 귀신들은 그 사람을 파괴할 수 없게 되자 이제 돼지 때를 파괴하고자 한다.
[막 5: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허락하신대. - 귀신들이 돼지에게 자신들이 들어가게 해주면 계속 활동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예수께 간청한 부탁을 예수께서 들어 주셨다. 이로 보건대 돼지의 몰사 사건의 원인자가 외관상으로는 그 군대 귀신들이었음과 돼지 몰사 사건의 궁극적 결정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셨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타인의 재물을 고의로 손상시킨 예수의 윤리적 타당성 여부이다. 물론 그 소유주가 유대인어었다면 그가 모세의 율법을 어긴 파렴치한이었기 때문에 그를 징책할 목적으로 이 같은 큰 손해를 입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소유주가 이방인이었다면 문제는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본문을 자세히 살피면 돼지 떼를 몰살시킨 주 원인자는 예수가 아니라 그 군대 귀신이었음을 보게 된다. 즉 예수는 적극적 요구를 "허락"하신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께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이외에 또 다른 견해들에 대해서는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예수이 "허락"이 지닌 재산상의 피해보다
그 피해를 딛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計劃)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실로 하나님은 이러한 재산상의 피해를 통해 영적, 정신적, 사회적 회복과 건강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초월적 경륜은 동방의 의인 욥에게서도 발견된다.
한편 예수께서 귀신을 돼지 떼로 옮기게 허락한 사실에서 두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사람의 존귀성 문제이다. 예수는 사람과 돼지를 두고 사람 안에서 귀신들이 활동하지 못하게 하시는 권위적 모습을 보여줌으로써(8절 주석 참조) 사람을 높이셨다. 반대로 돼지 떼에게는 귀신들이 들어가도록 하락함으로써 그 어떤 피조물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 강조하셨다.
둘째는 돼지에게 귀신들이 들어가게 허락하심으로써 상대적으로 귀신의 활동 영역에 대한 암시를 제공한다. 사실 당시에는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취급하고 있었다이러한 돼지에게 귀신들이 들어가도록 예수께서 허락하심으로써 귀신의 활동 장소가 부정한 곳으로 한정됨을 보여 주고 있다.
귀신이 머물 수 있는 곳은 부정한 곳이다.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사람의 온 인격을 지배하던 귀신들이 영혼 없는 돼지에게로 들어가 그들을 조정한다는 사실은 결코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실로 귀신은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해 항상 부정적인 영향력을 직. 간접으로 행사한다.
이천 마리 죄는 떼가....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이 장면은 매우 드라마틱하다. 파괴자 사단의 사자인 귀신들은 자신들이 활동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소인 돼지 떼를 죽음에로 질주하게 했다. 특히 이 사건의 급받함은 "비탈길을 내리달아 갔다"는 펴현과 2,000마리나 되는 돼지의 숫자를 통해 강조되고 있다.
실로 귀신으 2,000마리나 되는 돼지에게 각각 그 파괴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거의 발작적으로 행동하게 했고 곧장 몰사시킴으로써 그 사악한 위력을 과시했다. 실로 예수는 그 시점에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귀신의 최후 목적이 인간과 자연 파괴라는 엄숙한 진리르 암묵적으로 보여 주고 계셨던 것이다.
한편 "몰사하거늘"이란 말은 미완료시상을 취하고 있어 2,000마리의 돼지 떼가 계속해서 물속으로 빠져들어 죽어가는 장면을 더욱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막 5: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 것을 보러 와서....."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 여기서부터 20절까지의 내용은 "돼지 몰사 사건"에 대한 반응들을 묘사하고 있다. 본절에서는 현장에서 직접 사건을 경험한 돼지치는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나 있다. 그들은 현장에서 "도망"하였다고 묘사한다.
이 말은 당시에 벌어진 사건이 너무도 급작스러웠고 상상을 초월한 광경이었기 때문에 주채할 수 없는 놀라움을 묘사하는 뜻으로 사용된 말이다. 따라서 "도망"했다는 말은 무서워서 달아났다기 보다는 놀라운 사건을 알리기 위해 급히 달려간 사실을 긴박하게 묘사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읍내와 촌. - 여기서 "읍내"(폴리스)란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읍을 가리키며, 대체로 발달된 도시, 변화한 마을 정도로 이해된다. 그리고 "촌"란 원래 "들", "밭"등으로 이해되나 흔히 시골로 번역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양자를 합하여 "도시와 시골"이라는 말로 이해할 때 "돼지 몰사 사건"이 그 지방 전역에 알려졌음을 보여 준다. 이에 대해 마태는 "온 시내"로 언급한다. 어쨌든 이 사건은 삽시간에 여러 곳으로 퍼져갔고 그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현장으로 모여들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