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마리아 이주민에게 여호와를 가르침(24-28)
우상숭배의 본질은 ‘여호와 플러스 알파’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으면서 다른 것들을 삶의 근거로 삼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풍요의 신 바알과 아세라를 믿는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확보하려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온 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을 따르려는 태도가 아닙니다.
24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25그들이 처음으로 거기 거주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시매 몇 사람을 죽인지라 26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앗수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께서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옮겨 거주하게 하신 민족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신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매 그들을 죽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니라 27앗수르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가되 그가 그 곳에 가서 거주하며 그 땅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하니 28이에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간 제사장 중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살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지를 가르쳤더라(24-28)
앗수르에 멸망당한 뒤에 사마리아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앗수르 왕은 사마리아를 점령한 뒤, 이곳에 바벨론 지역 성읍인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 사람들과 아람 지역 성읍인 하맛과 스발와임 사람들을 사마리아의 여러 성읍으로 이주시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자신들이 섬기던 종교를 그대로 가지고 왔고, 이곳에서 자신들의 신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신들을 섬기는 것을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곳에 사자(獅子)를 보내어, 몇 사람을 죽이셨습니다. 갑자기 사자가 사마리아에 나타나 사람을 죽이는 사건은 흔한 일이 아니라 일종의 재앙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런 재앙은 신의 벌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재앙을 만난 사람들은 이 재앙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였고, 결국 그 땅의 주인인 여호와로부터 왔다는 것과, 여호와의 법을 알지 못해서 내려진 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방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는데, 이미 25절에서 사자를 보낸 분이 여호와라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각 지역에는 그 지역을 다스리는 신들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떤 지역에 오면 그 지역의 신을 올바로 섬겨야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매우 역설적인데 그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닥쳐 온 전쟁이나 기근의 재앙을 여호와께서 내리셨다고 깨닫지도 못했고, 여호와를 바로 섬김으로 그 재앙을 해결할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이들에게 닥친 그리고 닥칠 재앙은 여호와의 벌이라고 거듭해서 말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재앙이 이 땅의 신인 여호와께서 내린 벌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대상이 다를 뿐 신앙심은 이방인들이 더 깊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앗수르 왕은 포로들 가운데 제사장 한 명을 데리고 가서 그곳에 거주하게 하고, 그 땅의 하나님의 법규를 가르치도록 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법규는 여호와께 예배드리는 방식과 여호와의 율법 전반에 관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한 제사장이 선발되었고, 그는 벧엘에 거하면서 백성들에게 여호와 경외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단과 벧엘은 원래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로 제사장들이 활동하던 지역이기에 벧엘로 돌아간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25-28절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A 여호와 경외를 하지 않음
B 여호와의 법을 알지 못함
B' 여호와의 법을 가르치라
A' 여호와 경외를 가르침
이 구조를 통해 여호와 경외와 여호와의 법을 아는 것이 이 단락의 핵심 주제라는 것과, 여호와 경외는 여호와의 법을 아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호세아와 이사야에서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과 연결됩니다.
종교 혼합주의가 성행한 사마리아(29-33)
‘여호와 신앙’은 전심으로 하나님께서 원하는 가치와 그 이야기를 붙잡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배타적 사랑이 그 밑바탕에 있습니다. 신앙은 항상 선택이고 결단입니다. 진리의 존재를 부정한 채 모호함을 관용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29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30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었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 31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으며 32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33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29-33)
이 단락은 이방인이 여호와를 섬기는 것에 대한 한계를 잘 보여줍니다. 이 당시는 다신 사회였기에, 여호와를 섬기면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은 여호와의 법을 배웠지만 여호와만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여호와를 섬기지만, 자신들이 섬기던 이방신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각 민족들마다 각기 자신들의 신상을 만들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만들어둔 산당 안에 신상들을 안치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만든 산당이란 이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기 위해 만들었던 산당들을 말합니다.
17:10에 따르면 호세아 왕 시대에도 이스라엘에 산당을 세우고 모든 산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 목상과 아세라상을 세웠습니다. 그 산당들이 앗수르의 침략에도 남아 있었고 현재 이주한 이방인들이 우상을 섬기는 장소로 사용된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이주로 인해 이스라엘은 우상이 넘쳐나는 장소로 변했습니다. 30-31절은 이스라엘 땅에서 섬기던 이방신들의 명단으로 이 신들이 어떤 신들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땅에서 다양한 신들을 섬겼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32절은 여호와를 경외하여 산당의 제사장을 택하였다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여호와 경외와 산당의 제사를 겸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여호와만을 배타적으로 섬기지는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33절에서는 여호와도 경외하였고 섬겼다고 표현함으로 사마리아의 종교가 혼합주의 종교였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
앗수르 왕은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이스라엘 여러 성읍에 거주하여 살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 그곳에 정착할 때 여호와를 섬기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는 사나운 사자 몇 마리를 그들 가운데로 보내어
그들 몇 사람을 물어 죽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앗수르 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께서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옮겨 거주하게 하신 민족들은
그 땅(사마리아)의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 땅의 신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로 보내셔서 그들을 죽이게 하셨사오니,
이는 사마리아에 정착한 사람들이 그 땅의 신에 대한 법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앗수르 왕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너희는 그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가운데 한 사람을 그곳으로 데려가서
그 땅의 법을 새로 이주하여 온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하라.”
그리하여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온 제사장 가운데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살면서
그곳에 이주한 새 이주민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각 민족들은 저마다 자기네가 사는 곳에서 섬기던 자기들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인들이 만들어 놓은 여러 산당 안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었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으며,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인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그들의 자녀를 불살라 바쳤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호와를 경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 가운데서
산당의 제사장을 뽑아 그 산당에서 자기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마리아에 이주한 각 민족들은 한편으로는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잡혀오기 전에 살던 그 고향의 풍속대로 자기들이 섬기던 신들도 섬겼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백성들을 멀리 끌어간 앗수르 왕은 이번에는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을 사마리아 지역에 강제 이주시켰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그동안 섬기던 신을 그대로 섬기면서 하나님께도 예배드려서 이스라엘은 종교전시장이 되어 버렸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이방인들을 이주시킨 것처럼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 마음속에 믿음, 평안, 기쁨, 감사들을 내쫓고 세상의 욕심과 시기, 비난, 불안, 염려 등을 집어넣고 있다.
성령님과 말씀의 능력으로 분별하고 승리하여야 한다.
사마리아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자 사자를 보내 몇 사람을 죽였을 때 왕에게 제사장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데 그들이 비록 하나님을 지역 신으로 오해하기는 했지만 재앙을 보고 즉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모습은 계속된 선지자들의 경고에도 돌이키지 않던 이스라엘과 매우 대조적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시기 전에 예배를 가장 우선시하고 예배가 자신과 공동체를 특징짓는 단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사마리아에 거주하게 된 이주민들의 보고를 받고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 제사장을 한 사람 보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쳤으나 그들은 자기들의 신을 버리지 않고 섬기게 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만 섬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방신을 섬기는 배도였다면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하면서도 자기들이 가져온 신들을 버리지 못하는 타협으로 혼합신앙이 되고만다.
더구나 우상 숭배하던 사람이 돌아와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쳤으니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우상숭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오늘도 세상 사람들 눈에 기독교는 여러 종교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혼탁한 신앙에 물들지 않고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반쪽신앙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만 전심으로 바라고 예배하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