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사도행전 18장 1-4절 (새번역)
[1] 그 뒤에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서, 고린도로 갔다. [2] 거기서 그는 본도 태생인 아굴라라는 유대 사람을 만났다. 아굴라는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 사람에게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얼마 전에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다. 바울은 그들을 찾아갔는데, [3] 생업이 서로 같으므로, 바울은 그들 집에 묵으면서 함께 일을 하였다. 그들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다. [4]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을 벌이고,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을 설득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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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텐트-메이커 선교사’ 바울과 아굴라-브리스길라 (딤후4:19, ‘브리스가’ Prisca 로 표기) 부부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가죽으로 텐트 만드는 전문가였습니다. 가죽가공은 대단히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짐승의 가죽을 씻고 말리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까다로우며, 악취가 진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회피하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죽공업의 가장 인기있는 품목이 가죽천막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직업으로 이들 선교사들은 자급하며 살아갔습니다.
아굴라 (‘독수리’라는 뜻) 와 그의 아내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바울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그들이 고린도에서 만났을 때에 이미, 그들은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출중한 유대인 랍비였던 아폴로에게 성경(구약)을 재검토시키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친 대단한 교사들이었습니다. (행18:26)
특별히 이 부부의 이름을 나란히 쓸 때, 아내 브리스길라를 앞세우는 때가 더 많은 것을 보면(딤후4:19, 행18:26), 아마도 브리스길라의 영적 지도력이 가정 안팎에서 남편보다 앞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부에게서 우리가 배움을 받을 것이 있습니다.
1) 이들 부부는 성차별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내 브리스길라로 하여금 복음 사역을 담당할 수 있도록, 남편 아굴라가 최대한 협조했던 것을 봅니다. 21세기에 한국에 사는 저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앞선 사고를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2) 이들 부부는 재정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있는 자급선교사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최초에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로부터 파송 받은 선교사였습니다. 그러나 장기간 여러 명의 바울선교팀이 선교지를 전전하면서, 현지에서 재정을 조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애당초 아굴라 부부는 작업장 자체가 선교포스트였기 때문에, 자금조달의 수단이 늘 갖춰져 있었습니다.
3) 이들 부부의 생활공간은 그 자체로 교회였습니다. 바울을 만났던 고린도교회도, 에베소로 바울과 함께 가서 교회를 개척한 곳도, 아굴라 부부의 집이었습니다. 오늘의 용어로, ‘가정교회’ 였던 것입니다.
4) 이들 부부는 영적 사역 중심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해 주고, 그들의 동반자가 되며,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복음전파가 가능하도록 일을 엮어나가는 ‘적극적 도우미(enabler)’ 로서 살았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앞서 제1세기에, 복음 사역의 훌륭한 모범을 보이며 살아간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들의 삶을 회고하면서, 저희도 복음사역중심의 생애를 살기를 결심합니다. 주 하나님, 저희의 영혼이 잠 들지 않고 깨어 있게 하시고, 맡은 바 소임을 잘 감당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