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춘 훈 컬럼
언론인, 전 한국방송공사 미주지사 사장
요즘 멸종위기 동물 1순위는
단연 ‘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은 우선 도시에 개천이 없고,
따라서 개천의 구정물 속에 살다 승천하는 용은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우스개 소리입니다.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특히 계층 이동이 어려운 나라로 꼽히고 있습니다.
가난한 20%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40%는
성인이 된 후에도 가난하고
부자 20%의 아이들 중 60%는
어른이 된 후에도 부자로 살게 되지요.
학벌이 계층 이동을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한국은
사정이 미국보다 더 열악합니다.
SKY(서울대, 고대, 연세대)를 나와야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습니다.
SKY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학군 좋은 강남이 절대 유리하지요.
강남에 집 얻어 살려면 강북보다 가구 수입이 엄청 많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자부모를 결사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미국이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나라가 돼가고 있다면,
한국은 이미 ‘개천 용’이 사라져 버린 나라인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SBS의 인기 토크쇼 ‘힐링캠프’에서
가수 이효리를 만났습니다.
한국 최고의 섹시 디바, 만능 엔터테이너, 화려한 이슈 메이커,
트렌드 리더, 그리고 지금은 동물 보호 운동과 독거노인 등
불우 이웃을 돕는
쇼셜테이너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개념 연예인.
부와 성공과 호사스러움의 대명사인 이효리가
가난한 이발소 집 천덕꾸러기 막내 딸이었다는 걸
힐링캠프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는 제작진과 함께 20몇년 전 자신의 구차스런 유년의 추억이
담겨있는 ‘개천’인 남루한 이발소를 찾았습니다.
이발소 한켠에 붙은 쪽방에서 여섯 식구가 밥 먹고 잠자고
아귀처럼 싸우고 뒹굴면서 살던 때의 얘기를
이효리는 담담하게 들려줬습니다.
이발사인 아버지는 처자식을 그렇게 개고생 시키면서도
꽤나 엄격했나 봅니다.
수틀리면 밥상을 뒤엎어 아이들을 굶겼다지요.
지금은 7순이 된 아버지가 힐링캠프에 불려나와
막내딸을 안아주며
“그땐 미안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회환의 눈물을 보이는 장면은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괜찮아 아빠.
지금은 돈 제일 많이 버는 내가 우리 집 왕이쟎아.
아빠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대충 이런 말로 무거워지려는 토크쇼의 분위기를
이효리는 반전시켜 놨습니다.
그녀의 예능적인 순발력이 돋보이는 장면이었지요.
이효리는 1979년 생으로 올해 나이 33세입니다.
이효리보다 열 살이 많은 1969년 생으로
개천에서 난 용의 마지막 세대(?) 쯤 되는
또 한사람의 여성 유명인이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정치판을 개판으로 만들고 있는 주인공,
바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전 대표입니다.
이정희는 가난한 떡 공장 일꾼의 딸입니다.
강남 사는 부잣집 딸도 아니고 비싼 과외 공부도 받아보지 못했지만
그는 87년 학력고사에서 인문계 전체 여자 수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법대에 진학해 사법시험 38회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됐지요.
2008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지 2년만에
당대표에 당선됐습니다.
이후 진보진영이 내세운 최고의 간판
상품으로 떠오르며,
차세대 여성 정치지도자 300인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2010년)
글자 그대로 욱일승천에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한국 진보의 아이콘 이정희가 지금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높이 오른 만큼 추락의 상처는
더욱 치명적일 테지요.
좌파교수 조국이 ‘진보의 붉은 장미’라고 띄운 이정희는
지난 보름사이에 어떤 이의 표현에 따르면
“참담하게, 무서운 속도로, 완벽하게” 무너졌습니다.
용 되기 전 어릴 적에 놀던 개천의 구정물 속에
이정희는 다시 코를 박았습니다.
지난해 이정희를 인터뷰한 동아일보 조수진 기자가 쓴 칼럼엔
이런 글이 나옵니다.
“40대 초반이지만 크고 맑은 눈망울, 소녀 같은 얼굴,
해맑은 미소 속에서
주사파나 종북주의자의 면모는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기대를 받는 젊은 정치인답게
주요현안에 대한 생각을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피력했다...”
그런데 북한문제가 나오자
소녀같은 얼굴도, 해맑은 미소도 사라지고
태도가 돌변하더라고 조수진 기자는 썼습니다.
천안함, 연평도, 북한의 인권, 국가 보안법 등에 대한 견해는
요지부동이었다지요.
국민들은 젊고 똑똑하고 참신한 이정희가
진보정당의 간판으로 나서게 되자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불법과 폭력 대신 법과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논리로 싸우고 개혁을 외치는
업그레이드 된 진보의 아이콘이 돼주길 바랬습니다.
헌데 이정희는 거꾸로 갔지요.
불법시위 현장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경찰과 맞붙고,
종북의 DNA를 공유한 같은 당 의원 김선동이
지난해 국회의사당 안에서 최루탄을 터트리자
이정희는 최를 안중근·윤봉길 같은 의사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이정희의 00·00
이정희는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에서 대리 투표, 무더기 투표,
시간외 투표, 유령투표, 전산서버 수시 접속 투표 등
엄청난 부정이 드러났는데도
“선거 부정이 아닌 단순한 관리 부실”이니
“마녀 사냥”이니
“증거가 없으니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무죄”니 하며
억지 00을 늘어 놨습니다.
똑똑하고 공부많이 하고 논리적이던 이정희가
이번 통진당 사태에서 보인 행태는 사뭇 00 적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비례대표 2번인 종파의 보스 이석기를 보호하고
국회에 보내려고 자신의 온몸을 던졌습니다.
같은 사상과 목적을 공유해 투쟁하는 골수 좌파 특 유의
00 어린 혁명적 동지애입니다.
이정희 대표가 이끄는 통진당은
00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교집단의 모습을 빼닮았습니다.
이정희의 눈물겨운 살신성인(?)으로 이번 국회엔 골수 공산주의자,
00,00 등 기라성 같은 종북주사파 국회의원들이
의사당 안에 둥지를 틀게 000?.
이들은 국회의원으로서 일반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국가안보에 관한 각종 기밀을
자유자재로 들춰보게 됩니다.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의 보호막 속에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게 될겁니다.
최루탄 의원 김선동이나 주사파 보스 이석기가 의정단상에 올라
‘000 어록’을 낭송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이정희는 이효리처럼
이를테면 멸종위기를 맞고 있는 ‘개천에서 난 용’입니다.
요즘같이 부가 세습되고, 계층이동이 원천적으로 어려운 세상에서
온갖 시련과 역경을 딛고 어느 한 분야에서 우뚝 선
‘개천에서 난 용’을 보는 느낌은 상쾌합니다.
이효리는 원래 팬덤 그룹도 많지만, 안티도 많은 연예인입니다.
헌데 힐링캠프 이후, 안티가 확 줄었다네요.
가난한 이발소 집 딸의 인간승리 스토리가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과 공감을 안겨 줬습니다.
이효리가 자신의 ‘개천’인 20 몇년 전의 이발소를 찾았듯이,
이정희도 아버지가 일하던 그 남루한 옛 떡집을 한번 찾아가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구정물 뿐이던 어릴적 ‘개천’앞에서
과연 오늘의 대한민국이 민중에 의해 해방 되야 할 대상인지를
수능시험 전국 1등 수재의 머리로 한번 곱씹어 보면 어떨까요.
이정희 ㅇㅇㅇ들이 이번에 회의 때마다 애국가 대신 부른
‘민중의 노래’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어둠에 찬 반도의 땅, 피에 젖은 싸움터에,
민중의 해방위해 너와 나 한 목숨 바쳐...”
이정희가 삶이 고달픈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더욱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개천 용’이 되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 다소과격한 표현은... 000교정. 양해바랍니다.
고 진 감 래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그들 중에는
엄청난 고생을 딛고 성공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진 고생을 하고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좌절한 사람이
훨신 더 많겠지요. 연예계 톱클라스 12명의 과거 무명
시절때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사당동 이발소집 딸 이효리
대한민국이 다 아는 가수 이효리는 수려한 외모와 달리,
가난한이발소 집 딸이었다.
1남 3녀 중 막내였던 그는 중학교 시절까지 여섯 식구가 단칸방
생활을 했을 정도로 궁핍한 살림이었다.
"이사를 갈 때 남매가 3명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이삿짐
속에 숨어야 했다"는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의 3집에 수록된 '이발소 집 딸'은 당시의 애환을 담은 노래다.
스타가된 지금도 힘들때면 20년전 사당동 이발소를 찾는다고한다.
찢어지게 가난한집 아들 비
'월드스타' 비는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스타다. 지독한 가난 속에
서도 헝그리 정신으로 지금의 성공을 일궜다.
그의 끈질긴 노력과 도전정신은 아시아를 넘어 월드스타로 거듭
나게 만든 원동력이다.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한국인 최초 단독 콘서트, 시사주
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와의 영화 작업 등은 그의 성공
신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 중이다.
단역에서 한류스타가 된 배용준…
한류스타 배용준은 주식부자 1위, 가장 성공한 연예인으로 꼽힌다.
고졸 학력(훗날 대학에 진학)으로 쟁쟁한 연극영화과 출신 배우들
을 제치고 톱스타 대열에 올라선 주인공이다.
1993년 합동영화사의 스태프로 일하다 현장에서 단역으로 투입
되면서 인생역전의 기회를 잡았던 그는, 조소혜 작가의 '젊은이의
양지' 후 스타덤에 오른 후 철저한 자기관리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꾸준한 자기개발로 20년 가까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사춘기시절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업실패로 집안이 어려워
지자 소년 배용준은 돈을 빨리 벌려고 배우를 택했다고 한다.
씨름선수 출신 강호동
강호동은 억센 사투리와 씨름선수 출신이라는 편견을 깨고 MC계
1인자가 됐다. 오랜 기간 MC가 되기 위해 트레이닝을 받아온 쟁쟁한
선후배들을 물리치고 국민 MC가 됐다.
천하장사라는 타이틀을 안고 방송에 데뷔하긴 했으나, 그가 넘어
야 할 장벽은 무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당시만 해도 억센 경상도 사투리는 스타급으로 성장하기엔
거슬리는 악조건이었다.
그러나 2007년부터 지상파 3사 통합 '연예대상' 5회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옥탑방 처녀' 장윤정
트로트계 신데렐라 장윤정도 헝그리 정신으로 자수성가 한 경우다.
데뷔 전 3년간 난방, 가스가 다 끊긴 옥탑방에서 혼자 살며 가수의
꿈을 키워왔다. 엄청난 빚으로 인해 생계형 이산가족으로 살아야 했던
그는 데뷔 전에는 신용불량자이기도 했다.
장윤정은 "옥탑방이 너무추워 헤어 드라이어로 몸을 데우고 나서
야 잠이 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를 지금의 '짠순이'로 만들었다.
유명한 가수가 되고난 이후 엄청난 수입을 올렸지만, 지금도
번 돈의 70%를 몽땅 저축하는 알뜰파다.
우울증·공황장애·자살시도 극복한 김장훈
가수 김장훈은 공황장애, 우울증, 자살시도 등을 극복하고 가수로
성공했다. 잦은 병치레와 두 번의 자살시도, 죽음의 문턱을 10번 이상을
오락가락 하면서도 음악을 향한 집념을 꺾지 않았다.
그는 오랜 무명시절을 털어내고 불우한 이웃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릴 줄 아는 기부스타로 거듭났다.
편견 깨고 스타덤에 오른 '중졸' 서태지·
서태지는 학벌주의를 향한 세상의 편견을 깨고 성공을 안았다.
고교 졸업장조차 없던 그에게 세상은 '문제아'라고 눈을 흘겼을테
지만, 예술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며 꿈을 이뤘다.
서태지는 북공고 1학년 때 자퇴서를 제출한 후 음악을 향한 열정
과 고집 하나로 '문화 대통령'이 됐다. 한국어로는 랩을 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한국어 랩을 구사해
이후 한국 힙합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고등학교 중퇴 학력이 음악에 더욱 매진할 수 있게 했다"는 서태
지의 고백은 학벌 지상주의 세태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중졸학력의 배우 정우성
배우 정우성도 어려운 가정형편과 중졸 학력을 극복하고 스타덤에
오른 자수성가형 스타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는, 생계
문제로 고등학교마저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정우성은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모든 식구가 한방에서 생활했지만,
단 한번도 가난을 원망해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
강원도 '광부의 아들' 원빈…
배우 원빈은 강원도 정선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그야말로 맨손으로
성공을 일궜다. 춘천에서 공고를 졸업한 그는 카센터에서 일하다
무작정 배우의 꿈을 키웠다.
시골청년 원빈이 배우가 되고자 결심했던 이유는 평생 고생만
하신 부모님 때문이었다고 한다. 원빈은 우연히 TV를 보다가
"연예인이 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을것 같아" 배우가 되기로 맘먹었다.
이후 무일푼으로 상경해 신문배달과 막노동을 하면서 연예계의
문을 두드렸다.
가난과 10년 무명생활 극복한 임창정
임창정 역시 가난한 살림과 10년여의 길고도 차디찬 무명시절을
버텨낸 후 스타가 됐다.
가난한 집안의 다섯째 딸 조혜련
조혜련의 경우도 가난한 집안의 1남 6녀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나
헝그리 정신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룬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8년간의 무명 연습생 조권
2AM 조권은 지하 단칸방 생활과 8년 동안의 지독한 연습생 생활
을 극복한 후, 국민아이돌 그룹 멤버가 됐다.
최근에는 고생하신 부모님께 '내집'을 선물, 감동케 하기도 했다.
;;;;;;;;
그레이스 켈리 (Grace Kelly)
( 1929 ∼ 1982 )
몇 년 전 미국의 여성지 ‘우먼스 저널’이
독자를 대상으로 역사상 가장 우아한
여성에 대한 투표를 실시했다.
1위는 그레이스 켈리(1929∼1982).
인기 절정의 배우에서 왕비로 신분이 바뀐
그녀의 이야기는 현대판 신데렐라 그 자체였다.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아일랜드계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51년 영화계에 데뷔해 불과
5년 만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녀가 게리 쿠퍼의 아름다운 신부 역으로 출연하는
서부영화 ‘하이 눈’은 지금도 올드 팬의
기억에 남아 있는 서부영화의 고전이다
25세의 나이에 오스카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지자
여러 유명한 남자 배우들과의 염문이 생기지만
그녀는 도도하고 차가운 매력으로
그녀의 이미지를 흐트리지 않는다.
1954년 잡지에 실릴 사진을 찍기 위해
모나코의 왕실을 방문했던 그녀에게
당시 모나코의 왕자였던 레이니에가
그녀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1956년 레니에 3세와 결혼 .
모나코 왕과의 화려한 결혼식 이후
그녀의 모습은 은막에서 사라지고
그녀는 공식석상 이외의 자리에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후 모나코는 그녀와의 결혼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상당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세간의 부러움과는 달리
엄격한 궁중생활과 스트레스로 인해
상당한 우울증에 시달렸었다고 한다
1982년 9월 14일 모나코 근교의 여름별장에서
왕궁으로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로
53세의 나이로 사망 | | | |
첫댓글 좋은 내용의글 잘읽고 갑니다.
앞으로도 많은 활동 기대해 봅니다.
즐감하고`갑니다.
여러 내용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