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재집 제7권 / 도(圖)
-심의 체용에 관한 도〔心體用圖〕-
삽화 새창열기 | [해설] 마음의 체는 성(性)이다. 성은 허령(虛靈)하면서 지각(知覺)한다. 인의예지(仁義禮智), 기질정신(氣質精神)이다. |
[해설] 마음의 용은 정(情)이다. 정에서 측은(惻隱)ㆍ수오(羞惡)ㆍ사양(辭讓)ㆍ시비(是非)는 도심(道心)이고, 희(喜)ㆍ노(怒)ㆍ애(哀)ㆍ락(樂)ㆍ애(愛)ㆍ오(惡)ㆍ욕(欲)은 인심이다. |
-------------------------------------------------------------
위학지도〔爲學之圖〕
지경(持敬) | 의관을 바르게 하고[正衣冠] | 단정하고 엄숙한 태도를 지닌다. [莊整齊肅] | 조용할 때의 공부이다. [靜時工夫] | |||
생각을 전일하게 하고[一思慮] | 속이지 않고 태만하지 않는다. [不欺不慢] | 움직일 때의 공부이다. [動時工夫] | ||||
경은 숙연히 두려워함에 대한 명칭이다. [敬者肅然有所畏之名] | ||||||
성찰(省察) | 공사와 사정을 살펴 [公私邪正] | 모두 간파하면 인식이 전환 될 수 있다. [都看破便斡轉了] | ||||
성쇠와 존망을 살펴 [廢興存亡] | ||||||
독서(讀書) | 바르게 앉아 깊이 생각하며 [端坐深思] | 침잠 반복한다. [沉潛反復] | ||||
입으로 외고 마음으로 깊이 터득하여[口誦心得] | 체험해 알고 체험해 관찰한다. [體認體察] |
이것은 정 선생 〈형화숙에게 답한 편지[答邢和叔書]〉 중의 말이다. 배우는 자에게 가장 절실하기 때문에 그림으로 그려 면려(勉勵)한다.
------------------------------------------------------------
성심원〔惺心元〕
한 치의 아교 [寸膠] | 경계하고 근신하며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戒愼恐懼] | 정돈하여 가지런히 하고 엄숙히 한다. [整齊嚴肅] | 마음을 전일하게 해서 잡념이 없게 한다. [主一無適] |
예리한 칼 [利刃] | 사물이 이르면 하나하나 분석한다. [事至物來 件件剖析] | ||
잊지 말라 [勿忘] | 김을 맨다.[芸苗] | ||
조장하지 말라 [勿助] | 싹을 뽑아 올리지 않는다.[不揠苗] |
============================================
-화기탕〔和氣湯〕-
성 한 개[一箇誠], 경 한 개[一箇敬], 인 한 개[一箇忍].
========================================
-익원산〔益元散〕-
기강을 진작시킴. 명분을 바로잡음. 학교를 숭상함. 정직을 앞세움. 절검을 숭상함. 염치를 권장함. 정도를 부지함. 언로를 엶. 상벌을 밝게 함. 출척을 엄히 함.[振紀綱, 正名分, 崇學校, 右正直, 尙節儉, 勵廉恥, 扶正道, 開言路, 明賞罰, 嚴黜陟.]
===============================
-수민단〔壽民丹〕-
어진 정치를 행함. 수령을 가려 뽑음. 세금을 적게 거둠. 형벌을 밝게 살핌. 병들고 고통 받는 이를 위문함.[行仁政, 擇守令, 薄稅斂, 省刑罰, 訪疾苦.]
================================
-위정지도〔爲政之圖〕-
이것은 공자가 자장(子張)의 정치를 하는데 대한 물음에 답한 것인데, 정치를 하는데 이 방법보다 절실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림으로 그려 스스로 힘썼다.
======================================================================
-부부유별도〔夫婦有別圖〕-
1과 2가 제자리를 얻고 3과 4가 제자리를 얻음은 남매가 한 근본에서 같이 나서 하나이면서 두 방위에 나누어 거처함이니, 친하면서 분별이 있는 것이다. 1과 6이 합하고 2와 7이 합하는 것은 부부가 다른 두 성이 서로 합하여 함께 한 방위에 거처함이니, 소원하면서 합한 것이다. 이쪽에서 합하고 저쪽에서 구별된다. 나머지도 이와 같다.
이는 〈하도(河圖)〉의 문양을 본받아 〈부부유별도〉를 만든 것이다. 대체로 부부는 음양의 합이요, 천지의 상(象)이다. 천지는 하나의 부부이며, 부부 역시 하나의 천지이다. 그러므로 1과 6은 한 부부요, 3과 8, 4와 9, 5와 10 역시 각기 한 부부이다. 한 남편과 한 아내가 각기 한 방위에 동거하면서 서로 바꾸지 않고 그 배우자를 확정하여 다시 다른 방위를 범하지 않는다. 북방의 1과 6이 동으로 3과 8을 침범할 수 없고 서쪽으로 4와 9에 간여할 수 없는 따위가 이것이다.
《주역》 〈계사(繫辭)〉에 “다섯 자리가 서로 제자리를 얻어 각각 합함이 있다.”라고 하였고, 전(傳)에 “서로 제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형제와 같고, 합함이 있다는 것은 부부와 같다.”라고 하였다. 이 설은 《역학계몽(易學啓蒙)》에 보이는데 이것을 인용하여 〈부부유별도〉를 풀이한 것이다. 1, 2, 3, 4, 5, 6, 7, 8은 한 번은 음이고 한 번은 양인데, 한 근본에서 같이 나서 각기 한 방위로 나누어 거처하는 것이니, 한 아들과 한 누이가 한 아버지에서 같이 나서 각기 다른 방위에 거처하는 것과 같다. 1과 6, 2와 7, 3과 8, 4와 9는 각기 음과 양이 서로 사귀어 한 방위에 함께 거처함이니 부부가 다른 혈통에서 나서 한 방에서 함께 사는 것과 같다.
형제가 같이 나서 거처를 달리하고 부부가 다른 성이면서 서로 합하기 때문에 다섯 자리가 처음에 문란하지 않고 끝내 변하지 않는다. 지금 이것으로 보건대, 부모는 가운데 정침(正寢)에 거처하고 장남 부부는 동방에 거처하고 소녀 부부는 서방에 거처하고 중녀 부부는 남방에 거처하고 중남 부부는 북방에 거처하니, 각기 제 남편을 남편으로 섬기고 각기 제 부인을 부인으로 섬기며 다른 곳에 나누어 거처하여 서로 혐의스럽지 않다. 그 질서가 구별되어 가지런하고 반듯해서 마치 해와 별이 분명한 것과 같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합한 것은 부부이고 구별되는 것은 형제이다. 이쪽에서 합하고 저쪽에서 구별되니 그것이 바로 ‘부부유별’이다.
대개 ‘부부유별(夫婦有別)’의 ‘별’ 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으니 천지 생성의 수와 합치한다. 한 남편과 한 아내가 각기 한 집에서 같이 살면서 다른 사람과 난잡하지 않는 것, 이것이 하나의 의미다. 비록 부부가 한 집에 함께 산다 하더라도 남자는 바깥채에, 여자는 안채에 있으면서 안팎이 서로 어지럽지 않는 것이 또 한 가지 의미이다.
어떤 이가 “‘부부유별’과 ‘남녀유별’이 같은 뜻입니까?”라고 묻기에, 내가 대답하였다.
“‘남녀유별’이 ‘부부유별’인 것이다. 대체로 ‘남녀유별’은 남자는 남자끼리 거처하고 여자는 여자끼리 거처하여 남자와 여자가 굳이 함께 하지 않음을 이른다. 이는 마치 양(陽)은 양과 상종하고 음(陰)은 음과 상종하는 것과 같다. 부부유별은 남편은 제 아내가 아니면 상종하지 않고 아내는 제 남편이 아니면 상종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마치 한 양과 한 음이 한 방위에 함께 거처하면서 다시 다른 방위로 바꾸지 않음과 같다. 그러므로 무릇 남자와 여자는 각기 다른 사람의 남편이나 아내를 꺼려서 늘 피하니, 길에서는 길을 달리하고 거처할 때는 거처를 달리함이 이것이다.”
어떤 이가 “별(別) 한 글자에 두 가지 뜻이 있다는 것이 어찌하여 신기하고 예스럽지 않습니까?”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였다.
“엄씨(嚴氏)의 역(易)의 〈방도(方圖)〉와 〈원도(圓圖)〉에 ‘대분(大分)’과 ‘소분(小分)’이라는 설이 있는데, 나는 온 천하의 부부에게도 역시 대별(大別)과 소별(小別)의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하도(河圖)〉의 상을 살펴보면 1과 6의 수(水)와 2와 7수의 화(火)와 3과 8의 목(木)과 4과 9의 금(金)과 5와 10의 토(土)가 각기 다섯 방위를 나누어 차지하여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 대별(大別)이다. 1은 6과, 2는 7과, 3은 8과, 4는 9와 각각 음양으로 내외(內外)가 있으니 이것이 소별(小別)이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온 천하의 부부가 각기 짝이 있어서 서로 뒤섞이지 않는 것이 대별이요, 한 사람의 부부로 보면 남편은 외, 부인은 내인 것이 소별이다.”
어떤 이가 “별(別) 자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면 그렇다고 여기겠습니다. 그러나 근세에 제유(諸儒)들이 모두 남편은 외, 부인은 내라는 설을 따르는데 그대만 유독 별도로 다른 의미를 만든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였다.
“이 설은 《소학》 본문 및 《예기》 중에 나올 뿐만 아니라, 가까이 사람에게서 취해도 곧게 절개를 지키는 부인이 있고 멀리 사물에서 취해도 〈관저(關雎)〉의 아름다움이 있다. 경사(經史)에서 찾아보더라도 역시 모두 근거가 있고 〈하도(河圖)〉에 비추어볼 때 그 상이 분명하다. 더구나 이 별(別) 자는 유독 부부의 굳은 절조에만 보이는 게 아니라, 부자ㆍ군신ㆍ형제ㆍ붕우에도 모두 그러하다.
네 가지는 각기 상하와 선후의 분별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저들의 부자와 군신은 진실로 나의 부자와 군신과는 다른데, 저들의 형제와 붕우 역시 어찌 나의 형제와 붕우와 같겠는가. 반드시 이와 같은 뒤에 사람에게 각각 구별이 있고 떳떳한 윤리가 펼쳐지게 되어 거의 금수(禽獸)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선유(先儒)가 ‘이치는 하나인데 나누어짐은 다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하가 어찌 나의 군부(君父)를 분별하여 충성과 효성을 다하겠는가. 이것이 내가 결단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점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까닭이다. 어찌 감히 새로운 말을 새롭게 지어 뭇 현인을 속이겠는가.”
총론〔緫論〕
어떤 이가 “‘부부유별(夫婦有別)’의 별은 한 부부가 다만 서로 친압하지 않으려고 남편은 바깥채에 거처하고 아내는 안채에 거처한다는 뜻입니까?”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소학》을 읽으면서 ‘부부유별(夫婦有別)’에 이르러 마음에 의혹을 가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중매를 통하여 서로 이름을 알고, 폐백을 받고서 서로 친하게 사귄다’고 하고서 어째서 ‘분별을 후하게 한다[厚其別]’고 하였으며, 이미 ‘예물을 가지고서 상견(相見)한다’고 하고서 어째서 ‘공경함으로써 뚜렷이 구별한다[敬章別]’고 하였는지? 이러한 구절의 ‘별’ 자는 무슨 의미인지? 이미 ‘소원한 사람을 가깝게 하고 분별을 후하게 한다’고 하여 놓고 또 ‘한 번 같이하였으면 죽을 때까지 개가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무슨 의미인지? 만약 단지 ‘부외부내(夫外婦內)’를 ‘별’이라고 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이런 글의 의미와는 합치되지 않는 것인지? 이렇게 사색하여 답을 얻지 못한 것이 오래되었다.
우연히 《소학장구》를 읽다가 ‘금수가 어미가 있는 줄을 알면서 아비가 있는 줄을 모르는 것은 구별이 없는 까닭이다.’라는 한마디 말에 이르러 비로소 ‘별’ 자의 의미를 알았다.
대개 금수의 암수 관계는 정해진 짝의 분별이 없어 서로 더럽히고 난잡하게 산다. 그러므로 그 어미에게 젖이 있는 줄만 알아서 간혹 패역한 짓을 하며, 누가 아비인지 알지 못하므로 보고서도 예사롭게 여긴다. 이 때문에 사람이 처음 혼인할 때 매우 신중하게 하며 반드시 중매를 통해서 이름을 알고, 폐백을 받고서 인척이 되며, 구멍을 뚫고 엿보는 혐의나 담을 넘어 따라다니는 천한 행위가 없다는 것을 보였다.
또 임금과 신(神)과 동료와 벗에게 고하여 아무개와 아무개가 배필이 되었음을 알게 하고, 한 번 정하여 바꾸지 않는 뜻을 보였다. 서로 만나 볼 때 성심과 신의로 고하고 공경하여 혐의가 없음을 밝히고, 혼례를 할 때에는 두 혈통을 분별하여 서로 문란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한 번 더불어 혼례를 올려 각기 그 배필을 정하면 한 집안의 남녀가 각기 안과 밖에서 거처하고 목욕간을 함께 쓰지 않으니, 또한 평범한 부부 관계에서 혐의를 없애 서로 어지러움이 없도록 한 것이다. 만약 남녀가 함께 섞여 지낸다면, 평범한 부부들은 반드시 그 분별이 있음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니, 아무개와 아무개가 한 부부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일곱 살이 되면 분별이 있도록 교육하여 함께 자리에 앉지 않도록 하였다. 이로써 보건대, 부부유별의 ‘별’은 다만 남편이 바깥채에 부인이 안채에 머문다는 뜻만을 전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책으로 고증하건대, 《시경》 〈관저(關雎)〉에 대한 주자의 주석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짝이 있어 서로 어지럽히지 않는다. 짝이 함께 놀아도 서로 친압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를 보면 별 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 앞의 설에 따르면 사람마다 각기 정해진 떳떳한 배필이 있어 어떤 부부와 다른 부부가 구별이 있어서 서로 난잡하지 않다는 것이다. 부자 사이의 친함에도 역시 그러하니, 아무개 집의 부자가 다른 집의 부자와 분별이 있어 서로 뒤섞이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부 사이에 분별이 없다면 부자 사이에도 역시 분별이 있기 어려워진다. 《예기》에 ‘남녀 사이에 분별이 있은 뒤에 부자 사이에 친함이 있고, 부자 사이에 친함이 있은 뒤에 도리가 생겨나고, 도리가 생겨난 뒤에 예가 일어난다.’라고 한 것이 이를 두고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옛날에 공보문백(公父文伯)의 어머니는 계강자(季康子)의 종조숙모였다. 계강자가 찾아가서는 문을 열어 놓고 대화를 나누었으며 모두 문지방을 넘지 않았다. 공자가 그것을 듣고서 ‘남녀의 예를 구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짝이 있어 서로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뒤의 설을 따르면 남편과 아내가 친하게 사귀는 도리는 있으나 집에 거처할 때 이르러 만약 장중하게 임하지 않으면 더러 지나친 데로 흘러 그 예절에 맞지 않고 더러운 데로 빠져 그 도리로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경계를 세워 안팎의 분별을 엄하게 한 것이다.
주자가 ‘무제(武帝)가 뒤뜰에 잔치를 열어 남녀가 분별이 없었기 때문에 여태자(戾太子)가 모반하는 화를 불렀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친압하기만 하고 분별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冀) 땅의 극결(郤缺)이 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적에 그의 아내가 들밥을 가지고 와서 먹이는데, 서로 손님을 대하는 것처럼 공경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짝이 항상 함께 노닐어도 서로 친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어떤 이가 “그렇다면 정이 두터우면서도 분별이 있다는 뜻은 어떠한 것입니까?”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였다.
“외부로 말하자면 짝을 정하였으니 정이 도탑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서로 난잡하지 않으니 분별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부로 말하자면 함께 노니 정이 도타운 것이 어찌 아니겠으며, 서로 친압하지 않으니 분별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외부로 남의 부부와 분별되고 내부로 우리 부부도 분별되기 때문에 집집마다 부부가 각기 서로 분별하여 예로써 교제하므로, 남의 부부와 혐의가 생기지 않고 또 나의 부부도 서로 더럽히지 않는다. 그러니 ‘별’ 한 글자에 두 가지 뜻이 있어 한쪽을 없앨 수 없다.
〈하도(河圖)〉의 설을 상고해 보면 ‘다섯 자리가 서로 제자리를 얻어 각기 합함이 있다.’라고 한 주(註)에 ‘서로 맞음이 형제와 같고 합함이 부부와 같다.’라고 하였으니, 이 합함이 있다는 설로 보건대 1과 6이 합이며 홀수 하나와 짝수 하나가 정해진 짝이 된다. 각기 한 방위에 상주하여 다시 다른 방위와 뒤섞이지 않고 진실로 서로 떨어지지 않으며 또한 일찍이 그 배우자를 바꾸지 않으니, 그 이치가 본래 이와 같다.
하물며 한 책 가운데 오륜에 대해 발명한 설이 모두 시말(始末)이 있으니, 그 결론은 반드시 본장의 주된 뜻을 끄집어내어 앞에 결론지었고, 또 뒷장의 주된 뜻을 끄집어내어 뒤에 생겨나게 함에랴. 예컨대 부자(父子) 장에 ‘오형에 속한 형벌의 종류가 삼천 가지이다[五刑之屬三千]’인데 그 가운데 ‘불효하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다[罪莫大於不孝]’라고 결론지었으니, 대개 효도는 본장의 주된 뜻이기 때문에 불효로 앞에 결론짓고 군신간에 의롭지 못하고 부부간에 분별하지 못하고 벗 사이에 미덥지 못한 죄를 뒤에 일으켰다. 군신(君臣) 장에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不事二君]’는 것으로 앞에 결론짓고 ‘두 남편에게 시집가지 않는다[不更二夫]’는 것을 뒤에 일으켰다. 부부(夫婦) 장에 ‘여색을 좋아한다는 혐의를 피한다[避好色之嫌]’는 것으로 결론짓고, ‘그와 벗하지 않는다[弗與爲友]’는 것으로 주를 삼았다. 그러니 다정하면서 분별이 있다는 의미 역시 볼 수 있다.
〈하도〉와 경전(經傳)에 옛사람이 행사(行事)한 자취는 모두 이 의미를 벗어나지 않고, 이락(伊洛)이 전수한 설 또한 이 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하사신(何士信)이 《소학집성(小學集成)》을 저술하면서 ‘서로 친압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주장하여 설이 되었고, 그 뒤에 사군자가 늘 떳떳한 것을 싫어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휩쓸려 따르고 그 사이에 정해진 짝이 있어 서로 어지럽지 않다는 의미를 알지 못하니 매우 안타깝고 애석하다.
인간의 큰 윤리가 여기에서 비롯되는데 잃어버린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여기에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감히 나의 견해가 반드시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이 설로 정론을 삼으려는 것도 아니다. 〈하도〉를 인용하여 앞에서 도(圖)를 만들었고 또 소견을 말하여 도를 아는 군자에게 질문하였다. 어세가 껄끄럽고 문리가 밝지 않으니 보는 이가 자세히 살폈으면 한다.”
무자년(1588, 선조21) 4월 어느 날에 기록하다.
[주-D001] 엄씨(嚴氏) : 《역학계몽요해(易學啓蒙要解)》에서는 회계 엄씨(會稽嚴氏)라고 하였는데,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다.[주-D002] 엄씨의 …… 있는데 : 《간재집 속집》 권2 〈주역질의(周易質疑)〉에 이 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이황은 《계몽전의(啓蒙傳疑)》 권2에서 “엄씨가 대분(大分)하고 소분(小分)한 설은 자세하지 않다.”라고 하였다.[주-D003] 관저(關雎)의 아름다움 : 《시경》 국풍(國風) 주남(周南)의 편명(篇名)으로, 군자인 문왕(文王)이 요조숙녀(窈窕淑女)인 태사(太姒)를 배필로 맞이하여 그 덕화(德化)가 천하에 베풀어짐을 노래하였다.[주-D004] 이치는 …… 다르다 : 장재의 〈서명(西銘)〉에 관해 양시(楊時)가 질문하고 정이가 대답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명제이다. 이것을 주자가 계승하여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제기한 ‘합하여 말하면 만물 전체가 하나의 태극이고, 나누어 말하면 하나의 사물마다 각각 하나의 태극을 가진다.[合而言之, 萬物統體一太極也; 分而言之, 一物各具一太極也.]’라는 논리와 결합하여 “본래 하나의 태극일 뿐인데, 만물이 각기 품부받아 하나의 태극을 온전히 갖추게 된다.[本只是一太極, 而萬物各有稟受, 又自各全具一太極爾.]”라고 하여 ‘모든 사물은 우주의 본체인 태극의 이(理)를 품부받아 자신의 성(性)으로 삼는다’라는 논리로 발전시켰다.[주-D005] 구멍을 …… 행위 :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부모의 명령과 중매쟁이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구멍을 뚫고 서로 엿보며 담을 넘어 서로 따라다니면 부모와 국인들이 모두 천하게 여기는 것이다.[不待父母之命, 媒妁之言, 鑽穴隙相窺, 踰牆相從, 則父母國人, 皆賤之.]”라고 하였다.[주-D006] 임금과 …… 고하여 : 《소학》 〈명륜(明倫)〉에 “혼인하는 날과 달을 적어서 이로써 임금에게 보고하며, 재계하여 이로써 귀신에게 고유하며,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로써 향당과 동료와 벗을 불러 잔치를 베푸나니, 이로써 부부유별의 예를 두텁게 하는 것이다.[日月以告君, 齊戒以告鬼神, 爲酒食以召鄕黨僚友, 以厚其別也.]”라고 하였다.[주-D007] 공보문백(公父文伯)의 어머니 : 공보문백은 노(魯)나라 대부 계도자(季悼子)의 손자요, 공보목백(公父穆伯)의 아들인 공보촉(公父歜)이다. 목백의 아내인 계경강(季敬姜)이 바로 공보문백의 어머니이다.[주-D008] 계강자(季康子) :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대부로, 이름은 비(肥)이다. 계손비(季孫肥)라고 하는데, 계손(季孫)은 복성으로, 노나라 삼환(三桓)의 하나이다. 시호는 강(康)이고, 사(斯)의 아들인데, 애공(哀公) 말년에 죽었다.[주-D009] 무제(武帝)가 …… 불렀다 : 여태자(戾太子)는 한 무제(漢武帝)가 29세 때 태어나 매우 사랑을 받았다. 장성해서는 무제에게 매양 사이(四夷)를 정벌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간하기도 했다. 강충(江充)이 무제의 승하 후에 태자에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무제에게 “상의 병환은 무고(巫蠱)가 빌미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니, 무제가 강충을 사자(使者)로 삼아 무고옥(巫蠱獄)을 다스리게 했다. 강충이 태자궁에서 인형 등을 찾아내어 태자를 협박하자 태자는 강충을 참한 뒤 군사를 일으켜 항거했으나 결국은 패하여 남쪽으로 도망갔다가 자결하였다. 뒤에 고발한 자를 조사하여 강충의 가족을 멸하고 무제는 태자가 무고하게 죽은 것을 불쌍히 여겨 이에 사자궁(思子宮)을 짓고 귀거망사지대(歸去望思之臺)를 호숫가에 세우니, 천하 사람들이 듣고 슬퍼하였다. 《漢書 卷63 武五子傳》[주-D010] 기(冀) 땅의 …… 공경하였다 : 부부가 서로 공경하는 것을 말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춘추(春秋) 시대 진(晉)나라 기(冀) 땅의 극결(郤缺)이 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적에 그의 아내가 밥을 가지고 와서 먹이는데, ‘서로들 손님을 대하는 것처럼 공경하는 것[敬相待如賓]’을 구계(臼季)라는 사신이 보고는, 진나라 문공(文公)에게 천거하여 대부(大夫)로 삼게 했던 고사가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33年》[주-D011] 다섯 …… 있다 : 《주역》 〈계사전 상〉에 “天一地二, 天三地四, 天五地六, 天七地八, 天九地十, 天數五, 地數五, 五位相得而各有合.”이라 하여 역의 형성을 말하고 있다.[주-D012] 부자(父子) 장 : 《소학》 〈명륜〉의 ‘명부자지친장(明父子之親章)’을 말한다.[주-D013] 군신(君臣) 장 : 《소학》 〈명륜〉의 ‘명군신지의장(明君臣之義章)’을 말한다.[주-D014] 부부(夫婦) 장 : 《소학》 〈명륜〉의 ‘명부부지별장(明夫婦之別章)’을 말한다.[주-D015] 이락(伊洛) : 이락관민(伊洛關閩)으로 이수(伊水)와 낙수(洛水), 관중(關中)과 민중(閩中)이다. 이수에는 명도(明道) 정호(程顥), 낙수에는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강학하였고 관중에는 횡거(橫渠) 장재(張載), 민중에는 회암(晦庵) 주희(朱熹)가 강학하였다. 여기서는 정주학(程朱學)을 가리킨다.
=============================================================
-산법도 병서〔算法圖 幷序〕-
살피건대, 평상시 사용하는 종횡의 산법(算法)이 차례가 번거로워 모두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종횡의 사이에 착오하기 매우 쉬워 아전들이 농간을 부린다. 내 일찍이 이것을 병통으로 여겨 망녕되이 〈낙서(洛書)〉 45의 수에 따라 미루어 궁구하여 하나의 산법을 얻었다. 만약 이것을 상세히 이해한다면 산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천만의 수가 한눈에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법은 회계를 급선무로 하기 때문에 먼저 1을 긋고 1두(斗)의 수를 기입하고, 두(斗)이면 승수(升數)를 기입하고 석(石)이면 두수(斗數)를 기입하는데 뒤에도 모두 이와 같다. 2를 긋고 2두의 수 이상 3두를 기입하고, 3을 긋고 3두의 수 이상 6두를 기입하고, 4를 긋고 4두의 수 이상 10두를 기입하고, 5를 긋고 5두의 수 이상 15두를 기입하고, 6을 긋고 6두의 수 이상 21두를 기입하고, 7을 긋고 7두의 수 이상 28두를 기입하고, 8을 긋고 8두의 수 이상 36을 기입하고, 9를 긋고 9두의 수를 기입하는데 이것이 45두의 수가 된다.
만약 수가 9를 넘어 또 1을 긋고 2를 그어 앞과 같이 9에 이르면 위에 별도로 총수를 긋는다. 1ㆍ9, 2ㆍ9로 해서 또 5ㆍ9에 이르면 그 수는 450두가 되며 무궁한 데 이르러도 수는 모두 이와 같다. 그 총수는 도(圖)의 상하에 상세한데 영수(零數)가 되면 9를 쓰지 않고 앞의 7, 8 이하의 수는 9수를 쓰는 것이 옳다.
만약 영산(影筭)을 쓰면 매우 쉽고 또 편리하다. 45수가 백이 있으면 450이 되고, 천이 있으면 4500이 되며, 만이 있으면 4만 5000이 되는데, 그 아래 7과 8의 수 또한 아래와 같다.
대총수 45〔大總數四十五〕
살피건대 ㊁가 십에 있어서는 3두, 백에 있어서는 90, 천에 있어서는 900, 만에 있어서는 9000이 된다. ㊂이 십에 있어서는 6두, 백에 있어서는 135, 천에 있어서는 1,350, 만에 있어서는 1만 3500이 된다. ㊃가 십에 있어서는 10두, 백에 있어서는 180, 천에 있어서는 1,800, 만에 있어서는 1만 8000이 되며, 그 이하 ㊄ㆍ㊅ㆍ㊆ㆍ㊇ㆍ㊈의 수도 모두 이와 같다.
[주-D001] 종횡의 산법(筭法) : 산(筭)대를 종횡으로써 계산하는 방법을 말한다.[주-D002] 영산(影筭) : 영수(影數)로, 삼각법(三角法)의 구칭(舊稱)이다. 삼각법(三角法)은 각의 측정 및 삼각형의 변과 각 사이의 양적 관계의 연구를 기초로 하여 측량ㆍ건축ㆍ천문ㆍ관측ㆍ항해 등에의 응용을 꾀하는 수학의 한 분과를 말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