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식 노사문화의 출발점, 살트셰바덴 협약 통일부 김정성 사무관(Södertörn 대학원) 1. 1938년: 대립·갈등에서 대화·타협으로 대화와 타협으로 대표되는 스웨덴식 노사 상생 모델은 1938년 스톡홀름 외곽의 작은 휴양지 '살트셰바덴(Saltsjöbaden)'에서 합의된 노사대타협 정신에서 비롯된다. 협상 타결 이전 스웨덴은 극심한 노사 갈등으로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세계경제 불황에 따른 국내 경제 악화로 전체 인구(1931년 총인구: 615만 명)의 약 1/5이 이민가는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스웨덴의 농촌 마을에서는 지금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대서양을 건너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기록을 적은 표지석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1938년 이전과 이후 스톡홀름에서 만나는 현지인은 1938년을 스웨덴 정신의 변곡점으로 힘주어 설명하곤 한다. 하나의 노사협상이 단순한 노동쟁의 타결을 뛰어 넘어 정치, 경제, 사회적 협약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상황을 돌아보며, 한국과 상이한 기업활동의 배경과 역사적 전통을 확인하고자 한다. 지난해와 올해, 스톡홀름에서는 교통노조의 파업으로 버스운행이 중단되고 전철 배차 간격이 길어지는 사례가 수차례 발생했으나 스웨덴 국민은 조용히 협상 타결을 기다리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기업과 노조 모두 내부 학습과 토론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협상장에서는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최신 협상기법과 다양한 보조자료를 활용한다. 이를 위해 자신들을 지지하는 시민을 인터뷰하는 경우도 많다. 시민들은 협상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정말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관찰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이 협상의 주요 이슈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언론·시민단체·정당 등을 통해 어느 집단의 의견이 타당한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한다. 2. 스웨덴 노사관계의 당사자: LO, SN 가. 스웨덴 노총(LO)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LandsOrganisationen)은 노동시장과 사회에서 조합원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1898년 스웨덴 사회민주당(Socialdemokratiska)에 의해 상향식 노동정책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노총이 설립된 것이 그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전통에 뿌리를 둔 사회민주당과 노총 간의 협력관계가 긴밀하게 유지되고 있으나 점차 조직적 차원의 협력이 약화되는 추세이다. 그러나 노총위원장은 사회민주당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노동자들의 의견을 정치권에 꾸준히 전달해 왔으며, 노총과 사회민주당의 정책방향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독립적인 조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 사회민주당 당수 Stefan Löfven도 노총 산하 금속노조(Svenska Metallindustriarbetareförbundet)위원장 출신으로, 2012년 1월부터 원내 제1당인 사회민주당을 이끌며 올해 9월에 있을 스웨덴 국회의원 총선거를 진두지휘 하고 있다. 스웨덴 노총은 건축·식품·호텔요식업·금속·음악가·화가 노조 등 독립적 지위를 갖는 14개의 산별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산별노조는 제반 산업분야에 전적으로 책임지며(노총 본부 및 씽크탱크와 긴밀히 협조하면서), 사용자와 직접 협상의 당사자로 역할하고, 고용보험기금·근로자 복지기금 등을 관리하고 있다. 스웨덴 노총은 임금 협상, 국제 관계, 노동조합 교육, 청소년 교육, 성 평등, 사회보장연금 등 여러 분야에 관여하고 있으며, 다른 단체나 조직으로부터 노동조합 운동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도 노총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또한, 스웨덴 노동시장과 정치 발전에 관한 문제에도 사회민주당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 조합원 수는 약 150만 명에 달하는데, 이 중 여성 조합원의 수는 약 69만 명이다. 나. 스웨덴 경총(SN) 스웨덴 경영자총연합회(Svenskt Näringsliv)는 스웨덴의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사용자 협의회로 49개의 조직과 6만여 가입회사를 대표한다. 2001년 3월, 스웨덴 고용자연합(Svenska Arbetsgivareföreningen)과 스웨덴산업연합회(Sveriges Industriförbund)의 합병을 통해 만들어졌다. 사실상 스웨덴의 모든 다국적 회사들이 경총에 가입돼 있으며, 가입회사의 약 70%는 직원의 수가 10명 이하로 이는 스웨덴의 탄탄한 중소기업 기반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경총은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고 그 활동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개별기업의 가치와 중요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경총은 기업이 성장하고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사업 환경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며, 기업활동을 제한하는 규제 개혁을 위해 전문인력을 통한 연구조사도 지속하고 있다. 회원들에게 노동시장, 노동법, 각종 세금, 지적재산, 경제학, 거시적 분석, 법적 보호, 보안관리, 무역정책을 포함한 제반 분야에 대한 지식을 제공한다. 본부는 스톡홀름에 있으며 스웨덴 전역에 21개의 지역 사무소가 있고,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도 사무소를 두고 있다. 3. 살트셰바덴 협약의 의미 스톡홀름 동쪽 외곽에 위치한 살트셰바덴(Saltsjöbaden)은 발렌베리 가문에 의해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살트셰바덴은 1909년부터 1970년까지 독립적인 지방자치단체였으나 1971년에 나까(Nacka) 코뮨(자치구) 에 통합되었다. 발렌베리 가문이 만든 철길(Saltsjöbanan)을 통해 스톡홀름 중심과 30분 만에 직접 연결된다. 수도 변두리의 작은 휴양지가 주목받게 된 이유는 1938.12.20. 스웨덴 중앙노조(LO)와 경영자총연합회(SAF)의 대표들이 이곳에 위치한 그랜드호텔 에서 극적으로 노사 대타협을 도출한 곳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 당시 스웨덴은 세계대공황의 여파로 국내총생산이 대폭 줄어들고 실업률이 급증했으며(1931~1932년의 경우 GDP -6.2%, 실업률 25%), 대규모 농민봉기(Ådalen 사건, 1931년)를 막는 과정에서 정부군의 발포로 5명이 사망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가속되는 상황이었다. 1933년 건설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후 스웨덴은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는 위원회를 통해 수년간의 협상을 계속하였고, 수차례의 협상 결렬 위기를 넘기면서 마침내 노동시장위원회, 임금협상, 노동자 해고, 노동쟁의 등 4개 조항을 담은 협상문에 양쪽 대표가 최종 서명했다. 그랜드호텔 2층 회의실에서 도출된 이 협상안의 핵심 내용은 ▲ 노동자들은 경영자들의 지배권을 보장하고, ▲ 경영자들은 일자리 제공과 기술투자에 힘쓰며 ▲ 기업이익금의 85%를 사회보장 재원(법인세)으로 내놓기로 하는 것으로, 이 기념비적 합의를 통해 상호 포용에 기반한 노사합의주의의 원형을 창출하였다. 이는 임금인상 자제와 완전고용 - 복지개혁을 교환하는 스웨덴 모델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파업이 많은 나라 중 하나였던 스웨덴이 임금·고용·복지·국가경쟁력·경제성장을 함께 추구하는 나라로 변모하는 중요한 터닝포인터로 작용했다. 스웨덴식 합리적 노사문화, 협의의 전통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타협을 강조하는 방식이 한국적인 상황과 배치되는 경우도 간혹 발생한다.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결정임에도 협의를 이유로 한 두 달 동안 의사결정이 지연되어 많은 손실을 입는 기업들, 간단한 서류발급이 지연되어 입사서류를 기한 내에 지원하지 못하는 취업 준비생들, 고장난 프린터를 고치는데 3일이 걸리는 도서관, 승무원 지각으로 한 두 시간 동안 운행이 중단되는 전철 등의 사례는 스웨덴식 협의문화의 한계점으로 남는다. 스웨덴 현지인들과 지루하고 어려운 협의가 계속될 때, 그들이 역사적 경험을 통해 절차를 중시하고 대화와 협상에 익숙하며 감성보다는 논리와 합리성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살트셰바덴 협약이 체결된 그랜드호텔 전경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