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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 피난을 읊은 가사
청춘초로진곡
어와 세상 벗님네야 이 내 말씀 들어보소 이 인생 천지간의 이 아니 총총한가 평생을 다 살아도 백년이 잠시로다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사람마다 있건마는 지난 제사諸事 생각하니 나 같은 이 인생은 세상에 다시없다 홀연히 이는 춘풍 심회心懷를 비춰내니 대장부 간장이나 과거사와 내두사來頭事를 측량키 어려워서 일폭화전一幅花箋[紙] 떨쳐놓고 고난과 즐거움을 다시금 생각하여 필기筆記로 다 못 할다 길고 긴 고생사중 고통이 많았구나 시종始終이 여일토록 평생사를 기록하니 자녀, 질姪, 보올 적에 십성히 보지 말고 부父와 숙叔을 부르면서 웃음거리 삼아주소
나의 생지生地 어딜는고 경북 안동 금계촌의 복당촌 중마일세 주호周好하고 앞 좋으나 운수 없는 이 내 몸이 천기天機랄 수 있을쏜가 부모님의 근념勤念으로 귀중히 자라나서 부귀공명 하쟀더니 조물造物이 시기하고 신명이 저희沮戱하사 팔자 도망 못할 몸이 안태지安胎地도 있지 못해 고향 이별하게 되니 이 아니 흣불손가
정든 친척 이별할 제 철석鐵石이 아니어든 좋을 수 있을쏜가 유치한 마음에도 망연히 섰었거늘 하물며 우리 부모 심신이 어떠실꼬 꾀 들고 철드니까 부모님 갖은 고생 목불인견 절박토다 벼르고 벼른 길을 정처 없이 가자꾸나
아름답고 기이함은 학가산이 제일인데 경개 조화 없을세라 학가산을 뒤에 두고 인근산천 후後로 밀어 친척 고구故舊 이별할 제 좋이 가라 당부하니 가슴이 막히거든 대답이 나올쏘냐 여취여광如醉如狂하니 눈물이 하직일세 동구洞口에 짐을 띄니 이별시離別時가 이 때로다 내 감은 무슨 일고 소상강瀟湘江 궂은 비 비 빌러 가는 길가 무엇하러 가는 길가 이도 역시 생애 불찰不察 불가피 사정이라 전패식顚沛式 가는 곳은 봉화땅 춘양면의 도심골이 이 아닌가 들고 보니 한심난다 산천은 험준하고 토색土色은 황토로다 사람 살 곳 못 되오나 신선한 공기들은 좋고도 좋을시고 나무 숲에 새는 바람 석계石溪의 유수流水들은 방울방울 옥색玉色 같고 청명한 공기들은 신선들의 거처로다 옛말에 이르기를 신선이 있다더니 혹세무인惑世誣人 이곳인가 선경仙境일시 분명하나 신선은 놀 지라도 사람 살 곳 못 되어라
유시流矢로 빠른 세월 살 같이 가는구나 거처한지 팔년만에 설상가상으로 첨증첨환添症添患 되었구나 기박奇薄한 이 내 몸이 이팔의 건강한 몸 할 일이 전혀 없어 십지생활十指[不動]生活 되었구나 인간의 말단이오 타인 못할 말직으로 노가다에 종사하여 망친 몸이 되었구나 직장을 굽어보니 평생에 못 본 물건 이상하고 기이하다 사방의 거미줄은 범 같이 놀고 있어 기계장치 도는 광경 천지의 박색薄色이라 생사간의 운명이야 하늘께 부탁하고 구명도생求命圖生 부지할라 매일매일 다녔어라
그럭저럭 보낸 세월 어언간 십수년의 남아 이십 되었구나 호사한 이내 몸이 엄연한 장부로서 친구의 꼬임으로 범람氾濫한 잡념들어 초석유회草席遊會 갔을세라 좌석에 모인 중에 남녀가 동좌同坐하여 일배주로 놀음 놀 제 공급소 여사무원 성명은 무엇인고 충남 공주 사람으로 강명옥姜明玉이 이 아닌가 놀음 중에 사귀어서 의사로 통정通情되어 인연을 맺었어라 외화外華는 보통이나 심덕心德은 인순仁順임에 나를 보고 하는 말이 ‘선생님의 마음보니 이 내 몸을 의탁하여 평생을 받들리다’ 간사한 감언甘言으로 만간(만 가지) 요사妖邪 다 할시고 철석이 아니어든 안 넘으리 뉘 있으랴 금석金石같이 맺어두고 호월호일呼月呼日 지내는 중 천만의외 허혼편지許婚便紙 청천의 벽력같고 근심거리 되었어라
마음은 동색動色이나 천연한 자태로서 ‘객의客意에 사는 몸이 처지가 난관難關하니 하시何時라도 환고還故[鄕]하여 적임자에 가오리다’ 의연히 거절하니 부모님의 꾸중 보소 말로 다 못 할시고 완고한 내 마음이 고법古法을 못 잊어서 부모의 명령으로 창고한 고법으로 초행初行을 가게 되니 나의 마음 생평生平 일이 이걸로 마치는가 초례初禮를 마치고서 석양은 재를 넘어 어느 덧 야중夜中이라 동방화촉 꿈꿀 적에 신인新人(新婦)를 맞았으니 피차간 초면으로 할 말도 전혀 없고 어이 없는 내 가슴이 일폭심사一幅心思 새롭도다
곰곰이 생각하니 사람의 한 평생에 실신失身(失節)을 말자더니 요사한 여자에게 볼 것 없는 사람되니 이 어이 대장부일까 간신히 밤 지내고 추일秋日의 입가도중入家途中 중로中路서 만난 것이 강명옥의 신身이로다 반갑기는 하였으나 실신한 이 내 마음 간신히 심정審正하여 ‘안녕히 지내시오?’ 저 여자 안목보소 나를 보고 하는 말이 ‘당신의 복색服色 보니 아마도 헛 믿었소’ 애연哀然히 돌아앉아 눈물을 머금으며 ‘몰랐소다 몰랐소다 당신 마음 몰랐소다’ 무릅 비고 우는 양樣이 마음이 괴롭도다 ‘여보 여보 울지 마오’ 어깨를 어루만져 좋은 말로 하는 말이 ‘나 역시 시하侍下로서 하는 수 없었으니 만약 그대 못 잊거든 부실副室도 좋을소냐 호好이면 청허請許함세’ 여자의 거동보소 ‘나도 오직 청춘이라 남의 부실 가당하오’ 샛쪽뱃족(샐쭉삐죽) 우는 양은 사오월 목단화의 이슬 마신 형상 같고 청천백공靑天白空 기러기가 짝을 잃음 같을세라 차마 보기 절박하여 여관 주인 불러 놓고 쥐 숨듯 피신하여 집으로 돌아올 제 설렁설렁 오는 중에 귀뚜라미 우는 형상 차마 듣기 절박토다 하염없는 눈물로서 영 이별 하였어라
집으로 돌아와서 여전한 금전金廛(金鑛) 종사從事 수월만에 해고하고 법전면 물래을의 다덕광산 왔어라 땅두더지 모양으로 항내坑內 종사 하였구나 다년간 고생중에 청천백일 밝은 날에 뇌성벽력 급히 친다 난데없는 변變이로다 전 회사 사원모아 교정에서 하는 말이 제주도 이동 말이 뇌성벽력 이 아닌가 가족 모아 상의하고 아니 가기 결심한 뒤 휘하 인부 모아 두고 만단萬端으로 타이른 후 동서東西로 흩어졌네 가련한 이 내 몸이 갈 곳이 전혀 없다 고장(故鄕) 있는 이 내 몸이 갈 곳이 있건마는 어느 누가 반가할까
백 가지로 생각 중에 할 수 없이 발을 떼어 환고향還故鄕을 하였구나 부모 동기 만나보고 대택大宅에 의지하여 허송세월 하는 중에 천신이 도와주고 조물이 알아줘서 대택의 창락暢樂없는 뒤를 이을 솔양率養 일로 내급까지 갔을 세라 무사히 성공되어 창락없는 우리 큰집 화려하게 되었구나 남남끼리 모인 사촌 유정有情도 하올시고 종형주(從兄님)내외분의 후덕한 심성으로 종형제 돌봐주니 이로 인해 의지하여 날을 맞고 보내는 중 빠른 세월 살 같아서 어언간 삼사년의 좌우분쟁 웬 말인고
자고급금自古及今 두고 보면 우리나라 역사중의 외국 수치 무엇인가 당파투쟁 이게로다 패국敗局함은 무엇인가 남로시비南勞是非 이게로다 애닯고 애닯도다 민중전民衆戰의 작란作亂함도 남로시비 원인이오 군가쇠진君家衰盡 망해짐도 당파로 망했거늘 오늘날 우리나라 좌우분쟁 될 말인가 온갖 중상中傷 이 내 몸이 좌우분쟁 하는 중에 외인外人의 구축驅逐으로 법문法門 구경 두 번 하고 온갖 형벌 매탈(매打作)하니 이도 역시 운명일세 죽음의 죽음으로 근근이 지낸 중에 무엄한 이북동포 불법 남침 왠 말이야
우리나라 운수이오 삼천만의 비운으로 삼팔선을 돌파하여 탱크차 수백대에 아군이 못 당해서 남하남하 하는 중에 물밀듯한 피란민의 형상도 가긍쿠나 금계촌 좁은 골이 인산태人山汰가 되었구나 설상의 가상으로 우리 역시 가게 되니 가슴이 설렁설렁 눈물이 앞서도다 남천南天을 굽어보고 발을 밀어 가는 몸이 정처 없이 되었구나 동서남북 가린 중에 남쪽 운수 좋았던지 오늘까지 행언行言함과 여사여취如辭如趣하온 말로 남하남하 하게 되니 사람 마음 괴이하다 부모동기 다 버리고 단봇짐을 싸서 지고 노모老母(養母) 한 분 앞서시고 젊은 아내 뒤 서고서 삼 대소가大小家 떠나올 제 동구洞口를 못 나서서 마을 사람 동작 보소 눈물로 하는 말이 우리들은 어이할고 부여잡고 슬피우니 하물며 이 내 마음 철석이 아니어든 정신이 온전할까 길흉간 안부사를 구두口頭로 다 못하고 눈물로 작별하니 전권全眷[率]이 울음이오 대소가가 난리로다
앞도 뒤도 안 돌보고 두 주먹을 불끈 쥐서 남만주南滿洲 가는 듯이 호암을 얼른 지나 막곡幕谷서 밤 지낼 제 정신없이 지냈불고 행계앞 물 건널 제 배를 어찌 못 타고서 이리 방황 저리 방황 급급황황 하는 중에 반갑도다 저 사람아 응복이 아니야 옛날의 한 고조가 장량 선생 만남 같고 만고성인 유현덕은 삼고초려 지성으로 제갈선생 만남같이 잔약한 이 내 몸도 비할 때 없었구나 노를 저어 데려가니 이 아니 활인活人인가 검암서 밤 지내고 발섭跋涉하려 하는 중에 범 같은 저 군인이 사람추려 오는구나 황황한 마음으로 자빠질락 업뎌질락 지망志望(定處) 없이 가는 중에 대소가가 흩졌구나
닫는 말 저기 가니 이곳은 어딜는고 고일이 분명쿠나 상상봉 얼른 올라 고향을 바라보니 어둠 침침 ○○○○ 불덩이 것 뿐이로다 오락가락 신호탄은 청천백일 저문 날의 온갖 별이 났는 같고 천지가 진동하는 포성소리 귀가 울려 정신은 불균不均이나 고향이 그립도다 국곡을 얼른 지나 자개동서 하루 묵고 추상같은 후퇴명령 아우성 함께하여 앙천탄식仰天歎息 할 일 없이 고향산천 영결永訣함이 다시 보진 못 하리라 생각 끝에 눈물 나니 파리 같은 잔명殘命들이 차마 죽기 절박하여 추풍에 낙엽같이 군중에 섞이어서 지향指向 없이 가는 중에 여기는 어디일고 안계가 분명토다
반갑다 저 응복이 반기면서 내달으니 부모동기 만남 같고 삼복지간 더운 날에 비 옴 같이 반가워라 응복이 거동 보소 반기면서 하는 말이 큰댁 소식 들었음을 눈물로 묻게 되니 가탄可歎하다 가탄하다 묵묵히 섰노라니 심중心中이 좋을쏘냐 눈물이 앞을 가려 무심히 생각하니 대소친척大小親戚 많건마는 고독단신孤獨單身 왠 말인고 한숨 쉬고 섰노라니 응복이의 거동보소 나의 거동 알아채고 공수拱手를 부여잡고 댁요 댁요 심려마소 지성이면 감천이라 천신이 도와주사 좋은 날 다시 오면 좋은 날 즐길지니 우리 주객主客 동행하여 죽더라도 같이 죽고 살더라도 같이 하여 북망산 바랜 몸을 옛말로 하사이다 만단萬端 위로 지성이라
수일간 지내는 중 도리원 지날 적에 헌병의 거동보소 동서 충돌 번득이며 새기 전 군위 출발 시각을 다투면서 급거 급거 재촉하니 만산편야滿山遍野 피란민은 우글우글하는 형상 오뉴월 더운 날의 구덕(구더기)같이 많을세라 고산高山에 올라서서 앞들을 굽어보니 편야遍野의 백포장白布帳은 소설대설小雪大雪 추운 날의 백설같이 하얗 있고 부모 잃어 부르는 것 자식 잃어 부르는 것 아우성 한 마디가 철석 간장 다 녹는다
군위를 선듯 지나 효령을 구경하고 우보역 다다르니 못 미처 고개 밑에 철도경찰 증명수색 바쁜 길 더디 하니 이도 역시 지악至惡일세 천생天生에 말명으로 근근이 통과중에 천신이 도왔던지 우연이 만난 것이 종제從弟를 만났구나 반갑고 반갑도다 난규蘭奎 역시 너도 왔나 기박한 이내 몸도 친척이 있었던가 손을 잡고 할 말 없어 수수手手로 인사하니 저나 나나 어떠 할고
종형제 작반作伴하여 수십數十이 동행중에 화본역 얼른 지나 한계寒溪의 밤 지낼 제 설상의 가상으로 수라장修羅場 들살(들쑤심) 중에 도민증道民證 없어[졌]구나 운수 없는 이 내 몸이 꼼짝 없이 죽겠구나 오락가락 찾는 중에 일행은 다 떠나고 빈 행차 나만 있어 한아고독寒兒孤獨 이 아닌가 적의 정세 시급하여 탄피彈皮 족히 날아오니 아니 가고 어이할까 생사生死는 재천在天이라 운수만 믿자옵고 갑티령을 얼른 넘어 신령을 갔을 세라
여기는 어디일는고 고법古法의 좋은 지역 말만 듣고 처음 보니 경개境槪하러 갔었으면 구경도 좋았으나 너르고 너른 들은 사람갈 곳 바이없다 신령서 만난 사람 누구누구 만났던고 김천족조金泉族祖 만났으며 친우 한 분 만났구나 삼인동봉三人同逢 반겼으며 이삼일 과도중過渡中에 김천족조 아우가 별別[世] 일조一朝에 없앴으니 이 아니 원통한가 섧고 섧고 섧은 인생 눈물이 마르쟎네
그럭저럭 수일 후에 집단지 백학 땅에 면면이 모이어서 마을 마을 차지할 제 아는 사람 만났구나 근근 부지[하는] 일야一夜 중에 일성 초성一聲 硝聲 웬 말인고 뇌성벽력 급히 친다 삼혼칠백三魂七魄 흩어지니 나의 정신 온전할까 군중이 하는 대로 서서히 따를세라
닫는 말 저기 가니 앞참이 어디일꼬 화산이 분명토다 너르고 너른 벌판 석계石溪가 이 아닌가 이 중의 다석多石들은 많기도 많건마는 오히려 적게 뵌다 편편한 호당들은 백절같이 ○○○○ 야중夜中의 동화動火들은 삼사월三四月 초시절의 참꽃같이 피어있고 운중雲中에 솟은 달은 우리 형체形體 그려내니 형상을 볼작시면 걸인乞人일시 분명토다 남부여대男負女戴 하온 몸이 몇 백만이 되었던고 흉측한 얼굴들은 귀신과 같을세라
가고 가고 가다 보니 여기는 어디일고 대창 땅이 분명토다 일가一家를 어쩔라니 칠촌의 양자養子하듯 전역錢役도 많이 든다 저 주인의 마음 보소 인순仁順하고 인자하다 사오일 지낸 후에 자인을 지나는 중 산상山上에 막幕을 치고 식사를 마치는 중 부슬부슬 오는 비는 사람 근심 더 되도다 산란한 이 내 마음 고향생각 간절하다 재가在家중 부모들은 심려가 어떠실고 하루밤 밤 지낼 제 시우時雨 속에 지냄같이 합북이(호빡) 맞은 비는 기한飢寒을 못 면할다 어린 아이 우는 형상 사대육신四大六身 마디마다 절절이 에이는 듯 촌장寸腸이 온전할까 적세敵勢는 위중하여 영천까지 왔을 세라 아군의 폭격들은 천지가 진동하고 적군의 아우성은 시랑豺狼의 소리같다 일사봉공 아군들은 용맹도 하올시고 강철같이 단결하여 북으로 추진推進하니 이 아니 장할 손가
마지막 소개疏開땅은 청도군 좁은 골의 집결지가 되었구나 가다가다 못 다가서 경산군 남산땅의 우검동을 찾아드니 호총戶總은 많았으나 안접安接할 집 바이없다 층층이 돌아들어 한 집을 찾아드니 연고 있다 칭탁稱託(핑계)하고 또한 집을 찾아드니 기고忌故있다 칭탁하니 유세有勢 없는 이 인간이 또 한 집 찾아드니 고대광실高臺廣室 높은 집의 일개 정자亭子 분명토다 주인 불러 사정하니 저 주인의 거동보소 제 할 말은 선뜻 하고 아니 된다 빙자憑藉하니 거북히 채였구나 칠촌의 양자 빌듯 애걸하고 빌었더니 저 주인 하는 말이 피난민 수다數多 중에 당신같이 착한 사람 다시 보던 못 하였소 당당이 울리면서 기세 있게 하건마는 그대의 태도 보니 아마도 안동양반 일국의 제일감에 부끄럽지 않겠도다 마음보고 드리오니 귀인만 혼자 오소 반갑도다 이 내 마음 열 걸음 한 걸음에 일행一行이 들게 되니
이럭저럭 안접安接하여 세월을 보내는 중 일일一日은 무료하야 응복이와 작반作伴하고 청도지경 순산巡山할 제 산천은 험준險峻하고 기암奇巖은 괴괴怪怪한데 남천南天을 바라보니 단풍은 물이 들어 간학澗壑의 꽃이 되고 산하山河에 모인 사람 인산인해人山人海 되어있고 북천北天을 바라보니 냉냉한 공기중에 포성은 진동하고 티끌의 일어남은 구름같이 흩어있고 설상의 가상으로 화산火山이 되었구나 인간이 희소하니 백구비거白鷗飛去 뿐이로다 슬프고 애닯도다 아름다운 내고향이 ‘불천지’가 웬말인고 응복이와 손을 잡고 누수여우漏水如雨 울었구나 망연히 관망觀望타가 다시보기 절박하여 시선視線을 돌리고서 일배일배一杯一杯 마시고서 행여 마음 노였으면 이도저도 잊[겠]건만은 찬물 한 몸(모금) 없는 곳에 일배주가 될 말인가
하염없이 돌아올 제 엎어지락 자빠지락 서서히 이르는 중 재 밑을 못다 와서 수색감시搜索監視 당케 되니 이 인간은 무엇인고 방위대가 분명코나 복색을 가장하고 증명을 보자하니 아니 가진 물건이야 있다고 할 수 있나 가마 안의 고기 같고 함정에 든 범과 같이 꼼작 없이 잡혔구나 등을 밀고 가자하니 아니 가고 견딜손가 닫는 중 재촉하니 말言이 같은 타향 곳에 일가친척一家親戚 전혀 없고 지신知信할 사람 없고 바늘방석 같은 곳에 모친과 처자妻子들을 만나[지]도 못하고서 발걸음을 딛게 되니 걸음이 온전할까 앞길이 캄캄하여 눈물이 앞을 가려 걸음마다 엎뎌지니 저놈의 거동보소 발길로 차고 차며 갈길을 재촉하니 발길을 앞에 몰아 남산학교南山學校 득달得達(到達)하니 구름같이 모인 사람 나와 같이 되었구나
웅기중기 하는 중에 난데없는 호곡성號哭聲이 무심한 행객行客에도 슬픔이 절통커든 하물며 사지死地 길이 들을 때 좋을 손가 정신이 아득하여 방사房舍를 돌아보니 반갑다 모친님께 아내와 같이 오사 손을 잡고 울음 울어 눈물이 비 오듯이 말씀을 못하시니 불효한 이 인간이 봉양奉養을 못할 망정 심려만 끼치도다 아내의 거동보소 갈 바를 못 찾으며 ‘나는 어이 어이 할고’ 발을 동동하는 양이 철석이 아니어든 심신이 좋을 손가 아내의 손을 잡고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는 말이 ‘아주 가진 안 할지니 안심하고 지내소서 명일明日이면 올 것이니 부모님을 모시고서 평안이 지내소서’ 간신이 안무按撫하고 뿌리쳐 떠나오니 망연자실 섰는 양이 어옹漁翁이 짝을 잃고 옹옹한 긴 소리로 가련可憐히 돌아가니 대장부 마음이나 눈물이 쏟아진다
행군行軍이 급하옵기 야중夜中에 급행急行하여 경산읍 다다르니 넓고 너른 교정校庭에서 일야一夜 유숙留宿하온 후에 신체검사 하오려고 나란히 섰노라니 사십리 먼 먼길의 심문尋問(訪問한) 사람 뉘일는고 종호모母 분명토다 철조망이 중행中行하여 마주 보며 섰는 거동 미친 사람 되었구나 지성으로 아니 보면 막연히 잊을 것을 공연히 심문하야 구구한 일편 마음 다시 갱발更發하게 하니 이 아니 절박한가 보초인步哨人을 찾아보고 사정하여 여가餘暇 얻어 둘이 상봉相逢 부여잡고 반갑다 그대 정성 나같은 박정薄情 낭군 가장家長이라 찾아오니 그 정성이 기특도다 서동부서婿東婦西 하올 적에 백년이 다 진盡토록 이별 없게 살자더니 조물이 시기하여 우리 양인兩人 이별하니 그 형상이 어떠할고 초나라 항우가 우미인을 이별하듯 차마 놓기 어려워라 절절이 타이른 말이 ‘수이수이 돌아가소 아이의 우는 양과 노모 받드심이 그 아니 절박하오 부탁부탁 하옵나니 나를 대신 부모 모셔 지성으로 받드시면 우리들도 한 때 있어 무궁한 희락喜樂으로 아들 딸 많이 두고 남전북답南田北畓 많이 두어 만고萬古 낙樂을 하올 지니 부디 걱정 마시압고 신속히 돌아가라’ 객귀客鬼들어 귀신 쫓듯 사팔쐐로 쫓아내여 영 이별 하였어라 피차간 갈린 마음 측량키 어려워라
경산서 [신체검사에] 합격되어 칠팔일七八日 묵은 후에 대구를 갔을 세라 대구 간 지 이일二日만에 병검사(재검사) 하였구나 천신이 도왔던지 조물이 도왔던가 불합격이 되었구나 여광여취如狂如醉 감탄되어 삼사일三四日 묵는 중에 일일一日은 식사차食事車로 트럭수(운전실)에 올라앉아 망연茫然이 가다 보니 의외의 신문배달 한 장 얻어 떼어 보니 반갑도다 호전소식好轉消息 영주땅 죽령까지 적의 후퇴 웬 말인고 의성 복귀復歸 하는 중에 안동사람 함께 간다[는 소식] 듣기만 반가워서 뛸 듯이 좋았도다 희색喜色이 만면滿面하여 보고지고 보고지고 우리 고향 보고지고 주야장천晝夜長川 구름같이 속히 서서 보고 지고 환고향還故鄕 하는 날에 부모동기 만나보고 일가친척 만날 일을 생각[할]수록 기쁘도다 기쁨이 극極하여서 미친 사람 되었구나
출문出門하여 내 달을 제 장천長天의 대우大雨같이 길고긴 다리[라]면은 한 걸음에 다 가고자 발광發狂으로 뛰었구나 가솔家率이 있는 곳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남산南山을 갔을 세라 동구洞口에 들어가니 텅이 비인 마을들은 사람자취 없는 것[같]고 들판의 수라장修羅場은 빈터만 남았구나
주인댁 찾아드니 저 주인 거동보소 형제 같이 반기면서 내달아 손을 잡고 이끌어 들[어]가면서 반갑다 그대 행차 지성至誠으로 반기면서 점심상을 내여오니 함포고복含哺鼓腹 하온 후에 가솔家率의 말을 하니 작조昨朝에 떠나가고 없다고 말씀하니 일부는 반가우나 일부는 섭섭도다 주인 불러 물은 말이 은혜를 찬성贊成하고 회정回程하여 오는 길에 대창들 얼른 와서 전 주인主人 찾아가니 또 역시 반기면서 내달아 부여잡고 반기면서 하는 말이 귀댁貴宅 가솔家率 여기 있소 어서 가서 보옵소서 반갑기 짝이 없어 바삐 가서 만나보니 이 아니 반가운가 눈물로 반기고서 일야日夜 일야 우又 일야의 오일五日만에 환고還故하니 오는 도상途上 형상形狀이야 냄새는 충천衝天하고 간간히 폭격 터는 집도 절도 없어졌네 기괴奇怪한 형상形狀이야 말로 다 못할시고 급기야 환고하니 추실秋實은 잘 되었고 대소大小 전가全家 안일安逸하니 불행중 다행이[로]다
여유如流 세월이 흐르기 살 같아서 6·25 혼란 날도 어언간 오년五年이라 그간의 온갖 변천 형용形容하기 어려워라 경술년 합방후에 온갖 병화兵火 맞았누나 6·25 동란 사변 전고前古의 처음이요 삼천만의 설리泄痢로다 애닯고도 가련하다
우리나라 국운國運보면 사십년四十年의 일본정치 가혹키도 가혹하다 정치상 떳떳함은 세계의 제일이나 우리나라 원수요 천고千古 없는 도적이라 왜놈의 착취로서 우리나라 병이 드니 이 아니 절통切痛한가 오륜삼강五倫三綱 없어짐도 왜놈의 불찰不察이오 인륜도덕人倫道德 없어짐도 도적에 의함이라 국운이 재생再生하니 일조일석 변천된다 미국놈의 기술보소 원자폭탄 한방 뜨니 일본이 황겁惶怯하여 일조一朝에 항복하니 불쌍한 우리 겨레 자유가 왔단 말가 삼천리 이 강산에 곳곳이 돌아보니 간 곳마다 만세소리 천지가 진동하니 이 아니 좋을손가 천만고千萬古 역사중에 새뜻하고 이상함이 여기에서 더할쏜가 기세 좋은 왜놈 거동 일조일석一朝一夕 걸인乞人 되니 보기도 불쌍하다 쥐 숨듯 도망하니 국가이나 사사私事이나 흥망성쇠興亡成衰 알 수 없고 귀신도 모를 일이 만 가지에 더 할시고
나라는 찾았으나 우리나라 운수로서 강산이 분토糞土되어 북쪽은 좌익이요 남쪽은 우익이라 좌익이니 우익이니 양 당黨이 투쟁 중에 삼팔선이 가로 질려 걸핏 하면 싸움 나고 약차하면 살인殺人하니 이 역시 국운이라 남북이 같은 물로 송연참상悚然慘狀 왠 말인고 수백만 달하오니 이도 역시 아깝잖나 깔밤같은 우리 청년 나날이 줄어드니 국운이라 볼 수 있네 사십四十 이하 젊은 놈은 꼼짝도 할 수 바이없고 두문불출杜門不出 되었으니 산 귀신鬼神이 이 아닌가
연중連中의 우환憂患으로 자본주의資本主義 국가로서 부귀자富貴者는 살 수 있고 빈한자貧寒者는 망연茫然하니 봉건시封建時나 신건시新建時나 아무 것도 믿지 못해 세월만 허비虛費함이 때 오기만 고대苦待한다
동풍冬風이 다 지나고 춘풍春風이 일어나니 이때는 어느 절節[인]고 을미년乙未年 신일월新一月의 일기는 온화하고 풍세風勢는 고요하여 사방에 나서 보니 놀 데는 전혀 없고 간 곳마다 잡기 놀이 세상에 편만遍滿이라 보기에 절박하여 참섭參涉함이 억울하여 나 혼자 있고 보니 무료하기 짝이 없어 노래로 글을 쓰니 웃음거리 말지라
후세의 자손들게 나의 고초 알려주니 자질子姪들 보올 적에 상심詳審하여 볼 것이며 오륜삼강 예법으로 도를 닦아 행할지며 대소제택大小諸宅 우애友愛있기 절실히 느끼는바 우리들의 우의友誼보면 금수禽獸만도 못 할시고 차역此亦 불필不必[要] [될] 말인가 후세인後世人의 부탁사付託事는 오륜삼강 굳게 지켜 사람됨을 바라옵고 웃음거리 부디[말기]로서 평생平生소종所終[來] 그려내니 한심 끝에 웃음난다 우리 집의 삼천만의 만세 만세 만만세를 무궁無窮하기 바라옵고 십오야十五夜(보름밤) 밝은 달의 한심으로 그치노라
저자著者는 누굴는고 경북 안동 금계촌의 일간초옥一間草屋 거居하는 김한사金閒士의 소작所作이라 보는 이 웃어주소
- 김교룡(金敎龍, 1922~2005), 1955년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